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스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스메라기 리 노리에가는 일본어를 안다. 그 사실을 알렐루야가 어떻게 알았냐면, 지금 술기운에 소파에 엎어져 졸고 있는 스메라기의 소파 밑으로 떨어진 손 아래 바닥에 읽다 만 듯, 편 채로 엎어놓은 일본어로 쓰여진 책이 떨어져 있어서이고. 그게 일본어인 건 어떻게 알았냐면 세츠나가 그 책을 펼쳐 읽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안가가 있는 세츠나는 일본어를 안다. 회화가 능숙한 정도는 아니지만, 뉴스를 듣거나 서류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는, 관광이 아닌 목적으로 체류하는 평범한 외국인을 연기할 정도로는 안다. 24세기가 되어서도 아직 자신의 언어를 유지하는 민족은 제법 있었다. 물론 그럴 만한 정치적 문화적 권력이 있을 때 이야기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인간실격?
책을 먼저 주운 것은 알렐루야였다. 한자 정도는 읽을 수 있다. 인혁련 출신이니까. 굳이 소리내서 읽은 것은 제목이 하도 걸작이라서다.
꽃 이름 외우기라도 하는 건지 하로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펠트와 간만의 휴가라고 신이 난 몇 명, 그리고 이꼴 저꼴 보기 싫다고 어느 구석에 틀어박힌 티에리아를 제외한 세 명의 마이스터, 알렐루야, 세츠나, 록온이 그 곳에 있었다. 알렐루야의 목소리를 듣고 다들 소리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뜬금없이 뭔 소리야, 알렐루야.
-아뇨, 그게 아니고 책 제목인데......
록온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드물게 폭소했다. 잘 웃기는 해도 저렇게 웃는 사람은 아니다. 허를 찔린 표정이었다. 록온이 어이없는 표정을 계속 지은 채 알렐루야를 쳐다보았다.
-거 걸작이네. 뭔 책이 그래?
-그, 그러게요.
록온이 과잉반응을 보이자 알렐루야도 불안해졌다. 솔직히 제목이, 좀, 많이, 굉장히, 찔렸다. 인간실격. Human lost. 평범한 사람-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도리 같은 걸 모른다. 희대의 살인마 A(24세, 남성)가 희대의 살인마 B(19세, 남성) 쪽으로 다가와 책을 폈다.
-첫장부터 광고냐......근데 이거 무슨 책이야?
-글쎄요, 저도. 모르는 글자라......
-설마......
록온이 인상을 찌푸리자 알렐루야도 덩달아 인상을 썼다. 그 때 세츠나가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단호한 동작으로 첫장을 폈다. 아까 록온이 편 부분과 반대쪽이었다.
-일본어다. 이 쪽부터 읽는다.
-어, 그래.
그리고 세츠나는 책 첫 문장을 심각한 표정으로 -아무 생각 없겠지만- 또박또박 읽었다. 수치스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책을 읽는 세츠나는 무덤덤했지만 나머지는 어쩐지 머리가 아팠다. 첫대목이 주는 인상이 하도 어마무지해서 쩌억 굳어있다 먼저 해동된 쪽이 록온이었다. 아니, 마음 잡고 착실하게 살아가야 하는 16세 소년 앞에서 더 이상 읽고 싶은 내용이 아니었다. 물론 착실하게 살아가는 애가 이런 데 있으면 안 된다는 건 록온이 알고 알렐루야가 알고 스메라기가 알며 세츠나도 물론, 안다.
-수기?
-글쎄, 모르겠다. 스메라기 리 노리에가에게 물어봐라.
-자는데?
-응? 아니 안 자.
떠드는 통에 깬 모양이다. 한 손으로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한 손으론 얼굴을 문지르며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어 있던 전술예보사가 일어났다.
-아, 시끄러웠나봐. 미안, 미스 스메라기.
-아냐아냐, 이제 슬슬 일어나서 머리도 좀 정리해야 하고........뭐야, 왜 남이 보는 책을 막 들고 가?
스메라기가 펄쩍 뛰며 세츠나의 손에 있던 책을 뺏았다.
-아, 아뇨 스메라기 씨. 그냥 바닥에 떨어져 있길래 그냥.
알렐루야가 엄청 찔리는 표정으로 변명했다. 스메라기는 책을 한 번 보고 알렐루야와 록온, 세츠나를 한 번 둘러보고 어깨를 움츠리며 웃었다. 공범들에게 뭔가를 들킨 사람의 모습이었다.
-응, 하긴 제목이 좀 자극적이긴 하지.
-무슨 책이우?
-이거......소설이에요 소설. 그냥 자기가 인간실격이라고 믿는 어떤 사람의 수기 형식으로 된 건데.
-흐음.
록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스메라기를 보고 보란 듯 한숨을 쉬었다.
-이런 거 좀 들고 다니지 말라고. 뭐예요 이 누가 봐도 뜨끔한 제목은.
-뜨끔하니 그나마 다행 아냐? 거기서 남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끝장이잖아.
스메라기가 록온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인간실격, 이라는 제목이 유달리 큰 글자로 박혀있는 그 책은 많이 읽은 듯 손때가 묻어있었다. 스메라기 리 노리에가가 평소에 소설을 읽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전술예보사가 읽어야 할 문서는 그런 게 아니니까. 아마 이 책이, 그녀의 애독서이겠거니.
-좋아하는 책이야. 휴가 나와선 좋아하는 책을 읽어야지.
스메라기가 웃으며 덧붙였다.
-제목 보고 무슨 흉악한 책인가 했잖아요.
록온이 웃었다.
-하긴 좀 찔리죠, 인간실격.
알렐루야도 웃으며 거들었다. 희대의 테러리스트들이 서로 인간실격자로서 동질감을 느끼며 뭉치려는 순간 낮지만 어린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뭐가 찔리나.
세츠나가 진지한 얼굴로 세명을 쳐다보고 있었다.
-응? 뭐 이런 거 저런 거 있잖아.
알렐루야가 변명하듯 말하자 세츠나는 확신을 실어 답했다.
-우리는 수치스럽지 않아.
굳이 말하자면 저 표정은,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신념을 가진 자의 표정이었다. 건담을 믿고 있는 어린 소년은 더 이상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하지 않았다. 수치스러우면 안 되고, 인간실격이어서도 안 된다.
-그래, 지금 하는 일도 부끄럽지 않고 나도 부끄럽지 않아. 다만 이제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에선 확실히 실격처리된 상태라는 거지. 그게 찔리네......세츠나, 나가서 크리스 좀 불러줄래. 이제 슬슬 일해야지.
세츠나는 대답하지 않고 스메라기 리 노리에가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몸을 돌렸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알렐루야는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스메라기 씨랑 록온이 인간실격이 더 실감나지 않으려나, 하고.  그냥 감일 뿐이라 말로 옮기지는 않았다. 아무리 사회성이 부족해도 그 정도 눈치는 있는 법.
이미 처음부터 실격이었으니 실감나고 말고 할 게 없는 입장인 자신이나 더 어린 나이에 손에 피를 묻힌 티가 나는 세츠나야 더 할 말이 없고. 인간실격, 이라는 게 제대로 감이 오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인간도 아니었는데 뭘. 알렐루야는 씁쓸하게 중얼거렸고 반신은 이번엔 웬일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후로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그 책을 읽는 것을 볼 수 없었지만 알렐루야는 얼마 후 한 잔 하러 들른 스메라기의 침대머리맡에서 그 책을 또 발견했다.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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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좋아하는 데 나이는 상관없죠. 그저 다메정신으로 단결하면 됩니다. 하지만 만 26세에도 애독서라면 참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자이를 삽질대마왕이라 부르며 애증으로 한결같이 핥는 저도 그 짓은 안 합니다.
문제는 어제 커피아이스크림 먹고 뻗어서 골골거리다가 생각난 거라는 거. 뭐죠 저?

