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렐루야가 스메라기와 술잔을 기울였다는 이야기는 순식간에 톨레미 승무원들 사이에 퍼졌다. 그 상황에서 알렐루야와 술을 마신 스메라기를 대놓고는 아니지만 은근한 어조로 비난한 건 닥터 모레노나 이안 등 연장자들 뿐으로 나머지는 알렐루야가 뭘 하건 큰 관심은 없었다. 록온이 어깨를 으쓱하며 마실만하면 마시는 거지 뭐, 라고 말한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한 점이었다. 여튼 알렐루야의 음주를 환영해준 것도 톨레미 승무원이었다. 라세와 리히터, 스메라기 등 톨레미 내 알콜보유량을 직접 마셔서 줄이는 데 일조하는 인물들 뿐이었지만. 그 후 일이 없는 날이면 알렐루야가 술판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초인병이어서 튼튼하니까 알렐루야는 술을 잘 마시리라는 믿음은 무참히 깨졌다. 술이 몇 잔 들어가면 헤실헤실 웃으면서 갠차나요오- 무리 안 했어요오- 같은 소리를 하면서, 얼굴만은 말갛게 앉아있는 알렐루야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알콜 대사는 빨라서인지 얼굴이 붉어지거나 숙취에 시달리는 일은 없었지만 정신은 그다지 말짱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라세와 리히터와 스메라기는 그 점을 재미있다고 여기는 듯 했다.
------------------------ 예전에 메모해둔 것입니다. 3월 말일이니 벌써 2개월 전이군요. 업무차 출장 겸 여행을 갔을 때 버스 안에서 끼적거려 보았습니다.
덜 쓴 걸 올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1. 글 쓰고 있다는 인증샷. 2. 완성시키겠다는 다짐.
물론 예전에 휴즈와 로이의 F물을 쓰다 관둔 적이 있는 제가 이런 거 올려봐야 안 믿으시겠지만. 이거 씁니다. 쓸게요. 소녀 10제 때문에 염장질려서 이러는 거 절대로 아닙니다. 해피 따위 못 쓰지만(제가 쓰는 해피는 재미가 없어요.) 그래도 염장은 안 질리는 걸 스스로 써서 자가치유 하겠다는 거 절대로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선영님 리퀘입니다. 월요일까지 쓴다고 했는데 주말엔 여기 오래 앉아있을 시간이 없어서 말이죠. 날림원고이므로 애초에 부족했던 문재가 바닥이 났답니다 하하하.
그 전에 이게 뭔 소리냐, 라는 말만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베타테스터는 아무 말 안 했지만 말입니다; 그 단계 거쳐서야 글을 올릴 수 있는 나름 소심한 저;) 그런 고로 애프터 서비스 가능합니다. 이해 안 가면 고치면 되고~ 지적 받으면 또 고치면 되고~♪ 오타, 설정상 오류 등 지적 환영합니다.
알렐루야는 기본적으로 조용한 사람이었다. 건담 마이스터 중에 싸움이 어울리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면 다들 고개를 저으리라. 겉만 봐서는 다들 멀쩡했으니까. 그러나 한 꺼풀 벗겨보면 사정은 달랐다. 전쟁터에서 뼈가 굵은 저격수에, 소년병에 베다를 위해 태어난 듯한 이에 초인병이었다. 저러니 테러리스트나 되는 거라고 매도당해도 할 말이 없는 집단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한 꺼풀 더 벗겨보면 이 초인병의 실체가 드러난다. 건담 마이스터들 중 가장 온건한 이였다. 온건했다. 이 한 마디면 모든 것이 설명이 가능하리라. 살인을 싫어하고 싸움을 싫어했다. 물론 제정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자는 드물다. 하지만 건담 안에 있다 보면 내가 사람을 죽인 건지, 모빌 슈트를 부순 것인지조차 애매모호해지는 때가 온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몰라서, 또 하나는 너무 죽여 무감각해져서이다. 건담 마이스터들은 명백히 후자에 속하는 경우였다. 알렐루야는 그 사실에 약간 민감한 편이었다. 사람을 죽이고 이걸로 희대의 살인자가 되었다며 고개를 내젓곤 했다. 마약밭에 불을 지르던 날, 사람을 죽이지 않고 해로운 마약을 없애는 일이라 다행이라고 말하며 알렐루야는 아주 약하게 미소지었다. 그 웃는 얼굴에 심통이 난 랏세가 약간 놀려줄 마음으로 너 때문에 마을 주민들이 먹고 살 길이 끊겼다고 퉁명스레 한 마디 하자마자 알렐루야는 얼굴을 굳혔다. 굳은 얼굴을 보고 랏세가 내가 질 나쁜 농담해서 미안하다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래서 언제나 티에리아는 그가 건담 마이스터로는 부적합하다고 했다. 미션보다 인명을 더 중시한 궤도 스테이션 사건 전부터 쭈욱. 그럴 때 스메라기는 쓴웃음을 짓곤 했다. 베다가 사람을 뽑을 때 부적합할 사람을 뽑을 리 없다는 것을 스메라기는 알고 있었다. 드러난 부분은 밤 속껍질 같아서 아직 정말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건 보이지 않는 법. 가끔은 스메라기도 알렐루야가 초인병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조용히 어느 작은 도시에서 사무원으로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농사를 짓거나 요리를 하면서.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는 생활을 했으리라. 이미 초인병으로 태어난 시점에서 저 가정만큼 쓸모없는 것도 없었지만.
그런 알렐루야가 초인기관을 박살내고 돌아왔다. 티에리아는 베다가 그를 인정한 것은 그가 온전히 초인병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실감했고 세츠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록온은, 한 꺼풀 덜 벗겨본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쓰게 웃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건담 마이스터. 테러리스트 집단 아닌가. 알렐루야라고 늘 죽이고 부수기를 망설이라는 법도 없는데 말이다.
