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에 일찍 온 시열과 동풍이 거실에서 뭔가 만들고 있었다. 아소도 재미있겠다고 끼어들었고 일이 없어 한가하게 있던 월영도 도울 게 있으면 하겠다고 나섰다.
주방을 뒤져 종이컵을 꺼내더니 컵 밑 부분에 십자 모양 작은 칼집을 내고, 컵 바깥에 색지를 붙이더니 '고시철회 협상무효'라는 메시지를 쓰고 있었다. 시열은 색마분지에 MB OUT이라는 메시지를 매직펜으로 쓰더니 다른 종이에다 심시티는 혼자 해라, 고 쓰고 있었다. 옆에서 아소가 구호 옆에다가 눈이 찢어진 쥐를 그리고 있었다. 월영은 카페에서 초를 찾아 들고 왔다.
"뭐 하니?"
방에서 비척비척 걸어나온 초로가 하품을 크게 하더니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 아저씨. 웬일로 낮잠을 다 주무세요?"
동풍이 초로를 보고 반색했다. 요 근래 얼굴을 보기 힘든 사람이 카페의 30대들이었다. 지난 봄부터 무슨 일만 있으면 고궁으로 불려나가더니, 이제 호출되는 일이 잦아졌다. 심현의 표정이 가라앉은지 1주일이 넘었고-사제였으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이렇게 약해서 되겠냐며 심현이 피식 웃었는데 그 웃는 표정이 엄청나게 심각했다고 아소가 주장했다.-초로의 담배도 조금씩 늘어갔다.
"피곤해서. 방금 들어왔거든."
"사제님 뭐 하세요?"
"주무셔. 많이 피곤한 모양이더라. 근데 보자.......이게 다 뭐냐?"
초로는 거실바닥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종이며 펜이며를 바라보았다.
"학교 숙제야?"
"아뇨. 저희 할 일이 좀 생겨서요."
시열이 대답했다.
"MB가 누구지......아."
초로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알겠다는 듯 손바닥을 쳤다.
"그러니까 이거 뭐냐. 반정부 집회?"
눈을 가늘게 뜨고 아이들을 훑어보는 초로의 표정이 어땠는지, 아이들이 피식 웃기 시작했다.
"에이 아저씨도, 직접 민주주의라니까요."
이것은 시열의 한 마디이고,
"야, 직접민주주의가 뭔지 설명부터 해 드려야지."
이것은 동풍의 한 마디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서요."
이것은 월영의 한 마디이고,
"이럴 때 본때를 보여줘야한다고 낚시하는 아저씨들이 그랬어요."
이것은 아소의 한 마디였다. 이 녀석들, 절대로 내가 나가지 말라고 말하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구나. 아이들이 한꺼번에 재잘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없었는지 잠시 미간을 찌푸린 초로가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국민의 뜻을 받들라, 이거지?"
"네. 이 나라에는요, 국민들의 뜻을 반영하는 정치가가 나온 적이 별로 없었어요. 요 최근 60년간요. 그래서 가끔 나라꼴이 이상해지려고 하면 국민들이 나서는 거랬어요."
동풍이 초로를 위해 설명했다.
"그게 민주주의라고요."
아하, 초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짓 하면 안 된다."
"네."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촛불 들고 있는 비폭력집회인걸요. 위험할 거 아무 것도 없어요."
이렇게 말하고 시열이가 생긋 웃었다.

2. 뉴스를 보던 월광이 저 자식 죽여버리겠다고 난리를 치는 것을 휘안이 간신히 뜯어말려놓았으나 월광은 짜증나고 열 받아 못 살겠다면서 카페 구석에 고이 모셔놓은, 얼마 전에 차장님이 갖다놓은 술병 마개를 열고 안주 하나 없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 그렇게 마시는 거 아니라며 심현이 부엌에서 강냉이를 좀 들고 왔고 월광은 강냉이 안주 삼아 브랜디를 목에 털어넣고 있었다. 옆에서 휘안이 그 모습을 보며 오늘 밤에도 이 기집애가 날 괴롭히다 자겠구나, 하며 슬퍼하고 있었다. 뉴스를 보던 초로가 한숨을 쉬었다.
"휘안 군, 요샌 손님들도 별로 없지?"
"네."
"우리도 바쁘니까 어떻게 보면 참 다행이긴 한데 말이다."
월광이가 마시는 술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두 남자가 말을 이었다.
"우리 이렇게 일하다가 한 사람 쓰러지거나, 아예 정말로 싸고 질 좋은 능력자로 대체되는 거 아냐?"
"에이 설마요."
"가능성 없진 않은 거 두 분 다 알고 계시죠?"
월광이가 술병을 내려놓고 살짝 혀꼬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나라에 와서 산 지가 몇 년인데, 이렇게 앞이 안 보인 적도 처음이었다. 초로가 한숨을 크게 쉬었다.
"투표권 우리도 주면 안 되나?"
"투표권은 왜요?"
"우리 의견도 선거에 반영해야 될 거 아냐. 우리 대한민국 정부 소속 아냐?"
"원래 대한민국이 외국인에게 박하답니다."
외국인이랄지, 외계인이랄지, 이계 출신들이 쓴 웃음을 지었다. 이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느낀 점들을 떠올리니 참 막막했다. 초로가 반론했다.
"우리는 사실상 한국인 아닌가? 이만하면 한국인이잖아."
한국에서 한국 이름을 가지고, 이 나라에서 인생을 마치겠다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는데 왜 우리는 한국인이 아닌가. 월광이 아주 간단하게 답을 말해주었다.
"아저씨, 투표권 원하시면 돈을 많이 버셔서 대한민국 1%가 되세요."
"얘가 좀 취했나보네, 월광아, 진리는 술 깨고 말해야 하는 거다. 아냐?"
휘안이 쓰게 웃었다.
"안되겠다, 휘안아. 월광이 자기 방에 데려다주러 가자."
심현이 몸을 일으켰다. 둘이 월광을 부축해서 옮기는 것을 보며 초로는 월광이 마시던 술병에 손을 뻗었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는 옛말이 틀리진 않은데, 어째서 내가 살려고 마음먹은 이 곳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일단 한 잔 마시고 나서 생각을 좀 더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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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쓴 글 뒷이야기를 좀 잇고 싶었어요. 저번 글도 너무 못 써서 나중에 수정 들어갈 생각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쓰는 버릇 좀 고쳐야 되는데 말이에요.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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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을 조금 했습니다. 탕아월드의 질문 이벤트까지 한 큐에 해결 봤습니다.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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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에서 시커먼 남자가 굴러나왔다.
-아 씨, 꼬리뼈가 나갔나.
남자는 사납게 눈을 치켜뜨고 한 손으로 허리께를 쓰다듬으며 옷장에서 굴러 나와 바닥에 주저앉은 자세 그대로 천장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아저씨, 언니들, 휘안 오빠!
옷장문을 열어 젖힌 아소가 잡은 문고리를 놓고 뛰어갔다.

나의 의문에 답하라, 옷장.
탕아월드+오펜 크로스.

