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들자 마자 사람을 죽였다. 손에 묻은 피가 몇 명분인지 몰랐다. 지금도 자신은 피를 묻히며 산다. 그럼에도 죽은 자가 꿈에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장 먼저 죽였던 자, 부모의 얼굴은 이제 기억도 나지 않아, 펜으로 눈코입을 그렸다 빨아서 온통 번진 낡은 헝겊인형마냥 희미했고 그 희미한 얼굴마저 꿈에서 나온 적도 없었다. 꿈없는 잠은 깊은 물처럼 어둡고 컴컴해서 쉬기에 좋았다. 그럼에도 그만은 꿈에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런 밤이면 베개가 늪처럼 축축하니 끈적거렸다. 깨고 나면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슬펐던 날도 있었다.
그가 또 꿈에 나왔다. - 무어라고 입이 달싹였으나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다. -미안하다. - 말은 바람에 날려서 낙엽처럼 날아갔다. -네가 아닌 줄은 알아. 하지만 한 번 더 너와 싸우고 싶었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 -안다. 다시는 눈에서 놓지 않겠다.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겠어. 그러니 록온, 간곡한 목소리로 부르는 말도 들리지 않는지 그는 손을 흔들었다.
깨고 나서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가 나오는 꿈을 꾸었는데.
------------------------------------------------------- 더블오에 손을 댄 건 오펜 말을 빌자면 '나에게 있어 천사와 악마' 되겠습니다.
나는 라일이 데리러 온 시점이 언제인지가 궁금했다. 당연히 세라비랑 합류한 직후일 거라고 생각했지. 거기다 이성적인 주위분들이 이 점을 상기시켜 주셨다. 건담 대수는 몇 대인지 알고 파일럿 확보를 해야. 나도 끽해봐야 알렐이 구출하기 전인지 아닌지가 궁금했지 설마하니 합류하기 전이라곤 생각도 못 했다고? 아니 생각은 잠시 했지만 금방 덮었다고? 세츠나가 그럴 리가 없다고 난 믿었지?
......어쩜 저렇게 이성적인 판단이 무색한 떡밥을 던질 수가 있지? 뭐가 어쩌고 어째, 건담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라일을 데리러 갔다고오? 너는 그 사람이 너의 닐 디란디가 아닌데도 그의 쌍둥이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원할 수 있었던 거냐 세츠나. 그렇게까지 맹목적인 애정이었니. 그래서 너는 록온 스트라토스라고 한 점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못을 박을 수 있었던 거로구나.
2시즌 메인 커플링은 세츠라일로 달린다. 그리고 책 외전도 저걸로 간다. 그래 내가 물리느니 물어주지! 떡밥인 줄 알면서도 물어주겠어. 저걸로 외전 쓴다. 죽은 비행사를 위해서 비행기를 라일에게 주는 세츠나로 하지.
이미 네타로 다 아는 이야기가 나왔음에도................말을 못 잇겠다 나중에 정줄 잡고 쓰겠다. 실시간으로 넋 잃고 달렸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저녁 먹고 운동 좀 하고 MP3를 완전포맷하고 파일을 다시 채워넣었다. 그리고 건담 아는 친구들에게 문자 돌리고. 그러고 나니 이제 정줄이가 좀 돌아오는 느낌이다. (이것아 내일 출근 안 하냐. 넌 학생이 아니고 직장인이야.) 참고로 방영 전엔 피아에게 전화까지 해서 함께 실시간으로 달리자고 꼬시기까지 했다.
피아야, 우리 아일랜드는 힘들 것 같고 올 겨울에 제주 아일랜드에라도 가서 서귀포 바닷가에서 닐 디란디 죽일놈이랑 검은물 이 썩을 놈들 외치고 올까? 탕아 애들 다 끌고 가서 MT 할까? 물론 파일 챙겨서 상영회 해야지. 이런 비슷한 이야기도 했다. 비슷한 이야기.
그리고 지금은 내 인생의 명곡인 I put a spell on you를 듣고 있다. 미친 듯 악악악 고함 지르면서 because you are mine! 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포인트.
이제 정화가 좀 되었으니(......) 감상을 좀 써 보자. 인물 중심이고 별 알맹이는 없다. 내가 언제나 그렇듯. 그래도 미리니름 만발. 안 본 분들은 피하시오.
