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니하곤 리퀘 협의 봤습니다. 랑크 님 리퀘 내용 걸어 주십쇼. 제가 쓸 수 있는 걸로 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굽신굽신. 매지다카 말고 부탁드릴게요. 그건 진짜 못 쓸 거 같고요;;
2. 세츠나 온리를 맞이하여 간만에 아는 분들 뵙고 왔습니다. 힟님 원이 님 카드 재미있으시던가요.......사예 님 간만에 뵈어서 반가웠고 오늘 텐션 업 된 저는......아니 뭐 하는 수 없죠 그냥 다음부턴 조용히 살겠습니다 네;;; 리린 님 토끼 님 이번에도 책 잘 보겠습니다. 뒷풀이 즐거웠어요! 암튼 오늘도 잘 놀고, 키사라 님이랑 2차로 은혼 갖고 떠들다 돌아왔습니다. 이 분이랑 있으면 저도 덩달아 텐션 마구마구 업 되지, 게다가 어쩐지 브레이크가 안 걸리지 말입니다. 물드나? 아니 요새 느끼는 건데 저, 진짜 평생 이런 적이 없었을 만큼 하이텐션인 날이 좀 많아요 요 근래. 뭐지 이거;; 아니 대충 짐작은 가는데, 가끔은 무섭습니다 이거 부작용이 꽤 클지도.
3. 긴상이 그렇게 단 걸 밝히는 주제에, 요즘은 왜 당뇨 직전이란 설정이 쑥 들어갔는지 알았습니다.
일단 칼 맞고 앞뒤로 총 맞고 강물에까지 입수한 주제에(쿄지로편 참조) 그 며칠 후 멀쩡한 꼴로 나타난 거 보면 이 사람 분명히 지구인 아니거든요. 천인 혼혈일 겁니다. 사실 우미보즈가 전쟁 때 지구에 왔다 아랫도리 간수 못 하고 만들고 간 애라고 그래도 전 믿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아무튼 그래서 긴상의 간은 보통 사람의 간과 다릅니다. 그의 간에서는 붕붕드링크가 분비됩니다.(근엄) 그 붕붕드링크는 당분을 재료로 삼아 제조되기 때문에 긴상은 평소 그렇게 단 걸 밝혀대는 거죠. 그게 아직 애들 만나기 전엔 생활이 그래도 단조로운 편이라 붕붕 드링크를 쓸 일이 없어서 그게 다 혈당만 높여댔는데, 요즘은 이거 없으면 싸움이 안 되기 이전에 살 수가 없어요. 사람이 그렇게 녹초가 되게 두들겨 맞고도 바로바로 일어나는 게 다 이거 때문입니다. 당장 하루사메편, 홍앵편, 쿄지로편, 후요편, 동란편, 요시와라염상편 보십쇼. 이 인간이 얼마나 피떡이 되게 맞고 다니는지, 그 주제에 얼마나 펄펄한지. 간에서 붕붕드링크가 분비되기 때문이라니까요. 암튼 그래서 이 인간, 당뇨가 나았습니다. 당분 쓸 일이 많아요. 대신 간이 과로사 직전입니다. 숙취 해소도 해야 하고 붕붕드링크도 만들어야 하거든요. 가엾은 긴상의 간. 아니 긴상은 안 가여워요 간만 가엾고.
4. 9월 서플 부스명 정했습니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을리가> 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의 패러딥니다. 저거 최근에 제목 바꿨죠, <모던보이>라고. 폭탄 테러리스트 나오는 좋은 소설이죠 네. 많이 이용해 주시길.
5. 은혼의 장르 막말인정극으로 candy-coated한 치정극. 주연이 당의를 입힌 독약 같은 미친놈인데다, 그 당의가 딸기우유 색이라 사람들이 간과하는데 이놈 절대 제정신 아니거든요. 게다가 신스케도 달콤한 극약 같은 애고, 개그며 인정담으로 때워대고 있지만 이제 전 은혼을 그렇게만 볼 수가 없어요.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는 기치와 달리, 그들이 버티고 있는 지반은 허약하기 그지 없고, 그 밑에는 뻘밭과 수라장이 흐르는 게 은혼 같아 좀 마음이 안 좋네요. 나도 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 파 보자. .......내가 지금 이런 소리 한다고 모니터 너머에서 비웃고 있는 거기 님. 나도 그런 꿈 정돈 꿀 수 있잖아요, 나도 좀 치유계인 작품을 파 보고 싶을 때 있다고요 가끔은!
저에게 영감인지 독인지를 마구마구 부어주시는 키사라 님 손에 이끌려 본 모종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나온 글입니다. 개그를 하고 싶었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
"뭐냐 그건." "니트로글리세린." "에 또 그 옆에 건?" "블랙파우더라고 하네. 자세한 건 묻지 마. 귀찮으니까." ".......즈라야, 아니 카츠라야, 뭐가 불만이냐. 그렇게 사는 게 힘들었어? 즈라라고 불러서 힘들었냐? 사흘째 반찬이 마음에 안 들어서 힘들었어? 그런 거냐? 미안, 사실 너 잘 때 침낭에 돌 집어넣은 거 나야, 내가 잘못했어. 실은 그저께 네 발도 내가 걸었다, 내가 다 잘못했어요. 어-이, 신스케, 내가 즈라 지갑에서 돈 꺼내서 술 먹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 사실 그 술 2/3은 내가 마셨지만, 참 그거 맛있었어. 아 그리고 타츠마가 쳤다던 사고 사실 내가 쳤.......컥!" "한 마디만 더 하면 다음엔 이걸 입에 처박아주겠네." 폭탄의 몸체로 쓸 요량이었는지,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야구공보다 좀 큰 플라스틱 덩어리를 집어 긴토키의 눈 앞에 들이미는 카츠라의 표정이 흉흉했다. 더 불었다간 폭탄에 불 붙여 입에 물려 줄 기세다. 저쪽에서 신스케도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는지 기분나쁜 표정으로 이 쪽을 주시하고 있다. 긴토키는 입을 다물었다. "그럼 요거 압수." 대신 폭탄 속재료가 될 것들을 싹 나꿔채서 들고 튀었다. "섞이면 큰일이네! 내놓게!" "내가 미쳤냐!" 즈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쫓아왔다. 잘 뛴다. 머리끄댕이를 잡히기 일보 직전이다. 급한 김에 식수통에 던져버렸다. 그랬더니, "내 소중한 화약에 뭐 하는 짓인가!" "사람이 마시는 물에 뭐 하는 짓이냐!" 즈라가 등을 걷어찼다. 게다가 물을 뜨려던 참인지 물통을 들고 있던 신스케가 옆구리를 찍었다. 덤으로 물통으로 머리도 내리찍은 것 같다. 바닥과 얼굴이 만나니 무지하게 아프다.
