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들자 마자 사람을 죽였다. 손에 묻은 피가 몇 명분인지 몰랐다. 지금도 자신은 피를 묻히며 산다. 그럼에도 죽은 자가 꿈에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장 먼저 죽였던 자, 부모의 얼굴은 이제 기억도 나지 않아, 펜으로 눈코입을 그렸다 빨아서 온통 번진 낡은 헝겊인형마냥 희미했고 그 희미한 얼굴마저 꿈에서 나온 적도 없었다.
꿈없는 잠은 깊은 물처럼 어둡고 컴컴해서 쉬기에 좋았다. 그럼에도 그만은 꿈에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런 밤이면 베개가 늪처럼 축축하니 끈적거렸다. 깨고 나면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슬펐던 날도 있었다.

그가 또 꿈에 나왔다.
-
무어라고 입이 달싹였으나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다.
-미안하다.
-
말은 바람에 날려서 낙엽처럼 날아갔다.
-네가 아닌 줄은 알아. 하지만 한 번 더 너와 싸우고 싶었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
-안다. 다시는 눈에서 놓지 않겠다.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겠어.
그러니 록온, 간곡한 목소리로 부르는 말도 들리지 않는지 그는 손을 흔들었다.

깨고 나서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가 나오는 꿈을 꾸었는데.

-------------------------------------------------------
더블오에 손을 댄 건 오펜 말을 빌자면 '나에게 있어 천사와 악마' 되겠습니다.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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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라일이 데리러 온 시점이 언제인지가 궁금했다. 당연히 세라비랑 합류한 직후일 거라고 생각했지. 거기다 이성적인 주위분들이 이 점을 상기시켜 주셨다. 건담 대수는 몇 대인지 알고 파일럿 확보를 해야.
나도 끽해봐야 알렐이 구출하기 전인지 아닌지가 궁금했지 설마하니 합류하기 전이라곤 생각도 못 했다고? 아니 생각은 잠시 했지만 금방 덮었다고? 세츠나가 그럴 리가 없다고 난 믿었지?

......어쩜 저렇게 이성적인 판단이 무색한 떡밥을 던질 수가 있지? 뭐가 어쩌고 어째, 건담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라일을 데리러 갔다고오?
너는 그 사람이 너의 닐 디란디가 아닌데도 그의 쌍둥이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원할 수 있었던 거냐 세츠나. 그렇게까지 맹목적인 애정이었니.
그래서 너는 록온 스트라토스라고 한 점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못을 박을 수 있었던 거로구나.

2시즌 메인 커플링은 세츠라일로 달린다.
그리고 책 외전도 저걸로 간다. 그래 내가 물리느니 물어주지! 떡밥인 줄 알면서도 물어주겠어. 저걸로 외전 쓴다. 죽은 비행사를 위해서 비행기를 라일에게 주는 세츠나로 하지.

(이상 점심시간에 날리는 글)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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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이 오셨다 무릎을 꿇어라!!!!

이미 네타로 다 아는 이야기가 나왔음에도................말을 못 잇겠다 나중에 정줄 잡고 쓰겠다.
실시간으로 넋 잃고 달렸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저녁 먹고 운동 좀 하고 MP3를 완전포맷하고 파일을 다시 채워넣었다. 그리고 건담 아는 친구들에게 문자 돌리고. 그러고 나니 이제 정줄이가 좀 돌아오는 느낌이다. (이것아 내일 출근 안 하냐. 넌 학생이 아니고 직장인이야.) 참고로 방영 전엔 피아에게 전화까지 해서 함께 실시간으로 달리자고 꼬시기까지 했다.

피아야, 우리 아일랜드는 힘들 것 같고 올 겨울에 제주 아일랜드에라도 가서 서귀포 바닷가에서 닐 디란디 죽일놈이랑 검은물 이 썩을 놈들 외치고 올까? 탕아 애들 다 끌고 가서 MT 할까? 물론 파일 챙겨서 상영회 해야지. 이런 비슷한 이야기도 했다. 비슷한 이야기.

그리고 지금은 내 인생의 명곡인 I put a spell on you를 듣고 있다. 미친 듯 악악악 고함 지르면서 because you are mine! 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포인트.

이제 정화가 좀 되었으니(......) 감상을 좀 써 보자. 인물 중심이고 별 알맹이는 없다. 내가 언제나 그렇듯. 그래도 미리니름 만발. 안 본 분들은 피하시오.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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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렐루야 구출 소재입니다.
원작, 캐릭터 왜곡이 심하니 그런 거 싫으신 분은 넘어가시고요. 세츠나가 싸나이가 아닙니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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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루트에서 파일을 낚아서 가져다준 M 양에게 감사인사를.