1. 사지 크로스로드 : 너만은 그래도 멀쩡하구나. 이 미친 놈들이 우글거리는 정신나간 세상에서 얘랑 얘 누나랑 얘 여친만 일반인이었다. 이제 누나는 죽었고 애인은......어 그러니까 님은 먼 곳에, 맞지? 그럼에도 이 애는 끝까지 평범한 21세 남자애가 할 만한 사고를 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그래서 너는 세츠나의 그림자고, 세츠나는 그림자가 총을 쏘았으니까 그 총을 똑바로 노려보고 자신의 행동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발 너만은 일반인으로 살아라.
2. 왕류밍 : 저건 신선도 아닌 것이 일방적으로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라는 둥 말을 함부로 해서 제일 인간같지 않았더랬다. 너한텐 뭐가 절실해서 저런 애들 스폰서에 매니저를 해 주는지 전부터 묻고 싶었다. 그러니까 운동권(녹두단이 시위에서 피를 근절하기 위해서 아예 힘으로 시위현장을 싹 정리하는 걸 상상해 보자. 어 이거 되게........미안하네. 혹시 관계자가 본다면 사과할게요. 예 들기 위해 적은 농담이니까.) 애들 밥 사주는 유한마담 같아 보여서 싫었단 말이다. 이번엔 확실히 밝혀. 네 목적이 뭔지만 제대로 이야기하면 처음부터 리본즈랑 붙어 있을 때 아, 이년이......라고 무심결에 중얼거린 거 사과할게. (저 막 욕하고 다니는 여자 아니에요오 믿어주세요.)
3. 알렐루야 합티즘 : 한 컷 나왔다. 무슨 드라큘라 백작님 후손쯤 되는 줄 알았다. 아니면 미쳐서 흡혈할 틈이 없어 죽어가는 말카비안이나.
4. 록온 스트라토스 : 담배도 피우냐. .......평생 담배 피워 본 적 없는 나마저 한 대 땡기고 싶게 만드는구나 너. 저치가 가진 차 록온이 가진 거랑 똑같은 거였다. 음 그래 쌍둥이는 떨어져 있어도 무심 중에 같은 것을 고른다고 하지. 물건도 취향도 같고 심지어 남자도 같은 타입이랬던가.
5. 티에리아 아데 : 싸나이다, 싸나이다! 이 아이가 저렇게 잘 크다니 기쁘기 한량없다.
6. 펠트 그레이스 : 예쁘다.
7. 미레이유 : 아데 상이래 글쎄 아데 상.
8. 루이스 : 애가 폐인이 다 되었더라. 약 하나 못 먹어서 손을 떨고 있었다. 저렇게까지 된 애가 왜 전쟁에 나오는지, 또 리본즈와 관계는 뭔지.
9. 리본즈 : 목소리가 제일 알아듣기 쉬웠다. 역시 후루야 토오루 님. 그런데 루이스랑 무슨 관곕니까. 당신.
10. 세츠나 : 세츠나를 앞으로 꼬꼬마라고 부를 수 없다. 이건 싸나이다. 남자다! 세상에 세상에 동네사람들 세츠나가 글쎄 "다맛테이로!"라고 그랬어요. 총을 쏴요. 근데 생각보다 잘 맞아요. 4년간 단독행동의 결과인제 엑시아는 완전 너덜너덜해졌더라. 천을 두른 건 상처를 숨기기 위한 것인듯.(그런데 야 츠나야. 나 처음에 보고 어린 남자애들이 보자기 매고 자기가 슈퍼맨이라고 우기는 거 생각나서 되게 웃겼거든.) 헛소리는 관두고, 그 때와 똑같다며 과거를 회상하는 세츠나가 여전히 그 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겠고, 그 애에게 그 죽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알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장했다는 것도 알았다. 이 애는 소년병이고 한 번 모든 것을 잃다시피 한 건담마이스터였고 세상의 왜곡 때문에 싸우는 아이였지. 그 점을 명백히 밝혀줘서 고마웠다. 이제 2기에서 머리 잡고 통곡할 걱정은 접겠어.
11. 곰부녀 : 훈훈하십니다. 그런데 그 댁 아들 어째.......
12. 가면남 : 나오자마자 처녀자리 이야기 할래 인마. 넌 건담만 보면 처녀자리로서 사명감에 불타오르냐.
13. 카탈론 멤버즈 : 정말 반정부단체네? 미약하고 숨어 행동하고. 그런데 군데군데 요인들은 짱박혀 있고.
물론 배경음악은 지나치게 훌륭했고 화면은 실시간 도둑질 영상으로 봐도 훌륭했으며 연출은........개블에 있던 게이들이 단체로 소름돋아했다. 이상. (물론 더블오빠들이니 저 부들부들은 안 믿으셔도 좋습니다.)
