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들자 마자 사람을 죽였다. 손에 묻은 피가 몇 명분인지 몰랐다. 지금도 자신은 피를 묻히며 산다. 그럼에도 죽은 자가 꿈에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장 먼저 죽였던 자, 부모의 얼굴은 이제 기억도 나지 않아, 펜으로 눈코입을 그렸다 빨아서 온통 번진 낡은 헝겊인형마냥 희미했고 그 희미한 얼굴마저 꿈에서 나온 적도 없었다.
꿈없는 잠은 깊은 물처럼 어둡고 컴컴해서 쉬기에 좋았다. 그럼에도 그만은 꿈에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런 밤이면 베개가 늪처럼 축축하니 끈적거렸다. 깨고 나면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슬펐던 날도 있었다.
그가 또 꿈에 나왔다.
-
무어라고 입이 달싹였으나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다.
-미안하다.
-
말은 바람에 날려서 낙엽처럼 날아갔다.
-네가 아닌 줄은 알아. 하지만 한 번 더 너와 싸우고 싶었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
-안다. 다시는 눈에서 놓지 않겠다.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겠어.
그러니 록온, 간곡한 목소리로 부르는 말도 들리지 않는지 그는 손을 흔들었다.
깨고 나서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가 나오는 꿈을 꾸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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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오에 손을 댄 건 오펜 말을 빌자면 '나에게 있어 천사와 악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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