수정보고 있습니다. 일 하는 틈틈이 아이디어 까먹기 싫다면서 끄적거리는 인간은 미친 거 맞다고 물론 생각합니다. 그, 그래도 할 일은 한다고요......

그리고 이제 와서 밝히는데 저 문장 책 첫페이지에 나오는 거 아니에요. 사실 진짜 첫문장은 나는 그 남자의 사진을 세 장, 본 적이 있다. 입니다. 거기서 몇 쪽 뒤에 제1의 수기, 부터 그 문장이 나오거든요. 하하하하. 스루합시다 스루.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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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둘이 밥 먹으면서 잘 놀았습니다. 요즈음 저희의 붐은 기형도이지요. 하필 피아가 기형도 시집을 들고 온게 문제였습니다. (그 애가 기형도의 빈집을 가지고 뭘 쓸 계획이었다더군요.)

이것은 윈디 언니 작품입니다.






사악하죠? 그래서 저는 답으로 이걸 패러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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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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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밥 먹다 나온 매운 떡볶이에 생각이 났습니다. 트랙백이 안 걸리네요......이 글을 읽고 읽으시면 아마 이해하기 편하실 겁니다.

저번에 짜장면이라는 세상의 악의가 들어 있는 국수를 먹고 교관님에겐 비웃음당하고 밀레이나한테까지 동정어린 시선을 받은 김라일 라일 디란디 , 계란 한 판. 연장자의 체면이고 뭣이고 애초에 애한테 목줄 잡혀 끌려왔을 때 부터 없었지만 가끔은 억울했다. 20대 초반 솜털 보송보송한 애ㅅ......아니 애라고 부르기 힘든 구석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어든 간에 지고는 못 사는 게 남자. 쓸 데 없는 데서 오기를 부리는 시점에서 계란 한 판이 아깝다는 건 뭐 그냥 넘어 가고 다 큰 어른이 왜 그러냐면 그게 세상 이치라고 치자. 세상의 악의는 원래 그런 오묘한 데서 시작하는 법이다.

-이것은?
드물게 세츠나가 말을 잃고 접시를 쳐다보았다.
-이거? 저번에 그 인혁련 전통 요리 고마워서. 보답으로 좀 찾아봤어.
의기양양하게 미소를 보내는 라일 디란디. 접시 위엔 무언가 붉은 소스가 가득 담겨 있었고 그 안엔 파스타의 일종인지 손가락 만한 하얗고 길쭉한 무언가가 소스 사이에 들어있었다. 익은 양배추와, 넓적한 가공식품인 듯한 무언가와 삶은 계란, 당근도.
-그거 떡볶이란 거래. 그 나라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라더라. 맛있게 먹어.
그리고 죽도록 맵고 먹기 힘들다더라. 저번에 날 엿먹였다 이거지, 어디 너도 한 번 당해봐라. 나 라일 디란디 지고는 못 산다. 회심의 미소를 날리자, 접시를 보며 한참 뭔가를 생각하듯 침묵하던 세츠나가 갑자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쓸 데 없는 복수심까지 형을 닮았나.
허를 찔려 굳은 라일이 아무 말도 못 하는 동안 세츠나는 포크를 들어 떡이라는 것을 집어 입에 넣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씹어 삼키고, 양배추에 당근까지 한 입 먹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맛있다. 고맙게 먹으마.
라일 디란디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죽도록 매워서 먹기 힘들 거랬잖아 티에리아 교관님!
우적우적 말 없이, 아주 빠른 속도로 먹기만 하는 세츠나를 보고 혹시나 해서 한 입 입에 넣었다 우선 죽도록 매운 맛에 경악하고 질겨서 씹기도 힘든 촉감에 놀란 라일에게 묵념을. 그리고 매워 죽겠지만 근성으로 근엄하게 버티는 건담님세츠나에게 박수를.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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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생각하던 건데, 제 취향도 참 일관성이 있어요.
알렐루야가 중국과 러시아 혼혈이라는 말을 들은 제 머릿속에선, 슬라브계 남자라 상체 근육이 좋았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부터 어쩐지 묘하게 내성적이더라는 생각까지 별 게 다 들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출신 독일 뮤지컬 배우 올렉 빈닉 씨를 아신다면 제 말을 이해하실 거예요.