"그러니까 폭탄이 아니라고 했잖나." "미안한데 언제?" "폭탄이 아니라고 했잖나." "얘가 이젠 사람 말을 씹기까지 해?" 즈라의 말을 들어보면-이라기보단 즈라가 하는 말을 대충 종합해 보면-마침 여름이니 불꽃놀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게 풍류라나 뭐라나. 아무튼 신이 나서 막 만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긴토키가 튀어나와서 이상한 소리를 해 대더니만 화약을 물에 적셔버렸다는 거다. "불꽃?" 신스케가 눈쌀을 찌푸렸다. "그래, 신 네가 어릴 때 그랬잖나. 여름밤에는 불꽃이 풍류라고." ".......쓸 데 없는 것만 잘 기억하는 꼴 하곤." 카츠라가 진지한 얼굴로 눈을 빛내며 답하자 신스케가 쓴웃음을 지었다. 긴토키는 둘의 대화를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말을 하려니 꿇고 있는 무릎을 밟고 있는 신스케의 발에 힘이 들어가 매우 아팠다. 신스케의 이마에 '바보는 닥치고 무릎 꿇고 반성해'라고 적혀 있어서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쓸 데 없지 않다, 신. 전장에서도 꽃은 피는 법이야." "하지만 지금은 꽃을 볼 때가 아니지." 신스케의 냉소적인 표정이 긴토키의 눈에도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언제나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특히나 요즘은 더 많이들 죽어갔다. 죽어가고 지쳐가고 쓰러져가서 죽지 않으면, 버티지 못했다. 그렇게 둘 중 하나였다. 하나 둘씩 죽어갈때마다 신스케의 얼굴은 눈에 띄게 창백해졌고, 사카모토는 항상 밤마다 혼자서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카츠라조차 힘을 잃어가는 것이 눈에 띌 때가 있었다. 그리고 긴토키 자신은.......그러고보니 이렇게 시덥잖은 소리를 하며 떠든 게 얼마만이었더라. 긴토키는 가만히 속으로 손을 꼽아보다 그만 두었다. 너무 많이 세야 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고. 사실 가장 못 버티고 있는 것이 자기자신이었다. 자신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카츠라와 신스케는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더욱 꽃이 필요한 거라고 보네." ".......맘대로 해라." 신스케도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이리라. 마음대로 하라는 말만 하고 신스케는 등을 돌렸다. 저건 분명한 승낙의 표시이다. 신스케의 발이 떨어지자 마자 긴토키는 엇차, 하고 몸을 일으켰다. "아오오 다리야......그나저나 화약 없어서 이제 어떡하냐?" "괜찮네, 아직 이만큼 있어." 카츠라는 주머니에서 화약을 몇 무더기 꺼내 보였다. 저 옷의 어디서 저런 것들이 줄줄이사탕처럼 튀어 나오는지, 긴토키는 멍하니 카츠라의 주머니를 쳐다보았다. "즈라야 너 혹시 도라에몽이었냐." "나를 그 퍼런 괴생물체 취급하지 말게."
그리고 그날 밤,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 되었을 때 카츠라는 정말로 불꽃놀이 세트를 만들어 냈다. 찌그러진 양동이에 젖은 모래까지 담아와서는 자랑스럽게 내미는 불꽃들을 보고 신스케는 작지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사카모토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들었다. "어디서 이런 걸 다 배웠노? 잘 만들었네 진짜. 팔아도 되겠다." "음 뭐 어쩌다보니 익혔다네." 카츠라가 드물게 말을 흐렸다.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알고 있었다. 불꽃 제조 기술을 알면, 폭약도 만들 수 있다. 즈라가 폭탄으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도 다들 알고 있었다. 사카모토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그리고 대신, "자 그럼 불 붙이자. 신스케 니 성냥 갖고 있제, 꺼내라." 환하게 웃으며 불꽃놀이의 시작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 밤의 기억은 매우 강렬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많은 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몇몇 장면들은 너무도 선명해서 지금도 여름날 밤, 잠들지 못하고 눈을 뜨게 되어 하늘을 보면 그 날의 불꽃이 눈 앞에 보일 듯 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듯 하얗게 증발한 기억들이 어디로 갔는지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서 불꽃과 함께 태워버렸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즈라가 쏘아올리는 불꽃은 굉장히 밝고 눈부셔서 하늘이 하얗게 물들다 푸슬푸슬 무너져내리는 것은 착각마저 들었으니까. 그걸 아무 말도 없이 보던 사카모토가 미친 듯 웃으며 높은 데 올라가 불꽃을 쥐고 흔들어댔고, 처음엔 마른 고목에 불 옮겨 붙는다고 잔소리하던 카츠라가 나중엔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겠다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불꽃을 쏘아댔고, 신스케마저 양 손에 불꽃을 들고 황량한 들판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을 때, 어느새 자신의 손에도 퍼렇게 번쩍이는 불꽃이 들려 있었고, 그걸 들고 마구 뛰어다니는 자신이 매우 낯설었다.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 자신이 뭐라고 했는지도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하늘아 콱 타다가 무너져 버려라 아하하하 하며 웃어제끼던 사카모토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와 아무 말도 없이 정말로 뭐든 태워버릴 듯 불꽃을 날리던 카츠라의 가라앉은 표정과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춤추듯 불꽃을 여기 저기 흩뿌리고 있던 신스케의 얼굴은 생생했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알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카츠라가 하늘로 마지막 불꽃을 쏘아올렸다.
하늘에서 반짝이며 떨어지는 것들은, 그저 화약의 잔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아름답고 덧없어서 그냥 목놓아 울어버리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불꽃이 다 타 없어지고 나니 하늘빛이 엷어지고 먼 데서 동이 터 왔다.
혼자 전장을 떠돌 때도 친구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 미친 듯한 불꽃이었다.
"그 때 배운 기술이 이리 유용할 줄 몰랐네." 먼 데를 보며 아련한 눈빛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옛 친구를 보고 긴토키는 한숨을 쉬었다. "그 때 화약을 아주 못 쓰게 몽땅 물에 처박아야 했는데. 고작 하는 게 이 따위 폭탄테러질이냐, 요녀석아." "이 따위라니, 테러리즘에도 도리가 있다네." "테러에 도리가 있다고 쳐도 너한텐 없다 임마." "너무하지 않나." 결국 다시 만난 친구는 폭탄테러범이 되어 있었고, 못 만난 동안 놈의 삶이 어떠했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싶은 것을 누르느라 바빴던 탓에, 물어보지 못했다. 그 때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지는.
이 포스팅 에서 이어집니다. 은혼고 캐스팅하고 포샵질을 하며 공들여 뻘짓을 하고 나니 학교 전설을 안 적었지 뭡니까. 그리고 5월 17일에, 빼먹은 거 보충했습니다. 은혼고 캐스팅과 설정을 함께 하신 K 모 마스라오 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즐거웠어요.
교실 뒤에 당분이라고 적힌 액자 있을 거다. 내년에도 여기가 긴토키 선생 반일지는 잘 모르겠는데. 암튼 교실 뒷칠판 옆에 액자 걸 자리 하나 있을 거야. 그 액자 잘 보면 못 쳐서 건 거 아니다. 사탕 막대가 꽂혀 있을 거다. 누가 안 뽑았으면. 그 막대가 벽에 박힌 게 4월 3일 5교시였다. 날짜도 못 잊겠네.
수업 시간에 어떤 미친 새끼가 쳐졸아서 긴토키 선생이 애를 깨웠어. 근데 이게 선생한테 개겼다. 선생이 막 야단치니까 수업 재미없어서 졸았다고 첫사랑 이야기 해 달라고 하데? 선생이 당연히 헛소리말라 그러지. 그러니까 이새끼가 그럼 음악선생이랑은 뭔 사이냐고 물은거야. 사실 국어 선생이 눈은 풀렸지 맨날 헛소리나 하지 분위기는 나른하지 애들이 처음 사흘 되게 우습게 봤었나봐. 근데 그때 선생 표정보고 애들 다 쫄았다. 진짜 무슨 하얀 야차 같은 게 눈을 번들번들 빛내는데 살면서 그런 거 처음 봤음. 애들이 저 개새끼 때문에 우리 다 죽었다 하고 있는데 선생이 손에 들고 있던 사탕 막대를 걔 쪽으로 슥 던지더라고. 그렇게 힘껏 던진 것도 아니었거든. 설렁설렁 대충 던졌거든. 근데 진짜 휙 소리 나면서 날아가더니 벽에 꽂혔다. 그때 선생이 한 말이 제일 무서웠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시발 손 두 번만 미끄러졌으면 애 이마에 사탕막대 꽂힐 뻔 했다. 우리 그거 뽑으려고 사흘 동안 점심시간마다 당겼는데 안 빠졌다. 소문에 그거 빠지는 날이 이 학교 무너지는 날이라더라.
-1기 입학생 G.S
내 친구가 옥상에서 기술가정 생긴 건 존나 예쁜데 성질 까칠하다고 까고 있었는데 밑에서 슬리퍼가 날아와서 그놈이 그거 맞고 위액 토하고 쓰러졌다. 밑에 보니까 국어가 한 쪽 발에만 슬리퍼신고 옥상 올려보면서 히죽 웃고 있었다. 그 후로 학교에서 아무도 대놓고 기술가정 욕 안 한다. 어떻게 슬리퍼가 5층까지 그 속도로 날아오냐 국어는 중력 같은 거 모르나?
