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문학교과서 301쪽. 책 다 폈어요? 교과서 안 가지고 온 놈들은 좀 빌려라도 오는 성의를 보입시다. 책도 없이 수업을 한다니 말이 됩니까. 그리고 뭐, 수능 대비 문제집 수업은 안 하냐고? 좋은 질문입니다. 그래서, 평생 문제집만 읽고 살 겁니까. 기본은 책입니다. 기본만 갖춰져 봐요 수능에 무슨 작품이 나오네 어디서 뭐가 나오네 문제 유형이 어떻게 하고 법석을 떨 이유가 없다고. 기본은 독해능력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만 툴툴대고 수업 합시다.
어이구, 어쩐 일로 사카타가 책을 다 들고 왔네요.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뭐라고? 사카타 넌 임마 평소에 수업이나 잘 듣고 그런 소릴 해라.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저건 물에 빠지면 그 동네 물고기들이랑 전부 인사 트고 친구 먹을 놈이라니까. 사카타가 책 가져 왔으면 다 가져 온 거죠. 어라, 곤도. 너 문학교과서 어쨌니. 뭐 몰라? 어, 옆반 여학생 빌려주고 못 받았다고. 에라이 이 쓸개 빠진 놈아. 책을 빌려 갔으면 받아 와야 할 거 아냐. 너 수행 감점. (한 대 쥐어박는다) 그럼 이제 수업 할까요?
이번단원에서는 작품을 읽고 시어의 의미를 통해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을 목표로 수업을 하겠습니다. 학습목표를 상기하기 바랍니다. 오늘 배울 작품은 서정주의 ‘화사’입니다. (칠판에 단원명을 적는다)
시 전문을 읽어봅시다. 시는 일단 읽어보고 감상하는 게 중요하죠. 그럼 누가 읽어볼까요. 누구 목소리가 제일 좋은가…… 다카스기가 해 보겠답니다. 잘 들어봅시다.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芳草)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보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자, 잘 들었으면 화면을 봅시다. 시 전문이 나와 있죠. 이 시를 읽으면서 뭔가 이상한 걸 느낀 사람은 없나요? 오, 즈라가 좋은 말을 해 줬습니다. 박수. 뭐, 즈라가 아니라고? 애들이 다 즈라 그러잖아. 짜식 삐졌냐? 아무튼, 잘 보면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1연과 2연을 보면, 저주받은 몸뚱아리라는 말과 아름답다, 꽃대님 같다는 말이 동시에 나옵니다. 즈라의 지적이 정확하죠. 그런데 왜 이랬을까요. 시는 원래 앞뒤가 안 맞는 거라서 이렇게 적었을까요. 그럴 리 없죠. 앞뒤 안 맞는 듯 하지만 따져보면 맞는 게 시의 모순입니다. 지지난 시간에 배웠죠. 얼씨구 저 백지 같은 얼굴 봐라. 아 배웠으면 좀 기억을 하란 말입니다. 어떻게 점심 먹고 나면 수업 들은 걸 다 까먹습니까 너희는. 특히 오키타!
우선 이것부터 이야기합시다. 시를 읽을 때 중요한 건 배경지식입니다. 이 시는 기독교 창세기의 이브와 뱀에 대한 이야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요. 물론 그게 다가 아니지만. 다들 아는 대로, 이브에게 선악과를 권한 것이 뱀이지요. 그리고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건. 뭐 예뻐? 곤도 너 한 마디만 더 하면 사물함 위에서 코사크 댄스 추게 될 줄 알아라. 경고했다. 클레오파트라는 뱀독으로 자살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뭐 아깝다고. 여러분들이랑 이천 살 차이나는 미인이 예뻐봤자 어디 쓸 건데요.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뱀독으로 자살한 클레오파트라라는 소재가 미술에 많이 쓰인 게 중요하죠. 사람 죽은 걸 그리면 어떨 거 같은가요. 흉할 거 같죠? 그런데 여기를 보세요.
아르놀트 뵈클린의 <죽어가는 클레오파트라>입니다. 이 그림 본 사람? 아 제발 야동만 보지 말고 화집도 봅시다. 화집에도 은근히 에로한 그림 많습니다. 내 말 못 믿어요? 내가 전에 춘향전 야하다고 이야기하니까 그건 봤잖아요. 사서 선생님이 갑자기 애들이 춘향전 막 빌려가더라고 그러던데? 화집도 한 번 찾아 보세요. 꽤 많은 데 도움이 됩니다. 아무튼,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가기 전에 수업으로 갑시다. 묘한 분위기죠? 이렇게 뱀에게 물려 죽어가는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는 그림에서 에로틱하게 묘사된 경우가 많아요. 왜 그럴까요?