-어떻게 된 거니?
-몰라. 앞치마 꺼내려고 문 열었더니 저 사람이 튀어나왔어.
-특이한 경우네.
월영이 사태를 평하는 동안 초로가 옷장 안을 살펴 보았다. 하기야 흔적이 남아있을 리는 없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옷장이었다. 물론 이 옷장은 이계로 들어가거나 나갈 수 있는 특이한 옷장이긴 했다만 카페에서 그 정도는 특이한 일 축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일이 있어 나간 월광과 동풍, 심현을 뺀 모두가 모여 있었다. 카페로 남자를 안내하고 마실 것을 내어주자 남자는 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아소와 휘안, 초로, 월영, 시열이 옷장에서 나온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거북스러운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손님?
초로가 운을 떼었다.
-손님? 마실 것 값을 내라는 거요?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 남자에게 초로는 웃는 얼굴로 답했다.
-이 옷장에서 나온 사람은 모두 손님입니다. 성함이?
옷장에서 나온 시커먼 남자는 조금 안심한 듯 한 손으로 어깨를 잡고 목을 좌우로 움직이며 대답했다.
-오펜.
-예?
-오펜. 그렇게 부르쇼.
오펜이라는 남자는 비딱한 자세로 탁자에 기대어 빨대를 물고 주스를 마셨다. 평범한 외모에 검은 머리, 검은 눈, 중간보다 약간 작은 키에 눈이 위로 치켜올라갔다.
-그런데 저희 가게엔 무슨 일로?
초로의 질문에 오펜이 눈을 크게 떴다.
-그냥저냥 지나가다 어쩌다보니 들렀는데, 여기가 가게라고?
-에, 뭐 옷장에서 나오신 분들은 주로 저희에게 의뢰할 걸 하나씩 들고 오시거든요. 손님은 의뢰할 게…….
-없는데요.
-네?
-없다고요.
오펜은 심드렁한 어조로 대답했다.
-딱히 어려운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뭐 어려운 일이라고 해 봐야 내가 하는 거고. 그런데 여긴 어디요? 대륙 밖이긴 할 텐데.
-대륙, 이라고요?
-그래요. 키에살히마 대륙. 들어본 적도 없남?
모두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소가 말했다.
-여긴 어, 그러니까. 아시아 대륙에 속한 나라인데요.
-한 대륙에 나라가 여러 개라고?
오히려 놀란 것은 오펜이었다. 잠시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아예 창가로 가서 바깥을 살펴보는 것이다. 안도하는 것도 같고 놀라는 것도 같은 묘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오펜은 두 손을 깍지낀 채로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대륙 밖의 다른 세계라고……. 이까지나 왔단 말이야? 하며 중얼거리는 소리를 휘안이 들었다. 오펜이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을 꺼냈다.
-그럼 저 여기서 며칠 신세 좀 져야겠는뎁쇼.
-왜죠?
-찾을 게 좀 생겼다- 이거요. 의뢰하면 손님이라고 하셨으니 그래도 문제 없겠지?
다섯 명은 모두 얼굴을 마주보았다. 뭐 옷장에서 나온 손님은 어지간한 경우엔 박대하지 않는다. 게다가 의뢰까지 하겠다는데야. 이런 일이 흔치 않은 것도 아니니까.
-그러세요.
-고맙수다. 오래 머물지 않도록 하죠. 에 또, 의뢰할 것은…….
오펜은 조용히 의뢰사항을 이야기했다.

-다녀왔어요.
월광이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 뒤로 조용히 다녀왔습니다, 라고 인사하는 동풍과 심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월영이 뛰어나가 세 사람을 맞이했다.
-월광언니 왔어?
-가게가 왜 이리 조용해, 무슨 일 있어?
-응, 옷장 손님이 오셨는데, 조금 특이한 경우랄까.
-특이?
-돌아가는 법도 알고 자기가 누군지도 아는데 그 뭐랄까…….
-뭐랄까?
-의뢰 내역이 이상해. 이곳의 신이 어떤지 알고 싶대.
월광과 동풍은 묘한 표정을 지었고 동시에 심현을 쳐다보았다. 두 명의 시선이 동시에 심현을 향하자 심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월광이 물었다.
-사제님, 친구 데려 오셨어요?
-응? 나 친구 없는데?
심현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대답했고 월광은 혀를 찼다. 말을 말자.
-아니에요. 제가 잘못했어요. 월영아, 손님 어디 계셔?
-저기. 아 그리고, 또 의뢰가 하나 더 있는데…….
월영이 말을 하려던 찰나 그 손님과 함께 나머지 네 명이 가게로 들어왔다.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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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디 언니 리퀘글입니다. 늦게 드려 죄송합니다.