1. 처음부터 24화 재탕? 하면서 잠시 짜게 식을뻔 한 나. 제가 믿음이 부족하였습니다 굽신굽신
2. 한 방? 한 방?
그러나 저는 티에리아랑 알렐루야는 한 방 안 썼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은 커녕 어린애소리 듣기 딱 좋을 나이 14세를 20대인 형님이 보살펴주는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겠지. 다만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어린애는 삐치니까 형님이 에둘러 이야기한 것일 뿐.
......님들 티에리아랑 알렐루야랑 한 방에 넣어놓으면 무슨 웃기는 꼴이 날지 생각을 해 보세요 으하하하
3. 엑시아를 처음 만나는 소년의 감개.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거기서 더 긴 이야기를 안 한 건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적당히 끊을 줄 아는 미덕이 필요하지. 주절주절 설명하면 짜게 식어요.
4. 대놓고 너는 나와 닮았어 크리. 야 원작이 동인들보다 더하면 어떡하니?
하지만 저게 진실이니까. 지금껏 말로 하지 않았을 뿐 다들 짐작은 하고 있지 않았나. 8년 전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아이에게 마음을 쓰는 오지랖 넓은 어느 청년과 그 청년을 여신으로 모시고 그 뒤를 피투성이 손으로 따르는 소년.
록온 스트라토스는 여신 인증이 뜬 캐릭임. 오늘 메신저에서 깨달았는데 모 님 말씀하시길 엑시아의 머리색과 눈색을 기억하라고. 그래, 마리나 이스마일이 세츠나에게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여자라면 엑시아는 세츠나 마음 속의 여신이고 여자고 그 여신과 여자는 록온에서 싹튼 거다. 같이 싸울 수 있고 같은 곳으로 달려갈 수 있는. 게다가......어머니랑은 못 자지만 여신이랑은 잘 수 있지.
5. 세츠나, 너 자체가 불안요인이었겠구나. 티에리아가 왜 그리 못 잡아먹어 했는지 알겠다......그런데 이런 걸 2기 방영 1주일전에 터뜨리는 쿠로다 너 뭐냐?
6. 알렐이 너 정말 의외로 이지적이로구나 OTL
7. 스메라기 씨 당신이야 말로 젊다는 건 좋은 일이군요
8. 저기요 그라함 스페셜인가 뭔가 그거 전 그라함 빠돌들이 붙인 이름인 줄 알았거든요?
9. 아저씨 댁이 딸한테 붙여주려는 남자는 호모에 건담한테 미친 변태거든요? 그래도 거기서 그 자리 물러날 줄 아는 미덕을 가진 걸 천만다행으로 알라고요.
10. 남자의 로망 좋아한다.
11. 운명의 소년? 한길에서 사람 뿜게 하지 마!
12. 후만쟈~!!!
13. 아저씨 쵸릿-스가 그렇게 해 보고 싶으셨나요 OTL

이상 감상을 마치겠습니다 진지한 이야기래놓고 듣는 사람을 웃게 만들었지.

그리고 그 대건담용 전투.......1기 끝에 나왔던 걸 굳이 한 번 더 떠올리게 만드는 건, 혹시나 만에 하나 배신플래그를 상정하고 적은 거냐? 그런 거냐? 앞부분에 저번 대사 재탕한 거 이거 티 안 나게 하려고 작정한 페이크 맞지? 정말 수상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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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은 건담마이스터들과 크루들이 모여있던 중 일어났습니다.
-와 세츠나, 많이 컸다.
-그렇지 않다. 키나 몸무게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어.
어려서 잘 먹지 못해 키도 몸무게도 남성의 평균치에 미치지 못하는 건담 마이스터는 4년만에 만나는 동료의 인사를 무심히 넘겼습니다.
-그래? 달라진 것 같아서 키가 많이 컸나 하고.
-뭔가 좀 달라진 것 같은가?
드디어 뭔가 알아챈 모양입니다. 은근한 기대가 담긴 물음에 알렐루야는 세츠나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습니다.
-응, 많이 변한 것 같은데, 분위기가. 음, 뭐지.....아!
동료의 손가락이 세츠나의 턱주변을 가리켰습니다. 세츠나는 흐뭇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 이거 말인가. 성인남자라면 기르는 거라서 나도 이제 기르려고 한다.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지 1주일, 요 며칠 적응훈련이네 작전계획이네 바빠서 아무도 자신의 수염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아 솔직히 섭섭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알아봐주니 얼마나 좋은가요. 세츠나는 이제 수염이 간신히 자리잡은 턱밑을 흡족한 마음으로 쓰다듬었습니다. 멋지게 다듬은 콧수염, 까맣고 풍성한 턱수염이야말로 남자의 미덕. 세츠나는 흐뭇하게 수염이 멋지게 자란 자신의 얼굴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어? 그러고 보니 잠깐만, 세츠나.
갑자기 알렐루야의 목소리가 날아와서는 상상속의 자신의 얼굴위에다 무한대의 파문을 그려놓았습니다.
-어, 다 좋은데 콧수염은 안 기르는 게 좋겠다. 많이 듬성듬성하네.
콧수염을 기르지 말라니 이 무슨 망발입니까. 그러고보니 거울을 봐도 코 밑엔 수염자국이 거의 안 보여 참 기분이 나쁘던 참에 아픈 곳을 찌르다니! 세츠나는 코 밑을 슬쩍 만져보았습니다. 듬성듬성 자란 콧수염이 손가락에 까끌까끌했습니다. 수염이 많아지는 중이니까 언젠가는 풍성하게 자랄 거라고 믿고 있는데 저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고보니 참 수염이 듬성듬성 자란다. 음, 원래 콧수염이 별로 없는 체질인가봐?
언젠가는 분명 풍성하게 콧수염이 자랄 거라고 되뇌는 그에게 2연타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어 시간차공격이 진행되었습니다.
-안 기르는 게 좋을 거야, 그러면. 수염 듬성듬성 나면 되게 웃기거든.
-.......웃긴다고?
-아니 그, 왜 콩나물 시루.......라고 너는 잘 모르겠지만 동양에선 콩을 구멍이 뚫린 시루에 넣어 물을 주고 키우는데 그게 시루 밑으로 가는 뿌리가 빠져나오면 꼭 그런 모양이거든.
세츠나는 침묵했습니다.
-넌 수염이 많이 자라지도 않아서 안 기르면 면도할 땐 참 좋겠다.
남의 속도 모르고 해맑은 얼굴로 떠드는 동료의 얼굴이 그날따라 참 얄미워 보였습니다.
-수염이 많이 나면 면도하기 힘들거든? 랏세가 그래서 되게 귀찮아했는데. 그렇죠?
알렐루야는 환히 웃으며 자기 말을 거들어줄 사람을 모집했습니다. 안 돼, 오지 마. 세츠나의 간절한 바람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세상에 신 같은 건 없어요. 건너편에 앉아있던 동료들이 하나둘 가까이 와서 세츠나를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매일 면도하는 거 그거 보통 일이 아니라니까! 수염은 또 기르기 얼마나 귀찮은데. 넌 좋겠다, 세츠나. 면도하기 편하고 관리하기 편해서. 그거 좋은 거야.
-것 봐, 세츠나. 랏세도 그러잖아. 티에리아 봐라. 얼마나 편하게 보여.
수염과 한 조각 인연도 없게 생긴 동료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깔끔한 얼굴도 건담 마이스터의 품위 문제와 관련이 있다. 잘 관리하는 건 중요하지. 그런데 세츠나 F. 세이에이.
-왜 그러나?
세상에 신이 없는 건 그렇다치고 내 편도 아무도 없나, 아니 이 자들은 어떤 환경에서 자랐기에 수염의 미덕도 모르나, 어이없어 하는 세츠나에게 티에리아마저 강펀치를 날렸습니다.
-역시 기르지 않는 편이 좋겠어. 그 콧수염은 길렀을 때 좋은 모양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관리를 전혀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우려가 있어. 게다가 턱수염도 굉장히 범위가 좁다. 알렐루야 합티즘 말이 맞아. 길렀다간 오히려 웃기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저런 걸 뭐라고 부르나, 록온 스트라토스.
형제와 꼭 닮았지만 성격은 딴판인 새 동료는 피식 웃으며 세츠나의 턱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파안대소하며 말했습니다.
-음, 저거? 염소수염이라고. 왜 닮았잖아.
형제와 같은 얼굴로 전혀 딴판으로 반응을 하니 위화감이 두 배에 충격이 두 배입니다. 티에리아가 그의 말을 받아 세츠나의 소중한 수염을 한 마디로 분석해주었습니다.
-그렇군, 정말 염소 턱수염과 비슷하다.