영상에 비친 초인기관은 완전히 초토화되어 있었다. 알렐루야가 원체 기체조종이며 저격이며에 탁월한 실력을 보이기는 했지만, 건물을 저렇게까지 깡그리 부수고 온 적은 없었다. 분명 단독미션이었고 다른 누군가의 개입은 없었다. 평소의 알렐루야가 아니었다. 이 녀석을 만나 뭐라고 한 마디 해 줘야 하나, 하고 생각하다 록온은 생각을 접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개입해야 할 이유는 없겠지. 이럴 때는 저 혼자 제 쓰린 속을 달래는 게 최고다. 그런 생각을 하다 록온은 복도에서 비틀거리는 스메라기를 만났다. -미스 스메라기, 취했군요. -응. 스메라기는 피식 웃었다. -도대체 또 얼마나 마신 겁니까? -평소만큼 마셨어. 이제 돌아가야지. -도와줄 테니 같이 가죠. 록온은 스메라기를 반 끌고가다시피해서 방에 밀어 넣었다. 숨을 돌리는 록온의 눈에 빈 술병이 들어왔다. 며칠 전까지 분명히 술병 목에 찰랑찰랑하는 액체가 담겨있었는데. 그 옆에도 양이 제법 줄어든 술병이 보인다. 게다가 또……스메라기 리 노리에가의 주량을 아는데 절대 혼자 마신 건 아니다. -미스 스메라기. -왜? -오늘 같이 술 마실 사람이 있었나요? -응. 알렐루야. 록온은 얼굴을 찌푸렸다. 사람을 죽이고 술이라고? 어울리기야 지독하게 잘 어울리지만 술이 다 뭐냐. 죄책감에 절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야 제 스스로 미션을 자청했다 들었는데 그렇게 한 보람이 없잖은가. 게다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도대체 자기 과거의 흔적을 어떻게 죽이고 돌아왔기에. -당신이 권했나요? -그래. -너무한 거 아닙니까. 버릇 되면 안 되잖아요. 사람을 죽이고도 뻔뻔스럽게 술을 마시는 군인이야 전시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긴 하다. 그러나 건담 마이스터다. 개인이 부대와 싸울 수 있는 위력이 센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데 풀어져 있을 틈이 어디 있는가. 록온의 지적에 스메라기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뭐 어때? 술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잖아. 스메라기가 항상 술병을 차고 다니는 이유는 셀레스티얼 빙 내부 관계자라면 누구든 알고 있는 사실이고, 묵과하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술병을 차고 다니는 사람이 둘씩이나 되면 그건 좀 곤란하다. 록온이 한 마디 하려는 찰나 스메라기가 말을 했다. -게다가 오늘부로 스무 살인걸. -생일이었나요? -그랬다더라. 뭐 진짜 생일인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생일이랑은 상관 없잖……. -이제 나가 줄래? 잘 거야. 지적을 하려고 하자마자 스메라기는 말을 돌렸고 록온은 그대로 방에서 쫓겨났다. 복도에서 록온은 잠시 고민했다. 알렐루야에게 한 번 가 볼까, 하다 이내 생각을 접었다. 하긴 내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랴. 오늘부터 어른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면야 뭐 할 말 없지. 게다가 제 손으로 제 과거를 무너뜨린 놈이 꺾일 리가 없다. 최소한 나보다는 오래 꼿꼿하게 남을 수 있으리라. 보기보다 살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놈이니 이대로 꺾어지지 않는다면 내가 끼어들 이유도 없고. 살아보겠다는 놈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까. 나는 그럴 마음도 별로 없는데. 록온은 손을 툭툭 털고 복도를 유영하듯 미끄러졌다. 그러니까 록온이 그 때 다른 듯 비슷한 두 목소리를 들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전쟁 근절을 위해서 그런 거야. 이 사슬을 내 손으로 끊어야 했어. -헛소리 하지 마. 무서웠지? 그 두통이 무섭고 그년이 무서웠지? 그년을 죽이고 싶었지? -아냐, 할렐루야. 그런 게 아냐! -동류라서 죽일 수 없다, 가 아니지. 동류니까 더더욱 죽여 버리고 싶은 거야. 그래서 베다에게 작전계획을 건넨 거잖아, 응? 전쟁 근절을 위한 무력 개입을 빙자한 사적인 살인을 위해서. 죽일 결심을 한 건 너 맞잖아, 아니야? 낮은 톤으로 씹어뱉듯 말하는 목소리가 하나, 평소 알렐루야의 목소리가 하나. 그러고 보니 다른 인격이 하나 있다고 했다. 록온은 소리가 새어나오는 문틈에 붙어 섰다. 알렐루야는 소리를 줄인다고 목소리를 낮춰서 말하고 있었지만 조용한 복도로 말소리가 제법 똑똑히 울렸다. -아니라곤 하지 않겠어, 하지만 나는 너와 달라! -지랄. 너도 알고 있잖아? 이런다고 전쟁이 정말로 없어지진 않아. 상냥한 알렐루야 님은 그냥 그렇게 믿고 싶어서 믿는 것뿐이지. -아니야! 할렐루야, 그렇게 말하지 마! 나는……! -결국 그 애들을 죽일 결심을 한 것도 너고, 총을 갈긴 것도 너고, 마지막에 퀴리오스를 조종해서 그 곳을 빠져나간 것도 너지. 부인하지 마라, 알렐루야. 나는 너. 너는 나다. 누군가는 목소리를 높여 알렐루야를 비웃고 있었다. 알렐루야의 항의하는 목소리는 기어들어가듯 끝이 불명하게 들리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이 상황에서 알렐루야의 항의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록온은 생각했다. 예전에 들었던 지킬 앤 하이드라는 이야기와 같다.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럼 그 때 흘린 그 눈물은 뭐야? -나는 너, 너는 나라니까. 기쁨의 눈물, 애도의 눈물. -비웃지 마! 그래서, 너는 좋았단 말이야? -너도 좋았다, 고 말하는 거다, 그럴 때는. 넌 본질이 잔인한 존재야. 그런 주제에 자기 싫은 건 다 나한테 떠맡기는 찌질한 새끼야. -그렇게 말하지 마. -그게 진실인데, 아, 잠깐. 한참 비웃듯 냉소적인 톤으로 이야기하던 그 누군가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 알렐루야가 불안한 듯 작은 소리로 묻는 것이 들렸다. -뭐 하는데? -좀 들어가 있어 봐. 일단 좀 자던가. -왜? -닥치고 잠이나 쳐자라. 시끄러우니까. 그리고 방 안의 기척이 달라졌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는데 방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야, 밖에 있는 거 총잡이지? 들어와. 엿듣지 말고. 들켰구나. 생각하자마자 문이 위잉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 시점에서 발을 뺄 수는 없다. 록온은 방에 발을 들이려다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불 꺼진 방 안에서 알렐루야와 꼭 닮은 누군가가 금색 눈동자를 말없이 번뜩이고 있었다. -어, 알렐루야……. -헛소리 마시지. 