오후라 햇빛이 살짝 노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떨어진 햇빛이 툭 하고 튀어올라 녹슨 철제 난간에 둔하게 부서졌다. 조각난 햇빛이 눈에 들어가 따가웠던지 옥상 철제 난간에 등을 걸치듯 기대고 숨을 몰아쉬던 남자가 왼손으로 눈을 가렸다.
“눈 따가우세요?”
“새끼가 지금 그걸 말이라고…….”
옥상에 서 있는 남자는 두 명이었다. 두 남자의 손목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오른손목에 수갑이 묶인 남자가 더 젊었다. 색이 바랜 듯 엷은 갈색 머리에 입술이 얇았고, 검은 셔츠에 바지가 퍽이나 수상해 보였다. 왼쪽 손목에 수갑을 찬 남자가 으르렁거리자 갈색 머리 남자가 대꾸했다.
“그럼 좀 쉬세요. 왜 계속 씩씩거리고 계세요?”
“너 때문에 이러는 거잖아!”
왼손목에 수갑을 찬 남자가 자유로운 오른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언뜻 보기에도 피곤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남자는 입을 일그러뜨리고 얼굴을 쓸어내린 손을 들어 머리를 움켜쥐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내 손이랑 네 손이 같이 묶이는데?”
“제 말이요. 저 그만 가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되나요?”
갈색머리 남자는 짐짓 괴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왼쪽 어깨를 으쓱했다. 왼쪽 손목에 수갑을 찬 짧은 검은머리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가긴 어딜 가! 오늘은 결판 좀 내야 쓰겠다. 도둑놈이 어딜 가?”
“에이 형사님도. 괴도라면 도망가는 게 정석이죠.”
“내가 오늘 너 묶어놓은 건 정말 후회 안 할 자신있다.”
“묶여있는 게 좋으신가봐요?”
괴도가 느물거리듯 말하자 스포츠머리에 가까운 짧은 검은머리 남자, 형사가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자기 주먹을 노려보았다.
“그냥 사기를 치지, 혀 돌아가는 거 보니까 아주 적성에 딱이네.”
형사가 혀를 차자 괴도는 피식 웃었다. 웃자 눈이 반달모양으로 가늘어져 형사는 그 눈부터가 참 얄밉다는 생각을 했다.
“에이,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어떻게 사람을 갖고 놉니까?”
형사는 생글생글 웃고 있는 괴도를 노려보았다.
“씹새야 너 이거 풀리면 보자.”
“예, 예. 맘대로 하세요.”
형사가 노려보던 말던 상관하지 않고, 괴도는 난간에 머리를 기대고 다리를 쭉 뻗은 자세를 잡았다. 한숨을 쉬고 형사도 오른손으로 땅을 짚고 다리를 폈다.
“그런데 너 정말 이거 못 푸냐?”
“형사님은 열쇠 없으세요?”
형사가 왼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괴도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저번처럼 주머니 뒤져서 수갑 열까봐 두고 왔지.”
괴도는 오른쪽을 보며 생긋 웃었다.
“에이. 사람을 못 믿으니까 둘이서 이 꼴이잖아요.”
형사는 웃는 얼굴이 꼭 여우새끼 같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어떻게 하면 이게 난간에 연결이 될 수 있냐?”
“그러게 누가 수갑을 두 개 들고 오시랬나요.”
“저번처럼 네놈이 수갑을 박살낼까봐 그랬지 나야.”
“형사님은 저한테 애정이 너무 부족하시다니까요. 그렇게 절 못 믿으세요?”
괴도가 입을 삐죽거리자 형사가 주먹을 쥐고 괴도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미친 새끼야, 경찰이 도둑놈을 믿냐? 믿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죠!”
괴도는 머리를 마구 내저으며 주먹을 피했다. 잠시 공방전이 이어지고 형사가 한숨을 쉬며 주먹을 내렸다.
“너랑 말 섞은 내가 바보지. 됐다. 무전 쳤으니까 조만간 누가 오겠지. 좀 쉬자. 그런데 너 진짜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저도 몰라요. 실수한 거죠.”
“꼴 좋~다. 그러게 누가 방심하래.”
괴도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형사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날씨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2년째 쫓아다니던 놈을 잡으니 속이 시원해서 날씨가 좋아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놈이 뭐라고 깐죽대도 진심으로 화가 나지 않는 것도 분명 그래서일 거라고 형사는 막연히 생각했다.
“형사님?”
괴도가 형사를 불렀고, 멍하니 딴 생각을 하던 형사는 놀라 팔을 당기다 말고 씃, 소리를 내며 팔을 움츠렸다. 괴도가 오른쪽을 쳐다보았다.
“다쳤어요?”
눈살을 찌푸리며 형사가 말했다.
“수갑에 손목이 쓸려서 그런다. 아까 좀 난동을 피웠어야지.”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형사가 괴도의 한 팔을 꺾으려는 순간, 괴도가 형사의 주머니에서 수갑을 하나 더 꺼냈다. 놀란 형사와 티격태격 싸우는 사이에 어찌된 일인지 수갑은 한쪽 끝이 형사의 수갑에, 한 쪽 끝이 난간에 잘 채워져 있었고, 형사와 괴도는 잠시 멍하니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조금 후, 둘은 손목을 미친 듯 흔들어대며 이럴 수는 없다고 외쳐대며 10여분을 반광란 상태로 보냈다. 그러다 무전을 치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은 형사였다. 괴도 잡기에 혼을 바쳤으나 혼만 바치고 소득은 없는 그를 위해 보내줄 순찰차는 없었는지 묘하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듯 했다.
아무튼 수갑을 풀겠다고 무리한 짓을 해서인지 손목엔 금속이 스쳐서 빨갛게 부어오른 자국이 몇 개 있었다. 살이 심하게 쓸린 탓인지 핏방울도 조금 비쳤다. 형사의 손목을 보던 괴도가 왼손을 뻗어 묶여있는 형사의 팔을 잡고, 자기 쪽으로 팔을 당겼다.
“뭐 하려고?”
“치료요.”
괴도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놔라.”
형사가 팔에 힘을 주었다. 괴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손목을 내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들었다.
“싫습니다.”
괴로가 머리를 숙이고 가슴으로 형사의 팔을 잡아 눌렀다. 잠시 다리와 가슴 사이에 팔이 갇힌 형국이 된 형사가 팔을 빼려고 당기려는 순간, 괴도가 턱으로 수갑을 밀고 상처에 혀끝을 내밀어 부은 곳을 핥았다. 축축한 혀가 스치고 지나가자 잠시 뜨거운 느낌이 들다, 타액이 식으며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의외의 행동에 허를 찔린 형사가 잠시 힘을 풀자 괴도는 그 기세를 타서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며 손목을 당겼다. 팔이 당겨지자 형사의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괴도는 형사의 팔목에 맺힌 피를 살짝 핥더니 피가 맺힌 부위를 빨고, 피 섞인 타액은 괴도의 혀를 타고 목으로 넘어갔다. 팔목에 댄 입술을 옆으로 밀듯 옮기고 다시 부은 부위를 핥았다. 혀가 지나가자 형사는 등을 움찔했고, 형사가 움찔거리지 않으려고 몸을 긴장시키자 괴도의 혀끝이 상처를 쓸듯 훑었다. 미묘한 감각에 팔목이 간지럽다고 형사는 생각했다.
상처를 핥던 괴도가 고개를 들고 형사를 쳐다보며 웃었다.
“상처에선 참 묘한 맛이 나지 않아요?”
“핥지 마라.”
형사는 고개를 돌렸고 괴도는 입끝을 들어올리고 웃었다.
“형사님 얼굴 빨갛네요?”
“그럼 이 상황에서 얼굴이 빨개지지 파래지냐?”
형사 자신이 생각해도 참 말이 안 되는 발언이었다. 그 사실을 의식하고 옆을 보자 괴도가 킥킥 웃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자식이 못 웃게 할까 고민하는데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형사가 반색했다.
“저 소리 들리냐?”
“네, 들려요.”
풀이 죽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생생한 괴도의 목소리가 한참 위에서 들렸다. 앉은키가 나랑 비슷했던 것 같은데 목소리가 왜 이렇게 위에서 들릴까, 하고 옆을 본 형사는 놀랐다.
“어, 어?”
어느새 괴도는 수갑을 풀고 일어나 있었다. 물론 형사의 손목은 그대로인 채로, 게다가 도망갈 채비를 완전히 갖추고.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형사를 향해 괴도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야, 너!”
“형사님,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 주세요.”
괴도는 슬쩍 형사의 손을 잡고, 놀란 형사가 허둥대는 사이 형사의 눈에 눈을 맞추고 손바닥에 입술을 갖다 댔다. 손바닥에 닿는 따뜻한 기운에 한 번 놀라고, 사람의 날숨이 만드는 간지러움에 당황하고, 입술을 누르는 감촉에 굳은 형사를 놀리듯 괴도는 웃었다.
“다음엔 다른 플레이하고 놀아요. 그럼 안녕~.”
이새끼야 죽을래! 라고 외치려고 입을 움직이는 순간 괴도는 사라졌다. 동료들이 도착해서 본 것은 수갑에 묶여 난간에 매달려서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형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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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당위성도 없어 죄송합니다. 그런데 늘 이런 식이어서 더 죄송할 것도 없을 것 같네요;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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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 되는 소립니다.
심현은 눈 앞에 서 있는 유령에게 말했다.
-애초에 이승과 저승이 유별하다고 말씀하신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이 곳에서의 존재기반이 약하신 분이 여기에서 무엇을 더 이루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
눈 앞의 공기가 일렁이는 것으로 보아 유령이 무어라고 말을 한 모양이었다. 월영은 동풍을 흘끗 쳐다보다. 동풍이 긴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상황은 악화된 듯 했다. 세 명이 있는 폐가의 벽이 조금씩 흔들리며 벽에서 떨어진 가루가 세 명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점점 벽의 진동이 거세졌으나 움직이거나 소리를 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벽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더니, 진동이 멎었다. 심현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하실 말씀은 그것 뿐이신 걸로 알고 저도 마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이 아이들 좀 보세요. 여자아이 쪽은 지금 당신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못 듣습니다. 그게 다예요. 여기 있어봐야 계속 이런 것 밖에 못 보십니다. 얼마나 허무한가요.
허무하다, 는 말을 입에 올리며 심현은 그야말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집의 벽을 울리고 , 물건을 옮기는 것 뿐이지요. 아시지 않습니까. 그걸로 도대체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벽의 진동이 갑자기 커졌다. 월영의 귀에도 웅웅거리는 묘한 소리가 들렸다. 벽에서 뭔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동풍이 바람을 일으켜서 떨어지는 것들이 사람에게 맞지 않도록 했다. 동풍이 만든 바람벽의 뒤에서 월영이 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심현은 다시 유령과 대화를 시도했다.
-계속 여기 계시면 이런 일 뿐일 겁니다. 찾아오는 사람은 저희 같은 사람들 뿐.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거예요.
-계속 이렇게 행동하시면, 점점 당신과 이승 사이의 차이가 벌어지게 되겠지요. 그런 것을 원하셨나요?
대화가 계속 이어졌고 월영의 연주 덕인지 진동이 조금씩 약해졌다. 어느새 진동은 거의 멎어 동풍이 바람을 일으키지 않아도 괜찮은 정도로 진정이 되었다.
-자, 그러니 이제 그만 가시지요.
시열의 눈에 동풍과 심현이 무언가를 잡고 여는 것처럼 보였지만 열린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공기가 조금 달라진 것을 느끼고 다시 동풍을 보니, 동풍이 한 손으로 슬쩍 V 자를 그리고 있었다. 드디어 일이 끝났구나 싶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심현을 쳐다본 월영은,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굳고 말았다.
-가시는 길은 이쪽입니다.
무려 한 손으로 길을 안내하는 것 같은 포즈까지 잡으며 심현이 온화하고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월영의 표정을 보고 무슨 일이 있나 싶었는지 얼른 월영의 시선을 따라 옆을 쳐다본 동풍이,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으나 심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잠시 후, 폐가는 조용해졌다. 남은 것은 유령이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일으킨 잔해 뿐이었다. 그렇게 폐가에서 벌어진 이상현상에 대한 일은 끝났지만, 아이들은 귀신보다 더 어이없는 것을 봤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뒷정리를 마치고 카페로 돌아가는 길, 버스를 타고 맨뒷좌석에 셋이 나란히 앉아서 한참을 가는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사제님이 그렇게 말 많이 하시는 거 처음 봤어요.
심현과 같이 일을 해 보기는 처음인 월영이 입을 열었다.
-난 사제님이 그렇게 웃는 것도 처음 봤어요.
심현과 몇 번 같이 일을 해 본 동풍이 입을 열었다.
-으응.
심현은 애매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 떄, 월영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아, 전화다. 과장님이네.
월영은 전화를 받았다.
-아, 과장님? 네. 저희 일 잘 끝났어요. 주변 정리도 했고요, 아까 주신 것도 쳐 놨어요. 그거 이제 건물 철거한다는 표시 맞죠? 네. 뒷일 잘 부탁드릴게요.
통화를 끝낸 월영은 전화기를 넣고, 통화하는 것을 흥미진진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심현에게 물었다.
-사제님은 전화기 없으세요?
-나? 있긴 있는데......
심현은 들고 있던 천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이게 흔들려서 받아보면 벌써 끊겼더라고. 참 이상하지?
-그래서 저한테 전화하신 거로군요.
그게 제일 빨랐을 것이다.
-응? 무슨 말이야?
-아니에요. 그런데 사제님.
월영이 말을 이었다.
-아까 웃으시니까 참 보기 좋던데.
-그래요, 웃는 게 좋아요.
동풍이 말을 거들었다.
-아, 그거?
잠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심현이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잘 안 되어서.
-안 돼요?
-응. 원래 내가 항상 이 얼굴이잖아.
처음에는 참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말수도 적고 표정이 부족해서 이 사람은 이 곳이 싫은 걸까 하고도 생각했다. 말수가 적은 건 단지 말을 하기 힘들 뿐이어서이고, 표정이 원래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심현을 만나고 시간이 많이 흐른 뒤였다. 심현이 월영에게 물었다.
-음, 그런데 내가 아까 많이 웃었나봐?
-네, 활짝 웃으셨어요.
-그게 신기했구나.
-네.
-어려서부터 그랬어.
이야기를 듣는지 마는지 잘 안 열리는 창문을 열심히 열고 있던 동풍이 심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카페 안에서 과거 이야기는 서로 묻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사제라고 말만 들었지 어떤 사제인지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심현은 머릿속에서 말을 고르는지,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나는 아주 어려서 일을 시작했거든. 그런데 내가 사제니까, 어린애같이 굴면 이상할 거 아냐.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그럼 그래서 잘 못 웃으시는 거예요?
월영은 성실히 이야기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심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아니. 그래서 열심히 웃었지.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설명을 요구하고 싶었지만 심현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음......그게......내가 웃어야 안심이 되지 않겠어.
그 말을 끝으로 심현은 혼자 생각에 잠겼고, 월영은 혼자 열심히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혹시 신자들 앞에서 여유있게 보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에 생각이 미쳤을 때, 심현이 다시 말을 이었다.
-원래 사제들이 다 그래.
창가에 앉은 동풍은 창문을 열고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어느새 심현도 가방에서 뭔가 꺼내서 읽기 시작해서 월영은 혼자 생각했다.
방금 그녀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갔다. 그리고 역시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카페에 애초에 한 눈에 보고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이 드물기는 했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버스에서 내려 카페로 돌아간 다음, 월영이 나머지 멤버들에게 사제님이 그렇게 말도 많이 하고 웃기도 하고 큰 동작도 취하는 걸 처음 봤다고 이야기해 주자, 같이 일을 나가 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한 번도 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예 월영이 하는 말을 믿지 않으려고 했다. 그 광경을 본 심현은 원래 사제들은 그렇다는 말을 되풀이했고, 월광이 혹시 사제님만 그런 거 아니냐고 묻자 한참을 고민하더니 생각 좀 해 봐야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나머지 사람들은 저 사람이 어떻게 사제를 하게 된 걸까를 각자 생각해 보았으나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후, 코드네임 야누스가 얼굴을 두 개 가진 신의 이름이자 이중성을 뜻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월광에게서 들은 월영은 무릎을 딱 쳤다. 정말 저 분에게 어울리는 이름 아닌가 하고.