4년이 지난 세계를, 세츠나 F 세이에이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요인을, 그리고 앞으로 나갈 길을 조금 제시한 1화였다고 생각한다.
알렐루야 구출 소재입니다. 원작, 캐릭터 왜곡이 심하니 그런 거 싫으신 분은 넘어가시고요. 세츠나가 싸나이가 아닙니다. 흑.
새로운 건담을 만난 감개도 잠깐, 그 건담과 새 멤버로 시작한 미션은 알렐루야 합티즘의 구출이었다. 알렐루야를 적지에서 끌고 나온 것은 세츠나였다. 티에리아가 굳이 그렇게 할 것을 제안했고, 세츠나도 군말 없이 따랐다. 케루딤 건담 파일럿부터, 그 후 4년간 벌어진 이야기는 그를 구출한 다음, 알렐루야 합티즘이 아리오스의 파일럿이 되어도 괜찮을지 판단한 다음이라는 것이 둘 사이의 묵계였다. 약해진 사지로도 굳이 부축해 주겠다는 세츠나의 손을 거절하고 지상에 내려온, 그리고 묵묵히 재활훈련을 시작한 눈에 녹색 옷을 입은 케루딤 건담 파일럿이 보인 것은 그러니까, 명백한 실수였다고 티에리아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직후 그는 원인불명의 두통을 일으키고 의무실에 누워있었다. 4년 전의 원인불명의 두통과도 비슷해 보였다.
-어떻게 된 거냐. 의무실에서 나와 복도를 돌자 티에리아가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당연한 수순인 듯 세츠나는 놀라지도 않고 티에리아의 앞에서 바를 잡고 섰다. -면목이 없군.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더니 주저앉아 버렸다. -의무실엔 누가 데려다줬나? -억지로 일어나더니 자기 발로 걸어갔다. 티에리아가 혀를 찼다. 깐깐한 성격은 여전한 모양이었지만 4년 만에 만난 티에리아는 그럭저럭 한 조직의 참모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원체 꼼꼼한 성격이라 그런 일이 잘 어울리기도 한다고 생각했다. 록온 스트라토스는 모르겠고, 세츠나가 자신을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4년만에 만난 알렐루야 합티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좋게 말하면 타인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가 되었고 나쁘게 말하면 뭔가 하나 빠진 사람이 되었다. 4년 세월은 사람을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몰고 가곤 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알렐루야 합티즘이 맞으면서도 다른 사람이었다. 되돌아오는 데에 시간이 걸리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저런 식일 줄은 몰랐다. -여기들 모여 있었네. 아까 그 사람 좀 어때? 록온 스트라토스가 두 사람이 모인 곳에 끼었다. -아, 록온 스트라토스. -알렐루야 합티즘이라면 안정을 취하고 있다. 티에리아가 인사를 하자 세츠나가 바로 대답했다. -너희들 날 보고 울컥대는 거야 이제 그러려니 싶지만, 저치는 대체 뭐냐? 어이없는 얼굴로 록온이 물었다. 표정에 불만이 드러났다. -재활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주면 어떻겠나. 솔직히 말하면 저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게 반가울 지경이야. 티에리아가 설명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무엇에도 관심을 두지 않던 알렐루야가 사람을 보고 그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내심 반갑기도 했던 것이다. 다만 그 격한 반응에, 놀란 멤버들이 더 문제였고 감정조절이 안 되는 알렐루야 합티즘이 건담을 타도 되는 건지가 가장 걱정이었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문제다. 저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어. -굉장히 섬약한 사람이었나봐? 록온 스트라토스의 말에 티에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남보다 마음이 약하긴 했지만 오히려 어떤 면으론 더 잔혹하고 무딘 편이었지. 섬약하지는 않았다. -알렐루야 합티즘은 강인한 자였다. 그 록온 스트라토스가 없어진 직후, 세츠나가 숨을 삼켰다. 4년이 지나도 말을 잇기 힘든 것이 있었다. -그는 우리의 의견을 모았고 싸울 것을 건의했다. 그런 자라도. 세츠나의 눈이 록온 스트라토스를 향해 움직였다. -이 일은 충격적인 것인가. -마음이 약해진 탓이다. 티에리아가 단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지는 법이다. 게다가 그에게 소개도 없이 저 록온을 보인 건 실수였어. -보인 게 아니야. -응? -보인 게 아니다, 티에리아 아데. 알렐루야가 굳이 보고 싶어 한 거야. 록온이 어이없는 얼굴로 세츠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그래. 티에리아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보여줬나? -그래. -어디까지 알려줬나. -아마 네가 알고 있는 선까지는 알 거다.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했어. 