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세이야는 잘 몰라서 쓰느라 힘들었어요 크흑.
아무튼 흉측한 개그입니다; 보시고 난 뒤에 항의하셔도 전 몰라요.
크리스마스 이브, 오늘 하루는 모든 골치 아픈 업무에서 벗어나 쉬고 놀며 즐기는 날입니다. 아테나의 세인트 주제에 크리스마스 같은 이교도의 명절이 웬 말이냐 물으신다면 그 아테나께서 크리스마스는 좋은 날이라고 하셨으므로 아테나의 노ㅇ……아니 충실한 신도인 황금들은 그분의 말씀을 받들어 하던 일을 작파하고 술판을 벌였습니다.
아테나께서 술판 벌이고 놀라고 하신 적은 없었던 거 같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놀아야죠. 4대보험도 없어 퇴직금도 없어 일 하다 죽어도 산재처리는 고사하고 무덤 하나 만들어 주는 게 다인데, 이 정도 재미도 없으면 해 먹겠습니까. 그나마 아테나께서 계시니까 모든 서러움과 더러움을 참고 일하는 거죠. 아테나께서는 귀여우시고 아름다우시고 늠름하시고 싸나이시고 가슴도 크시……어흠어흠.
아무튼 데스마스크가 술을 조달하고 슈라가 안주를 만들고 아프로디테가 셋팅한 술상은 그럭저럭 멋져 보였습니다. 슈라가 아프로디테를 닦달해서 실내장식까지 시킨 마갈궁은 제법 파티 분위기가 났습니다. 시온 님 자리까지 열 네 개의 술잔이 놓여 있었고-다 늙어 무슨 술이냐 애들끼리 놀아라 툴툴대셨으나 노사님이 벗이 없으면 나는 누구와 대작하라는 말이냐며 생떼를 쓰시는 통에 시온 님도 별 수 없이 참석하셨습니다- 데스마스크가 고생고생해서 가져온 보드카니 고량주니 하는 것들을 보고 중국 출신인 노사가 기뻐하며 껄껄 웃었고 프랑스 출신 카뮤가 비장의 술이라며 압생트 병을 꺼내왔고(미로가 그걸 보자마자 치사하게 너 혼자 숨겨두고 마셨냐며 투덜댔습니다.) 아프로디테가 어디서 봤는지 렛츠 파뤼~야하!!를 외쳐대다 장르가 다르지 않냐며 시온 님께 쥐어박혔습니다.
여기까지는 분위기가 괜찮았다니까요. 술이 동이째 없어지기 시작했을때만 해도요. 말 그대로 술은 동이 단위로 없어졌습니다. 노사가 반가운 술이라며 동이째로 들이키기 시작했고 시베리아에서 마시던 거라며 카뮤가 바가지로 술을 퍼 마시며 우리 착한 제자는 시베리아의 찬 벌판에서 귤이라도 잘 까먹고 있을까 하며 울었습니다만 이거야 예상 범위 안의 일이죠. 그 정도는 알아서 마련할 만큼은 중간관리직으로 굴러본 염소와 어패류입니다. 다들 화기애애하게 잔을 기울이기 시작하자 술은 금새 바닥이 났고 새 병을 따고, 따고 또 땄습니다. 밤은 깊어가고 빈 술독과 술병이 쌓여 공성전이라도 벌일 기세로 유리와 통으로 된 벽이 완성되었습니다. 그쯤 가니 눈이 풀리는 사람도 하나둘 생기기 마련이죠. 가장 먼저 눈이 풀린 사람은, 의외로 사가였습니다. 술병이 두 개라며 손가락질 하는 걸 카논이 듣고 그게 왜 두 개냐, 한 개지. 형 취했구나 웃긴다 근데 왜 술이 분홍색이냐며 멀쩡한 초록색 압생트를 손가락질했습니다. 제미니 쌍둥이가 완전히 갔다며 비웃던 데스마스크는 술잔 대신 자기 발등에 술을 붓는 걸로 자신의 상태를 인증했지만요. 그러고 보니 황금들이 모여서 술을 퍼 마신 적이 없었다는 걸, 아무도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서로 술버릇이 어떤지도 아무도 몰랐어요.
그리고 환란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나긴 밤의 시작이었죠.
