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mini양이 좋은 걸 줬어요. 예전에 했던 리퀘인데 그게 참 멋지게 돌아왔습니다.
받기는 이틀 전에 받았는데 제가 사는 게 바빠서 이제 올려요.


그림을 다시 그려볼까 했어요. 한 3년 전까진 뭘 가끔은 끄적거렸던 것도 같습니다. 존못이지만서도. 그런데 손 놓고 글에 매진하다가 가끔 신스케를 데리고 인형놀이를 하고 싶어져서(하이힐, 가터벨트, 뭐 그런 거죠) 다시 그림을 그려볼까 했는데
주위에서 이렇게 제가 보고 싶은 걸 그려주시니 전 그냥 글이나 파는 게 맞는 거 같기도 합니다. 욕망이 알아서 충족되고 있어요 아아.

'여러분의 해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투는 나의 힘  (4) 2010.10.30
대은고등학교의 하루+3년 후  (4) 2010.10.24
[동인녀문학교육론]화사  (6) 2010.10.01
오늘도 자랑 포스팅  (4) 2010.09.28
양귀비  (2) 2010.09.25
Posted by 유안.
,

자, 문학교과서 301쪽. 책 다 폈어요? 교과서 안 가지고 온 놈들은 좀 빌려라도 오는 성의를 보입시다. 책도 없이 수업을 한다니 말이 됩니까. 그리고 뭐, 수능 대비 문제집 수업은 안 하냐고? 좋은 질문입니다. 그래서, 평생 문제집만 읽고 살 겁니까. 기본은 책입니다. 기본만 갖춰져 봐요 수능에 무슨 작품이 나오네 어디서 뭐가 나오네 문제 유형이 어떻게 하고 법석을 떨 이유가 없다고. 기본은 독해능력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만 툴툴대고 수업 합시다.
어이구, 어쩐 일로 사카타가 책을 다 들고 왔네요.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뭐라고? 사카타 넌 임마 평소에 수업이나 잘 듣고 그런 소릴 해라.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저건 물에 빠지면 그 동네 물고기들이랑 전부 인사 트고 친구 먹을 놈이라니까. 사카타가 책 가져 왔으면 다 가져 온 거죠. 어라, 곤도. 너 문학교과서 어쨌니. 뭐 몰라? 어, 옆반 여학생 빌려주고 못 받았다고. 에라이 이 쓸개 빠진 놈아. 책을 빌려 갔으면 받아 와야 할 거 아냐. 너 수행 감점. (한 대 쥐어박는다) 그럼 이제 수업 할까요?
이번단원에서는 작품을 읽고 시어의 의미를 통해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을 목표로 수업을 하겠습니다. 학습목표를 상기하기 바랍니다. 오늘 배울 작품은 서정주의 ‘화사’입니다. (칠판에 단원명을 적는다)
시 전문을 읽어봅시다. 시는 일단 읽어보고 감상하는 게 중요하죠. 그럼 누가 읽어볼까요. 누구 목소리가 제일 좋은가…… 다카스기가 해 보겠답니다. 잘 들어봅시다.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芳草)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보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자, 잘 들었으면 화면을 봅시다. 시 전문이 나와 있죠. 이 시를 읽으면서 뭔가 이상한 걸 느낀 사람은 없나요? 오, 즈라가 좋은 말을 해 줬습니다. 박수. 뭐, 즈라가 아니라고? 애들이 다 즈라 그러잖아. 짜식 삐졌냐? 아무튼, 잘 보면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1연과 2연을 보면, 저주받은 몸뚱아리라는 말과 아름답다, 꽃대님 같다는 말이 동시에 나옵니다. 즈라의 지적이 정확하죠. 그런데 왜 이랬을까요. 시는 원래 앞뒤가 안 맞는 거라서 이렇게 적었을까요. 그럴 리 없죠. 앞뒤 안 맞는 듯 하지만 따져보면 맞는 게 시의 모순입니다. 지지난 시간에 배웠죠. 얼씨구 저 백지 같은 얼굴 봐라. 아 배웠으면 좀 기억을 하란 말입니다. 어떻게 점심 먹고 나면 수업 들은 걸 다 까먹습니까 너희는. 특히 오키타!
우선 이것부터 이야기합시다. 시를 읽을 때 중요한 건 배경지식입니다. 이 시는 기독교 창세기의 이브와 뱀에 대한 이야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요. 물론 그게 다가 아니지만. 다들 아는 대로, 이브에게 선악과를 권한 것이 뱀이지요. 그리고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건. 뭐 예뻐? 곤도 너 한 마디만 더 하면 사물함 위에서 코사크 댄스 추게 될 줄 알아라. 경고했다. 클레오파트라는 뱀독으로 자살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뭐 아깝다고. 여러분들이랑 이천 살 차이나는 미인이 예뻐봤자 어디 쓸 건데요.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뱀독으로 자살한 클레오파트라라는 소재가 미술에 많이 쓰인 게 중요하죠. 사람 죽은 걸 그리면 어떨 거 같은가요. 흉할 거 같죠? 그런데 여기를 보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르놀트 뵈클린의 <죽어가는 클레오파트라>입니다. 이 그림 본 사람? 아 제발 야동만 보지 말고 화집도 봅시다. 화집에도 은근히 에로한 그림 많습니다. 내 말 못 믿어요? 내가 전에 춘향전 야하다고 이야기하니까 그건 봤잖아요. 사서 선생님이 갑자기 애들이 춘향전 막 빌려가더라고 그러던데? 화집도 한 번 찾아 보세요. 꽤 많은 데 도움이 됩니다. 아무튼,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가기 전에 수업으로 갑시다. 묘한 분위기죠? 이렇게 뱀에게 물려 죽어가는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는 그림에서 에로틱하게 묘사된 경우가 많아요. 왜 그럴까요?
죽는 게 에로틱한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 히지카타가 좋은 질문을 했죠? 서양 미술사를 보면 이상하게 죽음의 순간과 에로를 연결한 경우가 많습니다. 시체의 아름다움, 죽는순간의 아름다움. 이걸 다 이야기하자면 길고, 아무튼 이런 그림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이 시도 이해하기 한결 쉬울 거예요. 뭐 당장 요새 뱀파이어가 유행하는 거 보면 이해가 좀 쉬울 겁니다. 이미 죽어서 생명이 없는 흡혈귀가 탐미적으로 묘사되는 매체가 많잖아요? 그 이치입니다.