알아서 조사를 해 본 모양이더군. 그래서 보여줬다. 날이 선 티에리아의 질문에 대답하는 세츠나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세츠나 F. 세이에이. 여전히 어리석군. -미안하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기서 버티지 못하면 그건 알렐루야 합티즘의 잘못이 아닌가. -네 말이 맞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어. -그렇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야기하지? 두 사람의 목소리가 조금씩 격해졌다. 세츠나의 눈빛이 가라앉고, 티에리아의 눈꼬리가 올라가는 순간, 록온이 몸을 움직여 두 사람 사이에 섰다. -그만 해라. 오래된 동료라면서 뭐 하는 짓이야. 그리고 지금 제일 충격받을 사람은 나거든? 도대체 그 녀석 뭘 어쨌길래 보는 사람마다 날 어떻게 못 해서 안달이래? 노려보던 두 사람의 시선이 떨어지고 나서 먼저 사과한 것은 세츠나였다. -미안하다. 록온 스트라토스. 저자는 네……아니, 전의 록온을 각별히 따랐다. 세츠나의 말 끝에 묻어나는 엷은 한숨에 록온이 혀를 차고 한 손으로 머리를 긁었다. 몇 번 겪어 익숙한 일을 처리하는 사람 특유의 체념이 묻어나는 동작이었다. -그런 것 같네.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고, 그럼 나는 사라지지. 아무래도 내가 끼일 자린 아닌 것 같아. -그래. 그리고 책임지는 의미에서 내가 정리를 하지. 그러면 되겠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며 생색내지 마라. 티에리아가 한숨을 쉬었다. -그럼 록온 스트라토스. 모의전 결과를 정리해서 제출하기 바란다. 세츠나 F 세이에이는 알렐루야 합티즘의 상태를 가라앉힌 다음 마저 이야기하지. -알겠다. 가라앉히기만 하면 되는 건가? -기왕이면 알렐루야 합티즘이 현상황을 빨리 납득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겠다. 티에리아는 세츠나를 노려보았다. -난 늘 너에게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지. -차라리 고맙군. 알겠다. 내 할 일은 하지.
복도를 돌아 두 사람의 모습이 없어지고 세츠나는 의무실의 도어록을 해제했다. 멍하니 허공을 보고 앉아있던 알렐루야가 멀거니 문을 쳐다보았다. 세츠나는 벽에 말을 거는 기분으로 말을 건넸다. 왜 그런지 말을 걸고 싶지 않았지만, 동시에 무슨 말이라도 걸고 싶었다. 우선 그의 옆에 다가가 앉아 이름을 불렀다. -알렐루야. -아, 두통은 가라앉았어, 이제 괜찮아. 여전히 멍한 얼굴에 특유의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알렐루야가 말했다. -티에리아가 보냈겠구나. 걱정하고 있겠지. 내가 아리오스를 조종할 수 있을지. 소심한 듯 정곡을 찌르는 발언에 세츠나는 뭐라 말 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하고도 싶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전혀 실례가 아닌 상황임에도 어쩐지 그런 말 대신 다른 말을 더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쪽을 골랐다. -사실과 과히 다르지도 않다만, 그것도 그거지만 네가 너무 달라진 것도 우리에겐 위험요인이다. -나 자신은 별로 4년 전과 다르지도 않은걸. 그건 그렇고, 알렐루야의 어정쩡한 미소가 씁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록온……그러니까 우리가 알던 그 록온은 아니지, 아무튼 록온은? -괜찮다.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거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하기야. 아까부터 피식피식 헛웃음을 흘리는 알렐루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츠나는 할 일을 얼른 해치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보다 여기서 이 질문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뭣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너는 괜찮은가. -뭐가? -많이 놀란 것 같은데. -놀랐다기보단 음, 그냥 좀 충격이었지? -그 말이 그 말이다만. 4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알렐루야 합티즘의 언변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말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아냐, 정말 충격이었어. 꼭 우리가 알던 그 록온처럼 생겼는데 록온이 아니어서. -아니라고? -응. 닮은 듯 한데 그 사람은 아니라서 그게 충격이었지. 초인병의 감각인가, 세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성격도 많이 다르다. 빨리 파악했군. -그냥 감이야. 알렐루야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표정을 지었다. 