어디까지 들은 거야? 그는 사납게 눈을 치켜떴다. 록온은 쓰게 웃었다. -들은 적 있는 그 사람이로군. 이름은? -알아서 뭐에 쓸 테냐. 록온은 쓴 웃음을 지었다. -너는 내 이름을 알고 있으니 불공평하잖아. 이름은? -쳇. 알렐루야의 얼굴을 한 그 존재는 혀를 찼다. -할렐루야. 록온은 피식 웃고 말았다. 알렐루야가 지은 이름이 틀림없다 싶어서였다. 웃음 소리를 들은 할렐루야가 록온을 노려보았다. -웃지 마. -어, 미안. 할렐루야는 기분나쁜 얼굴로 록온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알렐루야가 자신을 훑어보는 시선이라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 번도 사람을 저런 눈으로 본 적이 없었는데. -왜? 어린애라도 달래주려고 왔나? 너는 소꿉장난을 좋아하잖아. 어린애들 데리고 하는 소꿉장난. 과연. 주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면 알렐루야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것도 같지만 본질은 건담 마이스터 알렐루야 합티즘이다. 어린애 돌보기를 잘 부탁한다는 실없는 농담이 떠오르자 록온은 슬쩍 할렐루야를 떠 보고 싶어졌다. 정확히 말해서, 이 인격이 어떤 인물인지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알렐루야가 아는 걸 너는 어디까지 알고 있지? -글쎄, 대답해 줄 이유가 없잖아? 할렐루야는 코웃음을 쳤다. 제법 단단하게 가드를 친 것이 알렐루야와는 확실히 다르다. 이런 면도 있었나. 록온이 신기해하는 동안 할렐루야가 록온을 노려보았다. -그보다 당신이 여긴 왜 와? -아니 뭐, 지나가다가 말소리가 들려서 와 봤지. -호오? 과연 오지랖 넓기로 소문난 건담 마이스터 록온 스트라토스. 우리 손 많이 가고 징징거리기 잘 하는 알렐루야도 돌봐주러 왔나? 꼬맹이들 뒤 닦아주듯이? 이기죽거리는 할렐루야에게 록온이 웃는 얼굴을 보였다. -글쎄, 그렇게 따지면 나도 대답해 줄 이유가 없잖아? 할렐루야가 혀를 찼다. -그걸 고 따위로 받아 치냐. -그런데 알렐루야는? 지금 거기 있나? -알렐루야는 지금 자고 있어. 이건 내가 댁한테 묻는 거고 말이지. 록온은 웃는 얼굴을 지었다. -알렐루야가 그런 표정 짓는 건 처음 봐. 신기한데. 록온이 미소 지을수록 할렐루야의 표정은 굳어갔다. 굳어간다기보단 구겨졌다고 하는 편이 훨씬 그의 표정에 가까운 설명이리라. -개소리 말고. 사실대로 솔직하게 불어. 뭐 하러 온 거야? -음, 글쎄 굳이 말하자면 아까 스메라기 씨랑 대작한 이야기 듣고 잠깐 와 볼까 생각은 해 봤지. -왜, 뻗어 있으면 챙겨주려고?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이야기나 좀 해 볼까 했는데 역시 이럴 때는 자기 혼자 쉬는 게 최고 아닌가 했지. 그런데 방문 앞에서 말소리가 들려서 놀란 것 뿐이야. 설마하니 할렐루야, 너를 만날 줄은 몰라서. 아는 사람의 다른 인격을 처음 만난 것 치고는 이 놈 혀가 참 잘도 돌아가네. 할렐루야는 혀를 찼다. 그리고 록온의 말 속에서 어째 거슬리는 뭔가를 잡아냈다. -이야기? 무슨 이야기. -아, 아니 뭐 수고했다, 그런 거 있잖아. 할렐루야가 비웃음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어이, 저격수 씨. 댁이 쓸 데 없이 이 녀석을 찾아올 종자가 아닌 거 아는데. 내가 아까 솔직히 불랬지? 으음, 록온이 미간을 살짝 모았다. 그리고는 잠시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라고 말하는 듯 입을 우물거리다 한숨을 크게 쉬었다. 할렐루야를 한참 쳐다보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뭔가 큰 결심을 한 듯, 숨을 몰아쉬며 말을 꺼냈다. -베이더에 올라간 계획안을 봤다, 그게 다야. -그 새 다 봤군? -고의는 아냐. 하지만 누구라도 그 상황을 보면 추측은 할 수 있지. 그래서 봤을 뿐. -쓸데 없는 참견이라고 하지 그런 걸. 할렐루야는 이기죽거리다 록온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2년간 한 번도 못 본 얼굴이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항상 얼굴에 표정은 있었다. 웃거나 화내거나 단호히 뭔가 결정을 내리거나 난처한 표정을 짓거나. 그 얼굴에서 표정이 없어지고 눈동자에 평소에 안 보이던 뭔가가 보였다. 아, 괴로워하고 있다. -자신의 과거를 부순 거지? 한 마디로 말해서. 록온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할렐루야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는 록온을 발견했기 때문에 즐거웠다. -그래. 요란하게 부수고 돌아왔지. -알렐루야는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거지? -호오, 저격수 씨. 어쩐 일이야? 그런 걸 다 물어 보다니? 당신답지 않잖아? -대답만 해 줘. 그러면 방해하지 않고 사라지지. 할렐루야는 록온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나를 믿나? 내 앞에서 그런 표정 보여도 괜찮은 거야? 록온 스트라토스의 단단한 가드라면 잘 알고 있다. 도대체 진심이라곤 보여준 적이 없으니까. 감 하나는 알렐루야 몫까지 두 사람 몫으로 활용하고 있었으니 보일 법도 하다. 게다가 언제나 알렐루야는 록온을 보며 저게 어른인가보다, 하고 신기해 하고 있었으니까. 세츠나를 동지로 인정해 주고, 마음 안 맞는 건담 마이스터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존재라고. 할렐루야는 그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알렐루야에게 그 이야기는 먹히지 않았다. 하긴 다른 인격의 의견을 들을 만큼 마음이 넓으면 정신분열 같은 것도 안 일어났겠지만. -음, 글쎄. 알렐루야한텐 비밀 지켜줄 것 같으니까. 록온이 눈을 가늘게 뜨며 능글맞은 표정으로 대꾸한다. 할렐루야는 비딱한 눈으로 록온을 노려보았다. 저 나쁜 새끼가 또 평소 얼굴로 돌아왔어. 내가 대답을 해 주나봐라. -그런데 저격수. -록온. 록온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으나 할렐루야는 그 손짓을 무시했다. -댁 이름 별로 안 부르고 싶은데. -너무하잖아. -됐고, 난 댁 웃는 면상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 -그러냐. 그런데 대답은 안 해 줄거냐? -내가 왜 대답을 해 줘야 하지? -너는 알렐루야를 걱정하니까. -뭐? 할렐루야가 록온을 쳐다보았다. -너, 내가 알렐루야에게 간섭하는 걸 싫어하지? -잘 아네. -그럼 대답을 해. 내가 간섭을 할지 말지 지금 고민중이라서 -무슨 간섭? -알고 있잖아? 물론 알고 있다. 