-1기 입학생 N.K
음악은 아무도 이야기 안 하네. 하긴 적었다간 저주받을 거 같다. 처음 음악 시간에 리코더 갖고 오라고 해서 갖고 갔잖아. 그때 전부 리코더 꺼내서 연습곡 부는데 갑자기 음악이 인상을 팍 쓰면서 일어나는 거야. 키 작고 조그맣다고 애들이 막 웃고 있는데 그러는 거야. 어느 놈이 음정 틀렸냐. 거기 세 번째 줄 둘째 자리 일어나라. 신기해서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그 놈이 일어났어. 음악이 리코더 불어보라고 해서 부는데 멀쩡하더라. 근데 음악이 계속 반음 소리가 잘못 난다는 거야. 애 손가락 보더니 운지법은 정상인데.......리코더 문젠가, 하고 손을 까딱 했는데, 진짜 농담 아니고 리코더가 딱 두 동강 났음. 세로로. 음악 선생은 10미터 떨어져 있었는데! 음악이 조용히 그러더라. 새 거 사라. 우리 그날 음악실에서 다 죽어서 나오는 줄 알았다. 그리고 그놈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면서 프로연주자용 리코더 샀다.
-1기 입학생 S.K
음악 음악 하지 마라. 3반 놈들 매너 없네. 우리 선생님 다카스기 신스케란 이름 있거든? └우리 담임 보고 국어라고 하지나 마라. 이 매너 없는 놈아. └야 지들끼리도 치고 받고 싸우잖아. 아 그 이야기 들은 적 있다. 작년 1기 선배들이 입학하고 나흘 뒤에 음악실에서 싸우는 국어랑 음악 봤는데 진짜 무서웠다더라. 처음엔 조용히 이야기하더니 갑자기 음악이 피아노 의자를 들어서 한 손으로 휘두르더래. 그걸 국어가 교무수첩으로 방어하더니 분필케이스로 공격하더라는데 음악실 부서질까봐 무서워서 교무실로 가서 고문한테 일렀대. 근데 고문이 이랬다면서. 오호 오늘은 다카스기가 어쩐 일로 기분이 좋은가 보구먼. 그만하길 다행이지 않나. 가서 수업들 하게나.
난 고문도 솔직히 무섭더라. 사람 점잖아 보이는데 국어랑 음악이 미친 짓 하면 그거 뜯어말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잖아. └야 고문 정줄놓고 미치면 더 무섭다. 음악 시간 기억 안 나나. └난다. 노래 부르는데 음악이 피아노 반주 하다 말고 피아노 위에 피 토했잖아. └난 아직도 그 노래 들으면 음악이 피를 울컥울컥 토하는 거 생각난다. └피아노가 피로 물들어서 그날 음악실 청소당번 울었잖아. 걸레 세 개 썼는데 다 못 지웠다면서.
ㅋㅋㅋㅋㅋ그때 고문이 문 벌컥 열고 들어와서 소리 질렀잖아. 신스케에에에에에!! 이건 볼펜 색 바꿔서 크게 적어야 된다. 귀 떨어지는 줄 알았네. 그러더니 음악 안고 어디로 휭하니 가더라. 근데 그때 1반에서 멀쩡하게 고문수업 하던 중이었다며 └멀쩡하게 좋아하네. 와카랑 겐지모노가타리 유약하다고 교과서에서 빼고 쥬신구라만 수업하겠다고 하는 걸 겐지모노가타리에도 사나이의 도가 있다고 국어가 헛소리 해서 겨우 그거 수업 했잖아. 음악이 와카 안 한다니까 화 내서 또 와카 하고. 내 살다살다 국어랑 음악이 고맙긴 또 처음이더라. └고문 사실 말도 멀쩡하게 안 함. 이상하다. └그 다음부터 음악이 피 토하면 고문이 주워가잖아. 고문이 음악 밥도 먹인다며. 김밥 싸온 거 봤냐. 김밥도 종류별로 누드김밥 참치김밥 치즈김밥 하여간 전부 딱 두 쪽씩만 싸 왔더라. 근데 음악은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고문이 입에 넣어 주고 물 따라먹여 가면서 먹이더라. 보다 토하는 줄 알았다. └두 쪽? 그거 무슨 말인데. └김밥 한 줄씩 말아야 되잖아. 그걸 두 쪽씩만 가져왔다고. 기술가정 시간에 쳐잤냐 병신아. └자기는. 나 기술가정 졸라 열심히 하거든. 그럼 남은 김밥 다 어떡했는데. └국어가 울면서 다 먹었다더라. 아 교감도 그거 먹었다는데. 고문이 교감한텐 예쁘게 싸서 갖다주고 국어한텐 먹고 떨어지라고 던져줬다더라.
야 음악이 선배들 중에서도 몇 명이랑 자고 우리 학년에서도 몇 명 먹었다는 거 진짜냐. └몰랐냐 2반에 걔 음악한테 쪽쪽 빨아먹히고 학교 못 나왔잖아. └근데 음악이랑 자면 화학이랑 역사한테 암살당한다면서. └학교 안 나오는 애들 중에 그렇게 없어진 애 있다며 └화학이랑 역사 손에 안 죽으면 고문이 상담실로 불러내서 두개골이랑 뇌가 분리될때까지 탈탈탈 흔들면서 운다더라. 어떻게 학생이 그럴 수 있냐고. └대박. 뇌랑 두개골 분리........쩐다. └시발 거기서 고문 손에 안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 국어 손에 죽는다. 용케 음악한테 빨아먹히는 거 피하고 화학 역사 피하고 고문 피해 도망가도 국어는 못 피한다. 진짜 죽는다. └이거 보는 후배들 있으면 음악이 어떻게 꼬셔도 도망가라. 죽는다. └너 같으면 도망가겠냐 이 미친 놈아. 창백하고 하얗고 예쁜데. └다 나와라. 음악 아니고 신스케님이라고 몇 번 말해야 알아먹냐. └빨아먹혀도 좋으니까 한 번 해 보고 싶다. └미친 놈. 음악이 조그맣고 여리여리하고 창백하니까 여자 같은 줄 아나본데 우리 음악 진짜 무서움. 선배 하나 음악한테 골수까지 빨아먹히고 빈혈로 쓰러졌다더라.
국어가 음악이랑 사귀다가 깨지고 기술가정이랑 사귄다며. └너 국어 손에 죽고 싶냐. └ 2기 선배가 진짜라고 했다. └음악이랑 깨진 거 맞나. 둘이 아직도 잔다던데. └난 국어가 음악 왼쪽 눈 그렇게 만들고 둘이 대판 싸웠다고 들었는데. └야 그거 1기 선배 하나가 지어낸 이야기라던데. └근데 신빙성 있지 않나. 둘이 진짜 죽어라고 싸우잖아. └ 기술가정이랑 국어 사귄다 그러면 기술가정은 화내는데 국어는 무표정한 얼굴로 진도만 나간다며. └국어 건드리지 마라. 국어 돌면 약도 없다.
누구 수학 공책 좀. 수업은 들었는데 아무 것도 기억 안 난다. 선생이 말은 했었냐. └수학? 오늘 수업 안 했잖아? └새끼야 선생 들어 왔거든. └아 맞다 막 아하하하 웃는 사람 왔었다. 근데 수업........안 한 줄 알았는데.
기술가정 사람 좋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아 물론 처음에 보면 별로 사람 좋아보이지는 않는데, 아마 입학하고 한 며칠 지나면 알겠지만 생긴 거랑 말하는 거 치고는 사람이 마음도 약하고 좋은 구석이 많아. 팬도 많다. 기술가정 반 애들 치고 자기 담임한테 목숨 안 거는 놈이 없고.
다만, 네가 기술가정을 어떻게 생각하건 수행평가는 평범한 걸로 해야 한다는 건 미리 일러두마. 안 그러면 넌 국어 손에 죽는다.
