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캐릭터 왜곡이 심하니 그런 거 싫으신 분은 넘어가시고요. 세츠나가 싸나이가 아닙니다. 흑.
새로운 건담을 만난 감개도 잠깐, 그 건담과 새 멤버로 시작한 미션은 알렐루야 합티즘의 구출이었다. 알렐루야를 적지에서 끌고 나온 것은 세츠나였다. 티에리아가 굳이 그렇게 할 것을 제안했고, 세츠나도 군말 없이 따랐다. 케루딤 건담 파일럿부터, 그 후 4년간 벌어진 이야기는 그를 구출한 다음, 알렐루야 합티즘이 아리오스의 파일럿이 되어도 괜찮을지 판단한 다음이라는 것이 둘 사이의 묵계였다. 약해진 사지로도 굳이 부축해 주겠다는 세츠나의 손을 거절하고 지상에 내려온, 그리고 묵묵히 재활훈련을 시작한 눈에 녹색 옷을 입은 케루딤 건담 파일럿이 보인 것은 그러니까, 명백한 실수였다고 티에리아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직후 그는 원인불명의 두통을 일으키고 의무실에 누워있었다. 4년 전의 원인불명의 두통과도 비슷해 보였다.
-어떻게 된 거냐.
의무실에서 나와 복도를 돌자 티에리아가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당연한 수순인 듯 세츠나는 놀라지도 않고 티에리아의 앞에서 바를 잡고 섰다.
-면목이 없군.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더니 주저앉아 버렸다.
-의무실엔 누가 데려다줬나?
-억지로 일어나더니 자기 발로 걸어갔다.
티에리아가 혀를 찼다. 깐깐한 성격은 여전한 모양이었지만 4년 만에 만난 티에리아는 그럭저럭 한 조직의 참모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원체 꼼꼼한 성격이라 그런 일이 잘 어울리기도 한다고 생각했다. 록온 스트라토스는 모르겠고, 세츠나가 자신을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4년만에 만난 알렐루야 합티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좋게 말하면 타인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가 되었고 나쁘게 말하면 뭔가 하나 빠진 사람이 되었다. 4년 세월은 사람을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몰고 가곤 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알렐루야 합티즘이 맞으면서도 다른 사람이었다. 되돌아오는 데에 시간이 걸리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저런 식일 줄은 몰랐다.
-여기들 모여 있었네. 아까 그 사람 좀 어때?
록온 스트라토스가 두 사람이 모인 곳에 끼었다.
-아, 록온 스트라토스.
-알렐루야 합티즘이라면 안정을 취하고 있다.
티에리아가 인사를 하자 세츠나가 바로 대답했다.
-너희들 날 보고 울컥대는 거야 이제 그러려니 싶지만, 저치는 대체 뭐냐?
어이없는 얼굴로 록온이 물었다. 표정에 불만이 드러났다.
-재활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주면 어떻겠나. 솔직히 말하면 저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게 반가울 지경이야.
티에리아가 설명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무엇에도 관심을 두지 않던 알렐루야가 사람을 보고 그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내심 반갑기도 했던 것이다. 다만 그 격한 반응에, 놀란 멤버들이 더 문제였고 감정조절이 안 되는 알렐루야 합티즘이 건담을 타도 되는 건지가 가장 걱정이었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문제다. 저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어.
-굉장히 섬약한 사람이었나봐?
록온 스트라토스의 말에 티에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남보다 마음이 약하긴 했지만 오히려 어떤 면으론 더 잔혹하고 무딘 편이었지. 섬약하지는 않았다.
-알렐루야 합티즘은 강인한 자였다. 그 록온 스트라토스가 없어진 직후,
세츠나가 숨을 삼켰다. 4년이 지나도 말을 잇기 힘든 것이 있었다.
-그는 우리의 의견을 모았고 싸울 것을 건의했다. 그런 자라도.
세츠나의 눈이 록온 스트라토스를 향해 움직였다.
-이 일은 충격적인 것인가.
-마음이 약해진 탓이다.
티에리아가 단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지는 법이다. 게다가 그에게 소개도 없이 저 록온을 보인 건 실수였어.
-보인 게 아니야.
-응?
-보인 게 아니다, 티에리아 아데. 알렐루야가 굳이 보고 싶어 한 거야.
록온이 어이없는 얼굴로 세츠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그래.
티에리아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보여줬나?
-그래.
-어디까지 알려줬나.
-아마 네가 알고 있는 선까지는 알 거다.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했어. 알아서 조사를 해 본 모양이더군. 그래서 보여줬다.
날이 선 티에리아의 질문에 대답하는 세츠나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세츠나 F. 세이에이. 여전히 어리석군.
-미안하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기서 버티지 못하면 그건 알렐루야 합티즘의 잘못이 아닌가.