어린애들을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늘어놓고 이것저것 사소한 것을 챙겨주며 고맙다는 인사를 받지 않아도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알렐루야는 그것도 어른답다며 신기해했지. 저런 짜증나는 놈이 뭐가 어른이냐고 물어도 알렐루야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이상한 놈. 아까 들었으면 짐작을 할 텐데 또 뭘 물어봐? -아니, 이럴 땐 본인의 입으로 듣는 게 최고지. 제대로 대답해 주면 앞으로 귀찮게는 안 할지도 몰라. -쳇. 안 하면 안 하는 거지 몰라, 는 또 뭐야? 아까 들은 거 가지고 대충 알아서 생각해. -그럼 내 맘대로 생각해서, 살고 싶어서 그랬다, 고 생각해도 무리는 없는 거지? -아, 몰라! 맘대로 해, 맘대로. 귀찮은 놈. 이러니 저러니해도 결국 이 녀석의 본질은 생존본능이다. 함께 훈련을 하며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던 사실을 깨닫자, 웃음이 나왔다. 순하게 살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을 살리기 위해 이 놈도 열심히 뛰고 있구나. 살고 싶어서 과거를 부순 거로구나. 알렐루야와 공유하는 몸의 생존에 방해가 되는 건 쳐 내고 싶어 하는구나. -웃지 마. -미안. 그저 나는, 알렐루야는 나와 다르다고 생각해서. -뭐가? -너라면 알겠지. 말은 하지 않으면서 묘하게 냄새만 솔솔 풍기는 게 짜증난다. 알렐루야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하나 변명하자면, 딱히 애들을 많이 챙겨준 건 아냐. 그냥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고. 무엇보다 나는 알렐루야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 -괴물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괴물이 아니잖아. 할렐루야는 록온이 더 이상 하지 않은 말을 감지해냈다. 살려고 하는 의지에 대해서 록온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 저 놈이 또 말이 많아진다. 이제 와서 무슨 형님 노릇이야. -그런데 너, 내가 대답까지 해 줬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굴 거냐? -물론. 나는 알렐루야한테도 형이거든. -내가 알렐루야면 너 같은 형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왜? 내가 뭐 어때서? 진지하게 물었는데 농담으로 받아친다. 대답을 요구하면 말꼬리를 감춘다. 결국 누구에게도 진지하게 간섭할 생각은 없으면서 일단 손부터 뻗고 만다. 분명히 저 놈은 죽고 싶어 안달이 난 놈이다. 당장 이 웃기는 조직 말마따나 전쟁 근절이 실현된다면, 제 머리에 총구를 들이댈 놈이다. 그러기 위해서 배운 총질일지도 모르지. 멀리 있는 적도 가까이 있는 나도 모두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 할렐루야의 날카롭고 가는 눈매가 더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이 씹새가 누굴 좆밥으로 아나,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는 알고 있잖아. -내가 뭘 어쨌다고 이러셔. 짐짓 모르는 척 딴청을 피우는 얼굴이 매우 짜증났다. 저걸 한 대 팰까, 말까 할렐루야는 답지 않은 고민을 하며 숨을 몰아쉬다 말아 쥔 주먹을 내리며 씹어뱉듯 말했다. -하, 뭐 이딴 미친 새끼가 다 있나 몰라. 내심 자고 있는 다른 인격이 불쌍해졌다. 저 새끼가 어른이면 알렐루야, 멍청하고 찌질한 네놈도 어른이다. 이놈은 지금 좋은 인간 연기를 하는 중이라고. 덜 자란 어린애가 건방지게 어디서. 록온이 장갑 낀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손을 할렐루야의 머리로 가져갔다. 의식하지 않고 힘도 주지 않고 적당히 뻗은 손이 다가오자 방어를 하려던 할렐루야가 잠시 멈칫했고 그 틈을 노린 록온의 손이 할렐루야의 머리 위에 얹혔다. 정말로 놀란 할렐루야가 가만히 있는 동안 록온은 할렐루야의 머리를, 평소 하로를 쓰다듬을 때처럼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세츠나를 돌봐주고, 티에리아의 가시 돋친 행동으로 일어난 일을 수습해 주고, 하로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을 때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할렐루야는 멍하게 그 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손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을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그야 당연히, 이 손이 누군가를-자기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를 쓰다듬는 꼴이 참으로 싫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은 살 의욕이 없는 주제에 지금 누구를 동정하듯 알량한 애무 같은 거나 남기고 지랄이야. 대답해 봐라, 이 치사한 새끼야. 어차피 물어봐야 대답도 안 해 주겠지만. 정신을 차린 할렐루야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그 손을 쳐 내려고 하자 록온은 잽싸게 손을 거둬들이며 일어나서,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거둬들인 손을 등 뒤에 감추는 자세를 취했다. -아차차, 손은 건드리는 게 아니지, 할렐루야 씨. 이래봬도 저격수라고? 그리고 록온은 몸을 빙그르 돌렸다. 그러고는 고개만 슬쩍 뒤로 돌린 채, 앉아있는 할렐루야를 내려다보았다. 한 판 해 보자는 거냐, 하며 할렐루야가 으르렁거리려는 순간,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잘 자, 할렐루야. 좋은 꿈을. 얼굴은 안 보이지만 록온이 미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할렐루야는 등 뒤에다 욕을 퍼부어주었다. 평소 록온을 만난다면, 해 주고 싶은 말은 있었다. 그 정도는 할렐루야도 충분히 상상해 본 일이었다. 할렐루야는 알렐루야의 목소리로, 록온의 귀에 잘 들릴만한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이 씹새꺄, 재수 없게 저도 그 따위로 사는 주제에 어디서 남의 머릴 쓰다듬고 지랄이야! 듣고 나서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록온은 사라졌다. 예상했던 반응이었지만 그래도 한 마디 해 주지 않으면 분한 마음을 다스릴 길이 없었다. 물론 알렐루야 쪽에 왜 화가 났는지는 이야기해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잠에서 깨어 무슨 일이냐고 묻는 또 다른 자신이 시끄럽고 짜증났다.