기술가정 수행평가가 한 학기에 두 개야. 1학기는 가사실습이랑 과제물 제출, 2학기도 실습 하나랑 과제물 제출 하나. 우리 땐 기술가정이 다들 못 하는 어려운 걸 해야 수행평가 점수에 변별력이 있다나 뭐라나 막 설명을 하더니만 수행평가 과제가 자수라더라고. 수 놓는 거 그거. 십자수 말고 새꺄. 십자수면 쉽지. 십자모양만 놓으면 되고 천에 구멍도 뚫려있잖아. 교과서에 나오는 자수법을 다 동원해서 간단한 작품 만드는 게 과제였다. 차라리 가사실습을 다시 하고 싶었다. 마요네즈 덮밥을 먹음직스러운 모양으로, 게다가 맛있게 만들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어? 심사 기술가정이랑 무용이랑 중국어가 했거든. 사람이 먹을 만한 거 만드느라 죽는 줄 알았네. 생각하니까 울고 싶다. 아무튼 이름도 토할 거 같은 자련수니 그물수니 평수니 바림수니 하는 지랄 같은 거 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단추도 내 손으로 못 다는데. 애들 전부다 손바닥 만한 걸 조물조물 만들어 왔어 어떻게든.
근데 어떤 미친 놈이 등신대 크기로 미인도를 자수로 놓아 온 거야. 배경에 대나무까지 있었고, 그라데이션도 들어가 있었다. 물론 작품 속 미인 얼굴이 기술가정이라는 건 말 안 해도 알겠지. 그거 일주일 동안 밤 새워서 했다더라. 검사해야 해서 표구는 못 했는데 돌려받으면 바로 액자 만들 거라더라고.
기술가정이 그 새끼 수행 만점은 줬는데 사흘간 수업 시간에 우리랑 눈도 안 마주치려고 들었다. 그리고 그 새끼, 국어 시간에 미친 듯 들볶였다. 나중엔 국어시간만 되면 울려고 하더라. 자업자득이지만.
근데 이놈보다 더 미친 새끼가 있었어. 그 꼴을 보고도 정신을 못 차린 거야. 2학기 기술 수행은 AM 라디오 조립이었어. 해보면 알겠지만 회로 어지간한 거 할 줄 알면 AM 라디오 조립은 설명서대로 땜질만 하면 되는 거라서 쉽거든. 기술가정이 1학기에 그짓을 당해보니 2학기엔 좀 온건하게 넘어가고 싶었던 모양이야. 근데 그 미친 새끼가 오디오세트를 만들어 온 거야. CD도 돌아가고 액정화면도 붙어 있었다. 미인도보다 덜 무서워 보이지? 그 새끼가 CD도 제작했다. 기술가정에 대한 절절한 연심을 곡으로 표현했어. 수행 검사 한다고 켰는데 돼지 멱 따는 소리로 고래고래 외치는 사랑고백이 들렸다더라. 교무실 옆반에서 수업하던 국어가 놀라서 뛰어나왔다는 소문도 있어.
기술가정은 그 새끼를 불러서 심각하게 너는 미성년자고 남자라고 타일렀다더라. 그리고 그 새끼 국어랑 보건한테 시달리다 전학 갔다. 자세한 건 묻지 마라. 우리도 알고 싶지 않다.
우리 학교의 백미는 체육대회다. 보면 알겠지만 체육 대회는 이틀 동안 해. 첫날은 평범하게 보통 체육대회랑 똑같다. 뭐 학년별로 같은 반끼리 팀 짜서 경기하느라 꽤 볼만한 건 많다만. 사실 체육대회 별 거 없잖아. 덥고 힘들고. 백미는 둘째날 벌어지는 교사 체육대회다. 우리 학교 선생들이 다 괴물이잖아. 그 괴물들이 경합 벌이는 걸 상상해 봐라. 별 의욕 없을 거 같다고? 나도 사실 기대 안 했다. 국어가 눈 벌개가지고 돌진하는 거 보기 전까진. 이거 꽤 신빙성 있는 소문인데 이사장이 여기서 우승하는 사람에게 그 다음 해 담임학급 선택권을 준대요. 보너스랑 같이. 그래서 다들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미친 듯 달려드는 거래. 그 굇수들이 달려드는데 어떨 거 같냐.올림픽이 우습고 월드컵이 장난 같다. 우리는 담임들과 좋아하는 선생들을 위해 응원도구를 준비해서 가면 된다. 전통적으로(해봐야 우리가 3기지만) 정해진 복장이 있다. 음악 반 애들은 누나나 동생 유카타 갖고 와서 입고 샤미센 뜯으면서 이상한 노래를 불러제낀다. 조낸 음울하다. 윤리네 반은 .......직접 봐라. 글로 쓰려니 손이 썩겠다. 기술가정 반은 올해가 처음이라 별 거 없었는데 애들 레알 미친 듯 응원해서 응원상 받았다. 아 미친 놈들. 우리반 같은 경우는 하얀 합피 맞춰 입고 가발 대신 하얀 색 노끈으로 머리카락 만들어서 뒤집어 쓰고 응원했다. └백야차 백야차 백야차~ 그 날 진짜 좋았잖아. └좋았지. 음악 반이랑 시비 붙기 전까지. └그새끼들이 어디서 감히 우리 국어를 까고 앉았냐고. 당뇨 환자 꺼져라? 우리 담임이 왜 당뇬데. 그냥 단 거에 좀 환장했을 뿐이잖아. └우리도 음악 깠잖아. 다카스기 죽어라, 이거 현수막 만들어서 걸어놨었잖아. 아직 교실 뒤에 남아 있지 않냐? 누가 사물함에 보관해 놓는다고 했잖아. └살고 싶어서 불태웠다. └불쌍한 새끼......
야 그래서 결국 그 날 우리 반이 이긴 거냐 음악 반이 이긴 거냐. └몰라. └작년 재작년 국어 반이랑 음악 반이던 선배들까지 다 투입되니까 좀 할 만 하더라. 고3 선배들 좀 멋있었음. 3년간 패싸움 하니까 관록이 붙는 거 같더라. 봤냐? 경주용 바톤을 목검 대신 휘두르던 선배. └봤지. 그 남자, 마치 한 마리 하얀 야차와 같아...... └새꺄 징그럽다. └우리가 이긴 거 아니었냐? └이기고 지고 좋아한다. 담임이랑 음악이랑 붙어서 둘이 떼 놓느라 체육 대회 끝났잖아. 야 근데 둘 다 진검은 어디서 갖고 왔다냐. 무슨 선생들이 학교 체육대회에서 칼부림을 해. └물리 쿠나이 던지는 건 어떻고. 체육 들고 있던 나기카타 봤냐? 그 여자 사무라이 집안 자손이라더니 존나 흉흉하더라. 폼이 장난 아니던데. └교사들이 죄다 범법자다 시발. 도검소지법 위반 아냐? └전학가고 싶었다 그 땐ㅠㅠ └결국 윤리가 둘 다 꽁꽁 묶어서 끌고 갔잖아. └우리 학교에서 제일 센 건 여자들임. 그 국어를 제압하다니.
아 이거 읽을 후배들에게. 너네도 명색 백야차 사카타 긴토키 선생의 제자들이라면, 체육대회 때 다른 경기는 다 져도 좋다. 음악 반만은 조져놔라. 음악 반한테 졌단 소문 들리면 우리가 너희를 죽여버리겠다.
우리 학교 문화제 때 음악이랑 기술가정이 자작 하이쿠 시집 전시회 해서 인기투표 했음. 그거 심사 국어가 봤는데 기술가정 편들어줬다 그날 학교 무너지는 줄 알았음. 내년엔 절대 하지 말라고 교장한테 건의서 넣었다. 너네도 하지 말라 그래.
-이상 은혼고등학교, 사카타 긴토키 선생이 담임을 맡은 반 반장이 대대로 전해받는다는 학교전설 비망록에서 발췌.