이렇게 리터칭하면

전부터 해 보고 싶었는데 손이 안 가다가 연휴를 맞이하여 한 번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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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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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더블오로 이것저것 하는 데 재미 들리신 윈디 언니가 요런 것을 내놓으셨습니다.
이래 놓고 저보고 쓰는 글마다 염장이라고 뭐라고 하십니다 흥핏쳇. 저는 많이 억울합니다.

저는 원문 보고 기껏 생각한 게 나는 너를 위해 리본즈 뒤통수를 때렸지 나의 티에리아 이런 거 정도였다고요 흥.
그나저나 저거 찾아보면 시는 참 좋죠. 연시가 아닌 거 같은데 연시로 읽으면 굉장히 무시무시하군요. 이래서 시인이란.
예전에 글 쓰는 것들은 죄다 지옥에 떨어질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못 쓰는 사람들은 아마존 밀림이랑 에너지랑 낭비한 벌로 지옥에 떨어지고 잘 쓰는 사람들은 글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 죄로 지옥에 떨어지고. 중독되게 만드는 것도 죄는 죕니다......중독당한 게 죄라고요 아 네 압니다 낚인 게 바보죠.
이래도 지옥가고 저래도 지옥가는 거 기왕이면 잘 써서 지옥가면 좋지 않겠나 싶었지만 어린 날의 치기 어린 꿈이었을 뿐이고. (먼산)

그래서 언니에게 답해드리는 의미에서 저는 기형도를 골랐습니다. 무난하게 엄마 걱정.


예이츠에 이어 브레히트를 읽었고 그 다음으로 릴케를 읽어야 하는게 아닌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날입니다.
그러고보면 알렐루야는 진짜 윤동주 하나면 되니 너무 좋아요. 정말이에요. 윤동주 시집엔 순이라는 미지의 아가씨 이야기도 나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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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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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가 단순하니 참 재밌단 말이죠. 임화는 한 떨기 꽃.......이 아니고!!!! 저 시만 교과서에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는........저게 그나마 시로 보이기 때문이리라고 생각합니다. 메이데이 어쩌고 하는 것도 봐줄 만 했어요. 나머지는 아 이 썩을 놈들이 문학이랑 삐라를 구분을 못 해서!!!!

흠흠, 죄송합니다. 아무튼 저기서 우리 피오닐 어쩌고 하는 대목을 세츠나를 보면 가끔 생각해요. 록온 때문인 듯.
그래서 저걸 베이스로 써 봤습니다.


개그를 추구했습니다. 정말입니다? 안 웃겨서 죄송하지만요. 아니 이거 뿌듯하게 호롱불 아래서 볼레로 바느질하는 티에리아 상상하면 웃겨요 정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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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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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기 싫었던 저는 이런 걸 생각했습니다.

저기, 세츠나가 어린애입맛이잖아요? 핫도그나 먹고. 그런데 사실 핫도그 먹는 거 보면 종교 버린 거 보여주고 싶었던 거 같기도 하거든요. (규범에 맞게 도축된 것도 아니고 무려 돼지고기)  돼지고기는 안 되잖아요. 그런데 세츠나는 돼지 좋아할 거 같고. 그래서 인혁련 소속 모 반도국에 와서 짜장면 먹는 세츠나를 망상했습니다.