눈빛이 다른 공간을 헤메듯 어둡게 가라앉았다. -감? -응, 그냥 감. 감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어감상 즐겁게 않게 들리기는 처음이었다. 세츠나는 말을 돌리고 싶었다. -그럼 그 두통은 뭔가. -나도 몰랐지만, 역시 록온이 없다는 건 충격적인 일인 모양이야. 그 여파가 아닐까 하고.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이런 두통은 안 겪을 줄 알았는데. -안 겪을 줄 알았다고? -그야, 이제 뇌양자파 간섭을…… 음, 아냐. 많은 것을 잃었다. 셀레스티얼 비잉에 잃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알렐루야 합티즘은 그 때, 자신의 유사인격을 잃은 듯 하다고 들었다. 이제 그는 온전히 혼자이다. 록온 스트라토스도, 늘 함께 살아온 반신도 없어졌다. 자신과 같다. -아무튼 내 두통은, 더 이상 내가 왜 이런지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그럴지도 몰라. 그저 그 뿐, 더 이상 충격을 받지도 않을 것 같다. -역시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다. 좀 더 안정을 취하겠나? 그리고 세츠나는 그제서야, 왜 자신이 그와 대화하는 역할을 맡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자신은 알렐루야 합티즘과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알렐루야가 자신과 이야기를 하게 하고 싶었다. 록온을 매개로 한 대화가 아니라, 자신과 마주보는 대화를. 왜 하필 지금, 이 때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자신조차 모를 일이었지만. -에이, 괜찮아. 세츠나, 걱정해주지 않아도 돼. -안색이 좋지 않아. 세츠나는 알렐루야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내심, 그가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이 은근히 기쁜 자신이 기분나빴지만, 이런 식으로 그에게 간섭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다는 건 4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와 얼굴을 마주볼 수 있을 만큼 자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자기자신과의 대화가 아닌 남과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더 이상 그와 곧장 대화하는 것을 방해할 요인은 없었다. -내가 걱정을 끼쳤구나. 알렐루야가 어깨를 짚은 손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너에게까지 걱정을 끼치게 될 줄은 몰랐어. 하지만 정말 충격을 받은 것 뿐이고, 나는 금방 회복할 거야. -아니, 알렐루야. 세츠나가 하는 말은 듣지 않는 듯, 알렐루야는 먼 곳을 보는 듯 아련한, 혹은 멍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 증거로 세츠나가 하는 말이 무참하게 잘렸음에도 알렐루야는 자기가 뭘 잘랐는지 몰랐다. 저건 먼 곳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내면이라고 세츠나는 생각했다. 그는 항상 자기자신의 내면과 먼저 대화를 한다. 세계와의 소통은 그 다음. -그 때의 그 사람만큼 나이를 먹었는데. 변한 것이 많다고 생각한 자신이 틀렸다고 세츠나는 생각했다. 4년 전과 같다. 알렐루야는 그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록온의 등을 보고 있다. 지금도 그의 내면에 들여다 볼 누군가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티에리아가 말했다. 하지만 이제 볼 록온의 등도 없는데, 낯선 등에 그 그림자를 투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한 그 어느날만큼, 자신이 어리다는 것을 실감한 적은 없었다. 자신은 투영할 그림자조차 되지 않았기에. -알렐루야 합티즘. 멍한 눈길로 알렐루야가 세츠나를 바라보았다. -4년이 지났다. 이제 여기를 볼 때야. 나는 그 때의 너보다 더 나이를 먹었어. 너와 같은 입장이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자신조차 모를 때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어려서부터 말주변과는 담을 쌓아왔던 탓에. 하지만 저 말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알렐루야에게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은 저것일지도 모른다. 세츠나의 말을 듣고 알렐루야는 눈을 크게 떴다. 멍한 눈에 검은 점 같은 빛이 한 조각 또렷하게 들어왔다. 세츠나의 말에 대한 분명한 반응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츠나, 저기. -대답은 안 들어도 된다. 세츠나의 손이 알렐루야의 목덜미를 덮었다. -어서 돌아와라. 알렐루야 합티즘. 형제를 포옹하듯 세츠나가 알렐루야의 머리를 팔과 어깨로 감싸안았다. -마주보고 이야기할 준비가 되면 그 때 대답해라.