-네 말이 맞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어.
-그렇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야기하지?
두 사람의 목소리가 조금씩 격해졌다. 세츠나의 눈빛이 가라앉고, 티에리아의 눈꼬리가 올라가는 순간, 록온이 몸을 움직여 두 사람 사이에 섰다.
-그만 해라. 오래된 동료라면서 뭐 하는 짓이야. 그리고 지금 제일 충격받을 사람은 나거든? 도대체 그 녀석 뭘 어쨌길래 보는 사람마다 날 어떻게 못 해서 안달이래?
노려보던 두 사람의 시선이 떨어지고 나서 먼저 사과한 것은 세츠나였다.
-미안하다. 록온 스트라토스. 저자는 네……아니, 전의 록온을 각별히 따랐다.
세츠나의 말 끝에 묻어나는 엷은 한숨에 록온이 혀를 차고 한 손으로 머리를 긁었다. 몇 번 겪어 익숙한 일을 처리하는 사람 특유의 체념이 묻어나는 동작이었다.
-그런 것 같네.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고, 그럼 나는 사라지지. 아무래도 내가 끼일 자린 아닌 것 같아.
-그래. 그리고 책임지는 의미에서 내가 정리를 하지. 그러면 되겠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며 생색내지 마라.
티에리아가 한숨을 쉬었다.
-그럼 록온 스트라토스. 모의전 결과를 정리해서 제출하기 바란다. 세츠나 F 세이에이는 알렐루야 합티즘의 상태를 가라앉힌 다음 마저 이야기하지.
-알겠다. 가라앉히기만 하면 되는 건가?
-기왕이면 알렐루야 합티즘이 현상황을 빨리 납득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겠다.
티에리아는 세츠나를 노려보았다.
-난 늘 너에게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지.
-차라리 고맙군. 알겠다. 내 할 일은 하지.
복도를 돌아 두 사람의 모습이 없어지고 세츠나는 의무실의 도어록을 해제했다.
멍하니 허공을 보고 앉아있던 알렐루야가 멀거니 문을 쳐다보았다. 세츠나는 벽에 말을 거는 기분으로 말을 건넸다. 왜 그런지 말을 걸고 싶지 않았지만, 동시에 무슨 말이라도 걸고 싶었다. 우선 그의 옆에 다가가 앉아 이름을 불렀다.
-알렐루야.
-아, 두통은 가라앉았어, 이제 괜찮아.
여전히 멍한 얼굴에 특유의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알렐루야가 말했다.
-티에리아가 보냈겠구나. 걱정하고 있겠지. 내가 아리오스를 조종할 수 있을지.
소심한 듯 정곡을 찌르는 발언에 세츠나는 뭐라 말 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하고도 싶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전혀 실례가 아닌 상황임에도 어쩐지 그런 말 대신 다른 말을 더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쪽을 골랐다.
-사실과 과히 다르지도 않다만, 그것도 그거지만 네가 너무 달라진 것도 우리에겐 위험요인이다.
-나 자신은 별로 4년 전과 다르지도 않은걸. 그건 그렇고,
알렐루야의 어정쩡한 미소가 씁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록온……그러니까 우리가 알던 그 록온은 아니지, 아무튼 록온은?
-괜찮다.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거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하기야.
아까부터 피식피식 헛웃음을 흘리는 알렐루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츠나는 할 일을 얼른 해치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보다 여기서 이 질문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뭣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너는 괜찮은가.
-뭐가?
-많이 놀란 것 같은데.
-놀랐다기보단 음, 그냥 좀 충격이었지?
-그 말이 그 말이다만.
4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알렐루야 합티즘의 언변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말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아냐, 정말 충격이었어. 꼭 우리가 알던 그 록온처럼 생겼는데 록온이 아니어서.
-아니라고?
-응. 닮은 듯 한데 그 사람은 아니라서 그게 충격이었지.
초인병의 감각인가, 세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성격도 많이 다르다. 빨리 파악했군.
-그냥 감이야.
알렐루야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표정을 지었다. 눈빛이 다른 공간을 헤메듯 어둡게 가라앉았다.
-감?
-응, 그냥 감.
감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어감상 즐겁게 않게 들리기는 처음이었다. 세츠나는 말을 돌리고 싶었다.
-그럼 그 두통은 뭔가.
-나도 몰랐지만, 역시 록온이 없다는 건 충격적인 일인 모양이야. 그 여파가 아닐까 하고.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이런 두통은 안 겪을 줄 알았는데.
-안 겪을 줄 알았다고?
-그야, 이제 뇌양자파 간섭을…… 음, 아냐.