세츠나 F. 세이에이, 21세. 어느 화창한 아침에 우울한 얼굴로 수염에 면도기를 대게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
수정했습니다.
메신저 대화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얼굴이 가늘고 긴 남자들이 수염도 가늘더라고요. 게다가 저 듬성듬성한 염소수염은 주위에 모델이 하나 있어서 평소 받은 인상을 바탕으로 써 봤습니다. 수정 전에 덧글 써 주신 이레 양 백야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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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어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싶으신 분들- 모두모두 레드썬!

에이 그냥 인증하고 치우렵니다. 모 사이트에 올린 걸 손을 봤어요. 역시 사람은 글을 쓰고 퇴고를 해야 합니다. 그냥 두려니까 제가 찝찝해서 견딜 수 있어야 말이죠. 그래도 인증 안 하려고 했는데 보리밭 충격이 너무 커서 말입니다. 거기서 벗어날 겸 손을 보고, 손 보는 김에 그 사이트에 올린 건 지우려고 하다 답글이 달린 걸 보고 뭉클해서 안 지우고 돌아왔음. 누구신진 모르겠지만 정말 고맙습니다. 그 분이 이걸 보실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정말로 고마워요. (보셔도 아마 인증을 꺼리는 풍토 상 덧글 안 다시겠지만 기왕 인증하는 김에 이런 건 표현을 해야죠.)
------------------------------