에도 밤거리에 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문 따고 보니 다리가 네 개로다 두 개는 내 거였고 두 개는 지금 내 건데 일단 다 내거니까 먹고 보자
사카타 긴토키는 본래 양이지사로, 별호는 해결사이다. 에도 가부키쵸에서 그 오지랖이 남달라 사천왕 오토세가 방을 내 주고 잔소리하며 돌봐주었다. 에도 천지에 안 끼이는 일이 없고 안 챙기는 사람이 없었으나 본래 사람을 밀쳐내기를 좋아하여 가족 같이 지내는 이가 드물었는데, 진선조 부장과 그만 눈이 맞아버렸다. 물론 서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아는 사람은 다 알았다. 둘은 애정표현을 주먹다짐과 후욕패설로 주고받았는데, 진심으로 서로 욕하고 화내는 것이 남달랐다. 하루는 해결사가 진선조 부장 방문을 몰래 열고 들어갔는데 진선조 부장이 어느 남자와 통정하고 있었다. 피부가 희고 눈이 녹색으로 빛났으며 왼쪽눈에 붕대가 감겨있었다. 해결사가 자세히 보니 다카스기 신스케라, 함께 양이지사 활동을 하던 사이로 긴토키와는 뜻이 안 맞아 헤어진 사이였다. 사카타 긴토키와 단수(斷袖)의 사이였다. 그러므로 내 것이었던 것도 내 거고 지금 내 것인 것도 내 것이니 둘 다 내 것이라고 계산하며 환호작약하였다. 사카타 긴토키는 득의만연하여 방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가 놀라서 잠시 동작을 멈춘 둘에게 오늘부터 다리는 여섯 개가 될 예정이라고 선언하였으나 셋이 한 자리에 드는 것까지는 좋으나 너와는 싫다며 다카스기 신스케가 분노하였고 두 놈 다 꼴보기 싫고 특히 강간은 더 싫은데 둘이 덤비는 건 끔찍하다며 진선조 부장이 화를 내었다. 그래서 셋이 싸우다 보니 날이 새어 각자 집에 가서 씻고 잤다.
일박 이일 치열하게 이어지던 전투가 끝나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머리가 가렵다는 것이었다. 손으로 긁었더니 벌건 가루가 묻어나왔다. 피가 굳어서 가려웠구나. 긴토키는 아무 생각 없이 바지에 손을 문질렀으나 손에 묻은 가루는 떨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느 놈들 피길래 이렇게 말라서 엉겼을까. 자기 꼴이 어떨지야 안 봐도 뻔했다. 하얀 머리카락에 피가 군데군데 거멓게 엉겨붙어 얼룩덜룩하겠지. 게다가 옷에도 점점이 피얼룩이다. 신스케 녀석을 족쳐서 옷 색깔 좀 어떻게 바꿀 수 없을까. 긴토키는 입밖으로 소리내어 투덜거렸다. 흰 옷이 빨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 요녀석, 전쟁 중에 흰 옷은 무슨 흰 옷이야 내 옷 네가 빨아줄 것도 아니면서 쳇. 그러다 어릴 때 나비를 잡았더니 온 손에 나비의 날개 가루가 묻었던 것이 생각났다. 반짝거리는 가루가 조금이라도 많이 남아있도록 손을 위로 받쳐 들고 새침하니 잘 삐치던 신스케 녀석에게 달려가 양손으로 머리를 마구마구 헝클어뜨렸던 기억이 따라오자 긴토키는 피식 웃었다. 마침 저 쪽에서 귀병대라나 뭐라나, 녀석이 자기 목숨하고 비슷하게 아끼는 녀석들을 이끌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 반짝거리는 더벅머리를 하고는 화를 내길래 그 가루 평생 안 지워진다고 거짓말을 했더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울었었지, 아마? 그땐 내가 하는 거짓말을 다 믿었고, 나중에 그게 거짓말인 걸 알면 토라져서 난리를 쳤던 주제에 진지하기는 또 엄청나게 진지해서 도대체가 그놈이랑은 뭐 하나 맞는 게 없었지. 지금이라고 다를까마는. 생각하니 웃겨서 피식피식 웃고 있자니 어느새 그놈이 눈 앞에 다가와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폐허 한가운데, 피 묻은 옷과 머리에 칼 든 남자, 거기다 피식피식 웃는 모습이라니 기괴하기도 하겠지. “긴토키, 뭐 하나.” “오~ 신짱 잘 왔어.” “신짱 신짱 하지 말라고 했……야!” 긴토키는 신속무비한 동작으로 신스케의 머리를 휘적거렸다. 순식간에 전선에서 날뛰던 녀석 치곤 단정하게 붙어있던 머리카락이 사방 팔방으로 엉켰다. 뒤에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귀병대 녀석들과 눈이 마주치자 상냥하게 웃어주니 금방 눈을 내리깐다. 게다가 신스케는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싸늘하게 대꾸했다. “뭐 하는 짓이냐.” 이놈이고 저놈이고 유머를 몰라요. 긴토키는 탄식했다. “감동의 표현 겸 추억의 재현.” “미친놈.” “미친놈은 고유명사가 아니고 대명사예요 다카스기 군. 적어도 여기선 말이지. 그러니까 미친 놈 그러면 여기 있는 놈들이 전부 돌아본다? 그러니까 부를 땐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면 고맙겠어.” “네놈의 혀는 부상도 안 입냐. 한 며칠 푹 쉬는 꼴을 보고 싶다.” “응 그러게, 나도 한 번 보고 싶어.” “머리에 뭘 이렇게 묻혀놨어……남의 머리에 뭔 짓이냐.” 머리를 털며 정리하던 신스케가 손에 묻어나는 붉은 가루를 보고 투덜거렸다. “야, 그거 평생 안 지워진다.” “웃기네, 네놈 거짓말에 또 속을 거 같냐. 십 년 넘게 묵은 레퍼토리 지겹다 못해 썩겠다. 좀 바꿔라.” “어허, 형님 말씀을 안 믿네, 진짜야.” “형님 같은 소리 하고 있다. 됐고, 즈라가 부른다. 일단 다음 작전 회의하재.” “네이네이.” 그래서 정작 신스케에게 왜 내 복장을 하얗게 만들어서 이렇게 피가 튀도록 만들었느냐는 원망은 끝까지 해 보지 못했다. 아마 튄 피가 하얀 바탕에 묻어난 것이 무섭게 보인다는 점이 중요했겠지. 사실은 흰 옷도 아니었다. 피얼룩은 잘 지워지지 않았지만 튀긴 피 때문에 그나마 다른 부분은 하얗게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따라 머리에 묻은 핏자국은 금방 지워졌지만 머리를 긁다 손톱 밑에 엉긴 핏가루는 손을 씻어도 잘 빠지지 않았다. 농담이 진담 되겠네, 하고 잠깐 웃었다.
책더미 속에서 잠시 기분전환. 내 방학 시작하면 대출 한도까지 소설책만 빌려서 방에 틀어박혀 3일동안 나가지 않고 책을 읽어주지. 좀 재밌는 게 읽고 싶다고! 최근 읽은 것 중에 그나마 재미있는 소설은 돈키호테 뿐이었어! 그것도 과제하려고 읽었지. 그 전에 읽은 건 토마스 하디의 주드였다고! 인간이 어떻게 아무 나쁜 의도 없이 한 행동 때문에 저지경으로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소설만 골라 쓸 수 있냐 이 앵스트 서커야! 그리고 그 전에 읽은 건 역시 과제용, 오만과 편견이었지 아 다아시 경의 츤데레질은 치유계였어...... 이러고 삽니다. 방학하면 소설만 읽을 겁니다 흥핏쳇.