-이 음식은 이런 곳에서 먹어야 가장 맛있다고 한다.
세츠나는 어디서 배웠는지 능숙하게 젓가락질을 하며-현지인으로 위장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아이였다.-면을 비비고 있었다. 검고 기름진 소스가 면에 묻어났다. 채소와 고기를 볶아넣은 듯, 돼지기름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그리고 식초냄새가 진동하는, 얇게 썬 반달모양의 채소와 양파가 검은 소스와 함께 놓여있었다. 식전 전채인가 하고 입에 물어 봤다 후회했다. 식초에 절인 무였다. 그 옆에는 양념통이 세 개-무언지 확인해 볼 마음도 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붉은 장식을 한 가게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는 듯도 했다. 인혁련 전래의 글자라는 괴상한 문자가 벽에 붙어있었고-세츠나에게 묻자 입춘대길이라고 읽는다고 했다. 그건 또 무슨 뜻인데?- 벽에 붙은 긴 메뉴판은 네모지게 생긴 글씨로 읽을 수 없는 메뉴 이름이 주욱 적혀있었다. 아무 말 없이 따라오라며 사람을 데려오더니 마음대로 이상한 국수를 주문하고, 난 젓가락질 할 줄 모른단 말이다....... 젓가락을 들고 부들부들 거리던 라일은 항의했다.
-야, 하필 여기냐?
-여기가 어떤가. 면 불어터지니 어서 먹어라.
세츠나는 오늘도 근엄했다. 예, 어련하시겠어요. 그렇지만 난 얌전히 못 먹겠다 어쩔래. 라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빡빡 머리를 깎고, 세월의 변화에 뒤쳐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몇몇 있었고 검은 색 국수를 먹고 있었다. 하나같이 짐보따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옆에선 희고 네모진 뭔가를 손에 들고 훌쩍이는 노모, 그 앞에선 화를 내며 국수 먹는 남자를 노려보는 여자........
-짜장면은 교도소 앞이 제일 맛있다고 들었다.
그렇다고 테러리스트가 교도소 앞에서 밥을 먹냐? 뭐 하는 짓인데? 전직 카탈론 멤버이자 현직 테러리스트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청년을 노려보았다.
-짜장면은 또 뭔데?
들은 척도 않고 세츠나는 하던 말만 계속했다.
-이 나라에선 300년전부터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이 가장 먹고 싶어하는 음식이 짜장면이었다고 한다. 이 나라만의 독특한 국수지. 그래서 교도소 앞 짜장면집은 다 맛있다고 한다. 이 집은 대대로 교도소 앞에서 짜장면을 팔았다고 한다.어서 먹어라.
아, 그렇구나. 자신이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었던 것을 먹여주려는 배려였던 거다. 어느새 자신의 면을 다 비빈 세츠나는 언제 봐도 대인배다운 근엄한 얼굴로 라일의 그릇을 당겨와 면을 비벼주었다. 야, 그거 내 거........하던 라일은 입을 꾹 다물고 세츠나의 손만 쳐다보았다,주위를 둘러보니 면을 비벼주는 쪽은 모두 형이거나 아버지거나, 혹은 애인이었고 면을 비비는 상대를 보며 어쩜 잘 비비기도 하지 하며 감탄하는 쪽은 어린 동생이거나 아이거나 뭐 그랬다는 건 넘어가자.

세츠나가 열심히 비벼준 국수는, 짭짤하고 달고 기름졌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맛이었다. 남기지 말고 먹으라는 세츠나의 말을 들으며 라일은 뭔가 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뭐 어떠랴. 눈 앞의 청년이 보여주는 무뚝뚝한 배려는 기꺼웠다.

잠시후 젖소마냥 검은 얼룩을 온 얼굴에 묻히고 라일이 귀함하자마자 베다는 풋, 웃음소리만 남기고 접속을 종료했다는 건 비밀이고. 얼룩을 지우겠다고 허둥대는 라일의 얼굴에 묻은 것을 세츠나가 입으로 닦아준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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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모 님께

더블오/2차창작 2009. 4. 18. 23:43
쓰신 글을 읽고, 마음을 담아 만들었습니다.
한 쪽 푸딩이 살짝 뭉개지게 한다는 게 그만 왕창 뭉개지고 말았네요 흑흑. 게다가 폰카라 색감마저 안 좋아......원래는 더 선명한 빨간색에 더 선명한 분홍색이었는데 다른 사진은 없어요 흑흑.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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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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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오]갭

2009. 4. 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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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벨 님 리퀘입니다.
제가 개그라도 하면서 이 압박감을 견뎌야지 다른 수가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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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많은 나라가 사라졌다 생겨나기를 반복하더니 거대한 초국가연합이 생겨난 24세기라고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많다. 전통이라고 불러도 좋고 관습이라고 불러도 좋고, 뭐 그런 것들이 있다. 그것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부분이 이름이다. 이름이란 것은 대대로 물려받는 것이다. 자신들의 부모가 지어준 대로 그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니까 잘 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민 중위, 동양계 이름이다. 중국 아니면 한국계겠지. 그리고 스밀노프 중위. 누가 봐도 러시아계 이름이다. 러시아인의 이름엔 굉장히 재미있는 게 많다. 본명보다 더 많고 부르는 사람에 따라 섬세하게 구분이 되는 애칭이라던가...
그리고 저기 스밀노프 중위가 온다. 가까워진다.
-뭐 하고 있었나?
중위님의 성함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라고 누군가 대답한다.
-내 이름? 뭔가, 궁금한 거라도?
그저 러시아계 이름 같아 궁금하다고 말했다. 소위는 밝지 않은 표정으로 답한다.
-아버지가 러시아계니까.
스밀노프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인혁련에서 군생활을 한 어느 중사가 말했다. 세르게이 스밀노프, 러시아의 성난곰이라는 별명이 붙은 군인에 대해 나도 들어본 적이 있다. 중사는 눈치가 없었다. 이 자가 뭘 해서 승진을 했는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상해진 분위기를 수습한답시고 누군가 중위님 아버지 일은 참 안 됐다는 말까지 꺼냈다. 처참했다. 눈에 띄게 스밀노프 중위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그런 자는 아버지도 뭐도 아냐. 나는 군인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 자를 내 아비라 인정 못 하네. 나도 군인이 아닌가.
중위는 이를 악 물고 소리치듯 말했다. 참 웃기는 일이었다. 버쩍 얼어붙은 동기들과 후임들 사이에서 나는 그를 관찰했다. 사람이 주먹을 쥐고 화를 낼 수는 있어도 이를 악 물고 소리지르지는 못한다. 이를 악 무는 것은 참는 것. 그 자신도 무언가를 참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인지 못 하는 무언가를.
러시아에는 이제 너무 오래되어 잘 쓰이지 않는 풍습이 몇 개 있다. 러시아 땅에선 관습적으로 쓰여도 러시아를 벗어나면 쓰이지 않는 호칭, 부칭이 있다. 아버지의 이름은 자식에게 전해지고 그렇게 이름은 영원히 남는다.
안드레이 세르게예비치 스밀노프. 세르게이의 아들 안드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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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보기 전에 생각하던 건데 말입니다, 타이밍 놓쳐서 쓸까 말까 했거든요. 시간 없고 화수 모자라니까 이해가 아주 빨라져서 좋......긴 개뿔이 좋아요.
괜찮아요 루이스 살아온 건 아예 잊고 있었는데요 뭐. 전 정말 기절했다 일어난 줄 알았다고요.