"살이 텄네?"
엎드린 알렐루야의 허벅지를 베고 뒹굴거리던 록온이 갑자기 툭 내뱉은 말은 앞뒤전후좌우를 다 잘라먹은 말이라 알렐루야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 살이 터요?"
"여기 말이야."
록온은 알렐루야의 오금께를 손가락으로 주욱 훑었다. 간지러운지 알렐루야가 쿡쿡 웃자 록온의 머리도 웃음소리를 따라 흔들렸다.
"아, 뭔지 알겠다. 거기 꼭 소금물 말라붙은 자국 난 것 같은 데? 록온 그거 이야기하는 거예요?"
"응, 너 갑자기 키가 확 자랐나보다."
"그렇죠, 어릴 땐 작았으니까. 그런데 그건 왜 물어요?"
"글쎄, 그냥. 이걸 보니까 너도 아직은 클 나이라는 게 생각이 났나보다.."
"에이, 이제 더 클 키도 없어요."
아직 십대 후반, 덜 자란 남자는 소리내어 웃었다.
"짜샤 그 소리 아니거든......"
록온이 어이없다는 듯 한숨쉬며 중얼거렸다. 알렐루야는 웃음을 멈추고 엎드린 채로 몸에 힘을 빼고 팔다리를 길게 뻗었다. 허벅지를 베고 있는 록온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어, 갑자기 많이 큰 건 어떻게 알았어요?"
"키가 그렇게 크면 원래 살이 트거든. 특히 관절 있는 데."
"맞아요. 재 본 적은 없지만 1년에 15cm도 더 컸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갑자기 크면 후유증도 좀 있는데."
"전 좋았어요. 체구가 있으니까 살기도 편하고. 그래도 그 때는 자다가도 가끔 깼어요, 다리가 아파서."
알렐루야가 평온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그 때는 아마 요 최근 몇 년간은 아닐 것이다.처음 봤을 때와 키나 체격이 그렇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으니까. 록온은 무심히 머릿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알렐루야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프니까, 저 자신도 놀랄만큼 금방 키가 자라더라고요. 몸도 탄탄해지고. 그래서......"
말을 하다말고 알렐루야는 말꼬리를 흐렸다. 의무를 기억한 것이려니.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타인의 과거는 무겁다. 비밀 엄수를 최우선으로 하는 그들이고, 서로 간의 교류도 깊은 수준은 아니라서 지금껏 남의 과거를 들어본 적은 별로 없었다. 더 이상 선을 넘었다간 서로에게 좋지 않으려니. 록온은 말 대신, 대화가 끊긴 것은 괜찮다는 뜻에서 손을 들어 알렐루야의 등을 쓰다듬었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이 살을 쓸자 알렐루야가 등을 움츠린다. 난처한 듯 웃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록온은 생각했다.
"어릴 땐 작았다면서 이 근육은 다 어떻게 붙였냐. 재주도 좋은 놈."
화제를 돌리자 알렐루야가 금방 대답했다.
"예? 뭐 그냥 운동 좀 하고 어릴 때 보다 잘 먹다보니까 생기더라고요."
"너 그 말 세츠나 앞에선 절대 하지 마라."
"예? 안 돼요? 벌써 했는데?"
록온은 알렐루야와 같이 트레이닝을 하는 세츠나를 떠올려 보았다. 어쩐지 열심이더라니. 그 녀석 말은 안 해도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었나보다. 하기야 이 정도 근육을 어느 남자가 안 부러워하겠냐. 에이 별 거 아닌데 왜 그래요, 그게 별 거 아니면 랏세가 운다, 등등 시덥잖은 대화를 하는 동안 땀은 마르고 록온의 손길이 점점 나른해지다, 딱 멎었다. 베고 있던 허벅지에서 머리를 들고, 몸을 일으키고 옷을 주워입는 록온의 등을 알렐루야가 멀거니 쳐다보자, 록온은 장갑을 다시 낀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러 갈게. 내일 훈련 때 보자."
"아, 불편해요? 전 바닥에서 자도 되는데요."
조금 놀란 듯 당황한 듯 반응하는 알렐루야를 향해 록온은 입가에 그린 듯한 미소를 띄웠다.
"아니 그런 건 아냐. 잘 자라."
문이 스르륵 열리고 록온도 조용히 사라졌다. 알렐루야는 아직도 체온이 남아있는 허벅지를 손을 뻗어 만져보았다. 말을 돌리게 만든 이유도 자신의 말을 부드럽게 막아놓고 나간 이유도 짐작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자신이 아는 것을 반신이 모를 리가. 내일 다시 만나면 저 사람은 네 튼살은 기억하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반신의 야유가 들렸지만 알렐루야는 반신에게 자신의 등을 쓰다듬던 맨손의 감촉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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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시마가 특별히 언급한, 더블오의 주제와 관련이 깊다던 영화를 보고 왔다.
나 그냥 이 영화를 못 본 셈 치던가 더블오를 못 본 셈 칠란다. 저 작자 아리오스란 이름도 붙였겠다 이제 마음잡고 테러질 하는 것만 남은 것 같은데 이 일을 어쩌면 좋을꼬.
(그런데 정말 합체 하는 거냐, 불안하다. 제발 그것만은. 볼레로 충격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됐어. 또 모르지. 이번엔 합체해야 세 배로 힘 내게 설계해 놨는데 누구누구가 배신해서 합체를 못 해서 죽도록 깨지고 몰살모드로 들어가고 정신붕괴 돌입이라던가? 배신한 쪽도 당하는 쪽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던가, 그럼 살짝 봐줄 듯 말 듯?)

둘 중 한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이클 콜린스를 비난할 수도 있고 옹호할 수도 있듯이. 반이나마 가질 수 있는 게 어디냐, 더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지금까지 무얼 위해 동지들이 죽어갔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란 말이냐, 끝까지 전진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데미언도 테디도 고를 수 없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 역시, 이 영화를 보도록 권해 주신 모 님처럼 데미언에게 동조했지만, 동생에게 그만 하라고, 너는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냐고, 이 정도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계라고 말하는 테디의 말은 위선이 아닌 진심이지 않았나. 사실 테디의 선택이 가장 위험하지 않은 길로 보이기도 하니까. 물론 그 선택 덕에 지금도 아일랜드는 갈라져 있다. 하지만 둘 중 뭐가 좋고 나쁘다곤 말하고 싶지 않다. 나 역시 어떻게든 아일랜드 전체가 독립했어야 한다고 믿지만, 그 당시 조약을 거부했으면 아일랜드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심술맞은 생각이 들면 뭐라고 말을 못 하겠다.
 