--------------------
제가 설정을 해 놓고도 사제씨의 이중성에 대해 한 번도 설명을 하지 않은 것 같아 이번 기회에 설명 좀 해 보려고 썼습니다. 그래요 저는 설정의 당위성을 위해 글도 급조하는 여자예요;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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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

쌍화점에 쌍화 사러 갔더니만
회회아비 고기쌍화만 싹 골라 먹었더이다
이 소문이 로레인 밖에 나고 들면
소문낸 놈 감봉
그 쌍화점에 나도 먹으러 가리라
그 육회푸딩같이 괴한 게 없다

-이슬람 상인 하 모 씨를 보고 생각났습니다. 왜 쌍화점은 아무도 안 해 주신 걸까요......
쌍화점은 앞부분(편의상 이렇게 부르죠)과 뒷부분의 화자가 다르다는 게 정설이라는 걸 알아두시면 보시기 좀 나을 겁니다.

근데 진짜 이번 이벤트 너무 좋아서 하는 내내 미친 듯 달렸지 뭡니까.
(일이 바빠서 더 달렸을 겁니다 아마)
왜 소설 커뮤니티는 잘 없는 거예요;;; 나도 한 번 달려보고 싶어요.
(밀린 글이나 써라.)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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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뉴얼을 좀 했습니다.
앞에 쓴 글은 비공개로 돌려놓을게요 리플 달아준 윈디 언니, 론, 미니, 은이 미안해요.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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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풍 군 전학 생각 있습니까?
여름방학 끝무렵, 가게에 불쑥 찾아온 과장이 동풍에게 물었다.
-음......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데요?
-거 괜히 물었군요. 그럼 시열 양이랑 같은 학교로 전학을 가는 건 어때요?
-별 상관 없어요.
동풍이는 언제나처럼 순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학수속을 밟아볼까요, 하던 과장의 말이 순간 튀어나온 목소리에 묻혔다.
-우리 학교요? 왜요?
어쩐 일로 안 자고 한 구석에 앉아서 깨작깨작 영어 숙제라나, 문제집을 끌어안고 씨름하고 있던 시열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집중하고 공부하라니까.
-오빠는, 지금 집중이 문제가 아니잖아.
옆에 앉아서 설탕통에 설탕을 채워넣고 있던 휘안이 시열에게 타박을 주었으나 시열의 관심사는 이미 동풍과 과장의 대화로 옮겨간 후였다.
-과장님, 왜 동풍이 오빠가 우리 학교에 전학와요?
-아 뭐, 별 거 아닙니다. 두 사람 다 일 때문에 가끔 학교를 빠질 때가 있는데, 두 학교에 다 사정을 설명하기 귀찮다고 그래서들 말이죠. 관리직은 귀찮아요, 특히 공무원은 더.
-그럼 행정상의 편의 때문에 저의 학교생활을 희생하라는 말씀이세요?
일을 할 때가 아니면, 특히 학교생활과 관련된 일이면 매사 무관심일변도로 나가던 시열의 반응은 의외로 강경했다.
-동풍이 오빠 거주지 주소 여기로 되어있잖아요! 친척이랑 한 학교면 귀찮은 일이 엄청 생길텐데 나보고 어쩌라고요, 싫어요.
-어......그럼 귀찮게 안 하고 다닐게.
-그게 오빠 맘대로 될 거 같아?
-시열 양, 동풍 군이 시열 양을 귀찮게 할 일은 없을 거예요.
-아, 정말! 과장님은 졸업하신지 오래되어서 기억 못 하시는 거죠? 진짜 귀찮단 말이에요!
수상하다, 대놓고, 노골적으로 수상하다! 휘안은 이 곳에서 학교를 다닌 경험은 없지만, 과거 사관학교에 다니던 자신을 떠올리며 시열의 행동을 분석해보았다. 1학년이랬으니까 군기가 안 잡혀서 기합이라도 받는 걸까? 복장불량이라고 뒤뜰에 불려가서 구르나? 왼손에 들랬던 가방 오른손에 들어서 혼났나? 칼을 제대로 손질하지 않았나?
-휘안이 오빠. 뭐 생각하는지 대충 알겠는데, 그런 거 절대 아니거든?
무슨 표정을 어떻게 지었는지 시열이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알았어요. 오빠 오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요. 대신 나 귀찮게 하면 알아서들 해요.
귀찮다는 표정으로 던지듯 말을 하고, 시열은 다시 영어문제집으로 눈을 돌렸다.
-특히 동풍이 오빠. 조심하는 게 좋아. 오빠한테도 귀찮은 일이 될 수 있으니까.
-어, 어.