사가가 훌러덩훌러덩 벗어던지는 거야 예상범위 내의 일이었습니다. 쯧쯧, 또 벗어던지네. 저놈 무슨 노출증이라도 있나. 아니 뭐 13년간 숨기고 사느라 생긴 버릇이긴 하지. 그러게 누가 그러고 살랬나. 다들 뒤에서 수군거리며 씹긴 했지만 사가가 다 벗고 스트립쇼를 하는 걸 방관만 했지 말리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테이블 위에 뛰어올라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올라가자마자 양팔을 쭉 뻗고, 가운데손가락을 다른 손가락보다 조금 낮게 내린 자세로 손까지 곧게 편 다음 다리를 어깨너비만큼 벌린 사가를 본 슈라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세상을 저주하는 말을 내뱉은 다음 눈을 감고 귀를 막는 것이었습니다. 슈라가 왜 그러는지 깨닫지 못했던 황금들은 잠시 후, 눈이 썩어들어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사가가 갑자기 골반을 뒤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밸리 댄스였습니다. 사가가, 스물 여덟 먹은 장정이 홀랑 벗고 밸리 댄스를 추기 시작한 겁니다. 허리를 요염하게-어디까지나 의도만 그랬다는 겁니다. 의도만.- 흔들고 팔을 흔들고 다리를 꼬아가면서 탁자 위를 빙글빙글 돌아대는 사가에게서 눈을 떼는 데 몇 분이 걸렸습니다. 너무 무서운 걸 보면 눈도 못 감는 법이랍니다. 어디서 났는지 빨간 장미 두 송이를 들어 하나는 머리에 꽂고 하나는 입에 물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허리를 뒤틀어대는 사가에게서 가장 먼저 해방된 사람은, 연륜의 261세, 전 교황 시온 님이었습니다.
“에에잇, 무엄하다!”
시온 님은 밥상뒤집기를 시전하셨습니다. 테이블 째로 뒤집어서, 춤추던 사가가 억 소리도 못 하고 테이블에 깔려 있는 걸 보면 아무리 시온 님이라도 사가에게 손을 대고 싶지는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굳어있던 황금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쯧, 애송이들 같으니라고. 그걸 마시고 취했단 말이냐!”
하며 의기양양하게 시온 님은, 검정 베이스에 골드 프렌치네일을 곱게 한 손가락을 들어 황금들을 가리키셨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손톱을 보고 알데바란이 굳었으며 아프로디테는 브라보를 외쳤고 므우는 생글생글 웃으며 샤카의 옆에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습니다. 벗이여내게 명상하는 법을 가르쳐주신다 하였으니 오늘 명상의 극의를 알려주시오. 심두멸각이면 불조차 서늘하다 하였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현실도피도 참 가지가지로 합니다.
미로가 실실 웃으며 므우에게 말을 걸기 전까진 그럭저럭 괜찮은 명상이었대요.
“오늘 네일 좀 잘 됐다. 저렇게 잘 어울릴 줄 알았으면 진작 할 걸.”
“뭔 소립니까.”
“음, 그러니까아~”
사가가 흉측한 짓을 저지르기 한 시간 전의 일입니다.
미로는 매니큐어를 꺼내, 시온 님의 양 손가락에 곱게 발랐습니다. 술 취한 김에 평소 노리고 있던 시온 님의 손가락에 매니큐어를 하고 싶다고 떼를 썼지요. 멀쩡해 보이지만 이미 주량을 한참 넘겼던 시온 님은 미로의 빨간 손톱을 보더니 나도 그런 거라면 해 보고 싶다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다들 평소 어깨에 힘을 주고 사느라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술 좀 들어갔다고 이렇게까지 솔직해지는 걸 보면 말입니다.
“미로여, 실력을 최대한 발휘해 보게나. 나이가 들어 그런가 화려한 색이 좋으니 잘 부탁하네.”
“네-. 맡겨주십쇼!”
“오오, 시온 자네만 그런 좋은 걸 하나! 미로야, 끝나면 다음은 내 손톱이다.”
“노사님도! 알겠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큐티클은 코스모의 힘으로 정리하고, 미로는 베이스코트를 갖고 와서 꼼꼼하게 발랐습니다. 그리고 바탕색을 한 번 쓸어준 다음, 다시 정성스레 바르고 그게 마를 동안 노사님의 손톱을 손질했습니다. 시온 님은 무릎에 양손을 얹고 언제 마를까 하며 손톱 끝을 호호 불며 얌전히 앉아계셨습니다. 그동안 옆 테이블에서 샤카가 알데바란이 황소이니 싯다르타 아니냐며 신나하며 알데바란의 등 위에 타고 자, 소가 되거라! 하며 웃고 있었고 옆에서는 그건 우리 아테나 님 전매대사다 해보자는 거냐며 카논이 으르렁댔습니다. 노사님의 손톱을 다 칠한 미로가 시온 님의 손톱 끝에 금색으로 예쁘게 마무리를 하고, 탑코트를 바른 다음 코스모로 손톱을 말려주었습니다.
“시온 님, 이게 프렌치 네일이란 거예요.”
“오오, 시온, 자네와 잘 어울리는 배색 아닌가! 겉은 금색이고 속은 검으니 딱 자넬세 하하하!”
“도코, 나와 해 보자는 건가!”
이렇게 아웅다웅하다 마침 상 위에서 춤 추던 사가를 보고 열받은 김에 밥상을 엎으셨다는 거죠. 미로는 의기양양하게 설명을 마치고 나 잘 했지 포즈로 므우를 쳐다보았고 므우는 머리가 아팠습니다. 옆을 보니 정말로 노사님이 손바닥이 위로 가게 손을 펴고 손가락만 몸 쪽으로 오므린 귀여운 포즈로 손톱을 보며 감탄하고 계셨습니다. 곱게 다듬은 연녹색 손톱에 짙은 보라색으로 호랑이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손톱도 예쁘게 관리하는구먼. 선재, 선재로다! 하하하!”