쿠로다가 그냥 저렇게 살려두진 않았을 거라 믿으렵니다. 아직 마리나도 무사도도 아무 것도 못 했습니다. 할렐루야는 이제사 알렐루야와 인사를 했고 말이죠 라일은 이제 막 록온이 되었을 뿐이에요. 아직 할 일 많습니다. 이렇게 끝내면? 뭐 다른 의미로 레이드 들어가는 거죠.

아무튼 러시아식 부칭은 좋아요. 안드레이는 세르게이의 아들입니다. 너 임마 소마는 그거 갖고 싶어도 못 가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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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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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님의 하로에 붙은 록온 유령 설정을 차용한 지벨님의 글을 보고 쓰는 그으러니까 이게.....4차 창작 되겠습니다.
두 분 죄송해요.


수중에서 우주로 고속이동을 하는 동안 복도에 구르는 하로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로의 주인도 하로를 챙겨가지 못한 듯, 아니, 하지 않은 듯 했다.
<꺄아아아~!>
그 결과 톨레미 이동간을 온 몸으로 통통 튀며 굴러가는 하로를 동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바빴고 하로를 챙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로, 하로! 라일 이 녀석은 전투중에 하로도 안 챙겨가고 뭐 하는 거야?
하로에 붙어 반투명한 손으로 벽을 잡으려고 아무리 애써 봐야 소용없다는 사실도 잠시 망각하고 이동간을 잡아보겠다고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고 있는 고 닐 디란디(향년 24세) 빼고.