죽는 게 에로틱한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 히지카타가 좋은 질문을 했죠? 서양 미술사를 보면 이상하게 죽음의 순간과 에로를 연결한 경우가 많습니다. 시체의 아름다움, 죽는순간의 아름다움. 이걸 다 이야기하자면 길고, 아무튼 이런 그림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이 시도 이해하기 한결 쉬울 거예요. 뭐 당장 요새 뱀파이어가 유행하는 거 보면 이해가 좀 쉬울 겁니다. 이미 죽어서 생명이 없는 흡혈귀가 탐미적으로 묘사되는 매체가 많잖아요? 그 이치입니다.
1연을 보시면 처음부터 이상하죠. 사향, 박하는 향기나는 풀입니다. 사향은 음, 쉽게 생각해서 향수를 떠올리면 되는데. 아 맡아본 적 없다고? 여러분 여자친구한테라도 물어봐요. 뭐 여자친구가 없어? 미안합니다. 염장지를 의도는 없었어요. 어허, 화내지 말고. 사향은 전통적으로 유혹을 위한 향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요. 머스크향이라고 하면 짐작갈 사람이 좀 있으려나? 궁금하면 엄마나 누나 향수 중에서 향 독한 거 골라서 냄새 맡아 보면 될 겁니다. 괜히 엎질러서 야단 맞지 말고. 그거 보기보다 비싸요. 아무튼 향기나는 건 좋은데 그 다음부터 수상쩍은 말들의 연속이죠? 뒤안길이랍니다. 으슥한 길이래요. 음지랍니다. 뱀은 왜 양지에 나올 수 없을까요? 힌트는 아까 다 줬습니다. 네, 정답입니다. 저주받은 생물이라서 그런 거죠. 뒤안길과 비슷한, 뱀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시어를 찾아서 네모표시를 해 봅시다. 몇 개냐고? 그거 가르쳐 주면 대충 그 숫자 만큼만 치고 잘 거잖아 사카타. 뭐 안 자? 그러고보니 너 오늘 이상하게 눈이 초롱초롱하다. 역시 야한 시로 수업하면 수업을 잘 듣죠. 이런 본능에 충실한 놈들 같으니라고.…… 다 찾았습니까? 어디 봅시다. 짝과 책을 바꾼 다음 자기 것과 차이가 많이 나는지 살펴 보세요. 뭐, 아예 달라? 야마자키 너 도대체 어디에다 표시를 한 거냐. 여러분이 찾은 대로, 뒤안길, 큰 슬픔, 징그러운 몸, 1연에선 그 정도이지요. 인류에게 선악과를 먹게 하고 저주를 받은 악마의 이미지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가면 3연에서 붉은 아가리라느니, 물어뜯는다느니, 4연에서 저놈의 대가리라느니, 5연에선 돌팔매로 적대감을 표시하고 있어요. 그런데 시 전체가 뱀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보이는 사람? 그런 건 아닌 거 같죠?
2연으로 가 보세요. 이상한 소리가 있죠? 꽃대님 같답니다. 저주받았는데 왜 예쁠까요? 그게 문젭니다. 다시 자기 책 가지고 가서, 이번엔 뱀을 예쁘고 곱고, 유혹적인 것으로 묘사한 부분을 찾아서 동그라미를 쳐 봅시다. 어허 사카타 너 왜 자꾸 다카스기 옆구리를 찔러, 수업듣는 애 방해하지 말고 네 책을 봐라. 뭐 다 했다고? 오, 잘 찾았네? 얌마 그렇다고 딴짓한 게 용서될 줄 아냐.(귀를 잡아당긴다)너도 한 번만 더 걸리면 물구나무 서서 수업 받게 될 줄 알아.
예, 잘 찾았어요. 어떤 말이 있죠? 네, 꽃대님 같다, 바늘에 꼬여 두르고 싶다. 피 먹은 양 붉다……. 부정적인 시어가 뒤로 갈수록 적어지고 점점 뱀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시어가 많아져요. 심지어는 마지막에는 누군가에게 스미라고까지 말하고 있죠? 스며들어서 동화되라니 그게 무슨 뜻일까요. 그 말 자체가 뱀을 아름답게 본 건 아니니까 긍정적인 시어라고 말한 사람의 의견은 다시 생각해 보고, 아무튼 뱀에 대해 이미지가 바뀌는 결정적인 행을 하나 찾아봅시다. 예, 사카타 말이 맞아요. 돌팔매를 던지면서 따라가는 4행. 뱀을 따라가고 있는데 이유가 이상하죠? 뱀을 죽이려 드는 이유는 저 뱀이 혐오의 대상이어서가 아닙니다. 3연까지 내 앞에서 꺼지라고 뱀을 저주하던 시의 화자는 뱀을 쫓으며 이상한 현상을 보입니다. 숨이 왜 가쁠까요.
