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쓰고 있는 글이 하나 있어요. 아기 아빠가 된지 얼마 안 된 휴즈와 엘리시아를 보러 휴즈네를 찾아가는 로이의 이야기입니다. 마저 써야 되는데 진도가 영 나가지 않고, 요즘 너무 훌륭한 글을 많이 봐서 이미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분들이 이런 글을 읽기나 하실지 몰라서 어디 올리기도 그렇고요. 하지만 어차피 기본은 자급자족. 자기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써야지요.
이래놓고 결말 안 낼까봐, 일단 좀 올려둡니다. 이래야 나중에 책임지고 끝을 내겠지요.
동방사령부의 사령관이라는 자리는 보기보다 바쁜 편이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고, 치안도 좋은 편이라고는 볼 수 없다. 늘 땡땡이를 친다는 둥, 일과는 담을 쌓았다는 둥, 저렇게 게으른 사람이 어찌 국가연금술사가 되었냐는 둥 별 소리를 다 듣고 있지만, 로이 머스탱은 사령관으로서 몇 개 연대나 되는 군인을 관리하고, 분쟁이 일어나면 진압하고, 동방사령부가 관리하는 마을의 행정과 치안상태를 점검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월급 받는 만큼의 일은 어떻게든-그러니까 기한을 나흘 주면 사흘 반을 팽팽 놀다가도 나머지 반나절동안 죽어라 일 해서 해 내긴 해도 일은 어쨌든 다 해내는-사람이었다. 유능한 군인이니만큼 해야 할 일도 많았고, 맡은 일은 당연히 다 해내야 했다. 그래서 휴즈에게서 오 개월 전에 딸이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도, 딸의 이름이 엘리시아라는 것을 듣고도, 너무 바빠 친구를 만나러 센트럴까지 가 보지도 못했다. 아이의 눈동자가 자신을 닮았고, 손가락을 빨 때는 꼭 손가락 세 개를 입에 같이 집어넣으며, 뒤집기를 시작하고 목을 가누고 이유식을 먹기 시작했다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들어서 더 이상 궁금한 게 없어서 가지 않은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정말로 아주, 아주 바빴다.
-로이! 역에 내리자마자 사복 차림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친구의 얼굴을 보고 로이는 슬쩍 보일락 말락하는 미소를 지었다. 휴즈와 꽤 오랜 시간을 사귀었지만, 그가 저렇게 훌륭하고 안정적인 자세로 한 팔로는 포대기로 싸서 앞으로 안은 아이의 몸을 받치고, 자신을 향해 남는 손을 흔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한 서너 명 정도는 키워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안정적인 자세가 나올 수 있을지. 혼자 연습이라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덩치가 큰 남자가 혼자 아이를 안고 걸어가는 걸 흘끔흘끔 보면서 히죽 웃는 것도 아마 자신과 비슷한 이유이리라. -아저씨가 다 됐군, 휴즈. -그만큼 안정적으로 보인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고 생각해주지. 오랜만이다, 로이. -안정은 무슨, 시시콜콜 딸네미 이야기 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뭐가 어때서, 더군다나 아버지가 딸 자랑 하는 게 이상하냐? 다른 사람 딸 자랑하는 것보단 덜 이상하잖아? -그게 아니잖아! 가시가 박힌 말을 한 마디씩 주고받고 있는데, 아이가 시끄러웠는지 잠에서 깨어 칭얼대기 시작했다. 휴즈는 악담을 던지다 말고 얼른 아, 착하지 엘리시아. 아빠가 시끄럽게 했어? 라면서 아이를 토닥여주고 얼러주었고, 아이는 금방 다시 잠이 들었다. 뭐라고 옹알대다 조용히 잠드는 게 너무 신기해서 아이를 쳐다보고 있노라니, 휴즈가 싱긋 웃으며 손짓을 했다. 가까이 가서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엘리시아야. 처음 보지? 어린 아이다, 그것도 아주 작은. 하얗고 자그마한 아이가 주먹을 꼭 쥐고 색색 소리를 내면서 자고 있었다. 머리는 크고 손은 작았고, 손가락 끝에 붙어있는 손톱은 손톱이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여려보였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붙어있는 머리도 부드러워 보여서, 혹시 잘못 만지면 모양이 이그러지지 않을까 싶었다. -어때? 귀엽지? -안 닮았는데. 자기 딸을 유심히 바라보는 친구에게 휴즈는 아버지로서 꼭 한 번은 하고 넘어가야 할 그 말을 던졌다. 그러나 한참동안 아이를 굽어보고 있던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은 휴즈를 당황하게 했다. -안 닮다니? -너하고 안 닮았다고. -아아, 그렇지? 나보다 그레이시아를 훨씬 많이 닮았어. 특히 입매랑 코가, 예쁘지 않아? 헤죽헤죽 웃으면서 말하는 휴즈. 하지만 아무리 봐도 삼각형 모양으로 벌어진 입이 도대체 누구를 닮았는지, 코라기보다는 그냥 좀 튀어나온 살덩이 같은 그게 휴즈의 코를 닮았는지 그레이시아의 코를 닮았는지, 머리카락 색도, 너무 가는 머리카락이 조금 나 있는 수준이라 도대체 누구를 닮은 건지 로이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글쎄……어린애 얼굴은 그게 그거라, 잘 모르겠군. -잠이 들어서 그러나. 좀 있다 눈 뜨면 다시 잘 봐. 그레이시아를 닮아서 굉장히 예뻐.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찌나 우리 딸을 유심히 쳐다보는지 부끄러울 정도라니까. -그건 애가 예뻐서라기보단 너 때문인 것 같은데. -내가 뭘? -덩치가 산 만한 남자가 애 안고 혼자 걸어가는 거. 남들 눈엔 충분히 재미있어 보일 수 있어. 그것도 군인이. -쳇, 내 이마에 군인이라고 새겨놓았나? 너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 뿐이야.