--------------- 시리어스.......맞긴 맞는 거죠? 에이 뭐 개그는 아니잖아요. 그럼요 그럼요. 처음부터 알렐루야는 방어기제와 도피로 할렐루야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할렐루야가 마음 편히 사라졌겠지요, 라기 보단 이제 세계의 답을 듣기 위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의도적으로 분열시킨 자신을 자기 안으로 불러들인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알렐루야는 살겠지요. 앞으로 4년간은 확실하게, 사는 데 욕심을 내 가면서요.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글과 상관없는 이야기. 랏세가 건담 마이스터 후보인 까닭은, 걔는 미치지 않았거나 덜 미쳤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베다는 얼굴과 정신 상태를 보는 게 틀림없어요. 얼굴은 예쁘고 마음은 황폐하고. 에바에 탈 수 있는 게 정줄 놓은 14세인 것과 똑같은 이치일 겁니다. (열네 살보다 더 맛이 간 놈들이라니 이거 정말 손 쓸 도리가 없네요?) 그라함인지 그레이엄인지……아직도 어찌 부를지 답을 못 찾았습니다. 하여튼 그 녀석이 건담을 안 탄 것은 아직 덜 미쳐서죠. 서셰스가 건담을 탈 수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원래는 이런 거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과거에 묶여서 못 자란 록온과 자기 과거를 지워버린 알렐루야가 만나면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해 졌습니다. 알렐루야를 답답하게 생각하는 할렐루야는 록온도 싫어할 거예요. 세츠나는 그냥 웃기는 꼬맹이고 티에리아는 정신 나간 종자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싫어하면서도 일단 알렐루야랑 동일인물이니까 여차하면 동지 대접도 해 줄 것 같고 말이죠. 으음. 알렐루야는 무사히 살아야 하는데, 그래서 갈라진 인격인데 주위에 정신병자들만 우글거려봐요 어지간히 좋겠습니다. 아무튼 록온은 이 아이들 중에서 알렐루야는 가장 어른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못 한 과거 극복(이랄까 복수하려고 사는 존재라 과거 극복 같은 걸 할 수 없지만. 그러니 너는 평생 어린애인 거야.)에 성공했잖아요.
이젠 가리지도 않습니다. 수치도 모르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이게 전부 그레이엄 때문입니다. (응?) 선영 님이 쓰신 글이랑 모 처에서 록온 묵주반지 소재로 쓰신 글 보고 삘 받아서 이렇게 되어버렸답니다. 세츠나가 14세 정도라고 생각하고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따로 떼서 써야 할 글인데 두 개를 묶었더니 주제가 애매모호합니다 OTL ......다른 분들이 쓰신 거 보면서 만족하고 살라는 하늘의 뜻인가요 흑.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예수님 또한 복되십니다. 머리에 하얀 베일을 쓴 여자가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저녁종이 울리는 걸 보니 삼종기도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성모상과 종이 있으면 여기는 성당이 아닌가. 어린 아이들도 종이 치는 소리를 들었는지 조용히 성호를 긋고 있었다. 접선이 끝났으면 테러리스트답게 후딱 귀환할 것이지 어느 틈에 이런 곳으로 들어왔는지. 게다가 이런 이상한 골목-조용한 주택가를 이상하다고 부르면 온 세상이 테러리스트니까 그런 소리나 한다고 비웃겠지만 접선장소로는 확실히 뭐가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록온의 귀에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하나. -아, 아니. 발걸음이 멈추어져 있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니 수동형이라도 이상할 것이 없겠지. 옆을 보니 세츠나가 무표정한 얼굴에 참 이상한 일도 다 보겠다는 의문을 담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무의식중에 성호라도 그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수치심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이야, 여기 성당인가 봐. 성당은 처음 와 보는데. 알렐루야가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성당인가. 그러면 여기는 기도하는 곳이로군. 세츠나도 성당은 처음 와 보는 듯 했다. 테러리스트니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크리스트교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태생에 아예 거리감으로 치면 몇 억 광년은 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니 성당을 처음 보는 것이겠지. 록온이 한숨을 쉬었다. -이것이 크리스트교, 라는 느낌이지?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다. 분명히 이렇게 조용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분위기는 잘 경험해 보지 못 한 것이리라. 알렐루야는 아예 두리번두리번거리며 건물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세츠나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신기한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하는 수 없구나. 록온은 상냥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우리 좀 들러서 쉬었다 갈까? 5분 정도만. -찬성. 시간도 아직 있으니까. 알렐루야가 얼른 찬성했다. 성당이 신기한 듯 했다. 록온이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알렐루야가 주저없이 그 뒤를 따랐고 세츠나가 멈칫 하다가 고개를 한 번 젓고는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건물인 듯 스테인글라스에 세월의 무게가 묻어났다. 용케 오랜 세월 버텼구나. 록온은 아기예수를 안고있는 성모마리아를 표현한 스테인글라스를 빛이 통과해 바닥에 일그러진 무늬를 그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몇 천 년을 싸워서 이루어낸 세계종교를. 물론 종교가 나쁘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 한 예로 이 아이들이 지금 이 곳에서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가. -예쁘네. 스테인글라스에 노을이 비치자 복도가 색색으로 물들었다. 붉은 색을 띤 바닥을 보며 알렐루야가 말했다. -그렇지? 세츠나, 너도 감상 한 마디 정도는 남겨라. -그런데 마리아란 뭔가? 기껏 말을 걸었더니만 세츠나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마리아? 아까 사람들이 외우던 게 성모송이었지. 