많은 것을 잃었다. 셀레스티얼 비잉에 잃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알렐루야 합티즘은 그 때, 자신의 유사인격을 잃은 듯 하다고 들었다. 이제 그는 온전히 혼자이다. 록온 스트라토스도, 늘 함께 살아온 반신도 없어졌다. 자신과 같다.
-아무튼 내 두통은, 더 이상 내가 왜 이런지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그럴지도 몰라. 그저 그 뿐, 더 이상 충격을 받지도 않을 것 같다.
-역시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다. 좀 더 안정을 취하겠나?
그리고 세츠나는 그제서야, 왜 자신이 그와 대화하는 역할을 맡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자신은 알렐루야 합티즘과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알렐루야가 자신과 이야기를 하게 하고 싶었다. 록온을 매개로 한 대화가 아니라, 자신과 마주보는 대화를. 왜 하필 지금, 이 때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자신조차 모를 일이었지만.
-에이, 괜찮아. 세츠나, 걱정해주지 않아도 돼.
-안색이 좋지 않아.
세츠나는 알렐루야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내심, 그가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이 은근히 기쁜 자신이 기분나빴지만, 이런 식으로 그에게 간섭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다는 건 4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와 얼굴을 마주볼 수 있을 만큼 자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자기자신과의 대화가 아닌 남과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더 이상 그와 곧장 대화하는 것을 방해할 요인은 없었다.
-내가 걱정을 끼쳤구나.
알렐루야가 어깨를 짚은 손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너에게까지 걱정을 끼치게 될 줄은 몰랐어. 하지만 정말 충격을 받은 것 뿐이고, 나는 금방 회복할 거야.
-아니, 알렐루야.
세츠나가 하는 말은 듣지 않는 듯, 알렐루야는 먼 곳을 보는 듯 아련한, 혹은 멍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 증거로 세츠나가 하는 말이 무참하게 잘렸음에도 알렐루야는 자기가 뭘 잘랐는지 몰랐다. 저건 먼 곳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내면이라고 세츠나는 생각했다. 그는 항상 자기자신의 내면과 먼저 대화를 한다. 세계와의 소통은 그 다음.
-그 때의 그 사람만큼 나이를 먹었는데.
변한 것이 많다고 생각한 자신이 틀렸다고 세츠나는 생각했다. 4년 전과 같다. 알렐루야는 그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록온의 등을 보고 있다. 지금도 그의 내면에 들여다 볼 누군가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티에리아가 말했다. 하지만 이제 볼 록온의 등도 없는데, 낯선 등에 그 그림자를 투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한 그 어느날만큼, 자신이 어리다는 것을 실감한 적은 없었다. 자신은 투영할 그림자조차 되지 않았기에.
-알렐루야 합티즘.
멍한 눈길로 알렐루야가 세츠나를 바라보았다.
-4년이 지났다. 이제 여기를 볼 때야. 나는 그 때의 너보다 더 나이를 먹었어. 너와 같은 입장이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자신조차 모를 때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어려서부터 말주변과는 담을 쌓아왔던 탓에. 하지만 저 말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알렐루야에게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은 저것일지도 모른다.
세츠나의 말을 듣고 알렐루야는 눈을 크게 떴다. 멍한 눈에 검은 점 같은 빛이 한 조각 또렷하게 들어왔다. 세츠나의 말에 대한 분명한 반응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츠나, 저기.
-대답은 안 들어도 된다.
세츠나의 손이 알렐루야의 목덜미를 덮었다.
-어서 돌아와라. 알렐루야 합티즘.
형제를 포옹하듯 세츠나가 알렐루야의 머리를 팔과 어깨로 감싸안았다.
-마주보고 이야기할 준비가 되면 그 때 대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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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겨운 연수날, 마침 모 님께 연락을 드리다 그 분이 좋아하시는 커플에 생각이 미쳤고 그럼 이번엔 이런 걸 써 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개요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당신만큼-여기 제가 좀 목을 매는 편이거든요. 저 대사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온 알렐루야와 그를 보는 세츠나에 대해 개요를 짜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글을 마저 쓰기 위해 친구들에게 문자를 돌렸습니다. 지금 이런 거 쓰고 있어요, 라고. 벗님들 약속 지켰소. 이제 다른 거 달리러 가리다.
하지만 쓰던 개요와는 달리 저 아이들은 먼 데로 가 버렸습니다. 캐릭터 왜곡에 대한 책임을 물으셔서 저를 돌로 치셔도 좋습니다. 저 소녀들 대체 뭡니까; 저거 원래 록세츠록 베이스의 세츠알렐이었단 말입니다? 사나이이신 세츠나님께 저 무슨;
혹시 나중에 수정하는 한이 있어도 지금은 올려야겠습니다. 이거 2기 방영되면 쓰지도 못할 떡밥이니 지금 풀어야 쓰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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