음침한 아침인사가 깨끗하게 닦아놓은 복도에 메아리친다. 정보부의 본관에 모인 정보부원들이 오늘도 괴롭고 골치아프다는 표정을 포커페이스로 가장하고 높은 문을 지나간다. 휴식을 모르는 몸과 마음을 검은 색의 군복으로 감싸고. 어떻게든 단서를 하나라도 더 잡아서 상대편의 정보를 알아내도록, 어떻게든 아군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적의 약점은 잔뜩 잡아내어 크리티컬 히트를 먹이도록 냉정히 행동하는 것이이 이곳에서의 몸가짐. 물론 해킹하다 바이러스에 포위 당해 회선 내에서 길을 잃고 쩔쩔매는 정보부원따위 존재할 리도 없다. 은하연방 우주군 정보부. 몇 십년 전에 건립된 이 곳은 원래 전 정보부원의 정예화를 위해 세워졌다는, 전통있는 정보부원수련원이다. 정보부장께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소위에서 대령까지 정보부장의 친절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정보장교들의 지옥. 시대는 변하고 연방군의 원수가 한 번 바뀌어 두번째가 되어가는 오늘날에도 꾸준히 정진하여 현장에서 죽기 살기로 훈련한 정보부원들이 박스에 포장되어 출하된다는 시스템이 아직도 남아 있는 귀중한 교단인 것이다.
그 - 로브 죠나단도 그런 평범한 군인의 한명이었다.
"잠깐."
해킹을 하던 어느 날. 정보부장의 비아냥과 냉소를 듣고 울기 직전의 상태에 다다른 순간, 누군가가 로브를 불러다. 정보부장의 앞이었으니까 순간 정보부장님께서 부르셨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낮고 울림이 좋은 목소리였다. 누군가 말을 걸면 먼저 멈춰선 후 '예' 하고 대답하면서 몸 전체를 돌려 돌아선다. 갑작스런 일이라도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 더군다나 머리만으로 '돌아본다' 같은 행동은 정보부원으로서 실격. 어디까지나 우아하게, 그리고 반듯하게. 조금이라도 빨리 정보부를 떠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러니까 돌아서서 상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후, 가장 먼저 무엇보다도 웃는 얼굴로 해킹합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로브의 입에서 '해킹합시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 그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기 때문에. 겨우겨우 튀어오르지 않았던 것은 정보부원로서 품위없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평소부터 마음가짐을 단정히 한 성과. ......가 결코 아니다. 너무나도 놀라서 행동이 따라가지 못한 채 순간냉동 당해 버린 것 뿐. "저기...저한테 무슨 일이신가요?" 겨우겨우 자력으로 반쯤 해동한 후 로브 죠나단은 반신반의하며 물어 보았다. 물론 그의 시선 끝에-스크린 글라스로 가려진 얼굴이라 확인은 못 하지만- 자신이 있는 것과 그 연장선상에 아무도 없는 것은 이미 확인한 일이지만 역시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불러 세운 것은 나. 그 상대는 당신. 뭐 문제라도?" 틀림없다, 라고 해도. 아뇨 틀렸어요 라고 대답하고는 도망쳐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째서 말을 걸어 온 건지 짚이는 것이 없는 만큼 머릿속은 패닉 직전이었다. 그런 로브의 사정 같은건 알 리 없는 그 사람은 살짝 미소를 띄우며 똑바로 로브 죠나단에게 다가왔다. 신분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가까이에서 얼굴을 뵐 일 같은 건 없었다. 제대로 목소리를 들어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뽀얗고, 길고 검은 머리카락은 샴푸 메이커를 묻고 싶어질 정도로 매끈매끈. 군용샴푸를 쓰면서도 어떻게 이런 머릿결이 가능한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정보부장 앞에 내려놓았다. 영문도 모르고 바라보고 있자, 빈 양손을 로브 죠나단의 컴퓨터에 가져갔다. '으악~!!'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순간 알지도 못한 채 로브 죠나단은 눈을 감고 머리를 꼭 움츠렸다. "암호를 해제하는 방법이 틀렸어." "엣?" 그렇게 말하고, 그 사람은 서류를 읽으며 인상을 쓰고 있는 정보부장님께 "그럼 파파, 안녕~." 