*년 *월 1일 ; 신스케가 밥을 통 못 먹는다. 오늘도 저녁을 반절 남겼다. 잠자리 바뀌고 물 낯선 곳에 오니 못 자는 모양이다. 건강 축날까 걱정이다. *월 2일 : 긴토키와 신스케가 싸우는 걸 중재했다. 그놈들 참. 애도 아닌데 뭘 그리 싸워대나 모르겠다. *월 3일 : 어제 새벽에 신스케가 잠이 안 오는지 자꾸 뒤척였다. 어렸을 때처럼 재워주고 싶었는데 명색 귀병대 총독. 내가 함부로 대해서야 위신이 안 설 테지. 오늘도 국과 반찬을 많이 남겼다. 영양을 골고루 섭취해야 할텐데. *년 4일 : 신스케가 발의한 작전이 너무 무모하여 신스케와 언쟁을 벌였다. 귀병대에서는 신스케랑 단독으로라도 작전을 실행한다고 해서 언쟁이 크게 번질 뻔 했다. 물론 말만 오고 간 게 아니긴 하나 남자의 싸움에서 주먹이나 발 정도야 사소한 일. 추가 : 신스케가 방금 찾아왔다. 대화는 내가 상을 뒤엎는 통에 그만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만큼 타일렀으면 알아들었겠지. *년 5일 : 귀병대 녀석들을 간신히 말려놓았다. 신스케는 몸이 약해서 무리하면 안 된다고 그토록 타일렀는데도, 정작 신스케 본인이 자기는 괜찮다고 우겨대니 이를 어찌할꼬. 네가 이래서야 고향에 계신 너희 부모님을 내가 무슨 낯으로 뵙겠냐고 했더니 이미 의절하고 나온 마당에 그게 다 뭐냐며 화를 냈다. 내가 괜한 말을 했다. *월 5일 : 결국 제일 무모한 짓은 긴토키가 다 했다. 내 이놈을 그냥......그러나 긴토키가 싸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다들 그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공포란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사카모토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상식인은 나 하나 뿐인가. 신스케가 어제부터 내게 한 마디도 안 붙였다는 것을 지금 알았다. 어쩌나. *월 6일 : 저녁 때 신스케가 밥상을 앞에 놓고 인상을 쓰고 있길래 안 먹는 우엉이랑 파를 가져오고 대신 내 몫의 양배추를 줬다. 밥 한 끼 챙겨먹이기 왜 이리 어려운지. *월 7일 : 신스케고 긴토키고 이상한 데서 죽이 잘 맞아서, 신스케 녀석이 긴토키가 날뛰는 걸 부추기는 것도 같다. *월 8일 : 신스케가 부추긴 거 맞더라. 내 눈으로 확인하니 정말 열 받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전략이라고? 저리 무모해서야 누구 하나 다치고 말지. 화를 냈더니 신스케가 그랬다. 저 녀석은 내가 책임지고 간수하겠다고. 그 조그맣고 예민하던 꼬마가 이렇게 크다니, 공연히 자랑스러웠다. 세상 부모들의 마음이 다 이런가.
나이 지긋한 사무라이들은 들고 있던 수첩-빽빽하지만 단정한, 무슨 필기교본 같은 글씨로 가득한-에서 고개를 들어 눈 앞의 젊은 사무라이를 쳐다보았다. "카츠라 선생, 이게 다 뭐요?" "예로부터 장수들은 군영생활을 일지로 기록했다 들었소. 미숙한 몸이나마 옛 풍습을 본받아 행했을 뿐이오만." 사무라이들은 자기들끼리 고개를 맞대고 수군댔다. ".......병영일지가 다 얼어죽었구료." "육아일기 아니었습니까?" "거 모 반도국가에서 이따위로 군생활 하면 고문관 소리 듣는 거 시간 문제겠소." "이상한 예 들지 마시고!" 커흠. 헛기침을 한 사무라이 중 한 사람이 카츠라에게 어이없는 시선을 보냈다. "그래서, 이게 선생이 귀병대 소속 병사 6, 7인을 전치 6주에 상당하는 상처를 입도록 두들겨 패 놓은 이유란 말이오?" "아니 그걸 보더니만 나한테 항의를 하지 뭐요. 너무하다느니 이래도 되냐느니." "이의 있습니다!" 카츠라의 옆에 옹기종기 모여서 자기들끼리 음울한 오오라를 뿜어내던 눈두덩이 시퍼렇게 물들고 뺨이 퉁퉁 부은 병사 몇몇이 아우성을 치며 손을 들었다. "카츠라 씨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저희가 총독님 관찰일기 좀 썼다고 사무라이의 자세가 그게 뭐냐고 잔소리 하시던 게 누군가요!" "옳소! 그래놓고 자기는 정념이 소용돌이치다 못해 뻘밭으로 화한 일기나 쓰고!" "시끄럽네. 기록해 놓아야지 안 그러면 다음에 같은 사태가 일어났을 때 대처하기 어렵단 말이야. 자네들이 형의 마음을 아나?" "형 좋아하네! 우리 엄마도 저런 육아일기는 안 쓰셨습니다!" "뭣이! 지금 그게 사내한테 할 말인가! 아까의 결판을 내세!" "계급장 떼고 붙으면 안 집니다!" 전쟁터에서 아군끼리 단결해도 모자랄 판에 허구헌날 지들끼리 싸워대는 젊은 사무라이들을 좀 어떻게 챙겨보겠다고 나선 중년남자들은, 이제 모르겠다. 이놈들 지들끼리 싸우다 죽건 말건 나는 손을 뗄란다, 하고 누구 한 사람 소리내어 말 한 적도 없는데도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 간단하게 마무리. 마스라오 님 힘내셔라. 그리고 힘내라 나님. 얼른 마무리하고 다음 주엔 좀 놀자.
메신저에서 비아이와 키사라 님과 수다 떨다 나온 것. ........7층 지탑에 깔려죽기 직전이지만 모르겠습니다.
엘리자베트+루돌프 : 히지카타 토시로. 세상이 가라앉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세상을 놓지 못하고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죽음이 됐으니까 세상 따위 가라앉게 내버려 두라고 유혹하지만 죽음의 유혹에 잘 저항하고 있습니다, 사실 둔감해서 죽음이 유혹해도 저게 나한테 왜 저러나 궁금해하지만. 그렇지만 사실 내심은 가라앉고 싶지 않아요. 정신병원에서 자기가 황후라고 주장하는 톳시를 만나는 장면을 보면 압니다.
죽음 : 다카스기 신스케. 세상이 가라앉게 내버려두라고 소리 높여 외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세상이 가라앉으라고 뒷공작을 하는 거 같기도 합니다. 히지카타를 노리고 있습니다. 세상이랑 같이 가라앉지 말고 나랑 같이 그냥 無로 돌아가자고 하고 싶은 모양인데 저 놈의 세상이 뭔지. 하지만 사실 가장 무로 돌아가고 싶은 건 히지카타일지도 모릅니다. 죽음은 그의 거울이거든요. 아 모델은 올렉 빈닉 죽음입니다. 제일 걸리면 골치 아플 타입에 학살자 타입 죽음인.
루케니 : 사카타 긴토키. 세상이 끝장나는 걸 알고 있으므로 그거랑 같이 가라앉으려 드는 히지카타 토시로를 건져내려고 죽음과 공모해서 히지카타를 찌릅니다. 저승에서 계속 살해 동기를 추궁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로 돌려보내고 싶었던 것도, 가라앉게 내버려두고 싶었던 것도 아니에요. 정말로 구하고 싶었던 것 뿐. 그리고 히지카타가 자신을 도와주기를 바란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재판관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원해서 찔렀다, 고.
프란츠 요제프 : 곤도 이사오. 이 고릴라 때문에 가라앉는 세상을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라앉아요.
마담 볼프 : 즈라. 동네 최고의 포주고 곤도 이사오가 이 가게에 갔다 그만(묵념) 사실 포주를 가장한 테러리스트였거든요. 세상을 가라앉히는 줄도 모르고 가라앉혀버린. "마담 즈라의 살롱에선 아무도 아니오, 라고 말하지 않아요!"가 포인트. 저건 개그입니다. 개그를 하고 싶었어요 정말입니다.
신스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신-스-케. 두 번 잇새를 나비처럼 떨며 지나가 내 입 안을 울리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신. 스. 케. 그는 양이지사, 밤에는 헐거운 기모노를 입고 광소하고 있는 오 척 육 촌의 귀병대 총독. 그는 샤미센을 들면 다카스기였다. 그들에게는 총독님. 지명수배 전단에서는 다카스기 신스케. 그러나 내 안에서는 언제나 신스케였다. 그 전에 다른 남자가 있었던가? 없었지. 그래 없었어. 사실은 어느 여름날 내가 어느 선이 가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내게 그 빛은 없었을 것이다. 뒷골목 어느 담벼락의 밑에서. 아, 언제? 그 빛에 홀린 나방들이 모이기 전, 그해 여름 내 나이 때. 여러분, 멋진 산문체를 얻으려면 언제나 살인자에게 오시오. 존경하는 백야차 선생, 이 머리카락, 이 증거품은 당신들, 뭔가 잘못 알고 있는, 나의 그 사람에게 이제 걸리적 거리고 방해물인 당신네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이 번민에 뒤엉킨 칼을 좀 보십시오.