한 뜻으로 공동의 적을 향해 싸우고 서로 돕던 사람들이 서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가장 좋은 조국을 만들기 위해 갈라져서 원하지도 않는데 서로 미워하고 결국은 서로 싸우게 되는 과정이 굉장히 평온하고 절제된 모습으로 화면에 비쳐서, 그게 가장 무서웠다.
어떻게 너희가 나에게 이럴 수 있니, 내 식탁에서 먹고 내 집에서 숨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라고 외치던 아주머니의 심정이 그들 모두의 심정이었을 거다. 우리도 저랬지 않나. 당장 1945년부터 얼마나 많이들 싸웠냐고.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더 슬펐다. 영국인이면서도 저런 걸 만든 감독에게 나부터 존경의 인사를 좀 드려야겠다.

두 형제의 행동이 똑같은 결과를 낳고 똑같은 대답을 듣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감독의 악의를 읽었다. 잔잔하게 염장지르는 게 제일 무섭지, 암.

요 몇 년간 본 중 가장 무서웠다.

덧 : 알렐루야는 이 영화를 보면서 세상의 악의를 읽을 것 같다. 세츠나는 왜 세상은 비뚤어졌냐면서 고민할 것 같고 티에리아는 인간은 왜 저럴지 지금부터 차근차근 생각해 볼 것 같다. 그런데 록온은 이 영화 보면서 아무 말도 안 할 것 같다. 제일 무섭다.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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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다여 쿠로다여
어찌 내 피를 말리시니이까
어찌 나를 염장질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죽어가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망할 놈의 쿠로다여
내가 낮에도 죽어가고 밤에는 더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은 확인사살이로소이다

동인녀의 한탄 속에 거하시는 쿠로다여
당신 잘난 거 우리 다 압니다
온 더블오덕들이 댁에게 기대하였고
기대한 만큼 우리를 수렁에 던지셨나이다
우리가 댁의 이름을 부르짖어 죽어가고
척살능력을 믿어도 뒤통수를 맞으니이다

나는 검은물의 노예요 이미 민간인이 아니라
포스팅이 일이요 코챈의 건빠게이이외다
나를 보는 자는 다 혀를 차며
입술을 삐죽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저가 건담을 봤으니 저 지경일 걸, 저가 M이니 기뻐할 걸 하나이다
 
오직 네타가 나를 잠수에서 나오게 하고
내 네타 한 조각에 의지해 웃고 울게 하셨나이다
내가 처음부터 검은물에게 맡긴바 되었고
네타를 볼 때 부터 검은물은 내 애증이 되었사오니
나를 그만 염장지르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많은 2차창작이 나를 에워싸며 이 바닥 무서운 분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손을 놀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뼈는 모두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건담이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시편 22편.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한 구절은 윈디 언니가 도움 주셨습니다. "응답은 확인사살이로소이다" 이 부분입니다. 언제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자랑하시는 언니에게 감사의 손키스를.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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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오스의 유래에 대해 읽었다.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월에 시멘트를 들고 갈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지금 가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 한 마디로 줄이면, 쿠로다는 알렐루야를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사랑하는 만큼 괴롭혀 주는 것이려니. 아니면 알렐루야를 데리고 노는 걸 좋아하거나. 건담 이름에 의미를 부여한 대로 전개가 된다면 말이지, 하고 최대한 좋게 생각하려고 했는데 대놓고 천상의 존재들인 주제에 저런 이름을 붙이면 답은 빤하잖나. 이 나쁜.
대놓고 공기취급이었던 건 다 이유가 있는 게지. 화끈하게 한 건 해 보거라.

천사들 이야기를 읽다가 전에 본, 옛 페르시아의 유물이 떠올랐다. 황소의 뿔과 맹금류의 날개를 단 사자. 세츠나가 뿔 달리고 날 수 있는 건담을 좋아하는 건 전통이라고 농담하면서 웃었는데 아 정말! 저 동네 신화가 공중제비 몇 바퀴 돌면 뭐가 되겠냐! 세츠나의 신은 그렇다 치고, 황소........흠 없이 키워 순결한 불로 태워 바치는 황소 어쩔 거야. (황소나 양이나 뿔 달린 건 같나? 아 몰라!)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엔 굳게 각오하고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겠노라. 1916년 부활절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는데 나 혹시 진성 M으로 나아가고 있나요 그런 건가요.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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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오 버닝하면서 안면(인지 서면인지.....)을 트게 된 분들은 좋은 분들이시다. 그래, 좋다는 수식어야 당연히 붙지.
그런데 좋은 야수들이셨다. 적절한 상황에 적절히 상처를 내는 방법을 아신......아니 아냐, 적절히 상처내는 거 절대 아냐! 즐거운 주말아침부터 시멘트 바닥에 상하좌우로 좍좍 긁힌 내 심장은 누가 위로해 주나.

.......그런데 내가 지금 낚은 사람들도 씨 뿌리면 식인식물로 자랄 가능성이 한 102%는 되는데 내가 내 무덤을 팠나?

여튼 저는 아침부터 죽어갑니다.

덧 : 코챈에도 사람 잡는 글게이 그림게이 몇몇 포진해있음.  내가 아는 분들인지 모르는 분들인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세상은 넓고 용자는 많음. 이글루에도 무서운 팬워크가 종종 올라와서 심장에 스크래치.
아니 원래 원작이 징글징글하면 2차창작도 막 나가기는 함.