------------------- 어느 지겨운 연수날, 마침 모 님께 연락을 드리다 그 분이 좋아하시는 커플에 생각이 미쳤고 그럼 이번엔 이런 걸 써 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개요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당신만큼-여기 제가 좀 목을 매는 편이거든요. 저 대사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온 알렐루야와 그를 보는 세츠나에 대해 개요를 짜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글을 마저 쓰기 위해 친구들에게 문자를 돌렸습니다. 지금 이런 거 쓰고 있어요, 라고. 벗님들 약속 지켰소. 이제 다른 거 달리러 가리다.
하지만 쓰던 개요와는 달리 저 아이들은 먼 데로 가 버렸습니다. 캐릭터 왜곡에 대한 책임을 물으셔서 저를 돌로 치셔도 좋습니다. 저 소녀들 대체 뭡니까; 저거 원래 록세츠록 베이스의 세츠알렐이었단 말입니다? 사나이이신 세츠나님께 저 무슨;
혹시 나중에 수정하는 한이 있어도 지금은 올려야겠습니다. 이거 2기 방영되면 쓰지도 못할 떡밥이니 지금 풀어야 쓰겠어요.
1. 처음부터 24화 재탕? 하면서 잠시 짜게 식을뻔 한 나. 제가 믿음이 부족하였습니다 굽신굽신 2. 한 방? 한 방? 그러나 저는 티에리아랑 알렐루야는 한 방 안 썼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은 커녕 어린애소리 듣기 딱 좋을 나이 14세를 20대인 형님이 보살펴주는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겠지. 다만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어린애는 삐치니까 형님이 에둘러 이야기한 것일 뿐. ......님들 티에리아랑 알렐루야랑 한 방에 넣어놓으면 무슨 웃기는 꼴이 날지 생각을 해 보세요 으하하하 3. 엑시아를 처음 만나는 소년의 감개.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거기서 더 긴 이야기를 안 한 건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적당히 끊을 줄 아는 미덕이 필요하지. 주절주절 설명하면 짜게 식어요. 4. 대놓고 너는 나와 닮았어 크리. 야 원작이 동인들보다 더하면 어떡하니? 하지만 저게 진실이니까. 지금껏 말로 하지 않았을 뿐 다들 짐작은 하고 있지 않았나. 8년 전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아이에게 마음을 쓰는 오지랖 넓은 어느 청년과 그 청년을 여신으로 모시고 그 뒤를 피투성이 손으로 따르는 소년. 록온 스트라토스는 여신 인증이 뜬 캐릭임. 오늘 메신저에서 깨달았는데 모 님 말씀하시길 엑시아의 머리색과 눈색을 기억하라고. 그래, 마리나 이스마일이 세츠나에게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여자라면 엑시아는 세츠나 마음 속의 여신이고 여자고 그 여신과 여자는 록온에서 싹튼 거다. 같이 싸울 수 있고 같은 곳으로 달려갈 수 있는. 게다가......어머니랑은 못 자지만 여신이랑은 잘 수 있지. 5. 세츠나, 너 자체가 불안요인이었겠구나. 티에리아가 왜 그리 못 잡아먹어 했는지 알겠다......그런데 이런 걸 2기 방영 1주일전에 터뜨리는 쿠로다 너 뭐냐? 6. 알렐이 너 정말 의외로 이지적이로구나 OTL 7. 스메라기 씨 당신이야 말로 젊다는 건 좋은 일이군요 8. 저기요 그라함 스페셜인가 뭔가 그거 전 그라함 빠돌들이 붙인 이름인 줄 알았거든요? 9. 아저씨 댁이 딸한테 붙여주려는 남자는 호모에 건담한테 미친 변태거든요? 그래도 거기서 그 자리 물러날 줄 아는 미덕을 가진 걸 천만다행으로 알라고요. 10. 남자의 로망 좋아한다. 11. 운명의 소년? 한길에서 사람 뿜게 하지 마! 12. 후만쟈~!!! 13. 아저씨 쵸릿-스가 그렇게 해 보고 싶으셨나요 OTL
이상 감상을 마치겠습니다 진지한 이야기래놓고 듣는 사람을 웃게 만들었지.
그리고 그 대건담용 전투.......1기 끝에 나왔던 걸 굳이 한 번 더 떠올리게 만드는 건, 혹시나 만에 하나 배신플래그를 상정하고 적은 거냐? 그런 거냐? 앞부분에 저번 대사 재탕한 거 이거 티 안 나게 하려고 작정한 페이크 맞지? 정말 수상쩍어!