1연을 보시면 처음부터 이상하죠. 사향, 박하는 향기나는 풀입니다. 사향은 음, 쉽게 생각해서 향수를 떠올리면 되는데. 아 맡아본 적 없다고? 여러분 여자친구한테라도 물어봐요. 뭐 여자친구가 없어? 미안합니다. 염장지를 의도는 없었어요. 어허, 화내지 말고. 사향은 전통적으로 유혹을 위한 향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요. 머스크향이라고 하면 짐작갈 사람이 좀 있으려나? 궁금하면 엄마나 누나 향수 중에서 향 독한 거 골라서 냄새 맡아 보면 될 겁니다. 괜히 엎질러서 야단 맞지 말고. 그거 보기보다 비싸요. 아무튼 향기나는 건 좋은데 그 다음부터 수상쩍은 말들의 연속이죠? 뒤안길이랍니다. 으슥한 길이래요. 음지랍니다. 뱀은 왜 양지에 나올 수 없을까요? 힌트는 아까 다 줬습니다. 네, 정답입니다. 저주받은 생물이라서 그런 거죠. 뒤안길과 비슷한, 뱀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시어를 찾아서 네모표시를 해 봅시다. 몇 개냐고? 그거 가르쳐 주면 대충 그 숫자 만큼만 치고 잘 거잖아 사카타. 뭐 안 자? 그러고보니 너 오늘 이상하게 눈이 초롱초롱하다. 역시 야한 시로 수업하면 수업을 잘 듣죠. 이런 본능에 충실한 놈들 같으니라고.…… 다 찾았습니까? 어디 봅시다. 짝과 책을 바꾼 다음 자기 것과 차이가 많이 나는지 살펴 보세요. 뭐, 아예 달라? 야마자키 너 도대체 어디에다 표시를 한 거냐. 여러분이 찾은 대로, 뒤안길, 큰 슬픔, 징그러운 몸, 1연에선 그 정도이지요. 인류에게 선악과를 먹게 하고 저주를 받은 악마의 이미지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가면 3연에서 붉은 아가리라느니, 물어뜯는다느니, 4연에서 저놈의 대가리라느니, 5연에선 돌팔매로 적대감을 표시하고 있어요. 그런데 시 전체가 뱀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보이는 사람? 그런 건 아닌 거 같죠?
2연으로 가 보세요. 이상한 소리가 있죠? 꽃대님 같답니다. 저주받았는데 왜 예쁠까요? 그게 문젭니다. 다시 자기 책 가지고 가서, 이번엔 뱀을 예쁘고 곱고, 유혹적인 것으로 묘사한 부분을 찾아서 동그라미를 쳐 봅시다. 어허 사카타 너 왜 자꾸 다카스기 옆구리를 찔러, 수업듣는 애 방해하지 말고 네 책을 봐라. 뭐 다 했다고? 오, 잘 찾았네? 얌마 그렇다고 딴짓한 게 용서될 줄 아냐.(귀를 잡아당긴다)너도 한 번만 더 걸리면 물구나무 서서 수업 받게 될 줄 알아.
예, 잘 찾았어요. 어떤 말이 있죠? 네, 꽃대님 같다, 바늘에 꼬여 두르고 싶다. 피 먹은 양 붉다……. 부정적인 시어가 뒤로 갈수록 적어지고 점점 뱀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시어가 많아져요. 심지어는 마지막에는 누군가에게 스미라고까지 말하고 있죠? 스며들어서 동화되라니 그게 무슨 뜻일까요. 그 말 자체가 뱀을 아름답게 본 건 아니니까 긍정적인 시어라고 말한 사람의 의견은 다시 생각해 보고, 아무튼 뱀에 대해 이미지가 바뀌는 결정적인 행을 하나 찾아봅시다. 예, 사카타 말이 맞아요. 돌팔매를 던지면서 따라가는 4행. 뱀을 따라가고 있는데 이유가 이상하죠? 뱀을 죽이려 드는 이유는 저 뱀이 혐오의 대상이어서가 아닙니다. 3연까지 내 앞에서 꺼지라고 뱀을 저주하던 시의 화자는 뱀을 쫓으며 이상한 현상을 보입니다. 숨이 왜 가쁠까요.
……너네들 좀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왜 다 얼굴을 붉히면서 답을 회피합니까. 왜, 숨가쁘다면 이상한 상상밖에 안 들죠? 야동 좀 끊어요. 요즘은 중학교 때 야동 다 떼고 끊고 고등학교 올라온다더니 너넨 왜 그럽니까. 그런데 그게 맞아요.
환호하지 말고, 특히 사카타! 뱀을 쫓던 화자는 이상한 흥분에 사로잡힙니다. 야 거기 곤도! 흥분 같은 거 필기하지 마!! 저 필기 안 하던 놈이 신난 거 보니 참 어이가 없어서. 아무튼, 아까 그 그림 같은 원리예요. 가장 무서운 죽음이, 사실은 가장 에로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 원리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은 나중에 교무실에 오면 책 추천해 줄테니까. 프로이트나 바타이유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사카타 너 표정이 정말 이상하다? 뭐, 이런 거 전문이라고? 잘 됐네. 이따가 학습활동할 때 발표 좀 시켜보자. 아무튼 그 다음행을 봅시다.
바늘에 꿰어 두르고 싶다는 폭력적인 표현이 나오죠. 폭력이 아니라고? 여러분을 산 채로 침으로 꿰어서 어디 걸어놓으면 무섭지 않겠어요? 상상력을 발휘합시다. 이제 화자의 눈에 뱀은 굉장히 아름다운 것으로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폭력적인 소유욕이 발현되는 거죠. 꽃을 보면 꺾고 싶은 것부터, 이런 폭력적인 소유욕은 끝도 없습니다. 더 들어가면 이야기가 음험해지니까 다음 연. 그런데 사카타 너 왜 웃냐?
클레오파트라의 피를 먹은 듯한, 붉고 고운 색의 뱀이 스미기를 기원합니다. 누구한테요? 그 다음연에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가 전이된 아가씨가 하나 나오네요.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순네요. 웃깁니까. 왜들 그래요. 일제 시대엔 점순이가 섹시한 이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웃지 말고. 순네는 어떤 아가씨 같아요? 미인이겠죠. 어떻게 알아요? 네, 거기 써 있죠. 고양이 같은 고운 입술이라고. 위에서도 입술 이야기 나온 것 같은데. 그렇죠? 위의 연의 이미지가 순네에게 그대로 전이됩니다. 야성적이고, 에로틱한 아름다움이죠. 웃기는. 이런 특정 단어에 반응 그만 하고. 그럼 화자는 뱀을 누구랑 동일시하고 있을까요. 여자들일까요, 자기자신일까요. 자기 자신에게 동일시하게 되는 것과 그 반대인 것은 해석이 다르겠죠.
자 그럼 뒷장을 봅시다. 학습활동 1번. 이 시를 읽고 떠오른 것을 자유롭게 써 봅시다. 이 시를 읽고 받은 느낌, 떠오르는 사물, 떠오르는 이미지에 대해 써 봅시다. ……사카타, 일어나서 발표해 봅시다.
...
.....
...........