이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교단을 향해 걸어갔다. 뒤에 남겨진 로브 죠나단은 상황이 점점 파악됨에 따라 머리에 피가 몰려갔다. 틀림없어. 은하연방우주군의 영웅, 루시퍼드 오스카슈타인 대위. 참고로 이명은 오토코고로시. 통칭 마성의 남자 아아, 성함을 입에 담는 것만도 과분하다. 저같은 사람의 입으로 그 이름을 말해 버려도 괜찮은 것일까요. --그런 기분이 되어 버리는, 전정보부원의 흠모의 대상. '그런...' 부끄러움에 증발 직전이다. '이럴 순 없어' 로브 죠나단은 한동안 망연히 서 있었다. 동경하는 대위님과 처음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이렇게 부끄러운 에피소드라니. 너무해. 정보부장님 심술쟁이. 분함 섞인 눈으로 올려다본 정보부장님은 평소와 다름없이 심술궂은 미소를 띄우고서 일에 몰두하고 계신 것이었다.
==================== 아, 로브랑 루시의 나이 차이 같은 건 잊어 주시라니까요.
요즘 유행하는 ***님이 보고 계셔 시리즈. 하지만 생각만큼 재미가 없는 이유는 역시 능력의 부족인가. 무엇보다 저런 상황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루시가 정보부에 왜 가냐고! 죠나단이 저런 걸로 구박받을 정도면 O2 밑에서 일할 리가 없잖아! 알면서 어째서 이런 걸!
좋아, 다음번엔 퍼플 헤븐이 보고 있어!......가 아니잖아!
----------------------------------------------- 싸이에, 지난 1월에 올린 글. 내가 쓴 최초의 삼천세계 팬픽......이라면 맞을지. 다음에는 O2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
존경하는 나의 네크로맨서 당신은 불타는 이단 옆차기다 라수 규리하가 만드는 환상벽이다 사모 페이가 만난 유해의 폭포에서 뛰어나온 두억시니다 화끈하게 몸에 불 붙여 끌어안아 줄 수도 없고 안 읽을 수도 없는 애증이 끓어오르는 나의 네크로맨서 당신은 또 잘 나가다가도 뒤통수를 치는 무시무시한 타자이다 한밤중에 좀비들의 마음에 이는 컴컴한 나락이다
------------------- 원본 <나의 하나님>, 김춘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이다 삼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 이는 연둣빛 바람이다
-------------------------------------- 정우 규리하의 명대사를 읽고 생각난 것. 나는 어쩔 수 없는 이영도 빠순이.
棺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비가 오는가, 머리맡에 사진을 얹어 주고 나는 삽에 흙을 담아 좌르르 下直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올리브 색의 눈이 나를 돌아보고 로이! 불렀다. 휴즈. 나는 全身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스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로이!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사진이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 그래요, 전공이 어디 갑니까. 휴즈 로이 동맹에 올려보고 싶어! 라는 생각에서 만든 거지만......올릴 수 있을까요?
나는 수련 중 혼자 앓아누워 어느 저녁 웬 영감을 뵈이었다. 영감은 이티 같은 상을 하고 자그마한 키를 해서 먼 옛적 기괴한 생물 같은데 낄낄 웃으면서 계속 뭐라 이야기하더니 문득 물어 직업이 뭐냐 한다. 제다이라 한즉 그러면 오비완과 같단다 그러면 마스터를 아느냐 한즉 영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제자라면서 히죽거린다. 나는 마스터로 섬기는 이라 한즉 영감은 또 클클클 웃고 이상한 수프를 퍼 주는데 맛은 기괴하고 엉망이라 제다이도 마스터도 마스터의 마스터도 다 있었다.
======================== 백석의 '고향' 개작. 지난 9월에 스타워즈를 보고 나서 공부를 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끄적거린 시. 이게 수능에 나왔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뭐 오비완의 마스터는 콰이곤 진이지만서도......대충 넘어가자. 요다는 마스터 중의 마스터라고 생각하고 있다;
----------------------------------- 싸이에 올렸던 글을 옮기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