세츠나에겐 크리스트 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있지만 자세한 것은 모른다. 그저 하느님과 독생자 예수에 대한 것 정도일까. 록온이 설명했다. -마리아란 신의 어머니야.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했다고 하지. -그러고 보니 신을 낳은 어머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 세츠나는 덤덤하게 중얼거렸다. 이슬람교에는 신이 여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없었던가, 하며 알렐루야는 건물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성모님이라니 굉장히 자비로운 분이실 것 같네. 애초에 어머니고 아버지고 있지도 않았던 알렐루야지만 어머니란 말이 무슨 뜻인지 정도는 안다. 유독 마리아상 앞에 머리를 조아린 사람이 많은 것에 대한 이유를 생각하며 자신이 생각한 답을 내놓자 세츠나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크리스트교의 신은 재미있다. -어떤 점이? -신이 인간으로 강림하자 인간이 신을 십자가에 매달더군. -세츠나, 너무한다. 지극히 신성모독적인 요약에 지나가던 사람 몇이 발걸음을 멈추었고, 세츠나는 뭐가 문제냐는 얼굴로 주위를 쳐다보았다. 알렐루야는 사레라도 들렸으면 했다. 그러면 저 애가 이 기막힌 심정을 이해하련만. 얘한테 교리공부를 시킨 건 누구냐, 스메라기 씨? 아니면 만에 하나, 티에리아? 어떻게 교리를 요약하면 저 지경이 되는 겁니까. 하지만 의외로 록온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그래, 인간이 신을 십자가에 매달았어. -어째서 그런 짓을 했지? 구원받기를 원한다면서? -글쎄……. 록온은 말끝을 흐리고는 계속 걸었다. 알렐루야는 록온의 뒤를 얼른 따라갔다. -록온. 거기선 설명을 제대로 해 줘야지! -아니 난들 뭐 제대로 알겠어? 넘어가, 넘어가. 어린아이한테 설명을 그렇게 해 주는 법이 어딨냐고 물어도 록온은 웃으면서 나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런 곳이 상당히 익숙해 보이는데. -그렇게 보였어? 알렐루야가 무심코 뱉은 말에 순간 록온이 조금 굳은 것을 세츠나는 보았다. 아까 성당 앞에서부터 록온이 평소와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역시 이 종교는 록온에게 뭔지는 몰라도 싫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세츠나는 몸을 돌렸다. -그만 가자. -어? 어? 그래 뭐. 알렐루야가 잠시 내가 뭘 잘못했나는 표정을 지었지만 세츠나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며 흘끗 본 바로는 알렐루야는 태평한 얼굴로 여전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록온은 표정을 잘 감추고 걸어오고 있었다. 아주 평온했다. 참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저희에게 내려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성당을 지나는데 아까와는 다른 사람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기도문을 들은 세츠나가 중얼거렸다.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 -새로운 세계에는 고난이 따른다는 말이겠지. 셀레스티얼 비잉. 천상의 존재들. 하지만 천국에 들어가긴 애저녁에 글러먹은 주제에 목표만은 이상향인 그들은 참으로 태평하게도 중얼거렸다. -수난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뜻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이 종교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선 많은 피가 필요했던 건 사실이야. 록온이 말을 받자 세츠나가 록온을 돌아보았다. -그럼 우리도 하면 된다. 우리의 무력개입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 그것이 셀레스티얼 비잉 아니었나. 록온이 순간 눈을 가늘게 좁혔다. 세츠나의 표정은 어디까지나 진지했고, 록온은 잠시 웃을까 말까를 망설이다 그냥 손을 세츠나에게 뻗었다. -세츠나. 록온이 세츠나의 이름을 부르자 세츠나가 록온을 쳐다보았다. 록온은 그에게 한 발짝 걸어가서 세츠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하나. -아니 그냥. 앞으로 형님이 할 일이 없어지면 심심할 것 같았는데 아직 그건 기우인 것 같아서. 세츠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록온은 키들키들 웃었다. -자기자신 보고 형님이라고 하지 마. 어린아이 취급에 세츠나가 발끈했고 알렐루야가 웃으며 세츠나를 달랬다. -에이 두 사람 참 사이 좋아보이는데 뭐. 록온은 아무 말도 없이 세츠나의 머리를 한참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들은 성당을 나왔고 CB로 돌아갔다. 아무도 그 날 있었던 일을 입밖에 내지 않았지만 록온은 종종 웃으며 그 날 일을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일을 알아채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배려해준 동지와 자기들이 걸어갈 험난한 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는 어린 소년이 한 사람이라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그리고, 지상에서 천국을 보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기 위해 천상인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천국에 갈 수 없을 것이다. 록온은 멀리서 보면 아름다워 보이는 지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 세상을 바꾸기는 커녕 인생만 나락이지 말입니다 세츠나 F 세이에이. 천상인들에 이름은 천사. 이오리아 슈엔베르그도 참 부끄러움을 모르더군요. 민망하지도 않나. 아무튼 세츠나는 건담교의 교리 빼고는 종교에 무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록온은 집안 대대로 카톨릭 신자였음이 틀림없고요. (아일랜드 사람이라니까요!) 어려서 교리문답 좀 잘 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성경암송대회 같은 거 나갔을지도 몰라요! 복사도 해 봤을지도 모르죠. 견진성사 받기 한 달 전에 테러를 당했다 이런 설정도 좋을 것 같고요. 알렐루야? 중국과 러시아가 합작해서 만든 인혁련에 종교 따위 있을 리 없잖습니까 마르크스 가라사대 종교는 아편이랬어요. (그리고 분명히 북한은 인혁련이고 남한은 유니온일 겁니다.) 티에리아......에게 종교가 있을 리 없죠. 쟤한테 종교란 건 가족만큼이나 생소한 개념일 겁니다.
선영 님 말씀대로 록온이 작정하면 티에리아는 열성신도가 될 수 있다에 한 표 걸 수 있긴 합니다, 물론. 알렐루야도 열심히 다닐 테고 세츠나는 주일학교에서 달란트 모아 건담 준다 그러면(교회 주일학교에 대한 이미지가 저렇게 굳어진 것은 동네 교회가 저랬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성당은 좀 다르다고요? 넘어갑시다.) 분명 가고 남습니다.