야, 이 시를 보고 다카스기를 떠올리는 건 뭐 하자는 거냐, 지금 장난 치냐? 뭐? 이 시 속의 뱀에 대한 묘사는 다카스기를 볼 때 내가 하는 생각과 정확히 일치……이 자식 어쩐지 수업 열심히 듣는다 했다. 너 끝나고 교무실로 좀 와라. 아니 당장 지금 책 들고 앞으로 나와. 그리고 누가 다카스기 찬 물 한 잔 갖다 줘라. 얼마나 열 받았으면 얼굴이 시뻘겋냐.
그럼 다른 사람의 발표를 들어보고, 학습활동 2번으로 넘어갑시다. 이 시를 쓴 서정주에 대해 알려면 30년대 문학사의 흐름을 좀 알아야해요. 거기 대해 살펴본 다음 학습활동을 마저 해 봅시다.
(중략)
그럼 다음 시간엔 조지훈의 ‘석문’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다음 주에 봅시다.


덤 : 사카타 긴토키(16) 군의 교과서 일부(교과서 및 필기 협찬은 테이큰 님이 해 주셨습니다. 박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

-------------------------
50분 수업할 분량의 지도안을 약안으로 짜서 올리려다가 재미없어서 관두고 대신 이렇게 수업의 흐름을 짜 봤습니다. 거기 사범대 교대생들 웃지 말고; 아니 이대로 하면 안 되는 거 내가 제일 잘 알거든요.
현장감은 아마 좀 있을 겁니다 훗.

'여러분의 해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은고등학교의 하루+3년 후  (4) 2010.10.24
오늘의 자랑거리  (2) 2010.10.20
오늘도 자랑 포스팅  (4) 2010.09.28
양귀비  (2) 2010.09.25
그러니까 그 의상은;  (2) 2010.09.19
Posted by 유안.
,
아래 덧글을 단 대로, 오늘도 자랑할 것이 생겼습니다.

오늘도 ciel 님이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저 분은 그림의 천사이신가 봅니다.
책에 대해 감상 주신 것은 원고 파트너 님이 크게 기뻐하시며 온 천하에 자랑하시기로 약조하셨으므로 저는 이걸 자랑할까 합니다. 나머지를 더 보고 싶으신 분은 Kisara 님의 블로그에 가 보셔요.



예전 파푸와 때, 서비스 님을 두고 그 쌍둥이형 되는 하렘은 '마녀'라는 호칭을 사용했는데 그 호칭을 아무도 이상히 여기지 않는데다 저조차 거기에 위화감을 못 느낀 것에 격한 위화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그런 기분이 드는군요. 그나마 파푸와는 여성 작가가 그린 작품이었죠. 여자보다 젠더에 보수적인 남자가 그리는 점프 만화에서 왜 그런 걸 느껴야 하죠.

아무튼 한 번 더 감사인사 드립니다. 매번 좋은 걸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해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자랑거리  (2) 2010.10.20
[동인녀문학교육론]화사  (6) 2010.10.01
양귀비  (2) 2010.09.25
그러니까 그 의상은;  (2) 2010.09.19
시조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4) 2010.09.17
Posted by 유안.
,

양귀비

여러분의 해결사 2010. 9. 25. 14:18
담뱃대에서 가늘게 피어나온 연기는 잠시 허공을 맴돌다 흩어지듯 사라졌다. 조명이라고는 방 구석에서 연기를 내며 피어오르고 있는 초 한 자루 밖에 없어서 공중에 피어오른 연기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연기가 흩어져 사라져도 냄새는 사라지지 않고 남는 법. 아편 특유의 달짝지근한 냄새가 들이마신 연기를 공중으로 훅 내뿜는 순간 이미 그 냄새에 익숙해진 코를 자극했다.
자신은 분명 긴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입에 담뱃대를 물고 있었을 텐데 몸이 어디에 기대어 있다는 감각이 없었다. 여기서 이것을 피운지 얼마나 되었을지. 몇 시간이 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며칠이 지난 것 같기도 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어두운 방 안에 누워 아편을 물고 있노라면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 같을 때마저 있다. 아프던 왼쪽 눈에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별 느낌이 없는 것으로 봐서 시간이 꽤 지나긴 한 것 같다. 눈이 며칠째 계속 욱신거렸다. 긴토키와 즈라를 한 번에 보느라 눈이 무리를 했나보다고 농담을 했더니 반사이 놈이 혀를 찼더랬다. 그런데 내가 뭔가를 피우긴 피웠던가. 확인차 혀끝으로 입에 물린 것을 살짝 핥아보았다. 손톱처럼 둥글게 휜 것을 따라 익숙하게 혀를 움직이자 입 속의 담뱃대 물부리가 경련했다. 이것이 살과 체온을 가진 뭔가가 되어 입 안을 헤집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을 터인데. 몇 종류의 연기가 뒤섞인 방 안은 어두운데다 뿌옇기까지 했다. 나른한 대로 몸을 쿠션에 묻자, 비단천이 가는 손가락을 뻗어 팔과 목을 쓰다듬었다. 오싹하도록 부드러운 것이 몸을 쓸고 지나간다. 퍼져나가는 달콤한 향기를 따라 몸 주위를 떠다니는 열락감이 드러난 살갗에 엉겨붙었다. 눈을 감자 빨간 꽃 같은 것들이 하나씩 피어나다 점점 빠른 속도로 머릿속을 흘러 어디론가 바삐 사라졌다. .