새로 입은 교복이 어색해다는 생각을 하며 동풍은 교무실 문을 열었다. 교무실 책상 위에 이름표가 붙어 있어서 새 담임을 찾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30대 후반, 40대 초반쯤으로 보이고 조금 구겨진 트레이닝 복을 입은 남자교사는 미간에 주름이 잡힌 것 빼고는 그렇게 인상이 나빠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마동풍.......교과서는 행정실에서 받아 왔고?
-예.
-그으래. 그럼 이따 쉬는 시간에 교실로 가라. 자리 하나 만들어놨으니까.
-예.
-아따, 그 놈 참 얌전하네. 그런데 남고에서 공학으로 전학와서 적응하기 힘들겠어. 내신 관리하기 힘들텐데 왜 이리로 왔어?
-이 학교에 사촌이 있어서요.
-친척 누구?
-아실지 모르겠는데 1학년 한시열이라고......
-어, 너 한시열이네 친척이야?
서류를 읽던 교사의 눈이 갑자기 멈추었다.
-어.......네. 아세요?
-작년에 수업 들어갔지. 내 교직생활 14년 동안 체육 시간에 실기연습 하는 동안 선생 눈 피해서 운동장 구석에서 자는 놈은 또 처음 봤다는 거 아니냐. 너도 많이 자냐?
-.......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옆자리에 앉아 국어교과서를 보고 있던 여자 교사가 고개를 홱 돌렸다.
-한시열요? 그 50분 수업시간 중 30분은 자고 20분은 깨어있는 한시열?
그 소리를 필두로, 교무실에 있던 교사들 중 서너명이 갑자기 정말 할 말이 많다는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선생님 시간에는 20분은 깨어있어요? 제 시간에는 안 일어난 적도 있어요. 그러고보니 시열이 작년에 권 선생님 반이었죠?
-아아. 시열이? 종례하러 들어갔는데 안 일어나서 꺠운다고 얼마나 고생했다고요.
-누구요? 시열이? 걔 사촌오빠라고?
시열아, 유명인사였구나. 동풍은 무의식중에 허공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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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이었나, 미니네서 자고 오던 날, 미니와 이야기하던 중에 나온 소재입니다.
뒷이야기는 미니가 써도 좋다고 하면 쓰겠습니다. 왜냐면 이 이야기의 절반은 미니 아이디어였어요.

전학이나 시열이네 학교 이야기는 그냥 써 본 거니 사뿐히 무시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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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은 세상 바람둥이들의 귀감이라니까.
크리스틴이 비아냥조로 중얼거린 한 마디를 미겔은 애써 못 들은 척 넘겼으나 여자가 셋, 남자가 하나인 장소에서 남자 하나 바보 만드는 건 마음만 먹으면 일도 아니라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어디 갈 리 없다. 애니가 눈을 반짝였다.
-한 번에 양다리를 걸치지 않으며 모든 상대에겐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하며 정리는 깔끔하게 하며 매달리는 법이 없으니 세상 바람둥이들이 보고 배워야 할 덕목이 아니겠냐, 크리스 말은 그거지?
-뭐, 내가 말하려는 거랑은 좀 다르지만 저 사람이 뒷정리가 깔끔하다는 건 나도 인정할 만 해.
-그런데 왜? 별 스캔도 없잖아.
-없으면 뭐 해. 스캔들보다 더 나쁜 게 미겔이 하고 다니는 짓이라고. 어제 애니는 못 봤지?
-뭔데?
서류를 철하는 척 펀치를 들고 열중하고 있던 아요툰데가 아예 펀치와 서류철을 내려놓고 크리스틴 옆으로 다가왔다.
-아요툰데도 못 봤어? 음, 그럼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크리스틴이 미겔을 흘끔거리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속을 긁으려고 작정하고 말을 꺼낸 것이니, 미겔이 눈썹을 찌푸리고 저걸 어떻게 말려야 잘 말렸다는 소리를 들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면 크리스틴의 의도는 99% 성공한 것이다. 과연 미겔은 미간을 찌푸린 채 크리스틴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제 점심시간에 길 가는데 어떤 아가씨가 미겔을 보더니 갑자기 한길에서 막 울면서 뛰어가더라고.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미겔이 난감한 얼굴로 말을 흐리잖아? 이런 경우는 십중팔구 그거지. 치정극. 어쨌든 미겔이 그 여자한테 뛰어가서 뭐라고 뭐라고 한참 이야기를 하더라? 그런데 그 여자가 미겔을 노려보더니 따귀를 때리는 거야. 너무 정석적이라서 할 말이 없더라니까.
그리고 크리스틴이 씩 웃으며 미겔을 돌아보았다.
-당신 또 차였지?
미겔은 아예 한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걸 그렇게 폭로하다니, 너무하지 않나? 배려심은 사회인에게 중요한 덕목이야.
-시끄러워. 학교에서나 선생인 척 하라니까.
크리스틴이 으르렁거리자 미겔은 한숨을 쉬었다. 옆에서 그 꼴을 보며 깔깔대며 웃고 있던 애니가 말했다.
-미겔이 연애 성공하는 거 본 적 있는 사람?
-한 번도 없지. 늘 차이지 않았나?
아요툰데가 대답했고 두 여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바람이 아니라니까.
미겔이 끼어들었으나 그의 발언은 여자들에게는 낙엽 떨어지는 소리만큼의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듯 했다. 세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애니가 말했다.
-사실 미겔이 늘 잘 하긴 하지 않았어? 그런데 차이잖아, 항상.
-그야 당연하지.
아요툰데가 끄덕였다.
-남자는 안정이라니까. 미하일한텐 그게 없다고. 안정감도 없고, 그렇다고 긴장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여자가 오래 사귀고 싶겠어?
미겔이 변명했다.
-매번 상대에게 충실한 법이라고 말하면 안 되나? 그래도 난 매번 진심이었는데.
-그런데 늘 차여?
크리스틴이 아예 깔깔깔 웃기 시작했고 미겔의 미간은 더더욱 구겨졌다. 저러다 화라도 내지 싶었는지 아요툰데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 그만. 크리스틴, 너 오늘 기분 안 좋아?
-몰라.
크리스틴은 표정과 동작-등을 돌리고 앉는 것으로 그녀 자신이 한 대답을 부정했다. 아요툰데가 웃었다.
-그래도 미겔을 놀려서 기분풀이하는 건 나쁜 짓이잖아. 그만하고, 그리고 미겔?
미겔이 돌아보자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크리스틴이 뭔 생각인지는 몰라도, 난 너한테 꼭 한 마디 해야겠어. 미겔, 그러지 마.
-뭘 그러지 말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
-모르면 스스로 찾아봐.

---------------------
맨 위에 쓴 문장이 퍼뜩 떠올라서 대충 모니터에다가 낙서를 해 봤고요, 대략 이런 느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크리스틴은 기분 나쁘면 미겔을 물고 늘어져 괴롭히는 버릇이 있고요 미겔은 폭발하면 애를 들들들 볶아대고 애니는 크리스틴이랑 죽이 맞아서 나쁜 장난도 자주 치고 그럴 떄 마다 고생하는 건 왕언니 몫. 사실 미겔이 성실하지 못한 연애질하고 돌아다니는 걸 어서 써야 하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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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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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좀 정해 주십쇼. 전 죽어도 제목을 못 정하겠어요.

이게 시작인데, 앞으로는 크리스틴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될 일은 없습니다. (끝을 낸다면 에필로그만은 미겔의 시점에서 한 번 진행하고 싶지만.)이 네 사람이 작은 능력으로 악몽을 대신 꿔 준다던가 (미겔의 능력에 대해선 수정을 좀 할 참입니다.) 없어진 물건을 찾아준다던가 하는 소소한 일상을 그린 이야기가 될 예정입니다만.


