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연수중이러 컴으로 딴 짓을 많이 하는데(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모처 건담판 보다가 벨파스트 사진 한 장과(올려주신 분, 감사합니다.) 엔딩의 한 장면을 보고 머릿속엔 망상이 몽글몽글 피어올랐으니, 일단 그 놈이 닐 디란디인 건 확실하고(설마 1기 엔딩에 나온 그 놈이 라일이었다, 이런 짓까진 안 할 거 아냐.) 시간 대가 언제냐는 건데......저게 록온의 과거라면 시위 같은 세상을 바꾸는 법에 관심은 많을 것 같은데 그 기사처럼 시위를 주동하는 인물인지는 모르겠다. 내 눈에 걔가 리더감은 절대 아니거든. 리더를 가장은 하겠지. 저걸 누가 썼느냐가 문젠데 그래, 어느 애니잡지 보니까 기사로 사람 낚더라 뭐.
다른 애들을 볼 때 1화 직전쯤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럼 그 시위를 주동하는 입장은 아닐 거라는 데 한 표. 테러리스트 주제에 무슨. 어쨌거나 아일랜드 사람이니까 동네 또래청년들 형님들 어울려 있는데 혼자 그냥 지나치기 뭐해서 조금은 이 사람들이 부럽고, 조금은 안 됐고, 조금은 짠한 마음으로, 아아주 조금은 냉소적인 마음으로 현장에서 같이 구호를 외친 게 아닌가, 하는 망상을 하다가 (어쨌건 자기는 거기 끼어들 수 있는 인간이 아니잖나.)그 곳이 록某의 안가가 있는 곳이라는 걸 떠올렸다.

난 설정도 고증도 안 하고 쓰고 고치는 인간이다. 흠흠. 아니 사실은 퇴고도 안 해. 생각나면 써. 생각이 안 나서 그렇지.
---------------------------------------08. 08. 16 조금 수정. 난 왜 이리 허술하냐-----------------

시위 현장에서 목청 높여 구호를 외치고 있는데, 근처에서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나보다 조금 바깥에, 그렇다고 아주 대열에서 벗어난 건 아닌데 미묘하게 시위대열과 어긋나게 서 있었다. 옆집에 사는 청년이었다. 옆집에 산다고 해 봐야 사실, 무슨 일을 하는지 집은 자주 비우는 것 같다. 집에 불이 켜져 있는 날이 반, 안 켜진 날이 반. 그것도 요 최근엔 불이 꺼져 있는 날이 잦다. 젊은 남자 혼자 사는 것 같다며, 혼자 살면 잘 못 챙겨먹기 십상이니 이웃은 그런 사람에게 관심을 쏟아주는 것이 도리라는 것이 우리 부모님의 신조라 반경 50m 내에 사는 사람들과는 거의 안면을 트고 사귀고 있는데, 이 사람은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이 동네에 이사온지 4년은 된 것 같은데 한 번도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보니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었더라.
내 이웃에 사는 젊은 남자는 시위대 옆에서, 살짝 비껴선 자세로 구호를 외치며 다른 사람들처럼 손을 젓고 있었다. 살짝 헐렁한 자세인데 묘하게 딱딱해 보였다. 전에 딱 한 번 대화를 할 때도 그랬다.
뭐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하여간 뭘 부숴뜨려먹어서 드라이버를 찾았는데 십자드라이버가 없어서 이웃에 빌리러 간 적이 있었다. 이웃인데도 어쩐지 긴장이 되어서,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벨을 눌렀다.
-옆집 사람인데요, 아무도 안 계세요?
잠깐, 아주 잠깐 뜸을 두고 나서 목소리가 났다.
-네, 갑니다!
대답은 해 놓고 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 젖은 목이며 팔이며 등이며 입고 씻기라도 했는지 좀 젖은 옷에,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나타난 젊은 남자는 웃으며 사과부터 했다. 멀리서 볼 때는 냉한 인상이었는데 말투도 표정도 참 수더분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고, 이거 미안하게 됐네요. 씻던 중이라 꼴이 이렇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아 아뇨, 제가 죄송합니다. 그냥 십자드라이버를 빌릴 수 있을까 해서 왔는데 씻고 계셨군요.
묘하게 남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싱긋 웃고는 발랄한 말투로 말했다.
-드라이버? 잠시만 기다려요.
그러고는 현관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조금 있다 손에 십자드라이버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꼴이 이래서 들어오시라곤 못 하겠네요. 쓰시고 나중에 돌려주세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이 이상 발을 들이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씻고 있는데 나타났으니 들어가면 싫어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마지막 용건만 마치고 돌아가기로 했다.
-고맙습니다. 저, 이거 답롄데 드셔보세요.
이웃과 친해지는 지름길은 음식을 나눠먹는 것이다. 나는 빵 몇 종류가 들어있는 봉투를 내밀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더니 봉투를 잡았다.
-오, 감사합니다. 따끈한 걸 보니 집에서 만드신 건가보네요?
-네, 제가 요리를 좋아해서요.
-야아, 귀한 거네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드라이버는 이따 돌려드릴게요.
-아, 네. 혹시 저 없으면 문 앞에 두고 가시고요.
그는 봉투 속에서 버터롤을 꺼내 요리조리 돌려보며 정말 기분좋은 얼굴로 웃었다. 인사를 주고 받은 다음,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굉장히 사교성 좋고 서글서글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이 위화감의 정체는 뭘까.
오후에 드라이버를 돌려주러 갔을 때, 집이 비어 있고, 문 앞에 작은 주머니가 걸려 있어서 거기 드라이버를 놓고 간 기억도 났다. 웃으며 이야기했는데 왜 깊이 접근하지 말라고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까. 아무튼 한동안 그 집은 비어있었다.

나는 앞에 선 사람에게 들고 있던 피켓을 넘기고 행렬의 가로 몸을 옮겼다. 시위대는 여전히 주먹을 쥐고 구호를 소리높여 부르짖고 있었다. 위치를 옮겨서 잘 보니 그가 그 곳에 서 있었것은 아주 잠시였던 듯, 이내 피식 하고, 웃더니 이내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던 길이었나보다. 몇 발짝 걸어가다, 대열에 섞여 그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나와 그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한 얼굴에 재빨리 웃음을 띄우고 그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어라, 옆집 분이시네요. 안녕하세요?"
"네, 시위에 참가하셨나봐요."
그는 헛기침을 했다.
"뭐어 그런 거죠. 그나저나 아직 어려보이는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그렇지도 않아요. "
칭찬을 받고 머쓱해져 고개를 긁적이다보니 어느새 그는 돌아서 방향을 틀었다. 고개만 돌리고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럼 안녕히."
"네, 그러니까, 어......."
물어보려고 고개를 돌리자 그는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평범한 안부인사나 왜 그러냐는 일상적인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때 어제 내게 드라이버를 빌려주고, 보답으로 내가 구운 버터롤을 준 그 사람의 이름을 모른다는 걸 알았다. 기억나는 것은 물건을 매개로 잠시 스쳐간 손의 온도 정도.
그 때 물건을 빌리러 갔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때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은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였다.
그는 마치 잘못 합성한 사진처럼 풍경 속에 억지로 몸을 밀어넣고 있었다. 그 증거로 얼마 전부터 빈 그의 집이나, 그가 살던 때의 그의 집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리고 내가 억지로 기억을 뜯어내서 생각하지 않았다면 잊고 넘어갈 뻔 한 것이 하나 더 기억이 나기도 해서였다. 시위 현장에서 그가 보였던 그 냉소적이고 약간은 아련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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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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