어두운 굴 속에서, 널부러진 시체 위에 몸을 눕히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제까지 이 빠진 칼을 들고 막부군에게 쫓기며 천인들과 중과부적인 싸움을 계속하던 놈들이었고 방금 전까지 자기 위에서 울며 신음하던 놈들이 이불이나 요처럼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닥에 퍼져 있었다. 벌건 바닥이 구겨진 이불 같아서 밟기 꺼림칙했다. 왜 온통 빨갛지. 어느새 양귀비가 피처럼 벌겋게 피어있었다. 아, 아까 눈 앞을 지나갔던 꽃들이 저거로구나. 그런데 아까란 건 도대체 언제지. 나는 조금 전까지 백야차와 싸워대고 있었는데. 어느 것이 먼저였더라. 아, 이젠 그마저 모르겠다. 그러나 백야차가 화를 냈던 건 알겠다. 그럴 필요가 있냐고? 암, 있고 말고. 그게 필요하다고 전우이자 부하이자 동지가 부탁하는데. 그게 뭐 어떻다고. 내가 좋고 저 놈들이 좋다는데 뭐가 어떻다고. 너도 똑같은 걸 요구했잖아. 그랬더니 백야차의 눈이 달군 쇠처럼 벌개졌다. 왜 화를 냈을까. 지금까지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이란 건 도대체 뭐지.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즈라와 긴토키가 나한테 칼을 들이댄 게 바로 얼마전 이야긴데, 그 배에서 그놈들이 뛰어내리는 것도 봤는데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거지. 과거란 게 돌아서서 왔던 길을 다시 걸으면 갈 수 있는 그런 데였나?
백야차가 저만치서 걸어가고 있었다. 발치에 낙엽처럼 떨어진 손목이며 눈이며 귀며 머리 같은 것들이 구르고 있었고 꼭 수풀 사이로 걸어가듯 아무렇지도 않은 걸음으로 가볍게 그것들을 밟고 있었다. 낙엽 부서지는 바스락 소리 대신 살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지 마라. 아니, 그래도 돼. 아니, 그러지 마.

문이 열리자 강한 빛이 쏟아져서 눈이 부셨다. 문 밖에서 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꽃인가, 구름인가, 아니면 언젠가 보았던 썩어서 흙인형처럼 푸슬푸슬 부서지던 시체인가. 세상이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고 있어서 몸을 일으키기 힘들었다. 내가 도는 게 아니야. 나는 바로 서 있는데 세상이 돌고 있지. 그 세상에 맞추려면 나도 돌아야 해. 상반신을 일으켜 눈 앞에서 부유하는 하얀 것에 시선을 맞췄다. 어두운 방 안에서 유일하게 하얀 것은 얼굴과 드러난 손목과 손 뿐이었고 그것은 마치 해골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해골이 입을 열었다. 그제야 어둠 속에 푹 잠긴 긴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신. 뭐 하고 있나."
세상이 한 바퀴 돌았다. 카츠라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자신을 발견한 건 그 뒤집어진 세상의 잔해 속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고 손을 짚었을 때, 따뜻한 뭔가가 잡혀서 놀라고 난 후이다. 카츠라가 푹 잠긴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카츠라의 부름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남의 목소리 같았다.
"꿈을 좀 꿨지."
머뭇대던 손이 금방 등을 감쌌다.
"애냐."
"애는 이런 거 안 피운다, 바보야."
"바보는 누가 바보인지 원."
어깨를 감싼 팔이, 등을 두드리는 손이 따뜻했다. 아직 약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것인가.


------------------------------------
...................
...............................
.............................................
다카스기 신스케 따위.
Posted by 유안.
,
에도 시대 때 남녀 관계를 주로 다룬 우스운 이야기를 모은 단편집인 <고쇼쿠만킨단好色万金丹>(1694)의 3권 네 번째 이야기 <시오이노우라>는 바다에서 조개를 캐는 사람이 어쩌다가 금박 그림의 칠기문갑을 파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 문갑은 가느다란 철사로 칭칭 감겨 있었다.

"이는 필시 범상치 아니하겠구나."며 덮개를 여니 묘령의 처녀 그림이 나왔는데, 호랑나비 자수의 보랏빛 기모노에 머리 또한 미려한 기생답게 틀어올렸으나 그 몸에 바늘이 54개나 꽂혀 있었다. 이가 바로 시한하여 다른 여인을 저주하는 꼴사나운 여인의 음모이겠거니 오오, 보고만 있어도 두렵도다. 안에 여자의 필적으로 "이 기녀는 임자 있는 사내를 꾀어 수천 금화를 뿌리게 하고는 자식도 둔 이 몸과 연을 끊게 하려마저 하오니, 이 맘속 애끓는 분노의 불꽃이란 물을 끼얹어도 꺼지지 아니하겠소. 무릇 신이란 정직한 이의 편이시니, 사흘 안에 이 계집의 목숨을 거두시고 지아비의 바람난 마음을 바로 잡아 분통함을 풀어주시옵소서."라 하니 이에 적힌 바가 극흉한 질투였다. 가여운 지고. 이는 어디 기생이란 말인가.

일본고전문학문화연구회 저, <환상과 괴담>, 도서출판 문, 2010

저 나비 무늬 좋아합니다. 아는 사람은 알죠;
저 실은 고스로리나 클래식로리도 좋아합니다. 이 역시 아는 사람은 알죠;
저 망할 점프 악역 때문에 제 취향에 회의가 들려고 그래요 쳇!

......나비무늬 보라색 기모노는 어디 타유나 텐진이나 입는 의상이죠. 여염집 여자가 걸칠 만한 물건은 아니라는 거. 근데 그걸 남자 주제에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있네요.
생긴 건 또 남자 같거든요. 오히려 여성적인 미모는 즈라 쪽인데. 그런데 남자처럼 생긴 게 정말 비아이 양 말마따나 색기는 여성용이네요. 너 정체가 뭐니.

......그림 그릴 줄 알면 저놈한테 클래식로리 입혀주고 싶어요. 레이스는 최대한 절제하고! 허리는 코르셋으로 꽉 조이고 스커트는 하이 웨이스트!  머리엔 리본! 천은 공단 쪽이 좋을지 까만 벨벳이 좋을지;  
까만 공단 드레스도 괜찮을지도; 등이랑 앞섶은 확 파고 왼쪽에 허벅지까지 슬릿을 넣어주면 더 좋겠지 말입니다
치파오도 좋을 거 같지 않나요. 까만 바탕에 금실이랑 색실로 나비무늬 수놓은 거. 그런 거 입고 있는 건 이젠 거의 클리셰 수준이라 할 말이 없네요. 관두자 관둬. 마스라오 님 말마따나 너무 잘 어울리니까 오히려 재미가 없네요 정말; 아니 왜 제가 서른 줄 남정네를 갖고 인형놀이를 하고 있는 거죠 왜?

덤 : 저 책 보다보니까 말이에요, 에도 설화인 阿波狸合戰의 주인공은 小安姬, 즉 코야스히메랑 사귄다더이다.
무섭죠? 그나마 한자가 달라서 다행이에요. 이 책 왜 이래;;
Posted by 유안.
,

藥山 東臺 어즈러진 바위틈에 倭철쭉 같은 나의 님을
내 눈에 덜 밉거든 남인들 아니 지에 보랴
새 많고 쥐 꾀는 東山에 오조간 듯 하여라

藥山 東臺 험한 바위틈에 영산홍 같은 나의 님을
내 눈에 덜 밉거든 남인들 아니 지나쳐 보랴
새 많고 쥐 꾀는 동산에 모이 뿌린 듯 하여라

조선 후기 가집 <흥비부>에 수록된 시를 현대어로 옮겼음. 내 아름다운 님에 대한 자부심과 님에게 꼬이는
벌레들에 대한 쩌는 질투심을 동시에 읊은 수작으로 자기 애인의 미모를 온 천지에 자랑하고픈 심리와 가상의 혹은 실재하는 라이벌에 대한 눈먼 질투로 미쳐돌아가는 심리를 동시에 가지는 게 남자라던가 어쨌다던가.