------------------------------------------ 제가 피를 뿜으며 "러시아사람이라며, 영어 모국어 아니라며, 그게 불만이었다며! 근데 이 문장, 문장 뽑아 놓은 것 좀 보라지, 이러고도 당신이 사람이야!!!"라고 절규했던 그 롤리타입니다. .......나보코프 옹한텐 안 미안합니다 문장한텐 죽을 죄를 졌습니다. 사실 신스케는 4음절이지만 몰라요 그런 거;;
키사라 님의 감상문 보고 삘 받아서 썼습니다. 과제 산더미로 복귀하러 갑니다ㅠㅠ 실은 7층지탑이 꼴보기 싫어서;;
점점 시야가 밝아진다. 눈을 깜박거리니 조금 보기가 낫다. 짙은 녹색 그늘 사이로 듬성듬성한 하늘이 보였다. 흐릿한 하늘이 눈 앞에 있다니 지구가 돌았나. 아니, 내가 누워 있는 거지. 그런데 이마가 왜 축축하고 머리 밑은 왜 푹신하고 왜 목이 마를까. 그 전에 왜 누워있지. 눈 앞에 까만 안개가 낀 것 같았다. 분명히 하룻밤 새워 서류업무를 마치고 8월 염천에 양이지사 놈들 때문에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과 태양빛을 한 몸에 받고 뛰어다니고 또 하룻밤 새워 애들이 친 사고 뒷수습을 좀 하고 나서 이 더위에 바깥에서 구르다 퇴근하는 길에 담배 사러 가던 길이었던 것까진 알겠는데. 히지카타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의식하며 멍하니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이마에서 축축한 기운이 가시더니 동시에 하얀 머리카락과 빨간 눈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오, 이제야 깼냐 요녀석아. 덕분에 긴상은 다리에 쥐가 나기 직전입니다, 아니 이미 났지만. 아오오오 다리 아파!” 그제야 자신이 뭘 베고 있었는지 깨닫고 벌떡 일어났지만, 일어나자마자 세상이 잠시 어두워졌다. 시야가 가운데서부터 점점 밝아지며 누군가 뒷목을 잡아 땅으로 끌어당긴다는 느낌이 든 순간 비틀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등 뒤에서 투덜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빈혈이냐? 제 때 좀 먹지 밥 안 먹고 잠 안 자고 밤에 뭐 하길래 빈혈? 야동 봐? 긴상도 좀 보여주고 그래라. 치사하게 혼자 보냐.” “……쥐났다던 놈이 빠르기는.” 쓰러지려는 자신을 뒤에서 붙잡고 있었으므로, 해결사의 목소리는 굉장히 가까이서 들렸다. 말이랑 행동이 다른 게 하루 이틀 일이랴만. 한 대 맞은 듯 멍해진 머리를 붙들고 겨우 목소리를 내어 대답했더니 바로 반격이 들어왔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쯧. 그나저나 뭐 했길래 이렇게 노곤노곤하게 풀렸냐. 아주 풀리다 못해 갔구나 갔어? 한 이틀 밤 새고 하루 땡볕에서 뛰어 다닌 거 같잖아.” 정곡. 히지카타의 반응을 바로 캐치한 긴토키가 짜증섞인 말투로 투덜댔다. “어이쿠 안 봐도 비디올세 이거. 이 애 진짜 안 되겠어. 긴상 바쁘다고. 바쁜 긴상이 이 쪄죽게 더운 여름에 혼자 걷기도 힘든데 시커멓고 큼직한 사내놈까지 끼고 걸어야겠냐?” “그러게 왜 주워왔냐.” 툴툴대면서도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부축해서 벤치에 기대어 앉히고 물에 적신 손수건을 털어서 머리에 얹어주고 있었다. 서늘한 손수건에 서늘한 그늘이 더위에 지친 몸에 꽤 기분 좋게 느껴졌지만 죽어도 인정할까보냐, 히지카타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얼씨구? 얘 말 하는 것 좀 봐. 너 길에 쓰러졌었다? 캑 하고 엎어졌다? 긴상 아니었으면 나쁜 아저씨들이 주워 갔을 거라니까? 세상에 가까이 가 보니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애가 흐늘흐늘하니 길바닥에 들러붙어 있지 뭐겠어요. 그래서 여러분의 긴상이 냉큼 주워 왔지요. 자 그러니까 어서 칭찬해라, 금전으로.” 뻔뻔스럽게 내민 손이 어이가 없기 그지없었다. “야 이 새끼가, 이러려고 주워왔냐. 먹고 죽어도 넌 안 줘 임마. 퇴근하기도 바빠 죽겠구만 거.” “긴상이 너 뭐 이쁘다고 주워왔겠냐, 그렇게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은 나눠야 피부도 고와지고 눈매도 고와진댄다. 거기 인상 더러운 경찰 아저씨도 협조해라.” “됐다 그래......” 어쩐지 어지러워서 머리를 감싸쥐자 긴토키가 넉살좋게 쏟아내던 말을 멈췄다. 그리고 이마에 얹혀진 손수건이 떨어지고 옆자리에서 사람이 일어나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수돗물이 별로 안 차서 손수건도 안 차갑다니까, 쳇.” 손수건을 들고 수돗가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폼이 꽤 그럴싸했다. 그러고보니 꽤 그늘이 짙게 진 자리다. 저놈이 안 하던 짓을 하니 이게 말세의 징조인가보다. 늘어져서 멍하니 위를 보고 있자니 “혹시 뜨뜻미지근해지면 말해라.” 이마에 서늘하고 축축한 게 얹혔다. 생각해보니 여기는 자신이 가던 길에서 좀 떨어진 공원이다. 그러니까 이 녀석이 날 시원한 데로 데려와서 제 무릎에 눕히고 찬 걸로 이마를 식혀주고, 이걸 간호라고 부른다고 그러던데 설마 저 놈이 날 간호했다고. 무서워서 확인해보고 싶지 않다. 옆을 슬쩍 돌아보니 “이 쪄죽게 더운 날에 까만 제복 입고 걸어가는 놈이 흔하냔 말이지. 근데 그게 비틀비틀 거리잖아? 그러더니 갑자기 흐늘흐늘하더니 픽 쓰러지잖아? 어이가 없어요. 너네 고릴라한테 말해서 제복 좀 바꿔라.” “남이사 뭘 입건!” 취소, 분명히 재밌어서 들고 왔을 거다, 이 놈은. 날 보면서 피식피식 웃고 있어. 히지카타가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데, “긴짱 여기서 뭐 하냐.” 저 앞에서 불퉁한 목소리가 들려서 보니 해결사네 짱깨 꼬맹이였다. “어라 카구라야, 아까 나갔는데 그새 집에 가는 길이냐?” 긴토키의 인사를 들은 척 만 척 카구라가 긴토키 옆의 히지카타를 보고 바로 투덜대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저거 마요네즈 아니냐, 야 마요, 너네 애새끼는 성질이 왜 그 모양이냐? 그거한테 다음에 만나면 땅에 거꾸로 묻어버린다고 전하라해.” 오키타와 또 싸웠는지 어린 소녀는 앙칼진 목소리로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애가 애를 보고 애새끼라니까 꽤 웃긴지 긴토키가 피식피식 웃고 있다. “애들 싸움은 애들끼리 해결해.” “애 아니다해, 그런데 뭐 좋은 일 있냐?” “응?” “긴짱 눈이 웃고 있다.” “아니 이건 웃겨서 그런 거고.” 소녀가 갑자기 투덜대기 시작했다. “이건 사기다해, 내가 기분이 더러워 돌아가시겠는데 왜 긴짱 넌 기분 좋아 보이냐? 얼굴 풀어진 거 봐라 이거 정말 기분 더럽다해. 저녁에 밥을 두 배로 먹어버리겠다.” “야, 인간이 거기서 더 먹을 수 있다고? 요새 수입도 바닥인데 확 요걸 TV에 내보내버려? 카구라야 너 가서 출연료 좀 벌어오련?” “오 좋다좋다. 가면 방송국에서 밥 주나해?” 둘이 주거니받거니 하는 동안 히지카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긴토키의 머리에 손수건을 던졌다. 이마에 떨어지기 직전에 손수건을 잡아챈 긴토키가 인상을 썼다. “거기 부장씨는 넌 유치원에서 사람한테 물건 건네는 법도 안 배웠냐?” “유치원 안 다녔다 왜. 그나저나 내가 쓰러져 있으니까 좋아 죽겠지?” “오냐 그래 좋아 죽겠다. 거 근데 벌써 일어나도 괜찮냐?” “괜찮고 뭐고 시끄러워서 간다.” 그리고 저놈 좋아하는 꼴도 더 보고 있기 끔찍하여 먼저 일어나련다. 대체 뭐가 즐거운 거야. 히지카타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다리를 억지로 잡아끌었다. “긴짱, 마요가 어쩐지 좀 이상하다해.” “냅둬라~ 하여간 저 바보는 잘 해 줘도 문제야.” 등 뒤에서 들리는 대화는 대충 무시했다.