참고로 크리스틴은 끝까지 미겔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합니다. 미겔도 직장 안에 있는 여자들에겐 손 안 뻗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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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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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마음에 들면 가지지 그래?
자다가 일어나 앉아서 멍하니 그림을 보고 있었다. 자는 줄만 알고 있었는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자는 줄 알았어요.
대답을 하고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베개에 머리를 묻고 누워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목덜미에 몇 가닥 붙어있기에 떼려고 등을 돌려 손을 뻗었으나 손을 들어 젓더니 자기 손으로 목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이불이 미끄러지며 상반신이 훤히 보였으나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언제 그리신 겁니까?
-사흘 전에 다 그렸지. 담배 있어?
침대머리에 둔 궐련을 한 대 빼어 끝을 자르고 불을 붙여 주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연기를 빨아들이고 씨익 웃고는 벌떡 일어나 침대 밖으로 걸어가 구석에서 재떨이를 찾아 손에 들고 그림 옆에 섰다.
-맛있네. 그런데 그림 어때?
-굉장히 인상적인 얼굴이네요.
그림은 어린 여자의 얼굴을 그린 것이었다. 초상화를 가장 잘 그린다는 평가다웠다. 아주 인상적이어서 한 번 보면 절대로 못 잊을 얼굴이었다. 다양한 명도의 회색으로 칠해진 얼굴에 한 눈은 감겨져 있었다. 짧은 머리카락이 이마를 덮고 있었고, 감긴 눈 위를 절반쯤 가리고 있었다. 한 쪽 눈은 뜨고 있었고, 미간엔 주름이 잡혀있었다. 뜬 눈동자는 크게 벌어져 있었고 붉은 색인지 보라색인지 모를 기묘한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입술은 검은 색이었고 꼭 웃는 것처럼 입을 살짝 벌려 이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벌어진 틈으로 붉은 입 속과 꽉 다문 이가 드러나 있었다. 기분나쁜 표정을 한 아주 인상적이고 섬뜩한 얼굴이었다. 어지간한 창문만 한 캔버스에 두텁게 바른 유화물감 특유의 질감이 어우러져 기묘한 느낌이 더해졌다. 나는 물었다.
-모델은 누구예요?
-응? 모르겠어? 맞혀 봐.
재를 털며 건성으로 대답하는 게 또 뭔가 재미있는 걸 찾은 모양인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거 나 아냐.
그림에서 눈을 들어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가 턱을 들고 씨익 웃었다. 닮았지?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세상에 자기를 그렇게 그리는 여자도 있습니까?
어두운 방 안으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이 얼굴에 비치자 회색이 된 얼굴은, 미간에 잡힌 주름만큼은 그녀와 굉장히 닮았다.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당기며 웃었다.
-그래서 그림 마음에 든다는 거야 안 든다는 거야?
-그야, 마음에 들어요.
그녀는 씨익 웃었다.

-나 어릴 때 사진 보여줄게.
-사진이 다 있습니까?
말을 하곤, 술자리에서 전해 들은 그녀의 집안 이야기를 기억하고 아차 싶었다. 본래 어느 남작가 막내딸이라더라, 남작은 남작인데 돈으로 산 남작이라더라, 어린 혈기에 싸우고 집을 나왔다더라, 지금도 본가에서 그녀의 이름을 들으면 경기 일으킬 사람이 몇 명이더라, 하는 술기운 섞인 소문들.
-응, 한 액자 열 개 정도? 있어봐.
방 구석을 뒤지더니 작은 상자를 가져와서는 침대에 앉은 내 옆에 앉았다. 침대머리에 등을 기대고 이불로 몸을 반쯤 덮은 채 나란히 앉아 있자니 웃기는 생각이 들어서 그녀에게 말했다.
-이러고 있으니 꼭 부부 같잖습니까.
상자에서 액자를 꺼내다 말고 그녀가 나를 노려보았다.
-집에서 아내가 기다리잖아. 유부남이면서.
도대체 그걸 아는 사람이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물으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그녀는 다시 사진 찾기에 열중하더니 제일 아래에 있던 액자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지금하곤 달라서 통통하지?
조금 큰 액자 안에 작은 사진 몇 개를 넣어놓았다. 레이스 장식에 얼굴을 묻은 작은 아기가 있었고,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여자애가 있었다. 아이는 웃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여섯 살쯤 되었을까,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들어있었다. 사진 속의 소년과 소녀들,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은 서로 닮았다. 맨 앞에 앉아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의 얼굴이 그녀와 유사해서 자세히 쳐다보니 그녀가 웃었다.
-응, 그거 나 맞아. 잘 찾네?
-왜 이렇게 인상을 쓰고 있어요?
-사진 찍기 싫었거든. 그런데 안 찍었다간 큰오빠한테 혼나겠더라고.
어릴 때 부터 눈치 보는 기술만 늘어가지고, 하고 중얼거리더니 다음 액자를 내밀었다.
-이건 여학교 때.
그 다음 액자에 찍힌 건 친구들과 함께인 듯, 사진에는 몇 개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세일러 칼라 원피스에 긴 머리카락이 지금과는 전혀 달라보였다. 환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었고, 다른 손은 친구들의 어깨를 짚고 있었다.
-예쁘네요.
-그렇지? 문학 쪽 동인활동 하던 애들이야. 내가 책표지 만들어 줬고. 같이 책 낸 기념으로 하나 찍었지.
-아니 당신요.
그녀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게 예쁘다고 생각하다니 보는 눈 되게 없다? 그러니까 쓰는 소설마다 그 모양이지.
-표정이 생생하잖아요.
지금보다, 라는 말을 억지로 삼켰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바보구나? 꾸민 표정과 아닌 것도 구분 못 해?
저 표정이 꾸민 거라니 어리둥절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잘 봐. 손에 힘이 들어가있잖아. 사람은 주먹 쥐고 못 웃는 법이다?
다시 사진을 보았다. 정말로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전에 어디선가 읽은 글귀가 떠올랐다. 억지로 웃는 건 인간 뿐이다, 라고.