라고 트위터에 적자 제 뮤즈이신 KISARA 님께서
'험한 바위 틈에 봄나물 같은 나의 님을/내 눈에 덜 밉거든 천인들 아니 지나쳐 보랴' 고 새로 써 주셨고 저는 뮤즈의 부름에 충실하여

귀병대 시커먼것들 틈에 봄나물 같은 나의 님을
내 눈에 덜 밉거든 눈 있으면 아니 지나쳐보랴
새 많고 쥐 꾀는 동산에 모이 뿌린 듯 하여라

이렇게 재창작해 봤습니다. 전통적으로 시조문학은 내용의 변용과 재창작을 통해 시대상황에 맞는 현장성 있는 작품을 창작하는 것에 충실한 장르였으므로 저는 조상님들의 전통에 따라 현대에 맞게 썼을 뿐입니다 어흠어흠. 아니 왜 못 믿으시나요.

---------------------------------------------------
9월 17일 추가

승리를 축하하고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한 조촐한 술자리였다. 시작은 분명히 그랬는데, 피로와 흥분이 겹치고, 간만에 들어간 알콜이 거기 더해진 결과 다들 마신 것 이상으로 취해 있었다. 그나마 평소 군기가 잡혀있던, 혹은 대장에 대한 경의로 가득차 까라면 정말로 깔 수도 있을 정도로 기강이 잡혀 있던 귀병대가 평소와 별 차이 없는 차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나머지는 조금씩 평소보다 풀린 모습을 하고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카츠라마저 평소보다 많이 웃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보며 가을밤엔 풍류가 제격 아니겠냐고 운을 띄운 것이 귀병대의 누군가였던 것 같지만 아무도 그게 누구였는지 기억은 하지 못한다. 아무튼 귀병대원들이 평소 경애해 마지 않던 총독님을 본받아 한 수씩 우아하게 읊고 있을 때, 저 쪽에서 허연 것, 즉 백야차가 터덜터덜 한 손에 술병을 끼고 걸어와 귀병대 사이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인간이 이제 술 마실 데가 없어서 여기서 마시나 하고 다들 그냥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었는데, 시 읊는 것을 구경하던 백야차가 갑자기 불쑥 중얼댔다.
"나도 어려서 공부할 땐 시를 좀 지었지. 귀병대 여러분을 위해 한 수 읊어볼까."
순간 총독의 하얀 이마에 핏줄이 서는 것을 본 사람은 얼마 없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좌중의 한가운데에 서서 목을 풀며 자세를 잡는 백야차를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백야차는 목소리를 높여 한 수 읊었다.

낭송이 끝나고 정확히 5.2초 후에 귀병대 전원이 아우성을 쳤고-우리가 쥐나 새란 말이오! 시커멓다니, 시커멓다니! 아니 그리고 봄나물은 또 뭐요. 우리 총독님이 먹는 걸로 보인단 말이오! 아니 뭐 예쁘긴 예쁘.......커헉! 백야차가 아군을 친다! 카츠라 님 어디 가셨냐!! 누가 그 분 좀 불러와!!!! -귀병대 총독이 그 후 일주일간 백야차가 무슨 짓을 하건 무슨 말을 하건 대놓고 무시를 했다고 한다. 열받은 백야차가 복수전을 계획했다고 하는데 자세한 건 아무도 모른다.

---------------------------------------------------------배포본 <봄나물>의 후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Posted by 유안.
,
야해서 19금이 아니라 부도덕해서 19금인, KISARA 님과 저의 합동 은혼 책이 드디어 예약페이지까지 나오게 되어 홍보차 올라왔습니다.
여기
입니다. 샘플페이지를 보고 폭소하신 다음, 덧글로 예약해 주십쇼.
아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 겁니다만 저 개그 못 쓰는 거 아시죠. 죄다 시리어스를 빙자한 신파로 도배했다는 것만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예약부수 외엔 안 찍습니다. 혹시나 흥미 있으심 꼭 예약해 주세요.
예약 마감은 9월 2일까지입니다. 달력이 9월 3일로 넘어가면 안 받아요-. 9월 3일 0시 1분이라도 안 받아요- 통판도 합니다. 신청 부탁!

아 그리고 축전이 대단하며, KISARA 님의 글은 기대하고 있으며, 제 글은, 페이지 수 불리는 데는 신경 썼습니다 흠흠. 페이지 수만 불렸습니다 아흑흑.

'여러분의 해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러니까 그 의상은;  (2) 2010.09.19
시조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4) 2010.09.17
자랑 포스팅 좀 하겠습니다.  (2) 2010.08.23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2) 2010.08.21
요시다 쇼요를 말한다.  (0) 2010.08.16
Posted by 유안.
,
뭐 자랑할 게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자랑할 만 하니까 자랑한다고 답하겠습니다. 훗훗.
오늘 좋은 걸 선물받아서 여러분과 이 기쁨을 공유하려고요.




Posted by 유안.
,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弔燈)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 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나희덕,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
시 쓰는 사람들이 이래서 무섭단 말이다. 너무 늦었지? 다시는 안 돌아올 거라는 말이었는데 그게 뭔지 몰랐던 게 한스럽지? 후회해도 소용 없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랐지?

카테고리 참고. 백목련이 어울리는 누구누구를 위해서.

'여러분의 해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혼회지 'TIME RUINS EVERYTHING'(가제) 예약받습니다.  (0) 2010.09.02
자랑 포스팅 좀 하겠습니다.  (2) 2010.08.23
요시다 쇼요를 말한다.  (0) 2010.08.16
저녁 눈  (4) 2010.08.10
엄마의 사랑은 맹목  (0) 2010.08.08
Posted by 유안.
,
요시다 쇼요는 교사로선 실격이라고 늘 투덜댔지만 왜 그런지 자세히 생각해보진 않았는데요, 오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인간도 어쩌면 닐 디란디 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수과라고도 하죠)

이 사람 양이지사입니다. 양이지사이니까 그 선생을 그렇게 따르던 제자들이 다 똑같은 길을 간 거라고 봐요. 애들한테 가르친 것도 그렇고. 하지만 과격파는 절대 아니었을 겁니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걸 보면 온건파일 거예요. 당장 들고 일어나는 것보다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믿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죽었을까요? 아이들을 가르치고 고아들을 거두는 온건파 양이지사가 죽어야 할 이유가 얼마나 될까요? 분명히 막부와 천인들 때문에 죽은 걸로 추측되는데, 세상에 그 많은 과격파 양이지사를 두고 요시다 쇼요가 왜 죽었을까요? 사이고 토쿠모리도 살아있는데?
재야의 온건파 양이지사로 지내다가 막부와 천인들이 도저히 저 사람을 용납하지 못할 뭔가를 저질렀다고 봐도 괜찮을 겁니다.