수면부족/과로/일사병 등등 요인이 겹쳐서 나가떨어진 부장을 툴툴대며 주워가는 긴상 써주십쇼 그리고 툴툴대며 챙겨주고 내심 속으로는 졸랭 흥겨워하고 있음 <-
저 조건에 맞는 물건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썼습니다. 자정 전에 올린다고 했으므로. 무사히 은혼 보고 오시길 기원합니다 마스라오 님.
K.K씨 : 사무라이 된 자가 유약하게 화조풍월을 읊다니 될 말인가. 관심없네. (그러나 잠시 후 목 떨어진 동백을 붙들고 츠바코 죽으면 안 되네! 친구와의 약속을 잊었나 어쩌고 하며 혼자 울고 있는 꼴이 발견됨)
T.S씨 : .......백목련. 피어 있을 땐 하얗고 깨끗한데 떨어지면 바로 썩거든.
----------------------------------------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요.
그리고 이건 덤
실은 K 님이랑 고교생 패러랠 하면서 부장이랑 신스케 쌍둥인데 둘이 취미로 하이쿠를 좋아한다는 망상을 하고 놀았어요. 근데 부장은 바쇼 팬이고 신스케는 부손 팬이라 둘이 늘 싸우는데, 싸우다 긴토키한테 물어요 둘 중 누가 낫냐고. 근데 긴토키가 불퉁하게 난 문학 안 좋아하는데 했다가 둘한테 처맞은 다음엔 그냥 입 다물고 듣습니다. 그 옆에서 유약하게 하이쿠라니 하고 비웃는 카츠라는, 주신구라 읽으면서 펑펑 울어요 곤도랑 같이.
전 부손이 목련꽃에 대해 쓴 하이쿠가 있대서 기겁하고 찾아봤는데,
牡丹散て打かさなりぬ二三片 -蕪村 모란꽃 지니 부딪히고 겹쳐진 꽃잎 두세 점 -부손
어떤 망할 책이 저걸 목련으로 번역해 놨더라고요. 야 원문 보니까 목단이잖아 저게 목련이냐!!! 전 부손이랑 싱크로한 줄 알고 경악했지 말입니다. 어제 목련에 대해 쓴 시 있더라고 이야기해놨는데!! 그치만, 암튼 저런 시인이에요. 뭔가 끈적거리는 하이쿠가 꽤 있더라고요 이 사람;;
넘어지면 밟아주고 절벽에 매달리면 매달린 손을 꼭 즈려밟아주며 비웃고 놈 저거 안 보고 살면 내 속이 다 후련하겠다고 으르렁크르렁대도 그게 다 서로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짓이죠. 정말 부장이 부러지기 직전일 때는 또 가서 건져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거고 말이죠. 근데 부장이 막 나가는 긴상을 구원하진 못한다는 게 포인트. 긴상이 돌아버리면 아무도 그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리라 확신합니다. 긴상 자식들은 가능성이 있지만서도. 저 사람은 한 번 지옥을 봤거든요. 지옥에 떨어진 사람을 누가 구해요? 자기가 기어올라올 힘 없으면 그냥 거기 먹히는 거죠. 암튼 부장은 그런 생지옥은 모릅니다. 경험치가 달라요. 그리고 두 놈 다 서로 마음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닌 잡놈들이라서 곤란한 거고. 죽어도 저놈한텐 우는 소리 하고 싶지 않고 내일 지구가 두쪽 난대도 저놈한테 자기 속내 비치고 싶진 않고. (그러나 긴상은 부장 속을 압니다 네.) 결국 긴상에게 부장은 과거의 자신, 과거의 친구, 구하지 못한 것, 아직 가능성이 있는 것인 셈이고 부장한테 긴상은, 무사도의 총체인 셈이죠. 그리고 자신에겐 없는 것. 그래서 서로 좋아는 하지만 그 점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썼던 글에서 마음에 걸리는 점이 뭐였는지도 알았으니 좀 뜯어고쳐야 될지도. 부장이 좀 더 흉폭하고 곰 같고 긴상이 좀 더 속이 깊다 못해 시커멓기까지한 어른이어야지 안 그러면 재미없죠. 둘다 자기 문제 해결할 능력이라곤 요만큼도 없고.
참고로 긴신 베이스의 긴히지일 경우에는 저 정도로 온건한 정의로 안 끝납니다. 나쁜 놈들!
Had we but World enough, and Time, This coyness Lady were no crime. We would sit down, and think which way To walk, and pass our long Loves Day. Thou by the Indian Ganges side. Should'st Rubies find: I by the Tide Of Humber would complain. I would Love you ten years before the Flood: And you should if you please refuse Till the Conversion of the Jews. My vegetable Love should grow Vaster then Empires, and more slow. An hundred years should go to praise Thine Eyes, and on thy Forehead Gaze. Two hundred to adore each Breast. But thirty thousand to the rest. An Age at least to every part, And the last Age should show your Heart. For Lady you deserve this State; Nor would I love at lower rate.
But at my back I always hear Times winged Chariot hurrying near: And yonder all before us lye Deserts of vast Eternity. Thy Beauty shall no more be found; Nor, in thy marble Vault, shall sound My echoing Song: then Worms shall try That long preserv'd Virginity: And your quaint Honour turn to durst; And into ashes all my Lust. The Grave's a fine and private place, But none I think do there embrace.
Now therefore, while the youthful hue Sits on thy skin like morning glew, And while thy willing Soul transpires At every pore with instant Fires, Now let us sport us while we may; And now, like am'rous birds of prey, Rather at once our Time devour, Than languish in his slow-chapped power. Let us roll all our Strength, and all Our sweetness, up into one Ball: And tear our Pleasures with rough strife, Thorough the Iron gates of Life. Thus, though we cannot make our Sun Stand still, yet we will make him run.
해석할 재주 없습니다. 영어 따위. 문학비평입문 주제에 예로 저런 거 싣지 마 임마, 훠이훠이. .......영시 재밌는데 같은 생각한 저를 매우 치시고.
전형적인 카르페 디엠이었어요. 저 문장만 놓고 볼 땐 이런 건 줄 몰랐다고요. 카르페 디엠은 원래 고3 입시반 교실에 붙어있는 지금 열심히 하란 소리가 아닌 것 정도야 다들 알고 계시죠. 어차피 우린 죽어 無로 돌아갈 것이지만 이 짧은 인생에서 좋은 건 다 누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니 죽어 시들기 전에 지금의 찰나를 즐겨보자는 좋은 소립니다. 바로크 시대의 아름다운 미학적 전통이었죠. 죽음에 경도된 문화에선 꼭 저런 찰나를 즐기는 문학이 등장하죠. 동시에 죽음 모티브를 띤 그림이며 연극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에도 시대 보세요. 소네자키 신쥬.
그게 문제가 아니고 인생은 짧고 우리에겐 우리 연애를 공들여 진행할 시간이 없으니 당신 처녀라고 뻣뻣하게 굴지 말고 나랑 한 번 자자 잘 할게(...)하는 저 시, 제가 왜 포스팅했을까요? 깔깔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