근데 문제는 저렇게 잘 해 주시니까 너무 좋다는 거야. 나 이러다가 희대의 M 되는 거 아니냐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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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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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파르르륵 하긴 했는데 이제 마음은 평온하다. 뭐 그 화면만 직접 안 들이대면 발작 안 할 정도로는.
사실 나는 2기를 걱정했는데(선라이즈에서 2기라고 만든 것 치고 잘 된 걸 못 봤다.) 잘 해 줄거라는 믿음이 좀 생겼다. 저렇게까지 한 건 저게 필요했다는 뜻이니 어떻게든 피가 튀기는 스토리를 만들어 주겠지. 십자가를 진다는 말이 공염불로는 안 끝나기를 바란다. 내가 S라서 그런 건 아니고 -실지 내가 S더냐 M에 가까운 수륙양용이지.-이 이야기가 사람을 죽이면 나빠요라던가, 그래도 주인공은 불쌍하니까 봐 줘야 해요라던가 이렇게 끌고 갈 이야기는 아니잖나.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는 잔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1기는 결국 어느 테러리스트 조직이 어떤 모순을 안고 어떻게 무너졌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니까, 문제의 2쿨부터 그렇게 난리도 아니었지. 이제 2기는 시간도 많이 흘렀고 그간 애들한테 온 변화도 상당하던데 걔들이 뭐든 답을 찾아야 하지 않나. 애들도 분명히 성장했으니 더더욱.
사실 티에리아의 굳건한 모습이 가장 반가웠다. 그래 1기에서 네가 인간이 될 계기는 충분했으니 이제 인간이 되어야지. 록온이 죽어 아이들은 자랐다. 거름은 저렇게 뿌리는 것. 자 선라이즈 이제 세츠나가 개초딩이 아니고 알렐루야가 소녀가 아니며 티에리아가 푼수가 아니라는 것을 세계만방에 알릴 때다, 잘 해 봐라. (아니 그렇다고 쟤네가 좋은 놈이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고.)

이래놓고 스토리 안드로메다로 가면 정말로 죽이러 현해탄을 건너가 버릴 테다. 가서 누가 날 잡고 동기가 뭐냐고 묻거든 웃으면서 저 작자가 우리 록온을 죽이고도 스토리 말아먹었으니 죽어마땅하다고 하던가 아니면 낄낄 웃으면서 동기? 그건 죽음이 원했기 때문이오! 하면서 좀비춤을 추던가.
어머 쿠로다는 잘 해도 죽고 못 해도 죽겠네. 당신 처신 잘 해야겠다?

그리고 다시 보니까 건담 더블오 1시즌 마감한 후 최대의 수혜자는 빌리였다.
결국 둘이 잘 된 거면 저거, 세상에 드물다는 그 첫사랑이랑 잘 된 케이슨데 나이 서른 몇까지 첫사랑 소녀 기다리는 저 놈도 보통은 아니잖아. 좋겠다 빌리 카타기리. 순정남이 기밀 팔아서 연애하더니만 결국 소득이 있었구나. 좋더냐? 사실 처음에는 보고 엄마야 저거 뭐야 애들도 보는 데 저런 애프터 나와도 되냐? 하면서도 살짝 애매했던 게 저게 둘이 잤다고 보기엔 미묘한 거다. 스메라기는 술 퍼먹고 퍼져 자고 있고 빌리는 공돌이 답게 컴질이나 하고 있는 분위기기도 했고. 그런데 자세히보니까 마누라 재워놓고 잔업하는 남편 모드; 뭐야 동거 몇 년은 한 분위기 저거 뭐야!
스메라기는 조직을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후회하고 삽질했으니까. 더 이상 감당 못 할 것 같아서 나왔으려니. 록온 말마따나 강한 척 하는 것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나와봐야 이미 민간인으로 행복하게 살긴 글러먹었다. CB에 관여해놓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냐.
 그래서 앞으로도 빌리가 최대의 수혜자일 거라고는 말 못하겠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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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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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염장을 질러라.
내 심정을 말로는 못 하겠고 짤방으로 대신하겠노라. 이 짤방 사이트 알아놓길 잘 했지 참 적절하네.
그러니까 전에 파푸와 66화 보던 날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됨. 가서 공부나 해야겠다. 900쪽짜리 책 왔는데 그거 다 읽고 나면 해맑은 마음으로 핸드폰화면을 볼 수 있으려니.
(핸드폰 화면-지구를 저격하는 모 씨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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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 미리니름 다량함유
나는 당연히 그 사람이 우주로 돌아간 줄 알았지. GN 입자에 몸이 부서지건, 우주의 어딘가로 떠밀려가건 아무튼 우주의 일부가 되어서 지구에는 안 올 줄 알았는데 웬걸? 무덤이 다 있다네. 아아 호상이구나, 이 사람도 지구에 왔지만 성묘할 무덤이라도 있으니 남은이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인가 하면서 좋아했는데

호상 좋아하네 빌어먹을.
피투성이 얼굴, 수축된 동공, 단말마를 지르다 굳은 채로 죽은 얼굴? 죽은 사람 얼굴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게 왜 무서운지 알긴 알지 너네들?
세츠나는 그거 가져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시신 수습하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리고 하로는? 하로는 그걸 봤을까? 그 처참한 테러리스트의 죽음을.

쿠로다가 DVD 특전에서 얼굴 가린 건 다 이유가 있다니까. 그 작자 얼굴 인증 떴다간 길 가다 정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로 가는 수가 있는 걸 본인도 아는 게지.