자신이 언젠가는 없어질지도 모른다며 아이들에게 책을 줬지만 그게 그렇게 가까운 미래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게 일찍 죽을 생각은 없었을 걸요. 애들한테 가르칠 게 많았을 테니까요. 특히 사카타 긴토키의 경우는. '백야차강탄'을 참고하면, 아이들이 변성기도 맞기 전에 돌아가셨던 걸로 추측되지요. 어린 인간을 몇 년 가르친다고 사람 됩니까. 어른이 될 때까지 옆에서 계속 붙들고 있어야 사람이 되지요. 특히 어려서 사람이 받아야 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긴토키는 더요.
생각해 봅시다. 교사라는 작자가 애들을 놔두고 죽을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저 직종은 사람 책임감을 극대화 시키는 효과가 끝내주는 직종이거든요.  전 진통 오는데 오후 수업 있다고 버티고 있다 야단 맞고 애 낳으러 간 사람도 알거든요. (당시 스물 넷이었고, 초산이었습니다.) 직업인일 뿐인 현대의 교사도 그러한데, 스승과 제자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저런 관계에서야 어떻겠습니까? 돌봐야 될 어린 것들이 수두룩한데 어딜 죽어요 죽긴. 저 사람 분명히 내가 언젠가는 죽으러 가더라도 이것들 다 사람 만들고 가야 한다는 각오 정도는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생떼같은 어린 것들 놔두고 죽었다 이거죠? 그것도 갑자기?
아무리 봐도 지금의 긴토키보다 젊거나 비슷한 나이로밖에 안 보이는 젊은 양이지사 요시다 쇼요, 남겨진 어린 것들은 생각도 안 날 만큼 충격적인 뭔가를 겪고 충동적으로 뭔가 저지르고 죽었습니까, 어? 아니면 뭐, 더 젊었을 때 나라를 뒤집을 만한 사고라도 치고 은거해서 애들 키우다 잡혀가 죽었습니까? 어느 쪽이건 그럴 거면 처음부터 애들을 맡지 말았어야 할 거 아냐 이 작자야! 그러고도 선생이냐!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아닙니까?

혼자 죽기 싫어서 키사라 님한테 이야기했고, 그랬더니 사수가 죽어서 게, 사자, 천칭자리가 피를 토한다는 비유를 해 주시고, 손견 파파가 죽어서 손책을 그렇게 만들었다느니 하는 비슷한 예를 마구 들어주셨습니다. 세인트 세이야 세계 내의 모든 문제가 누구 때문에 일어난 거였나요. 사수가 없었으면 사가가 그렇게 비뚤어지지도 않았을 테고, 사수가 그렇게 안 죽었으면 아이올리아가 그렇게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무엇보다 백 명의 아이들이 세인트가 되겠다고 그 고생을 할 일도 없었겠지요. 얼레 데자뷰?
그리고 둘이만 죽기도 아까워서 올립니다. 같이 죽어요.

'여러분의 해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랑 포스팅 좀 하겠습니다.  (2) 2010.08.23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2) 2010.08.21
저녁 눈  (4) 2010.08.10
엄마의 사랑은 맹목  (0) 2010.08.08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2  (0) 2010.08.02
Posted by 유안.
,

저녁 눈

여러분의 해결사 2010. 8. 10. 01:40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해결사네 창문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진선조에 쫓겨 도망가는 발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샤미센 켜는 창가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쓰레기장 구석 라면 국물에 젖고 칼자국 나고 피에 젖은 책들 위에서 붐비다

-------------------
내 인생 유래없이 계획성 없고 막 나가는데다 써도 써도 끝나지 않는, 그래서 많은 걸 포기하게 하는 원고를 하게 해준 다카스기 신스케 씨에게 바칩니다. 생일 축하.

아, 원작은 박용래의 <저녁 눈>입니다.
Posted by 유안.
,
학교가 뒤집어진 모종의 사고 후, 어느 오후 교무실에서.