티에리아는 베다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느라 못 나왔습니다. 미안 티에리아, 그런데 누나는 다른 애들도 다 쓰기 힘든데, 유독 너는 더 어렵단다. 이해해 주렴. (티에리아 이야기 잘 쓰시는 분 부럽습니다 흑흑)
-록온 스트라토스. 잘 부탁해. 처음 만나자마자 붙임성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으면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 것이 록온이었다. 자기 이름만 말하고는 꼭 시험지를 채점하는 시험관 같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던 티에리아와 먼저 손을 내밀었더니만 내민 손 무색하게 제 이름만 말하고 싹 돌아선 세츠나의 반응 탓에 희대의 테러리스트가 되려면 사교성은 부족해야 하는 것인가 하고 혼자 고민했던 알렐루야에겐 또 새로운 인간형이 하나 추가되었다. 사교적인 테러리스트. -알렐루야 합티즘입니다. 말이 끝나자 사교적인 테러리스트는 손을 내밀었다. 알렐루야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해 보았다. 앞으로 자주 보아야 하는 사람과 악수를 해 보는 것도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할지를 잘 몰라 손을 잡고 가만히 서 있자 록온이 잡은 손을 살짝 흔들었다. 그런 악수는 처음이라 조금 놀란 알렐루야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록온이 손 너머로 전해지는 긴장감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손을 놓으며 웃었다.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까. 잘 해 보자, 알렐루야. 서글서글한 사람이라는 것이 알렐루야의 록온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각 기체의 마이스터들의 훈련을 모니터하는 일이 끝나자마자 마이스터들은 건담에서 내려 제각각 사라져버렸다. 모니터 너머에서 마이스터들을 보고 있던 선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절대로 안도의 한숨은 아니었다. -베다는 무슨 기준으로 마이스터를 고르는 걸까요? -베다의 의지겠지요. 크리스티나가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던진 질문에 펠트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로만 대답했다. -그건 그런데, 쟤네가 한 팀이 되어서 잘 해나갈지가 영 의문이라서. -크리스티나 너 저번에 다들 꽤나 미남들이라고 좋아하던 애가 며칠 만에 말 바꾸는 거 아냐. 스메라기가 웃었다. -스메라기 씨, 마이스터들이랑 밥 먹어본 적 없으시니까 그런 거예요. 크리스티나가 스메라기 쪽으로 몸을 홱 돌리더니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저번에 좀 늦게 식당에 갔더니 세츠나랑 알렐루야랑 티에리아가 앉아있는 거예요, 자리는 걔네들 사이에 빈 자리 하나밖에 없고. 밥 받아서 갔는데 세상에 얘네 정말 인사도 하나 없이 먹던 밥만 계속 먹는 거예요. 거기다가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숟가락이랑 입만 움직이는데, 먹다 체할 뻔 했다니까요. 자기들끼리도 한 마디도 안해! 그래서 싸웠냐고 물어보니까 그것도 아니래요. 그런데 왜 그래요 대체? 저 나이 어린애들은 붙여놓으면 알아서 친해지는 거 아니에요? 리히터도 끼어들었다. -그뿐이 아니에요. 어찌나 서로 냉랭한지, 제대로 말 한 마디 나누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아직 애들이라 그렇겠지. 있다 보면 다 친해지게 되어 있다고. -저희 훈련 시작한 지가 3개월인데요. 리히터가 대답했고 답이 궁해진 라쎄가 말을 돌렸다. -으음, 그래도 치고받지는 않잖아? -차라리 치고 받았으면 좋겠는데요. 그러면 좀 친해질 수 있잖아요. 싸운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서로 예의를 차리며 눈치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아예 관심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3개월이 지나도 티에리아는 함내 선원 전원을 성과 이름을 붙여 불러주었고, 안 그래도 된다는 스메라기에게 근무원칙 같은 것을 들먹이며 냉정하게 굴었다. 세츠나는 아예 나는 상처받은 10대요 사춘기소년이니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표정으로 웅크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거기에 알렐루야는 아예 대화에 끼는 법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선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그나마 나이가 가장 많은 록온이 있을 때는 분위기가 그럭저럭 찬 바람은 안 도는 정도까지는 가능했지만 록온이라고 네 명의 사이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일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저 천천히 적응해간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도, 뭐랄까 조금씩 조금씩 서로 적응은 해 가고 있는 것 같잖아요? 리히터가 어떻게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을 돌렸고 스메라기가 이야기를 정리했다. -하긴 애초에 우리들이 친분관계 때문에 모인 것도 아니고. 테러리스트들 주제에 친분은 무슨 친분인가 싶기도 하다. 이야기는 관두고, 아까 훈련 자료 한 번 줘 보겠어? 그 때 해치가 열렸다. -알렐루야? -아 저기, 음, 안녕하세요. 알렐루야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이럴 때 인사말은 뭐라고 하는 게 좋은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야기 다 끝나신 것 같아서 왔어요. 여기, 아까 찾으시던 시뮬레이션 자료요. -뭐야, 다 듣고 있었냐? -네. 소년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파일을 스메라기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럼 가서 쉬겠습니다. -알렐루야. -네? 스메라기는 알렐루야의 얼굴을 살폈다. 참으로 평온한 얼굴이고 자신을 왜 불러세웠는지도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스메라기는 전부터 궁금했지만 물어보나마나 답이 뻔한 것을 물어보고 말았다. -혹시 분위기 파악 못 한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어? -네? 없는데요. 그런데 왜 물으시나요? -아무 것도 아냐. 그럼 가서 쉬어. 해치가 열리고 알렐루야가 나가자마자 스메라기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저렇게까지도 못 알아듣는데 면전에 대고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놈이라는 소리를 해 줄 만한 인물도 주위에 없었으리라. 크리스티나가 입을 열었다. -물론 건담 마이스터에 관련된 거 일급보안사항이긴 한데, 저 애 말이야. -알렐루야요?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많이 안 해 봤다, 그런 분위기 아냐? -자자, 잡담 금물. 더 이상 이야기하면 곤란해요. 건담 마이스터들을 뽑을 때 인성은 고려사항에 들어있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런 불협화음의 화신 같은 녀석들이 세 명이나 모여있을까. 불협화음도 둘 이상이 모여야 나는 거라지만 저 셋은 혼자만 있어도 능히 주위와 불협화음을 낼 수 있는 재주를 갖춘, 말하자면 기인 같은 존재들이었다.