그 일은 건담마이스터들과 크루들이 모여있던 중 일어났습니다. -와 세츠나, 많이 컸다. -그렇지 않다. 키나 몸무게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어. 어려서 잘 먹지 못해 키도 몸무게도 남성의 평균치에 미치지 못하는 건담 마이스터는 4년만에 만나는 동료의 인사를 무심히 넘겼습니다. -그래? 달라진 것 같아서 키가 많이 컸나 하고. -뭔가 좀 달라진 것 같은가? 드디어 뭔가 알아챈 모양입니다. 은근한 기대가 담긴 물음에 알렐루야는 세츠나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습니다. -응, 많이 변한 것 같은데, 분위기가. 음, 뭐지.....아! 동료의 손가락이 세츠나의 턱주변을 가리켰습니다. 세츠나는 흐뭇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 이거 말인가. 성인남자라면 기르는 거라서 나도 이제 기르려고 한다.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지 1주일, 요 며칠 적응훈련이네 작전계획이네 바빠서 아무도 자신의 수염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아 솔직히 섭섭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알아봐주니 얼마나 좋은가요. 세츠나는 이제 수염이 간신히 자리잡은 턱밑을 흡족한 마음으로 쓰다듬었습니다. 멋지게 다듬은 콧수염, 까맣고 풍성한 턱수염이야말로 남자의 미덕. 세츠나는 흐뭇하게 수염이 멋지게 자란 자신의 얼굴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어? 그러고 보니 잠깐만, 세츠나. 갑자기 알렐루야의 목소리가 날아와서는 상상속의 자신의 얼굴위에다 무한대의 파문을 그려놓았습니다. -어, 다 좋은데 콧수염은 안 기르는 게 좋겠다. 많이 듬성듬성하네. 콧수염을 기르지 말라니 이 무슨 망발입니까. 그러고보니 거울을 봐도 코 밑엔 수염자국이 거의 안 보여 참 기분이 나쁘던 참에 아픈 곳을 찌르다니! 세츠나는 코 밑을 슬쩍 만져보았습니다. 듬성듬성 자란 콧수염이 손가락에 까끌까끌했습니다. 수염이 많아지는 중이니까 언젠가는 풍성하게 자랄 거라고 믿고 있는데 저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고보니 참 수염이 듬성듬성 자란다. 음, 원래 콧수염이 별로 없는 체질인가봐? 언젠가는 분명 풍성하게 콧수염이 자랄 거라고 되뇌는 그에게 2연타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어 시간차공격이 진행되었습니다. -안 기르는 게 좋을 거야, 그러면. 수염 듬성듬성 나면 되게 웃기거든. -.......웃긴다고? -아니 그, 왜 콩나물 시루.......라고 너는 잘 모르겠지만 동양에선 콩을 구멍이 뚫린 시루에 넣어 물을 주고 키우는데 그게 시루 밑으로 가는 뿌리가 빠져나오면 꼭 그런 모양이거든. 세츠나는 침묵했습니다. -넌 수염이 많이 자라지도 않아서 안 기르면 면도할 땐 참 좋겠다. 남의 속도 모르고 해맑은 얼굴로 떠드는 동료의 얼굴이 그날따라 참 얄미워 보였습니다. -수염이 많이 나면 면도하기 힘들거든? 랏세가 그래서 되게 귀찮아했는데. 그렇죠? 알렐루야는 환히 웃으며 자기 말을 거들어줄 사람을 모집했습니다. 안 돼, 오지 마. 세츠나의 간절한 바람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세상에 신 같은 건 없어요. 건너편에 앉아있던 동료들이 하나둘 가까이 와서 세츠나를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매일 면도하는 거 그거 보통 일이 아니라니까! 수염은 또 기르기 얼마나 귀찮은데. 넌 좋겠다, 세츠나. 면도하기 편하고 관리하기 편해서. 그거 좋은 거야. -것 봐, 세츠나. 랏세도 그러잖아. 티에리아 봐라. 얼마나 편하게 보여. 수염과 한 조각 인연도 없게 생긴 동료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깔끔한 얼굴도 건담 마이스터의 품위 문제와 관련이 있다. 잘 관리하는 건 중요하지. 그런데 세츠나 F. 세이에이. -왜 그러나? 세상에 신이 없는 건 그렇다치고 내 편도 아무도 없나, 아니 이 자들은 어떤 환경에서 자랐기에 수염의 미덕도 모르나, 어이없어 하는 세츠나에게 티에리아마저 강펀치를 날렸습니다. -역시 기르지 않는 편이 좋겠어. 그 콧수염은 길렀을 때 좋은 모양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관리를 전혀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우려가 있어. 게다가 턱수염도 굉장히 범위가 좁다. 알렐루야 합티즘 말이 맞아. 길렀다간 오히려 웃기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저런 걸 뭐라고 부르나, 록온 스트라토스. 형제와 꼭 닮았지만 성격은 딴판인 새 동료는 피식 웃으며 세츠나의 턱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파안대소하며 말했습니다. -음, 저거? 염소수염이라고. 왜 닮았잖아. 형제와 같은 얼굴로 전혀 딴판으로 반응을 하니 위화감이 두 배에 충격이 두 배입니다. 티에리아가 그의 말을 받아 세츠나의 소중한 수염을 한 마디로 분석해주었습니다. -그렇군, 정말 염소 턱수염과 비슷하다.