그 다음 액자는 신문 스크랩이었다. 바닷가였고 기사에는 동반자살한 남녀중 여자만 살아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고 여자는 지역 내 무정부주의 운동 서클의 일원이었다는 표제문이 붙어있었다. 그 액자는 자세히 볼 수 없었고 다음 액자는 결혼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부부는 무표정하게 서로 팔을 붙잡고 있었다.
-이 사람이 남편이었어.
-지금은 소식 들으세요?
-재혼해서 아들이 하나 있다더라. 뭐 잘 지내겠지.
무심히 중얼거리는 그녀의 얼굴은 사진 속의 얼굴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였을 뿐이었다. 남편은 그야말로 평범한 인상이었다.
-그래도 이 사람 자기 나름대로는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몰라.
사진관이었고 그녀는 남편에게 손목을 잡혀 있었다. 몸은 지금처럼 바싹 말라 있었고 풍성하게 틀어올린 머리카락과 표정이라곤 없는 얼굴이 기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반대쪽 손목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이 상처, 아까 그 흉터 기억 나?
자잘한 상처가 많았지만 손목이며 어깨며 배며 허벅지에 난 상처는 너무 두드러지게 커서 무시하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흉터는 핥으면 꼭 금속과 고기를 같이 맛보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는 걸 아까 처음 알았다. 손목 같이 보이는 부분에 있는 흉터는 알았지만 허벅지 안쪽에도 흉터가 있을 줄은 몰랐다. 흉터를 보고 몸이 굳어서 슬쩍 손을 치웠더니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마지못해 손목에 난 흉터를 핥자 그녀가 피식 웃었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허벅지의 흉터는 너무나 생생해서 차마 건드리지를 못했다. 마치 무엇에 찢어진 듯 했다. 내가 굳어있는 걸 알고 그녀가
-병원에서 퇴원할 때 찍은 거. 남편은 이렇게 하면 내가 다시는 그런 짓을 못 할 줄 알았겠지.
-그런데요?
-이 사진 찍고 가택수사 들어와서 질려서 이혼하재더라. 근성이 없었어, 나나 그 사람이나.
그렇게 말하며 슬쩍 손목의 상처를 쓰다듬는 것을 보았다. 손목에는 한 줄짜리 흉터가 박혀 있었다. 칼을 댄 흔적이리라. 상처를 핥는 건 좌우간 내 역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사진은 경찰서가 배경이었다. 경찰봉을 찬 경찰이 그녀의 어깨를 치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표정 없이 먼 데를 쳐다보고 있었다. 복잡한 표정이었다.
-이건 뭐에요?
-전향 기념.
지금은 술꾼이네 쉬운 여자네 유부남이랑 바람 피우다 걸려서 한 길에서 머리 끄댕이 잡혀서 난리를 피웠네 별별 악담과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사는 그녀가 과거 꽤 격렬하게 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는 나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녀가 전향을 하고 나자 그나마 그녀에게 호의적이었던 사람들도 돌아섰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이런 걸 왜 보관해 놓았어요.
-응. 글쎄. 운동을 안 해도 살 수 있겠더라고. 무엇보다 이제 난 귀족도 뭣도 아니잖아.
점점 표정이 닳아 없어지는 사진을 보는 건 재미없는 일이었다. 나는 액자틀을 잡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만 보고 싶어요.
-왜? 난 재밌는데.
길게 말을 했는데도 목도 타지 않는지 물컵에 담긴 물은 어느새 내가 다 마셔 버렸고 그녀는 계속 앨범을 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는 건 참 무서운 일이야.
그녀가 웃었다.
-웃다 보면 그럭저럭 한 세상 살게 된다던데요.
-그러니?
그녀는 미간에 주름을 잡고 웃었다.
-나는 웃는 게 어떤 건지도 사실은 잘 모르는걸.
평소 그녀는 늘 다양한, 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누님 이러려고 저 데려오신 거죠?
-응, 뭘?
진짜는 하나도 말하지 않으면서 거짓말만 능숙하다. 인상을 쓰려는데 어느새 그녀가 내 등뒤로 다가가 목에 팔을 감았다. 등에 긴 머리카락이 닿아 간지러웠다. 그 느낌에 몸을 움찔하는데 머리카락의 감촉 사이로 다른 것이 느껴졌다.
-좀 자고 싶은데요.
-싫다니까.
머리카락의 간지러운 촉감과 혀와 입김이 더해져 머릿속까지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할 말을 찾아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도망가잖아요.
-뭘?
-자꾸 약한 척 좀 하지 말아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 등을 훑던 혀가 옆으로 이동했다.
-너 좋아하는 거 알지?
-거짓말 하지 마세요, 누님.
입술이 잠깐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는 웃었다.
-결국 신세한탄이 하고 싶었던 거잖아요.
등에서 손이 떨어지고 그녀가 내 어깨를 당겨 고개를 젖혔다.
-그럴 때만 예리하지?
-아니라곤 말 못하시네요.
그녀는 손을 놓고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잘 자라. 일찍 나가고. 집에서 걱정해.

그 후로 그녀를 만난 적은 없다. 그녀는 너무 일찍 죽었고 나는 아직 살아있다. 세월은 변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 와서 누가 뭐라 해도 그녀는 허약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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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설정을 짜는 데는 이유가 있다니까요. 기왕 설정이 생각난 김에 요 몇 년 간 줄기차게 사랑해 온 다자이 오사무를 위해 뭔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가 다자이 오사무를 위해서냐면, 인간 실격에서 빌려온 설정이 몇 개 있어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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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
윈디언니 리퀘, 더워하는 사제씨입니다.

그녀는 카페의 출입문 앞 계단에 앉아 있었다. 여름의 돌계단은 뜨끈뜨끈해서 앉으면 몸 속으로 뜨끈한 기운이 바로 전달되는 것이 당연지사. 쇠로 된 계단 난간에 머리를 기댈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 듯 난간 반대쪽, 즉 벽 쪽에 앉아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벽도 따끈해졌는지 금방 머리를 뗐다. 입고 있던 남방 소매를 걷어올리자 천으로 덮여 있던 팔에 살짝 시원한 기운이 감도는 기분이 들었는지 머리를 슬쩍 뒤로 젖혔지만 그 기분은 몇 초가 지나자 사라진 모양이다. 목 뒤가 답답하게 느껴져 풀고 있던 머리를 묶어올리려고 목덜미를 쓰니 손바닥이 조금 축축해졌다. 조금 젖은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세 번 감아 묶고, 조금 뒤에는 묶은 머리를 접어서 올렸다. 그래도 한 개 풀려있는 남방 단추에 더 손을 댈 생각은 없어 보였다. 미간에 조금 힘이 들어갔을 뿐, 눈매나 입매는 전혀 변한 바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들어 목 근처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문이 열렸다.
"아, 여기 계셨네. 사제님, 뭐 하세요?"
"아, 월영이네."
"월광이 언니가 사제님 찾아요. 과장님한테 연락이 왔다고. 그런데 저기, 더우세요?"
평소 걷어올린 적이 없는 소매가 접혀 올라가고 머리는 어쩐 일인지 접어 올려묶고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는 심현을 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는지라 월영의 표정은 흥미진진해 보였다.
"응, 여기 더워."
심현의 답에 월영이의 고개가 옆으로 갸우뚱, 기울었다.
"안에 에어콘 틀어놨잖아요?"
"나 그 바람 싫어, 만든 거잖니."
아, 그렇구나. 월영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여름이죠?"
"응, 이제 여름이구나."
창 밖을 보니 공기가 신기루인 양 일렁이고 있었다. 깊은 초록색 나뭇잎과 짙은 그늘과 쏘는 듯한 태양빛과 열기가 잔뜩 섞인 노르께한 공기가 선명했다. 창 밖을 보고 그녀는 살짝, 흔적도 남지 않을 미소를 짓고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일이 있는 모양이니 들어가봐야지."
피하기는 하지만 거부는 안 하지, 라고 무심결에 자신의 모국어로 중얼거리고 심현은 가게의 문을 열었다. 월영이 문 옆에 서 있다 살짝 몸을 비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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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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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번째 덧글 달아주신 분께 리퀘를 받는 건 어떨까 싶네요. 지금까지 423개의 덧글이 달렸습니다. 그 중 백여개는 제가 달았습니다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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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오빠.
벽지를 바르느라 여관방에 놓인 몇 가지 안 되는 집기-옷걸이니 이불장이니 하는 것들을 옮기고 있는 청년을 지나, 도배풀을 쑤어 온 소녀가 뭘 물어볼 생각이었는지 청년을 불렀다.
-오빠 아니다, 아저씨야.
청년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청년의 등 뒤에 있던 소녀가 몸을 돌려 청년의 앞쪽으로 걸어가더니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제법 질기기까지 한 시선에 놀라 청년이 몸을 슬쩍 뒤로 빼자 소녀가 다시 물었다.
-암만 봐도 스물 너댓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왜 아저씨예요?
-나이를 봐서 어떻게 아냐.
내심 제 나이를 정확히 알아맞힌 소녀에게 놀라며 청년이 퉁명스레 대꾸하자 소녀가 웃었다.
-얼굴을 보고 아는 게 아니에요. 연륜을 보고 아는 거지.
-연륜?
청년이 가구를 다 옮기고 도배지를 가져오자 소녀가 종이에 풀을 발랐고, 둘이 종이 양귀퉁이를 잡고 벽지를 벽에 붙이는 동안은 잠깐 말이 없었다. 소녀가 다른 종이에 풀을 바르며 말을 꺼냈다.
-사람이 오래 살면 흔적이 묻어나게 되어 있는데 오빠는 그런 게 없거든요?
-어?
-없다고요. 오빠 나름 이것 저것 고민한 흔적은 있는데 별로 깊이는 없어 보여요.
소녀가 솔을 풀통에 담갔다.
-어린애가 지금 뭐라는 거야?
-일단 벽지부터 잡아요, 풀 말라요.
청년이 반사적으로 종이 귀퉁이를 잡았고 둘은 종이를 아까 붙인 종이 옆에 맞추어 살짝 갖다대었다. 깔끔하게 붙이려고 이리저리 종이를 움직이는데 소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결정타를 날렸다.
-난 조금 나이 먹었다고 세상을 아는 척 하는 사람들이 제일 웃겨요.
벽지를 바르던 청년의 손이 삐끗했고 결국 벽지에 주름이 지고 말았다.
-것봐요. 표정 관리 하나 못하면서 아저씨는 무슨. 오빠로 만족하세요오~.
소녀가 깔깔 웃으면서 벽에 바른 벽지를 살짝 뗐고 청년은 구겨진 벽지를 다시 붙이는 데 안간힘을 쏟느라 한 마디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날 부실한 잡일꾼 청년은 도배가 끝나고 집기를 정리하며 어떡하면 저 입만 산 꼬맹이를 괴롭혀 줄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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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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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없고 먹을 것도 별로 없고 재미 있는 것도 별로 없어요. 있는 거라곤 온갖 소원과 욕망과 사람뿐인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숙박비는 선불이고 한 달 이상 체류하시면 할인가격이 적용됩니다.