사실 방금 생각한 건데, 처참한 시신인증은 록온다운 죽음을 증명하는 것 맞다. 1기가 괜히 다 죽고 실패하는 걸로 끝났겠어. 토끼몰이당하듯 죽고 다치는 게 예고되어 있었으니까. 당연한 수순이지. 테러리스트의 절망적인 죽음. 하지만 쿠로다 이 작자야. 네 가족 죽었소, 하고 말로 이야기해 주는 거랑 직접 시신 가져 와 이렇게 이렇게 죽었소 설명하는 거랑 같냐?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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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달다 정상인 코스프레 어쩌고, 에서 떠오르는 게 있었다.
생각해보니 취향수비범위에 저것도 들어가잖아.(......) 부인하고 싶어서 말을 안 했는데 겉 다르고 속 다른 놈들 되게 좋아했다.

어려서 대놓고 겉 다르고 속 다른 팔계나 칼 헬턴트 좋아했던 과거를 왜 까맣게 잊었을까; 흑역사라 그런가. 아무튼 오란고교 보면서 쿄우야가 인간실격 읽는 걸 보면서 저 놈이 저 책 들고 있는 이유를 알겠다며 낄낄 웃는 지경에 이르른 것이니. 내가 금색의 코르다 플레이하면서 남들은 블랙모드 유노키는 마왕이니 어쩌니 할 때 저 꼬마(...) 되게 웃기네라면서 시종일관 비웃음으로 일관한 건 다 이유가 있다. 애가 어설퍼서. 미연시 캐릭터들은 내가 좋은 게임을 못 봐서 그런 건지 어설픈 데가 있다니까.
(코르다에서 제일 괜찮은 캐릭은 츠치우라와 시미즈다. 저학년들이 고3이나 선생보다 더 어른이다. 만세. 복슬복슬한 양같은 껍데기에 속지 말라니까!)

그래도 겉다르고 속다른 놈 취향은 여전해서 방향이 다른 쪽으로 겉 다르고 속 다른 애들한테 관심을 지속적으로 주고 있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일본문학사에 정상인 코스프레로 1등 먹을 놈이 한 놈 있다. 좀 방향은 다른데 타인이 너무 무서워서 거기 맞춰 가면을 쓰고 살다 보니 천하의 다메닌겐(.....젠장 다른 말이 생각이 안 나!)에 인생막장. 오바 요조라고 유명한 인물이 하나 있다. 오바 요조, 혹은 쓰시마 슈지 등등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인간들의 뿌리는 사실 작가였으니 우리도 익히 아는 그 인간. 다자이 오사무라고 있지 않나. 찌질이대마왕이라고. (음, '마'자도 좀 아깝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난 다자이 오사무를 욕하면서 좋아하는 인간이고.

그리고 여기에 정상인 코스프레에 능한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 이름 록온 스트라토스라.
왜 난 항상 그 밥에 그 나물로 놀지? 죽은 놈에 가장에까지 능하니 이건 진짜 도망갈 데가 없잖아, 아니 그 전에 그걸 왜 이제 깨달았냐 이 인간아! 미친 듯 자가연성질로 깨달은 게 고작 그거냐!

......그런데 잠깐, 분명히 좋은 분들이 좋은 거 많이 써 주신다고 안 써도 되겠다며 좋아한 게 불과 몇 개월 전 일인데 왜 내가 쓰고 있지?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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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연수중이러 컴으로 딴 짓을 많이 하는데(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모처 건담판 보다가 벨파스트 사진 한 장과(올려주신 분, 감사합니다.) 엔딩의 한 장면을 보고 머릿속엔 망상이 몽글몽글 피어올랐으니, 일단 그 놈이 닐 디란디인 건 확실하고(설마 1기 엔딩에 나온 그 놈이 라일이었다, 이런 짓까진 안 할 거 아냐.) 시간 대가 언제냐는 건데......저게 록온의 과거라면 시위 같은 세상을 바꾸는 법에 관심은 많을 것 같은데 그 기사처럼 시위를 주동하는 인물인지는 모르겠다. 내 눈에 걔가 리더감은 절대 아니거든. 리더를 가장은 하겠지. 저걸 누가 썼느냐가 문젠데 그래, 어느 애니잡지 보니까 기사로 사람 낚더라 뭐.
다른 애들을 볼 때 1화 직전쯤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럼 그 시위를 주동하는 입장은 아닐 거라는 데 한 표. 테러리스트 주제에 무슨. 어쨌거나 아일랜드 사람이니까 동네 또래청년들 형님들 어울려 있는데 혼자 그냥 지나치기 뭐해서 조금은 이 사람들이 부럽고, 조금은 안 됐고, 조금은 짠한 마음으로, 아아주 조금은 냉소적인 마음으로 현장에서 같이 구호를 외친 게 아닌가, 하는 망상을 하다가 (어쨌건 자기는 거기 끼어들 수 있는 인간이 아니잖나.)그 곳이 록某의 안가가 있는 곳이라는 걸 떠올렸다.