사건 종료 후.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와서는 힘없이 하로 가지고 공 던지고 받기 놀이를 시전하는 라일 덕분에 하로에 붙어 사는 기생 유령 닐 디란디의 얼굴은 아래위로 마구마구, 사정없이, 흔들흔들거리고 있었다. 반중력 상태라 지상에서처럼 곱게 공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꼭 달랑대는 용수철 끝에 달린 얼굴 같았다. 반투명한 얼굴이 왔다갔다 하는 걸 보니 어지럽다. 그 얼굴 주인은 유령이라 그런가, 어지럽지도 않은 모양인지 혈육을 상대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라일은 하로를 던지고 받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아우야.
"왜."
-우리 대화 좀.
"해."
-너 너무 성의 없지 않냐?
"뭐."
-하로는 저격형 건담 탑승 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파트너야.
"그래서."
-잘 챙기라 이거지. 전 주인으로서 하는 말인데 정말 좋다니까? 끼고 다니면 옆구리에 딱 맞는 사이즈
드디어 한계다. 라일은 허공에 떠 있는 하로에다 대고 소리질렀다.
"형, 고만 해라 좀. 오늘은 트랜잠으로 톨레미 끌고 가는 거였잖아. 그게 하로랑 뭔 상관이야!"
-야, 밥도, 아는, 자자,로 일관하다 드디어 세 마디 이상 말 했다?
"때와 장소와 인종과 안 맞는 유머 즐."
아예 고개를 홱 돌리자 사람은 도저히 따라 못 할 자세로 닐의 얼굴이 라일의 얼굴 앞에 따라왔다.
-너 뭔 일 있었냐?
"그딴 거 없어."
-아까 세츠나랑 심각한 이야기 하지 않았어?
"대체 어디까지 따라다니면서 스토킹할 셈이우?"
아 젠장. 불었다. 이건 내가 아까 걔랑 심각하게 형님 사망 원인에 대해 이야기했다......까진 아니라도 어쨌던 분 건 분 거 맞잖아. 부루퉁한 표정을 짓고 대화 안 하겠다는 뜻으로 눈을 감고 귀를 막았으나, 유령이 달리 유령이 아니다. 우습게 보면 안 된다.
-하로는 기능이 좀 다양해서.
"......"
-다 들었어.
눈을 떠 보니 형이 웃고 있었다.
-우리 라일이, 정말 다 컸네, 이 형 진짜 기쁘다.
"아, 좀."
-그렇잖아. 거기서 욱, 할까봐 걱정하기도 했고 거기서 형의 원수! 이럴까봐도 걱정했는데.
어이없는 반응에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형이 살아있다면 멱살이라도 잡아주는 건데, 이럴 땐 죽어서 정말로 불편하다. 실제로 살아있다고 해도 멱살 이상 못 넘어갈거라는 내면의 빈정거림은 무시하고.
"내가 형이야? 나이는 공으로 먹은 줄 알아? 형같이 이상한 데서 욱 해가지고 죽을 자리 안 가리고 뛰쳐나가는 나쁜 취미 없거든?"
-그거 아니라도 여러가지로 기뻐.
닐이 정말 기쁘다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 애들에게 더 이상 큰 짐은 없었으면 하거든. 고맙다. 내가 못 한 일을 해 줘서.
저 애들은 분명 다른 마이스터들을 말하겠지. 은근히 속이 터졌다. 걔들 좋으라고 한 일 아니거든요, 머저리 같으신 우리 형님아.
라일은 짜증나는 얼굴로 공중에 둥실 뜬 하로를 낚아채서 양손으로 잡고 세게 흔들었다. 하로와 하로에 붙어 사는 유령이 동시에 비명을 내질렀다.
<라일! 라일! 심술! 심술!>
-얌마, 하로가 심술부리지 말라잖아! 나 멀미했어, 어지럽다고!
라일은 한숨을 쉬었다.
"형 거짓말 너무 티나. 세상에 어떤 유령이 멀미를 한다고."
-넌 유령도 되어본 적 없으면서 어떻게 그런 섭한 소릴 하냐 아우야.
빠직.
야 이 망할 형님아 유령 먼저 된 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그딴 소리나 하고 앉았습니까?
"지금 그거 자랑이라고 해?"
-글쎄.
닐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듯 손을 들며 웃었다. 아, 형이 또 엄마 노릇 하고 있어. 생전 내 앞에서 자기 자랑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는 인간이 저럴 땐 이유가 있는 거지. 처음에 하로에서 형이 튀어나왔을 땐 응, 이거 내 입체영상인가 했는데 그놈의 입체영상이 익숙한 말투로 말을 걸고 있지 않나. 15년 지나도 저 썩을 형님의 말투는 변한 게 없다. 날 배려해준답시고 되지도 않은 농담따먹기나 하고. 그래가지고 언제 천국 갈래? 아차, 테러리스트는 못 가나......아무튼! 요단강은 건너야 될 거 아냐 이 쓸모 없는 형님아.
라일은 형을 보고 억지로 미소지었다.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기 형, 나 뭐 하고 싶은 거 있는데, 해도 돼?"
-응?
우리 동생이 뭐가 하고 싶어서 형한테 다 물어볼까, 상냥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려던 입은 입꼬리만 위로 올라간 시점에서 굳고 말았다.
라일 디란디는 하로를 손에 힘줄이 서도록 거머쥐고, 입꼬리를 부들부들 떨며 하로를 머리 위로 번쩍 쳐들고, 전심전력으로 벽에 집어던지고 말았다. 하로와 함께 닐도 둥실둥실 벽으로 날아갔고 잠시 좀 정신사나운 소요가 방 한가운데서 벌어졌다. 반중력상태라 감사하게도 하로는 무사했다만 닐은 비통한 표정을 짓고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야 하로한테 그러지 말라니까!
<꺄아아악! 사이좋게! 사이좋게!>
"저 놈의 기계 박살 안 날 거 감안해서 던진거요, 뭘 모르시네. 내가 애도 아니고 그렇게 앞도 뒤도 안 재고 행동할까봐?"
유령이 피식 웃었다.
-미안한데 동생아, 내 눈에 넌 그냥 애야.
"지랄! 형 나보다 겨우 5분 일찍 태어난 걸로 형 행세 하지 말라니까!!!"
-그런 소리 하려거든 아우야, 형, 형 소리부터 입에서 떼지 그러냐?
네가 날 형이라고 부르는 이상 네가 나보다 애라는 것도 뻔한 거 아니겠니? 뻔뻔한 얼굴로 웃는 닐의 얼굴에 짜증난 라일이 문을 열고 하로를 복도에 던져버리고, 지나가던 티에리아한테 걸려서 건담마이스터의 마음가짐에 대한 간결명료하고도 무시무시한 연설을 듣게 되었다는 건 그냥 뒷이야기.
그렇게 형과 치고 받고 나서야 라일은 아무 꿈도 꾸지 않고, 고민도 없이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는 것도 그냥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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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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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서 가면을 주웠다. 척 봐도 누구 건지 알겠다. 이름은 자세히 기억이 안 나는데, 군대에 있는 주제에 계급도 뭣도 없는 인간이었다. 원 맨 아미니 미스터 부시.......부시.......하여간 뭐라고 불리는 인간이었는데 군복 위에 이상한 옷을 입고 가면을 쓰고 다니는 또라이였다.
우리 부대, 아니 어로우즈 전체에 그에게 호감을 가질 사람이 있을지 모를 아주 희한한 인간이었다. 군인은 소속과 계급과 상명하복이 생명이다. 그것이 아니면 군대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중에도 그는 군대에 있으면서 홀로 군인이 아니었다. 군복도 안 입고 계급도 없고, 게다가 혼자 다닌다. 세상에 혼자 싸우면 그게 군대냐. 원 맨 아미라니 애초에 말도 안 되는 개념 아닌가. 신병 딱지도 못 뗀 꼬맹이들도 그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원 맨 아미라고 해도 리바이브 대위던가 하는 좀 괴상하게 생긴 사람은 그나마 똑같이 괴상해 보이는 동지라도 있지. 이건 완전히 혼자였다. 군인도 아닌 주제에 군인 집단에 끼어든 잘못된 존재가 저런 거지. 옛날 동양 속담에 개밥에 도토리라는 소리가 있다던데 이 사람이 도토리가 아닌가 싶었다. 아니 우리가 개밥이라는 건 절대 아니고.
우리와 한 데 섞여 어로우즈라고 불리기 싫은 거겠지. 그러므로 그와 무엇이건-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는 사소한 일부터 전투같은 큰 일까지-함께 할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건담만 보면 미친 듯 웃으며 달려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그냥 별 이상한 놈 다 있구나 할 뿐, 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없는 사람이었다. 남에게 호감도 불쾌감도 주지 못하는.
그런데 그 사람이 떨어뜨린 가면을 주웠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인가, 가면을 주워 들자마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의 정체는 금방 밝혀졌다.
웃기게도 그 가면을 얼굴에 단단히 고정시킬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대체 그 또라이는 이딴 걸 어떻게 쓰고 그딴 기체에 타서 허공에서 380도 회전을 하고 날아다닌대? 사실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렇게 괴상한가? 떨리는 손으로 가면을 뒤집어가며 꼼꼼히 살펴보자 이마께에 뭐라고 글자가 적혀있었다. 작은 글자라 가면에 코가 닿도록 가까운 거리까지 눈을 댔다. 적혀있던 글자는 다음과 같았다.