……너네들 좀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왜 다 얼굴을 붉히면서 답을 회피합니까. 왜, 숨가쁘다면 이상한 상상밖에 안 들죠? 야동 좀 끊어요. 요즘은 중학교 때 야동 다 떼고 끊고 고등학교 올라온다더니 너넨 왜 그럽니까. 그런데 그게 맞아요.
환호하지 말고, 특히 사카타! 뱀을 쫓던 화자는 이상한 흥분에 사로잡힙니다. 야 거기 곤도! 흥분 같은 거 필기하지 마!! 저 필기 안 하던 놈이 신난 거 보니 참 어이가 없어서. 아무튼, 아까 그 그림 같은 원리예요. 가장 무서운 죽음이, 사실은 가장 에로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 원리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은 나중에 교무실에 오면 책 추천해 줄테니까. 프로이트나 바타이유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사카타 너 표정이 정말 이상하다? 뭐, 이런 거 전문이라고? 잘 됐네. 이따가 학습활동할 때 발표 좀 시켜보자. 아무튼 그 다음행을 봅시다.
바늘에 꿰어 두르고 싶다는 폭력적인 표현이 나오죠. 폭력이 아니라고? 여러분을 산 채로 침으로 꿰어서 어디 걸어놓으면 무섭지 않겠어요? 상상력을 발휘합시다. 이제 화자의 눈에 뱀은 굉장히 아름다운 것으로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폭력적인 소유욕이 발현되는 거죠. 꽃을 보면 꺾고 싶은 것부터, 이런 폭력적인 소유욕은 끝도 없습니다. 더 들어가면 이야기가 음험해지니까 다음 연. 그런데 사카타 너 왜 웃냐?
클레오파트라의 피를 먹은 듯한, 붉고 고운 색의 뱀이 스미기를 기원합니다. 누구한테요? 그 다음연에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가 전이된 아가씨가 하나 나오네요.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순네요. 웃깁니까. 왜들 그래요. 일제 시대엔 점순이가 섹시한 이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웃지 말고. 순네는 어떤 아가씨 같아요? 미인이겠죠. 어떻게 알아요? 네, 거기 써 있죠. 고양이 같은 고운 입술이라고. 위에서도 입술 이야기 나온 것 같은데. 그렇죠? 위의 연의 이미지가 순네에게 그대로 전이됩니다. 야성적이고, 에로틱한 아름다움이죠. 웃기는. 이런 특정 단어에 반응 그만 하고. 그럼 화자는 뱀을 누구랑 동일시하고 있을까요. 여자들일까요, 자기자신일까요. 자기 자신에게 동일시하게 되는 것과 그 반대인 것은 해석이 다르겠죠.
자 그럼 뒷장을 봅시다. 학습활동 1번. 이 시를 읽고 떠오른 것을 자유롭게 써 봅시다. 이 시를 읽고 받은 느낌, 떠오르는 사물, 떠오르는 이미지에 대해 써 봅시다. ……사카타, 일어나서 발표해 봅시다.
...
.....
...........
야, 이 시를 보고 다카스기를 떠올리는 건 뭐 하자는 거냐, 지금 장난 치냐? 뭐? 이 시 속의 뱀에 대한 묘사는 다카스기를 볼 때 내가 하는 생각과 정확히 일치……이 자식 어쩐지 수업 열심히 듣는다 했다. 너 끝나고 교무실로 좀 와라. 아니 당장 지금 책 들고 앞으로 나와. 그리고 누가 다카스기 찬 물 한 잔 갖다 줘라. 얼마나 열 받았으면 얼굴이 시뻘겋냐.
그럼 다른 사람의 발표를 들어보고, 학습활동 2번으로 넘어갑시다. 이 시를 쓴 서정주에 대해 알려면 30년대 문학사의 흐름을 좀 알아야해요. 거기 대해 살펴본 다음 학습활동을 마저 해 봅시다.
(중략)
그럼 다음 시간엔 조지훈의 ‘석문’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다음 주에 봅시다.
덤 : 사카타 긴토키(16) 군의 교과서 일부(교과서 및 필기 협찬은 테이큰 님이 해 주셨습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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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분 수업할 분량의 지도안을 약안으로 짜서 올리려다가 재미없어서 관두고 대신 이렇게 수업의 흐름을 짜 봤습니다. 거기 사범대 교대생들 웃지 말고; 아니 이대로 하면 안 되는 거 내가 제일 잘 알거든요.
현장감은 아마 좀 있을 겁니다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