복도에서 가면을 주웠다. 척 봐도 누구 건지 알겠다. 이름은 자세히 기억이 안 나는데, 군대에 있는 주제에 계급도 뭣도 없는 인간이었다. 원 맨 아미니 미스터 부시.......부시.......하여간 뭐라고 불리는 인간이었는데 군복 위에 이상한 옷을 입고 가면을 쓰고 다니는 또라이였다.
우리 부대, 아니 어로우즈 전체에 그에게 호감을 가질 사람이 있을지 모를 아주 희한한 인간이었다. 군인은 소속과 계급과 상명하복이 생명이다. 그것이 아니면 군대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중에도 그는 군대에 있으면서 홀로 군인이 아니었다. 군복도 안 입고 계급도 없고, 게다가 혼자 다닌다. 세상에 혼자 싸우면 그게 군대냐. 원 맨 아미라니 애초에 말도 안 되는 개념 아닌가. 신병 딱지도 못 뗀 꼬맹이들도 그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원 맨 아미라고 해도 리바이브 대위던가 하는 좀 괴상하게 생긴 사람은 그나마 똑같이 괴상해 보이는 동지라도 있지. 이건 완전히 혼자였다. 군인도 아닌 주제에 군인 집단에 끼어든 잘못된 존재가 저런 거지. 옛날 동양 속담에 개밥에 도토리라는 소리가 있다던데 이 사람이 도토리가 아닌가 싶었다. 아니 우리가 개밥이라는 건 절대 아니고.
우리와 한 데 섞여 어로우즈라고 불리기 싫은 거겠지. 그러므로 그와 무엇이건-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는 사소한 일부터 전투같은 큰 일까지-함께 할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건담만 보면 미친 듯 웃으며 달려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그냥 별 이상한 놈 다 있구나 할 뿐, 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없는 사람이었다. 남에게 호감도 불쾌감도 주지 못하는.
그런데 그 사람이 떨어뜨린 가면을 주웠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인가, 가면을 주워 들자마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의 정체는 금방 밝혀졌다.
웃기게도 그 가면을 얼굴에 단단히 고정시킬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대체 그 또라이는 이딴 걸 어떻게 쓰고 그딴 기체에 타서 허공에서 380도 회전을 하고 날아다닌대? 사실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렇게 괴상한가? 떨리는 손으로 가면을 뒤집어가며 꼼꼼히 살펴보자 이마께에 뭐라고 글자가 적혀있었다. 작은 글자라 가면에 코가 닿도록 가까운 거리까지 눈을 댔다. 적혀있던 글자는 다음과 같았다.
-착용 세 시간 전부터 세안을 금합니다. 원활한 유분 분비를 위한 것이니 피부미용에 관계된 항의는 받지 않습니다.
유분 분비가 적은 체질일 경우 콜드크림 사용을 권장합니다. 가까운 드럭스토어에 문의하세요.-
자세히 살펴보니 종이와 필름 같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과연. 누이들이 이마에 톡톡 찍어문지르던 파란 필름이 떠올랐다. 누이의 손길이 가면 파란 종이가 기름에 푹 절어 기분나쁘게 투명해지던 기억이 떠오르자 굉장히 우울했다. 그 투명한 종이가 누이의 이마에 척 달라붙어서 안 떨어지던 기억도. 누구 기름종이가 더 오래 이마에 붙어 있나 내기하던 더러운 자매들에까지 기억이 미치자 그만 콱 머리를 때리고 싶어졌다.
나는 조용히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지르고, 가면을 손가락 끝으로 집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확 불지르고 싶었지만 불이 너무 잘 붙을 것 같아 차마 하지를 못했다. 그 놈은 그냥 또라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
저 그레이엄 좋아합니다. 어쩌다 2기 되면서 그 지경이 되었는지도 좀 알 거 같고 말이죠. 사실 원 맨 아미가 말이 되는 소립니까. 쟤는 이제 군인도 뭣도 아니에요. 자기가 믿던 옳은 세계는 없어요. 그래도 건담과는 싸우고 싶고. 자기 모순 때문에 저 지경이 된 걸 보면 참 어지간히도 곧은 사람이다 싶고.
그래도 그 가면은 뭔가 이상하잖습니까. 그게 다예요. 그레이엄 망가뜨릴 마음은 없었습니다, 정말로. 제목은, 그냥 미시마 유키오가 생각나서;
'더블오 > 2차창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블오]부칭 (2) | 2009.03.23 |
---|---|
[더블오]공놀이하는 29세 (4) | 2009.02.27 |
[더블오]Happy birthday to me (4) | 2009.02.11 |
[더블오]압생트 매직 (4) | 2009.01.06 |
[더블오]살아남은 자의 슬픔 (4) | 2008.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