-착용 세 시간 전부터 세안을 금합니다. 원활한 유분 분비를 위한 것이니 피부미용에 관계된 항의는 받지 않습니다.
유분 분비가 적은 체질일 경우 콜드크림 사용을 권장합니다. 가까운 드럭스토어에 문의하세요.-

자세히 살펴보니 종이와 필름 같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과연. 누이들이 이마에 톡톡 찍어문지르던 파란 필름이 떠올랐다. 누이의 손길이 가면 파란 종이가 기름에 푹 절어 기분나쁘게 투명해지던 기억이 떠오르자 굉장히 우울했다. 그 투명한 종이가 누이의 이마에 척 달라붙어서 안 떨어지던 기억도. 누구 기름종이가 더 오래 이마에 붙어 있나 내기하던 더러운 자매들에까지 기억이 미치자 그만 콱 머리를 때리고 싶어졌다.
나는 조용히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지르고, 가면을 손가락 끝으로 집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확 불지르고 싶었지만 불이 너무 잘 붙을 것 같아 차마 하지를 못했다. 그 놈은 그냥 또라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
저 그레이엄 좋아합니다. 어쩌다 2기 되면서 그 지경이 되었는지도 좀 알 거 같고 말이죠. 사실 원 맨 아미가 말이 되는 소립니까. 쟤는 이제 군인도 뭣도 아니에요. 자기가 믿던 옳은 세계는 없어요. 그래도 건담과는 싸우고 싶고. 자기 모순 때문에 저 지경이 된 걸 보면 참 어지간히도 곧은 사람이다 싶고.

그래도 그 가면은 뭔가 이상하잖습니까. 그게 다예요. 그레이엄 망가뜨릴 마음은 없었습니다, 정말로. 제목은, 그냥 미시마 유키오가 생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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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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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묘지와 같았다. 묘비도 꽃도 없는.
아니, 꽃이라면 있다. 파편의 잔해를 뒤덮은 무성한, 들짐승의 털처럼 길게 자라 아무렇게나 몸을 뻗고 있는 풀 사이사이에 보이는 것은 작고 희미한, 색도 향도 바랜 듯한 작은 꽃이었다. 마치 묘비 앞에서 조용히 시들어 부서지는 꽃잎처럼 얇고 바삭거리는.
꽃이 바람결에 흔들렸다. 청년을 맞이하듯.

성묘할 곳을 잘못 고른 것일까. 파편 더미 위에 선 청년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 이 곳 이외에 우리들에게 어울리는 묘는 없어. 미간에 힘을 주고 청년은 마치 자기 자신을 타이르듯 아무도 들을 사람 없는 허공에 말을 던졌다.
청년이 발을 옮기자 발 밑의 파편이 듣기 싫은 쇳소리를 내며 덜그럭거렸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기우뚱거리며 흔들리던 파편 무더기가 기어코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조용하던 공간에 파문이 일었다. 가뜩이나 울퉁불퉁 불안한 지반에다 불안정한 걸음 탓에 균형을 잡지 못해 조금 크게 발을 내딛자 쾅, 하고 내려앉은 금속조각이 흙먼지를 일으켰다. 몇 년을 조용히 버티고 있는 동안 그 위에 쌓인 흙먼지가 떨어져 부옇게 작은 폭풍을 일으키며 부풀어 올랐다. 소란통에 그 속에서 살던 쥐가 마치 조용한 생활을 방해받은 것을 항의하듯 날카로운 소리로 울었다.
6, 7여년간 누구도 접근하지 않던 공간에 비로소 소리가 울렸다. 이걸 노크라고 봐도 좋을까. 무덤을 두드리며 인사를 하는 것과 같다고. 지금의 자신은 너무 감상적이지 않은가 하고 청년은 생각했다.

무덤을 손질할 필요도 없었다. 그 곳은 이미 작은 숲의 일부였으니까. 사실 무덤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시신이 묻힌 곳은 따로 있으니까. 하지만 거기 까지 가서 묘비 앞에서 손을 모을 필요도, 죽은 이들에게 향이니 기도니 하는 것들을 바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무덤도 아닌 그 곳에서 계속 걷고 보았다. 한 때 프톨레마이오스라 불렸던 전함이 반토막난 채 기체 이곳 저곳이 부서져나가 작은 파편더미를 이루고 있는 곳은 넓었다. 기계를 이루던 부품들이 너절하게 떨어져나갔다. GN 드라이브 같은 것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남은 것은 조각뿐. 게다가 톨레미가 떨어져 부서지며 떨어져나간 파편조각이 튀어나가면서 숲도 제법 많이 상처를 입었다. 허리가 꺾인 나무가 그 속을 빈약한 햇빛에 노출시켜 하얗게 퇴색되어가고 있었다.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렇게 된 것인지는 다 알고 있다. 톨레미 밑에는 케루딤이 짓눌려 있을 것이고 산 하나를 넘으면 세라비가 풍화되듯 낡아가고 있다. 더 멀리엔 아리오스와  GN 아처가. 물론 껍데기 뿐이고, 그나마도 이곳 저곳이 떨어져나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것이 한 때 건담이었다고 생각 못 하겠지만.
북반구 어느 험한 산은 골짜기 골짜기가 거대한 무덤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 격전지에서 목숨을 잃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우주에서 죽은 이들도 있었고 살아서 우주에, 지구에서 지금도 자기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이곳에서 죽은 이도 있고 다른 전장에서 죽은 이도 있다. 청년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모든 죽음의 순간을 떠올렸다.
7년 전, 셀레스티얼 빙이라는 조직 그 자체가 죽었다고 봐야 옳으리라. 자신들이 낳은 세계의 부조리와 함께 죽었다. 몇 년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로 죽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죽었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셀레스티얼 빙이 죽으면서 그 모든 것들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세상이 조금 더 살 만한 곳이 되기를 바랐다. 죽어서 속죄한다는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저 죽지 않고 할 수 없는 일이었을 뿐. 청년은 성격 좋은 조타수를 떠올렸고 차례차례 죽은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특이한 반쪽을 가졌던 동료와 그의 난폭한 반신과 역시 두 얼굴을 가진, 동료의 반려를, 사실은 아주 약해서 도망치기 바빴던 전술예보관을, 자신과 언젠가 편지를 써서 보냈던 소녀를, 이노베이터였으나 누구보다 사람다웠던 동료를, 좋아하는 소녀 때문에 전장에 뛰어들었던 이웃집 소년을, 카탈론의 테러리스트였지 셀레스티얼 빙은 아니었던, 죽은 이와 꼭 닮았지만 전혀 달랐던 반쪽을.
청년은 왼손으로 파편 새로 빠져나온 빛바랜 녹색 조각을 주웠다. 뒤나메스와 같은 색 조각이 가장 먼저 죽은 누군가를 연상시켰다.
-록온 스트라토스.

