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사제님은 외출 잘 안 하시네?" 어느 늦은 저녁, 손님들이 제법 많이 와서 바빴던 시간은 지나가고 이제 가게도 꽤 조용해져서 다들 뒷정리를 해 놓고 차를 한 잔 씩 마시면서 쉬던 중, 아소가 뜬금 없이 말을 꺼냈다. "......어라? 아저씨 왜 그러세요?" 초로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고 월광이 머리를 감싸쥐고 아아, 생각도 하기 싫어, 라고 중얼거렸다. 시열이나 동풍이처럼 카페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되는 아이들은 뭐예요, 왜 그래요? 하면서 심현 쪽을 쳐다보았다. 심현은 난감하다는 듯 조금 웃었다. "아니, 그게. 내가 그 때 사고를 좀 쳐서." "사고는 그 때만 친 게 아니잖아요, 사제님." 월광이 웃었다. 하긴 저 사회 적응능력 심히 부족하고 경제관념은 아예 있지도 않은 사람이 사고를 안 치기도 참 어려운 일이긴 하지. "그러니까, 사제님이 여기 온 지 얼마 안 된 때 이야기야." 월광이 이야기를 하고 초로가 거들고, 심현이 보충설명을 했다.
"심부름요?" "그렇지. 우유 1.5L 짜리 두 개만 사다주게. 가게 위치는 알지?" "네, 그럼 다녀올게요." 가게에 물건이 떨어졌고, 사람이 없었다. 마침 테이블을 닦고 있던 심현을 불러 심부름을 시키고 초로는 다시 주방에서 스콘과 쿠키를 구웠다. 우유가 오면 케이크도 구워야지, 하면서. 그러나 스콘이 다 구워지고, 구워 놓은 쿠키가 맛있게 식어도 심현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사람이 우유 사러 대체 어디까지 간 거지? 전화를 해 보려고 했으나 심현은 아직도 핸드폰이 익숙하지 않은지 핸드폰을 잘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한숨을 쉬었다. 그건 조그만 장식품이 아니고 생활용품이라고 분명히 이야기를 했는데도. "다녀왔습니다." 월광과 휘안이 가게에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심현이 가게에서 나간지 한 시간 반이 지났다. "너희들, 혹시 오다 심현 사제 못 봤어?" "사제님? 아뇨, 어디 가셨어요?" "나간지 한 시간 반이 지났는데 오질 않네." "어디 간다고 이야기는 하고 나가셨어요?" "어, 내가 우유 좀 사 달라고 그래서 잠깐 저 앞 가게로 갔는데." "길 잃으신 거 아니에요?" "바보. 사제님이 오빠 같은 줄 알아?" "하지만 이 시간까지 안 오시잖아." "대체 이 사람이 어딜 간 거야......" 사람을 찾는 것도 우리 일에 포함되는 거였나? 초로는 한숨을 쉬었다.
-------------- 철창이 문에 쳐져 있는 걸 보니 여기는 감옥 같은 곳인가, 그런데 왜 내가 여기에 와 있을까. 종단에서도 나를 잡아간 적은 없었는데. 심현은 조금 전, 자신을 잡아다 이 곳으로 밀어넣은 사람들이 한 말을 떠올려 보려 햇으나,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처음 듣는 단어가 너무 많았는지, 머릿속에서 말들이 빙빙 돌았다. "불법......체.....뭐였더라." 이 곳에 온 지 이 개월 째. 한참 언어교육에 사회화교육을 받는 중이긴 하지만 이개월이 지난 지금도 이 세계는 낯설기만 했다. 기계들이 하는 일도, 사람이 기계로 하는 일도, 사람도, 자연도, 생각도. "불버체류자라니 너무하잖아요!" 아, 그래. 불법체류자. 어려운 단어 이야기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려고 옆을 보니, 자신처럼 색이 짙은 피부에 곱슬곱슬한 까만 머리가 멋진 자매 한 사람이 창을 흔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일 하러 와서 일 하는 게 뭐가 문제라고! 이대로 돌아가면 우리 식구들이 어떻게 되는데? 놔 줘요, 놔 달란 말이야!" 아직 듣는 게 어려운데다 자신 못지 않은 발음이라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다음에 월광이한테 발음 잘 배워야지. 그런데......일 하는 게 죄라? 이런 죄목은 사제로 살아온 지난 17년 간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심현은 여기 와서 자기가 한 일을 생각해 봤다. 카페에서 일 하고 과장님이나 차장님이 불러서 일 하고...... 아하, 다들 남들 모르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구나, 나처럼. 심현은 속편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왜 잡아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