노사님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어지럽습니다. 어지러운 게 아마 술 때문만은 아니겠죠. 므우는 우아하게 웃으며 미로의 턱에 주먹을 날렸습니다. 술로 통각이 마비되었는지 미로는 웃는 얼굴 그대로 구석에 처박혀 잠들어버렸습니다. 아마 술이 깨면 미로는 교황님 앞에 불려가 밥상뒤집기를 시전당하겠지요. 그 전에 턱에 멍이 든 걸 깨달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긴 밤이 흘러갔습니다.
이 수라장 속에서도 꿋꿋이 형님 앞에서 마시는 술, 취할 수 없다며 이를 악 물고 마신 아이올리아는 말짱한 정신으로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어요. 탁자 밑에 처박혀 꿈틀거리고 있는 사가-꿈에서도 춤을 추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테나님의 사진을 끌어안고 잠든 카논. 엎드린 자세로 웅크려 잠든 알데바란과 그 위에서 결가부좌를 틀고 명상인지 망상인지를 하고 있는 샤카, 미로의 목을 흔들며 내 손톱도 예쁘게 다듬어라 하는 김에 페디큐어도 하라며 화를 내고 있는 아프로디테와 울며 손톱에 깨알같은 장미 수백 송이를 그리고 있는 미로, 보드카병에 얼굴을 부비며 효가야 밥은 하루 세 끼 잘 먹고 있느냐, 자기 전에 이는 잘 닦고 있느냐 하며 훌쩍이는 카뮤에 축음기 틀어놓고 왈츠를 추고 있는 전 교황과 노사 콤비, 의자 위에 우울한 얼굴로 웅크리고 앉아 탁자 위에 돋아난 죽은 이들의 얼굴과 중2한 대화를 나누는 데스마스크에 벽에 삿대질을 하며 아이올리아 당신이 그따위로 사니까 안 되는 거라며 화를 내고 있는 므우, 술독을 끌어안고 아이올로스 미안하다, 잘못했다며 울부짖는 슈라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괜찮아 슈라. 다 지난 일인걸. 그런데 요즘도 가끔 그 때 네가 찌른 옆구리가 쑤신다? 하하하! 하며 웃는 아이올로스까지.
형님은 말짱하신 모양입니다. 과연 우리 형님이라고 감탄하며 아이올리아는 일어나려다 머리에 뭐가 부딪혀 다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언제 거기 처박혀 있었는지 탁자 아래였어요. 어쩐지 데스마스크의 얼굴이 보이지 않더라니. 탁자 아래에서 무릎을 껴안고 앉아있었던 이유가 뭔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대체 왜 여기 들어와 있을까요. 아무튼 탁자 아래 있자니 아까까지의 소란과 바깥의 환란이 모두 꿈 같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서 아이올리아는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도 슈라가 하소연하는 소리가 들렸고 저 멀리서 거기 맞춰 나도……하며 뭔가 중얼대는 사가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아이올리아의 눈에서 눈물이 한 줄기 흘렀습니다. 도대체 왜 눈물이 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눈물이 눈에서만 나오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목 안에서 울음이 올라 와서, 아이올리아는 이를 악 물고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습니다. 탁자 아래는 누구의 눈도 닿지 않아 천만다행이에요.
한참을 아무도 내려다보지 않는 탁자 아래에서 울며 아이올리아는 그제서야 자신이 탁자 아래에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아마 굉장히 울고 싶었던 모양이라고 말이에요. 뭐가 서러운지도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겠지만, 술이 들어가 모든 규제가 풀린 몸은 그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했습니다. 억지로 이를 악 물고 옷소매가 눈물에 젖을 때까지 한참을 울다 아이올리아는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떠들던 슈라가 아이올로스를 붙잡고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올로스는 자기 팔을 잡은 슈라의 손을 풀고 엇차, 하고 옷을 털며 일어났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술에 취해 곯아떨어져 있네요. 웃으며 정확한 걸음걸이로 멀쩡하게 문까지 걸어간 아이올로스는, 잠시 뭔가 생각하다 탁자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올리아도 잠들었나봐요. 고개를 묻고 간간이 훌쩍이고 어깨를 들썩이는 것으로 봐선 자면서도 울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이올로스는 눈물에 젖은 아이올리아의 앞머리를 쓸어주고 어깨를 토닥여주었습니다.
“잘 자라, 내 동생.”
아마 아이올리아가 형의 말을 듣지는 못했을 겁니다. 아이올로스도 알아요. 아니까 아까 탁자 밑에 들어가서 맨 처음에 울기 시작했을 때는 위로해주지 않았죠.
아무튼 그렇게 황금들의 술자리는 끝났습니다. 다음날 아침 가장 먼저 일어난 아이올리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뒷정리를 하고, 해장국까지 끓여 숙취로 머리가 아프다고 아우성인 황금들에게 먹인 다음 마갈궁을 떠났습니다. 뭔가 굉장히 서글프면서도 안심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게 뭔지 알 턱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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