아직 어렸던 시절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어려서 저지른 실수는 되돌릴 수 없으며 세상에 신 같은 건 없다고 좌절했을 때 나타난 신은 자신이 죽어라 부정하던 것이었다. 결국 낳아준 부모와 소년병으로 키워준 아버지와 다시 살게 해 준 아버지를 모두 잃었다.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동료이고 형제이며 평생 넘을 수 없는 벽 같았으며 어머니보다 어떤 면에서 자애로웠던 남자만큼은 남아있었다. 그가 세츠나에게 너만은 변하라고 말해주었다. 과거는 수정할 수 없지만, 꼭 너만은 변하라고.
피투성이 과거를 헤쳐 나오라고.

그 날부터 7년간 자신은 굉장히 많이 자랐다. 그리고 혼자 살아남았다. 세츠나 F 세이에이도 아닌, 소란 이브라힘도 아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청년이 되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잔다. 가끔 꿈을 꾸면 그 전장이 나온다. 더블오가 부서지던 장면에서 언제나 깨고 만다. 아무도 구하지 못했고 세계의 왜곡을 찾아내지도 못했다. 자신은 건담도 아니고, 세상은 그렇게 바꾸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아직 그 과거를 헤쳐 나오지도 못했다.
그래도 평범하게 살고 있다. 이웃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혼자 밥도 해 먹고. 얼마 전엔 터번을 두르고 외출했다. 옛날에 터번은 군대에 속하지 않은 자라는 뜻에서 쓰는 풍습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싸움을 하지 않는 자신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여전히 왜곡되어 있지만 그래도, 셀레스티얼 빙 같은 것이 없는 조용한 세계에서.

“록온.”
허공에 이름을 불렀다.

“내 생일이다. 스물아홉이 되었지.”
아무도 듣지 않는다. 하지만 듣는다면 먼저 간 록온도 다른 동료들도 모두 축하해 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원한 건 아니었다. 물론 굳이 생일에 성묘를 온 것은, 그들이 보고싶어서긴 했다.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보낸 자들이다.

“사후 세계가 어떻냐거나 다들 잘 있냐는 건 아니니 걱정 마라.”
어쩐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분명 살아있었다면 자신을 많이 걱정했으리라. 생전 사사건건 오지랖 넓게 간섭하고 들던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그 청년들보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 곧 서른이 되고, 아마 별 일 없으면 자연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은 이들이 간절히 바랐던 세상이었으나 자기가 그 세상의 일부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것이 당혹스럽다.

“축하인사를 받을 자격도 걱정을 들을 자격도 없다. 다만 하나 확인해보고 싶어서 여기에 왔다.”
아무도 답하지 않는다. 조용하다. 답해줄 사람은 없다. 그걸 알면서도 말을 꺼냈다.

“록온.”
“나는 그 날 네가 바라던 그 사람이 되었나?”
정적이 흐르는 것 같았다. 물론 착각이다. 알고 있다.

"나는 제대로 변하지 못했어."
오른팔이 아팠다. 없는 팔은 당연히 아플 수 없다는 것을 아는데도. 청년은 있지도 않은 팔을 감싸쥐고 허공을 우러러보았다. 싸움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세계에서.
어쩐지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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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KIA의 HAPPY BIRTHDAY TO ME의 한 구절을 듣다가 마지막 대목이 생각났습니다.
時を重ねる度にこの日を喜んだ母の氣持ちを思う
今の私はあの日願ったママの子ですか…?

새벽에 쓴 거라서 과하게 낭만적입니다. 다시는 새벽에 글 안 써요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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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님 리퀘입니다. 술자리에서 삼자대면- 스메라기, 알렐루야, 록온
이렇게 말씀해주셨는데 셋이 붙여놓으니까 자기 방어들이 쩔어서 입을 안 떼는 통에 뭘 시키질 못해서 편법을 좀 썼습니다. 괜찮으실지 모르겠네요. 일단은 질 낮으나마 개그를 하고 싶어서 시도해 봤습니다. 수위는...........전혀 안 높아서 죄송합니다.


압생트는 환각 작용이 있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여러모로 안 좋아서 금지된 술이었다던가요.
한국에선 못 먹는답니다. 요즘은 현지에서도 40도 정도로 만든단 이야기를 들었어요. 70도 짜리를 40도로 만들다니 이건 소주 도수가 20도 이하인 거랑 똑같은 거 아냐 하고 분개했습니다...... 네, 그저 제가 저걸 마시고 싶었던 것 뿐입니다.

쓰다 보니까 제가 술 되게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잘 마시지도 못하고. 그저 꼭 아일랜드 위스키를 먹어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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