난 설정도 고증도 안 하고 쓰고 고치는 인간이다. 흠흠. 아니 사실은 퇴고도 안 해. 생각나면 써. 생각이 안 나서 그렇지.
---------------------------------------08. 08. 16 조금 수정. 난 왜 이리 허술하냐-----------------

시위 현장에서 목청 높여 구호를 외치고 있는데, 근처에서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나보다 조금 바깥에, 그렇다고 아주 대열에서 벗어난 건 아닌데 미묘하게 시위대열과 어긋나게 서 있었다. 옆집에 사는 청년이었다. 옆집에 산다고 해 봐야 사실, 무슨 일을 하는지 집은 자주 비우는 것 같다. 집에 불이 켜져 있는 날이 반, 안 켜진 날이 반. 그것도 요 최근엔 불이 꺼져 있는 날이 잦다. 젊은 남자 혼자 사는 것 같다며, 혼자 살면 잘 못 챙겨먹기 십상이니 이웃은 그런 사람에게 관심을 쏟아주는 것이 도리라는 것이 우리 부모님의 신조라 반경 50m 내에 사는 사람들과는 거의 안면을 트고 사귀고 있는데, 이 사람은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이 동네에 이사온지 4년은 된 것 같은데 한 번도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보니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었더라.
내 이웃에 사는 젊은 남자는 시위대 옆에서, 살짝 비껴선 자세로 구호를 외치며 다른 사람들처럼 손을 젓고 있었다. 살짝 헐렁한 자세인데 묘하게 딱딱해 보였다. 전에 딱 한 번 대화를 할 때도 그랬다.
뭐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하여간 뭘 부숴뜨려먹어서 드라이버를 찾았는데 십자드라이버가 없어서 이웃에 빌리러 간 적이 있었다. 이웃인데도 어쩐지 긴장이 되어서,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벨을 눌렀다.
-옆집 사람인데요, 아무도 안 계세요?
잠깐, 아주 잠깐 뜸을 두고 나서 목소리가 났다.
-네, 갑니다!
대답은 해 놓고 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 젖은 목이며 팔이며 등이며 입고 씻기라도 했는지 좀 젖은 옷에,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나타난 젊은 남자는 웃으며 사과부터 했다. 멀리서 볼 때는 냉한 인상이었는데 말투도 표정도 참 수더분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고, 이거 미안하게 됐네요. 씻던 중이라 꼴이 이렇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아 아뇨, 제가 죄송합니다. 그냥 십자드라이버를 빌릴 수 있을까 해서 왔는데 씻고 계셨군요.
묘하게 남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싱긋 웃고는 발랄한 말투로 말했다.
-드라이버? 잠시만 기다려요.
그러고는 현관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조금 있다 손에 십자드라이버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꼴이 이래서 들어오시라곤 못 하겠네요. 쓰시고 나중에 돌려주세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이 이상 발을 들이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씻고 있는데 나타났으니 들어가면 싫어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마지막 용건만 마치고 돌아가기로 했다.
-고맙습니다. 저, 이거 답롄데 드셔보세요.
이웃과 친해지는 지름길은 음식을 나눠먹는 것이다. 나는 빵 몇 종류가 들어있는 봉투를 내밀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더니 봉투를 잡았다.
-오, 감사합니다. 따끈한 걸 보니 집에서 만드신 건가보네요?
-네, 제가 요리를 좋아해서요.
-야아, 귀한 거네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드라이버는 이따 돌려드릴게요.
-아, 네. 혹시 저 없으면 문 앞에 두고 가시고요.
그는 봉투 속에서 버터롤을 꺼내 요리조리 돌려보며 정말 기분좋은 얼굴로 웃었다. 인사를 주고 받은 다음,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굉장히 사교성 좋고 서글서글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이 위화감의 정체는 뭘까.
오후에 드라이버를 돌려주러 갔을 때, 집이 비어 있고, 문 앞에 작은 주머니가 걸려 있어서 거기 드라이버를 놓고 간 기억도 났다. 웃으며 이야기했는데 왜 깊이 접근하지 말라고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까. 아무튼 한동안 그 집은 비어있었다.

나는 앞에 선 사람에게 들고 있던 피켓을 넘기고 행렬의 가로 몸을 옮겼다. 시위대는 여전히 주먹을 쥐고 구호를 소리높여 부르짖고 있었다. 위치를 옮겨서 잘 보니 그가 그 곳에 서 있었것은 아주 잠시였던 듯, 이내 피식 하고, 웃더니 이내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던 길이었나보다. 몇 발짝 걸어가다, 대열에 섞여 그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나와 그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한 얼굴에 재빨리 웃음을 띄우고 그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어라, 옆집 분이시네요. 안녕하세요?"
"네, 시위에 참가하셨나봐요."
그는 헛기침을 했다.
"뭐어 그런 거죠. 그나저나 아직 어려보이는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그렇지도 않아요. "
칭찬을 받고 머쓱해져 고개를 긁적이다보니 어느새 그는 돌아서 방향을 틀었다. 고개만 돌리고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럼 안녕히."
"네, 그러니까, 어......."
물어보려고 고개를 돌리자 그는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평범한 안부인사나 왜 그러냐는 일상적인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때 어제 내게 드라이버를 빌려주고, 보답으로 내가 구운 버터롤을 준 그 사람의 이름을 모른다는 걸 알았다. 기억나는 것은 물건을 매개로 잠시 스쳐간 손의 온도 정도.
그 때 물건을 빌리러 갔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때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은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였다.
그는 마치 잘못 합성한 사진처럼 풍경 속에 억지로 몸을 밀어넣고 있었다. 그 증거로 얼마 전부터 빈 그의 집이나, 그가 살던 때의 그의 집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리고 내가 억지로 기억을 뜯어내서 생각하지 않았다면 잊고 넘어갈 뻔 한 것이 하나 더 기억이 나기도 해서였다. 시위 현장에서 그가 보였던 그 냉소적이고 약간은 아련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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