-쟤들 왜 저러냐? -그, 글쎄. 록온이 기체적응훈련을 마치고 마이스터 세 명이 모여있는 곳에 와 보니 아까까지 거기 있다던 세츠나는 자리에 없고 티에리아는 미간에 주름을 잡고 건드리는 놈은 물어버린다는 듯 으르렁대고 있었다. 알렐루야는 둘을 어떡하면 좋을까 하는 표정으로 난감해하고 있었다. 이때까지 서로 냉담했던 녀석들이 웬일로 싸웠을까, 록온이 알렐루야에게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티에리아가 화난 표정을 지우지 않고 말했다. -어떻게 봐도 세츠나 F 세이에이는 건담 마이스터로 실격입니다. -티에리아. 무슨 말이야 그게? -아, 아까 둘이 좀 싸웠……. -알렐루야 합티즘, 너는 끼어들지 마라. 록온 스트라토스. 우리는 베다의 의지에 따라 건담 마이스터가 된 겁니다. 저 녀석은 너무 제멋대로예요. -저기 티에리아, 아직은 좀 판단하기 이르지 않을까? -알렐루야 합티즘. 끼어들지 말라고 했다! 강경한 어조로 세츠나를 성토하는 티에리아를 말리려던 알렐루야에게 불똥이 튀었다. 으르렁거리는 티에리아와 당황한 알렐루야의 어깨에 록온이 손을 짚었다. -티에리아, 나사 좀 풀어라. -하지만 저건 아니잖습니까. 록온 스트라토스도 아까 그 행동을 봤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따지고 보면 저 아이를 고른 것도 베다의 의지 아니겠어? 다 이유가 있겠지. 일단 좀 진정하고 여기 좀 앉아봐라.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록온은 티에리아를 진정시키고 세츠나를 따로 불러서 한 마디 해 주고 그날분의 훈련내용을 정리까지 했으며 두 사람을 형식적이나마 화해까지 시켰다. 옆에서 그 모든 것을 구경한 알렐루야는 그저 록온의 행동이 신기할 뿐이었다. 내가 말을 걸면 안 듣고 록온이 말을 걸면 듣는 이유는 뭘까, 하며 신기해하던 알렐루야는 그제서야 얼마 전, 브릿지에 모인 선원들이 하던 말을 기억했고, 선원들이 자신을 가리켜 하던 말이 무슨 뜻인지도 기억해냈다. 록온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알고 있고 남을 대하는 법도 사람에게 웃어주는 법도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할 줄 모르는 것은 물론 많았지만, 남이 가진 것이 신기해 보이기는 그 날이 처음이었다. 혼자 우주를 내다보며 한숨을 쉬고 있는 록온을 발견하고 알렐루야가 날다시피 달려간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참 오지랖도 넓어요, 나도. -록온! 혼잣말을 하다가 갑자기 등 뒤에서 사람 목소리가 나서 놀랐는지 록온이 얼른 등 뒤를 돌아보았다. -어, 알렐루야. -오늘 수고했어. 덕분에 잘 해결되었어……요. -돈마이☆ (Don't mind.) 알렐루야의 어색한 존댓말에 록온은 잠깐 놀란 듯 알렐루야를 쳐다보다가 씩 웃으며 알렐루야의 어깨를 한 대 쳤다. -고마워요. 록온. -아니 뭘. 나도 별로 한 건 없는데. -아니에요, 정말 대단한 거예요. -그 녀석 괜히 사람 띄워주기는. 그래봐야 별로 나오는 것도 없어. 아냐? -아뇨, 몰랐어요. 충고 감사합니다. -농담은 좀 농담같이 들어라. 그럼 이만-. 록온이 점프하듯 살랑거리는 움직임으로 그의 옆으로 돌아갔다. 알렐루야는 록온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모의전을 해 보는 날이었다. 큐리오스와 듀나메스가 한 팀, 엑시아와 버체가 한 팀으로. 물론 팀 구성을 짠 것은 록온이었다. 며칠 전에 싸웠던 세츠나와 티에리아가 연계플레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사이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스메라기의 각본대로 듀나메스가 멀리서 숨어 저격을 하고, 엑시아와 버체는 듀나메스의 위치를 찾아 듀나메스를 공격하고, 큐리오스는 두 기체를 방어했다. 어느정도까지는 각본에 따른 기계적인 움직임이 필요했다. 덕에 처음에는 훈련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지구전에 들어가면서 엑시아가 고전하기 시작했고, 버체와 엑시아의 움직임이 점차 손발이 안 맞아들어가기 시작했다. 알렐루야가 여기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까 하던 차에 재미도 없네, 이딴 걸 해 봐야 무슨 소용이람,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동안은 자신에게 말을 잘 걸지 않던 할렐루야였다. 모의전을 열심히 해 봐야 나중에 미션을 수행할 때 별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다른 인격을 타일러 보았으나 인격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때 록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큐리오스, 그게 무슨 짓이야! 화면을 보니 큐리오스의 방어망을 뚫고 엑시아가 접근해 있었다. 큐리오스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버체가 쓰러진 큐리오스의 목에 검을 들이대고 있었다. 할렐루야를 원망해 보았으나 그의 다른 인격은 이미 뇌 속에 숨어서 그를 비웃고 있을 뿐이었다. 알렐루야는 당황했다. 록온이 나무라듯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티에리아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럴 때는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그, 그러니까! -알렐루야 합티즘, 변명은 소용없다. 도대체 이럴 때는 뭐라고 말해야 다른 사람들이 내 말을 잘 들어줄까? 알렐루야는 머릿속을 뒤져 자신의 기억에 남아있는 명대사를 입 밖에 꺼내었다. -돈마이☆! 화면에 떠 있던 건담 세 대가 모두 움직임을 멈추었다. 잠시 후, 끅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옆을 보니 록온이 정말로 배를 움켜쥐고 웃고 있었다. -알렐루야 합티즘. 헛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 티에리아가 언성을 살짝 높여 잔소리를 시작했고 건너편에 앉아있는 세츠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노골적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록온은 어느새 웃음을 멈추고 알렐루야를 짐짓 노려보고 있었다. -그게 거기서 나올 대사가 아니잖아! 너 때문에 나까지 엉망이다. 어떡할래? -아하하하, 뭐 그렇죠? 록온이 재미있어 해 주어서 기뻤다. 농담이란 무엇보다 들을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웃어주는 맛에 하는 거 아닌가. 알렐루야는 다음번에도 이 사람들이 들어주고 웃어준다면 또 똑같은 말을 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난생 처음으로 농담에 성공한 날이라고 뇌리에 기록해두려고 하자 할렐루야가 너는 바보냐며 비웃어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그렇게나 기뻤던 것이다.
그리고 훈련을 모니터하려고 모인 선원 전원은 폭소도 아니고 비웃음도 아니고 미소도 아닌 묘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 제가 생각하는 알렐루야는 바보인 모양입니다. 돈마이☆는 어떻게 번역해야할지, 자신이 없어서 그냥 저렇게 쓰고 말았답니다.
그 뭐냐, 알렐루야가 좀 특이한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게 전부다 록온 한정이에요. 게다가 록온을 굉장히 동경하고 있고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저 녀석은 록온에게 말을 배운 건 아닌가 하고요. 쟤한테 인간사회에 적응할 시간 같은 게 있었겠어요. 여기 와서 사람답게 사는 법을 조금씩 배운 거겠죠. 알렐루야는 왜 저렇게 핀트 안 맞는 농담을 하는가, 를 생각해 보려고 썼는데 뭔가 굉장히 마음에 안 듭니다. 으음.......록온이 록온이 아니고 알렐이가 알렐이가 아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