마을의 유일한 여관인 국경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키가 남들보다 머리 반 개 정도 크고 호리호리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마른 청년이었다. 얼굴을 감추기 위해 기른 듯한 수염이 꾀죄죄한 얼굴과 어우러져 거지 같은 꼴이었다. 큰 배낭을 메고 지팡이를 짚은 꼴도.
-빈 방 있습니까?
카운터에 앉아 빈둥대고 있던 여자아이가 인사를 꺼내기도 전에 큰 걸음으로 현관에서 카운터까지 한 걸음에 들어와-라고 해 봐야 여자 걸음으로도 두 걸음이면 충분했다-다짜고짜 묻는 억양이 북쪽 섬마을 사람 특유의 억센 억양이었다. 여자아이가 흘끔 쳐다보고 졸린 목소리로 달달 외운 듯한 멘트를 건넸다.
-예, 혼자 묵으시게요? 한 달 이상 계실 거면 지금 계산하시면 할인해 드려요.
-2주.
-예?
-2주만 있을 겁니다. 그렇게 아세요. 열쇠 주시면 알아서 들어가죠.
단호하게 2주라고 시간을 말하고, 요금을 계산해서 카운터에 던지다시피 두고, 청년은 배낭을 추스르고는 열쇠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카운터에 있던 소녀는 1층 구석으로 달려갔다. 1층 구석에는 여관 주인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이 있었고 그곳을 지나자 뒤뜰에서 여관 주인이 마늘을 다듬고 있었다.

국경여관의 주인은 한 때 모종의 일로 국경을 넘어 이 나라를 떠나려고 했으나 결국 국경을 넘지 못하고 마을에 눌러앉으면서 여관집 아들이었던 조용하고, 성실해서 눈 앞의 일은 어떻게든 해치우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없었던, 혹은 못 하는 남자와 결혼한 여자였다. 덩치는 작았으나 목소리는 깡통에 돌을 넣고 흔드는 소리보다 더 요란하게 컸고, 한 번씩 남편을 윽박지르는 모습이 볼 만하다고 동네에 정평이 나 있었다. 그리고 술버릇이 굉장히 재밌어서 가끔 술을 마시고 이 놈의 동네 후딱 망해버리라고 술주정을 하면 동네 사람들이 구경을 온다는 소문도 있었다. 국경여관의 남편은 항상 손에 책이 들려 있었는데 그나마도 몇 번을 읽어 손때가 타고 탄 책이어서 표지만 봐서는 무슨 책인줄도 알 수 없었다. 마을에서 25리 떨어진 곳에 있는 초급학교도 가 보지 못했던 그가 학교 선생이 되고 싶다고 했다가 그의 아버지에게 코뼈가 부러질 만큼 맞고, 그 때 어쩌다 그 마을에 머물던 여자와, 둘 다 자포자기에 빠져 결혼한 끝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아버지를 닮아 묘한 성격에 어머니를 닮아 체구가 작은 여자아이였다. 그 아이가 카운터에 있던 소녀이다.

소녀는 어머니 옆에 주저앉아 남는 칼을 들고 마늘을 다듬으며 말했다.
-엄마, 손님. 그런데 2주만 있을 거래.
-행색이 어떻디?
깐 마늘을 칼로 얇게 저미며 주인여자가 물었다.
-뭐 다 똑같지. 큰 배낭 메고 꾀죄죄-한 꼬락서니 하고.
-2주? 글쎄 딸아, 네가 볼 땐 어떨 것 같으냐?
-2주는 무슨. 엄마,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 잡일꾼 필요하지 않나?
-호오, 그것도 그렇다?
딸의 심드렁한 말투에 주인여자는 피식 웃었다.

남쪽 국경지역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다. 이웃나라와 전쟁으로 이 땅이 왕국의 땅이 된 지가 100여년, 내란이 일어난 지가 40여년. 치안은 불안정했고 국가의 눈과 귀가 국가의 모든 곳을 보고 들을 수는 없는 일이었고 남쪽 국경 앞에는 사막이 있었다. 사막을 넘어선 국경지대에 광산이 있다는 소문이 돌아도 국가가 그곳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반골 기풍이 강한 남쪽 사람들에다 온갖 사람들이 다 모여들자 남쪽 국경지역은 거칠디 거친 사람들이 사는 곳의 대명사가 되었다. 광산을 노리고 모여든 광주, 노동자, 사기꾼, 장사꾼들. 거기다 모든 죄인들이 얌전히 형을 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보안법에 관련된 죄수들은 잘도 도망을 다녔다. 특히 국경여관에 머무는 손님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아서 지난 몇 십년 간 국경여관을 거쳐간 보안법사범들을 모으면 당을 하나 만들 수도 있을 거라는 농담이 지하세계에서 빈번하게 돌았다. 당을 만들면 되는데 못 만드는 이유는 그들 중 사분지삼 정도는 왕국의 감옥에서 썩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치안이 불안정하긴 해도 보안사범들은 철저하게 잡아가는 것이 왕국의 특징이었다.
아무튼 그 여관 주인의 딸인 소녀는 어려서부터 온갖 잡배들과 어울려 자라서 문을 들어서는 사람의 행색만 봐도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마을 전체에 심심찮게 돌았다. 그리고 또 소녀에 관련된 소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여관에 묵는 사람이 그 곳에서 살게 될 지 아니면 마을을 빠져나가게 될지, 빈 손으로 돌아갈지 뭐라도 건져 돌아갈지까지도 알 수 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간혹 그녀가 무당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으나 그녀가 맞힐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여관에 관련된 것들 뿐이었으므로, 그녀의 능력-능력이라면 능력을 본 사람들은 알았다. 그것은 통찰력일 뿐이라고.

그 청년이 국경여관의 잡일꾼이 된 것은 그로부터 약 한 달 반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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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 이야기도 안 썼는데 이건 또 웬 새 거냐고요. 저도 모릅니다. (어슐러 르 귄 때문에 속이 상해 쓸 수가 없어요. 젠장 조금만 틀면 오도나 디엔이나;) 생각나는 대로 일단 써 놓은 거라서-낮에 운동삼아 동네 산책하다가 떠오른 겁니다- 이야기가 더 이어질지 저걸로 끝날지는 아무도 몰라요.
여관 남편 모델은 주드 맞습니다; 다른 이야기인데 닥터후 3시즌 보긴 봐야겠어요. 보신 분들 반응이 왜들 이리 환상적인지. 새 파트너 언니랑이야 당연히 잘 지내시겠죠, 닥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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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

모처럼 휴일이니 쓰려던 건 쓰고 자렵니다. 봄이 남아있던 자리, 진청은 루트고 의진이랑 청은이만 나옵니다. 내용들 대충 짐작이 가시죠? 게임 내용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니만큼 미리니름이 좀 섞여있습니다.
조-금 수정했습니다. 원래 인용하려던 인용문도 넣어서.


사실 저런 내용 아니었던 것 같은데 쓰다 보니 얘네가 제 멋대로 놉니다?
제 의진이는 청은이 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하진이 속도 좀 꿰고 있고요. 좀 징한 오빠잖아요. 다 알기 때문에 제일 무서운 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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