"선생님, 우리 애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집에서는 얼마나 착하고 조용한 애라고요. 혼자 알아서 공부도 하고 제가 늦게 오면 밥도 차려주는 애예요. 이렇게 착한 애가 그런 사고를 쳤을 리 없어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우리 애가 얼마나 얌전한지. 중학교 때까진 이러지 않았어요. 얘가 고등학교에 가더니 나쁜 친구들을 만나서!(코 푸는 소리) 친구만 잘 만났어도 이러진 않았을 거예요, 흑흑흑."
"저......어머님, 아까 반사이 학생이랑 니조 학생 어머님도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애가 잘못했다는 건가요!"
"아니, 그런 말씀이 아니고......."
"니조 걔도 그래요. 우리 애보고 책임전가를 하는데 걔가 다른 친구들 다 때리고 다녔다면서요? 어떻게 거기서 우리 애 탓을 할 수 있죠? 그리고 반사이? 걔가 옆 학교 선도부장 선동해서 학교간 패싸움 붙인 애라면서요? 거기서 우리 신스케가 뭘 했다고! 그 애들 엄마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제가 이야기를 좀 해 봐야겠어요."
"어머님, 진정하세요. 제 말은, 물론 친구들끼리 나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이런 경우에 일방적인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는 게 저희들의 의견입니다. 다른 친구들도 그렇잖아요."
"지금 마타코랑 다케치 말씀하시는 건가요? 선생님, 그거야말로 저희 애 잘못이 아니죠. 마타코 걔가 얼마나 끈덕지게 우리 신스케한테 꼬리를 치는지 선생님들은 모르시나요? 애들한테 물어보세요. 마타코가 우리 애 따라다녔다고 그러지 우리 애가 마타코한테 뭐 한 마디라도 한 줄 아세요? 마타코가 괜히 우리 애한테 잘보인다고 사고친 거잖아요. 다케치도 그래요. 우리 신스케가 뭘 어쨌다고 신스케 이름을 댄대요? 자기들끼리 싸워놓고선? "
"저 어머님, (찬물을 받아놓고 기다리다) 목마르실텐데 일단 이거 드시고요........"
"(싸나이답게 찬물을 원샷)감사하오. 아 아니 그게 아니지. 그리고 아까 하루사메 공고에서도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 학교에 카무이란 애가 있다지요. 그 학교도 이번에 난리가 났다면서요. 뉴스에도 날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더라고요. 근데 그 카무이란 애가 우리 애랑 같이 저지른 일이라고 그랬다고 그 학교 학생부장 바.......아니 아보 선생님이 전화하셨어요. 혹시 아시나요?"
"그 카무이가 실은 저희 학교에 왔었어요. 그 하루사메 공고에서 일 터지기 직전에요. 신스케 데리러. 그때 전화 받으신 거 기억나시죠, 걔가 걔입니다."
"그것 보세요! 다들 저희 애를 끌어들이려고 하는 거잖아요. 저희 애는 끌려다니는 거 뿐이라고요! 같이 저지른 일이라니 어쩜 그런 끔찍한 말씀을 하시죠, 그 학교에선? 자기 학교 학생의 책임을 우리 애한테 전가할 생각인가요?"
(보통 그런 경우를 일러 악의 축, 만악의 근원이라 부릅니다 어머님.)
"그렇지만 어머님.......신스케의 다른 친구는요? 그애 이야기도 한 번 들어보셔야지요. 혹시 3반 사카타는 모르시나요?"
"아, 긴토키요? 어머, 긴토키도 이번 사건 피해자인가요?"
"........아뇨, 가해자입니다만."
"선생님, 지금 착각하시는 거예요. 긴토키는 반사이한테 맞은 애예요. 우리 신스케가 그랬어요. 반사이가 긴토키 때렸다고."
"굉장히 잘 아시네요."
"그야 저희 애랑 태어났을 때 부터 알고 지낸 사이니까요. 참 좋은 애랍니다. 저희 애한텐 거의 형이나 다름 없는 애죠. 좀 의욕이 없어 보이지만 할 땐 하고, 저희 애하고도 좀 티격태격하긴 해도 잘 지냈어요."
"........아, 네. 그 티격태격이라는 게......."
"그야 남자애들이니까 좀 거칠 때도 있지만, 그 나이땐 다 그런 법이잖아요?"
"어, 혹시 어머님. 최근에 이상한 거 못 느끼셨어요?"
"이상한 거요? 음 긴토키가 놀러오는 횟수가 줄어들긴 했고.......신스케가 이상하게 집에서도 파진 옷을 안 입으려고 들긴 했지만 그거야 사춘기 남자애들이 다 그렇죠. 표정이 좀 어두워지긴 했지만, 그건 다 그 귀병댄가 뭔가 하는 애들 때문이에요!"
"........어머님, 제 생각엔 일단 긴토키부터 한 번 만나보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선생님, 학생을 대할 때 편견을 가지고 대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 긴토키가 그럴 애가 아니에요. 얼마나 좋은 앤데요."
"........네."
"아무튼, 그 이상한 애들 어머니들이랑 좀 만나봐야 할 거 같네요. 그리고 옆 학교 선도부장, 이토라고 했나요? 걔도 좀 봐야겠고요."
"........아뇨 어머님, 괜히 서로 만났다 감정만 상하실 거 같으니 학교에서 하겠습니다."

".......쌔앰, 경위서 다 썼는데요."
"야단맞으러 온 놈 말하는 꼴 좀 보게? 너 집에 가기 싫지?.......어.......이걸 경위서라고 썼냐, 네 잘못은 다 빼먹었잖아 사카타 긴토키!!"
"제가 뭘 어쨌다고요."
"내가 볼 때 네가 세계의 왜곡이다. 다시 제대로 써. 다카스기 이야기부터!"
"쳇.......네. (작은 소리로) 근데 다카스기도 동의했는데......분명히 좋아 죽었는데."

"나 전근 갈래, 전근! 학부모고 학생이고 다 이상해! 아니 어머님이라더니 왜 남자냐고! 장발이면 내가 속을 거 같냐! 월급 적게 줘도 중학교로 갈래! 고등학교는 생활지도 하기 낫다며, 중학생보다 사람에 가까워서 말도 통한다며, 뭐야 이거? 누가 나한테 그런 헛소리를 한 거야, 아니 역시 이 학교가 이상한 거냐, 그래, 어디든 좋아, 이 학교만 아니면 돼! 전근!!"

****년 *월 *일, 모 고등학교 교무실 풍경.

'여러분의 해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시다 쇼요를 말한다.  (0) 2010.08.16
저녁 눈  (4) 2010.08.10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2  (0) 2010.08.02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0) 2010.08.02
극장판 감상  (0) 2010.07.27
Posted by 유안.
,

밥으로 사람을 꼬셔 뻘짓을 하게 만든다는 누명을 뒤집어 썼습니다. 억울합니다. 유안입니다.
내가 그거 안 쓰면 밥 안 준다고 한 적도 없는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저녁은 매운 걸로 준비할테다 쳇.

아무튼, 아까 쓴 글과 여기에 이어 이번에도 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교련 배워보신 분.......아 이런 이렇게 쓰니까 제가 엄청 늙은 거 같잖아요. 교련복 입고 다니진 않았으니까 거기 모니터 보고 경악하는 분 고만 해요 좀.
어 아무튼, 교련 실기로 1학기 때는 삼각건을, 2학기 때는 붕대매듭을 했던 몸으로서 붕대를 조금 아는데, 붕대 매듭이 저렇게 나오면 안 됩니다. 매듭이 상처에 닿으면 큰일 난대요. 매듭은 붕대 안에 집어 넣어서 안 보이게 매 줘야 하는 거라고 압니다.

그런데 저 나비매듭 뭡니까.
저 귀엽기 짝이 없는 나비 매듭 어느 놈이 지어 줬습니까. 본인 손으로 맸다고 생각하자니 너무 귀여워서 속에서 뭐가 올라오려고 하니까 그건 패스.
남는 놈이 둘이죠. (셋이라고요? 아니 사람이 또 있었단 말씀이십니까.)

1. 즈라가 우리 동생 다쳤다고 울며 불며 붕대를 둘둘둘둘둘둘둘----------------------둘 감아주고 마무리로 이쁘게 나비매듭을 매 주고 호- 해 줬다. 붕대 퀄리티에 대해 신스케는 아무 말도 못 한다.
2, 긴토키가 그놈 손 내밀면서 도와주네 마네 깝치더니 그거 잘 됐다고 꼬셔 죽으려는 얼굴로 미친듯 웃으며 붕대를 대충 둘둘둘 감아주고 나비매듭 매 주고 신스케가 매듭 보고 뭐라 그러니까 여자애는 리본 이딴 개소리를 늘어놓았다.

근데요 전장에서 몇 년 구른 놈들이 응급처치 하나 제대로 못 배웠단 말입니까. 너희 뭐 하냐. (한국남자들 말로 이거 당나라 군대니 응?)

'여러분의 해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녁 눈  (4) 2010.08.10
엄마의 사랑은 맹목  (0) 2010.08.08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0) 2010.08.02
극장판 감상  (0) 2010.07.27
[은혼+유니콘] 노래의 생명은 가사  (2) 2010.07.25
Posted by 유안.
,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사람 둘이 모이니까 별 게 다 보이네요.
뭘 봤냐면 그, 은혼 166화요. 왜 그 있잖아요. 제작진이 긴히지 하악하악 수갑플 하악하악 부부싸움 하악하악 이딴 마인드로 만든 게 분명한 그 미친 물건 그거. 그걸 모 마스라오 님(흠흠)이랑 보던 중 마스라오 님이 뭘 발견하셨습니다.
"수갑을 오른손에 차는 저 바보 뭡니까."
어.
.......어?
.......얼씨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 그러니까 이걸 잘 보세요.
저놈, 저 멍청한 경찰놈이 어느 손에 수갑 차고 있습니까. 세상에 어떤 멍청한 경찰이 지 오른손목에 수갑을 채운대요? 아니 경찰이면 체포, 연행, 포박 이런 거 기본으로 배우잖아요. 묶는 거라던가 끌고 가는 거라던가.
더구나 저놈 오른손잡이지 말입니다. 긴상도 오른손잡이지 말입니다? 저게 기초 중의 기초라고 알고 있는데 저놈이 왜 제 상식에 도전을 하는 거죠? 저런 실수 하고도 월급 받냐 어? 이 공무원이!!!!

하던 중, 번개와 같은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저건 '긴상의 왼손목'이지 '범인의 왼손목'이 아니라는 거죠.
자, 저 인간이 종종 바보짓을 하긴 해도 기본적으로는 유능하신 진선조 부장님입니다. 기초 중의 기초를 모를 리 없잖아요. 그저 부장은, 유능한 경찰답게 공과 사를 잘 구분한 거 뿐입니다.
연행할 땐 자기 왼손목에, 범인의 오른손목에.
긴상의 경우 그의 왼손목에, 자신의 오른손목에.

여기서 질문.
그럼 왜 긴상과 수갑차는 법이 따로 있는 걸까요? 그리고 왜 그게 몸에 익은 걸까요?
정답을 아시는 분은 ARS 070-8105-6969로 전화주셔서 3과 P를 눌러주세요.

덧 : 마스라오 님 이 글 보시다 말씀하시길
"그런데 지금은 공이거든? 사 아니거든? 그러니까 이놈이 바보인 건 변함이 없어요." 라시네요. 과연.

덧 2 : 윈디 언니 약오르라고 쓴 거 절대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여러분의 해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의 사랑은 맹목  (0) 2010.08.08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2  (0) 2010.08.02
극장판 감상  (0) 2010.07.27
[은혼+유니콘] 노래의 생명은 가사  (2) 2010.07.25
은혼을 이 작가들이 썼다면 -3  (0) 2010.07.24
Posted by 유안.
,
紅桜 みてしまったな なんだこりゃ 監督なんて 死ねばいいのに 
春風に 切り落とされた 黒い髪
春風に 残されたのは 痛い怪我

어제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이딴 문법 따위 망각한 노래나 줄줄 쓰고 있었습니다. 홍앵편 감상이었어요.

아이들이 받은 책의 의미에 대해 설명이 더해진 거
신스케의 미모가 보자마자 헉 소리가 날 정도로 빛났던 거
그리고 액션신이 보강되어서 큰 화면으로 거칠 거 없이 칼을 휘두르는 즈라와 긴상을 본 거
긴상의 백야차다운 눈동자를 큰 화면으로 본 거(저 그 장면 정말 좋아하거든요)

뭐 이런 게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테러리스트 신스케의 테러계획보다 그 세 양이지사가 어떻게 갈라서게 되었나에 초점을 맞춘 게 극장판이었나보더라고요. 선생님이 무슨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책을 나눠주었는지, 그리고 그 책을 받은 세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잘 풀어줘서 좋았답니다.

전 요시다 쇼요가 좋은 양이지사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좋은 교사라고 생각은 안 합니다. 하지만 대단한 스승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없어도, 여러분들에게 길을 제시할 수 있기를, 그래서 이 글을 선사하겠노라고. 하지만 역시 좋은 교사라기보다 위험한 교사가 맞을지도요. 그렇게 애들 인생을 옭아매다뇨. 그 사람 양이활동을 했을 테니까, 그리고 애들을 양이지사로 키우기도 했으니까, 내가 여러분 곁에 없을 수 있다는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이었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그걸 뻔히 알면서, 대체 애들 인생에 어떤 지침을 주고 싶어서 그런 책을 준 걸까요? 그거 너무 무거운 짐 아닙니까?
하지만 이번에 보고, 좋은 교사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좋은 어른이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어린 것들에게 자신이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던 건 확실해요. 그리고 사람 인생을 그렇게 바꿔놓았으니 대단한 스승이 맞긴 하네요. 최소한 신스케는 선생님에 대한 애정이 독이 되어 돌아버린 거 맞긴 할 겁니다. 그게 다는 아니겠지만.
카츠라는 쇼요 선생의 책무를 물려받아서 쇼요 선생님이 되기 위하여 양이활동을 하고, 선생님을 본딴 외모를 유지하며 선생님의 아이들인 신스케와 긴토키를 어떻게든 그 길로 인도하려고 하고 있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습니다. 그리고 긴토키는 쇼요 선생에게서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도리- 남을 신경쓰는 오지랖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설교하는 법도 덤으로요. 그리고 그 사람의 설교는 양이전쟁과 무수한 흑역사와 실수와 인생의 오점과 회한 등등을 겪으며 당위성을 획득했지요. 선생님께 배운대로 살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 아마 해결사일 거예요. 남을 도와주고, 자기 처럼 살지 않게 하도록 최선을 다해 온갖 일을 도와주려면 끼어들기 좋은 일을 해야겠지 않습니까. 신스케의 경우는, 아마 선생님을 잃지 않았으면 선생님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었을 거예요. 다카스기 신사쿠 같은 사람이었을지도. 뭐 그러다 선생님 잃고 아주 가 버렸지만;

엘리 안의 옷상은 귀여웠습니다. 리허설도 안 하고 바로 레코딩을 한다던가, 극장판에 소라치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되었다던가, 소라치는 캐릭터송을 싫어한다던가 하는 천금 같은 정보를 얻어서 기뻤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라면 국물 쏟아서 버렸다는 대사는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감상 끝.
Posted by 유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