세츠나 F. 세이에이, 21세. 어느 화창한 아침에 우울한 얼굴로 수염에 면도기를 대게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 수정했습니다. 메신저 대화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얼굴이 가늘고 긴 남자들이 수염도 가늘더라고요. 게다가 저 듬성듬성한 염소수염은 주위에 모델이 하나 있어서 평소 받은 인상을 바탕으로 써 봤습니다. 수정 전에 덧글 써 주신 이레 양 백야 님 감사합니다.
에이 그냥 인증하고 치우렵니다. 모 사이트에 올린 걸 손을 봤어요. 역시 사람은 글을 쓰고 퇴고를 해야 합니다. 그냥 두려니까 제가 찝찝해서 견딜 수 있어야 말이죠. 그래도 인증 안 하려고 했는데 보리밭 충격이 너무 커서 말입니다. 거기서 벗어날 겸 손을 보고, 손 보는 김에 그 사이트에 올린 건 지우려고 하다 답글이 달린 걸 보고 뭉클해서 안 지우고 돌아왔음. 누구신진 모르겠지만 정말 고맙습니다. 그 분이 이걸 보실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정말로 고마워요. (보셔도 아마 인증을 꺼리는 풍토 상 덧글 안 다시겠지만 기왕 인증하는 김에 이런 건 표현을 해야죠.) ------------------------------
"살이 텄네?" 엎드린 알렐루야의 허벅지를 베고 뒹굴거리던 록온이 갑자기 툭 내뱉은 말은 앞뒤전후좌우를 다 잘라먹은 말이라 알렐루야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 살이 터요?" "여기 말이야." 록온은 알렐루야의 오금께를 손가락으로 주욱 훑었다. 간지러운지 알렐루야가 쿡쿡 웃자 록온의 머리도 웃음소리를 따라 흔들렸다. "아, 뭔지 알겠다. 거기 꼭 소금물 말라붙은 자국 난 것 같은 데? 록온 그거 이야기하는 거예요?" "응, 너 갑자기 키가 확 자랐나보다." "그렇죠, 어릴 땐 작았으니까. 그런데 그건 왜 물어요?" "글쎄, 그냥. 이걸 보니까 너도 아직은 클 나이라는 게 생각이 났나보다.." "에이, 이제 더 클 키도 없어요." 아직 십대 후반, 덜 자란 남자는 소리내어 웃었다. "짜샤 그 소리 아니거든......" 록온이 어이없다는 듯 한숨쉬며 중얼거렸다. 알렐루야는 웃음을 멈추고 엎드린 채로 몸에 힘을 빼고 팔다리를 길게 뻗었다. 허벅지를 베고 있는 록온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어, 갑자기 많이 큰 건 어떻게 알았어요?" "키가 그렇게 크면 원래 살이 트거든. 특히 관절 있는 데." "맞아요. 재 본 적은 없지만 1년에 15cm도 더 컸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갑자기 크면 후유증도 좀 있는데." "전 좋았어요. 체구가 있으니까 살기도 편하고. 그래도 그 때는 자다가도 가끔 깼어요, 다리가 아파서." 알렐루야가 평온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그 때는 아마 요 최근 몇 년간은 아닐 것이다.처음 봤을 때와 키나 체격이 그렇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으니까. 록온은 무심히 머릿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알렐루야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프니까, 저 자신도 놀랄만큼 금방 키가 자라더라고요. 몸도 탄탄해지고. 그래서......" 말을 하다말고 알렐루야는 말꼬리를 흐렸다. 의무를 기억한 것이려니.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타인의 과거는 무겁다. 비밀 엄수를 최우선으로 하는 그들이고, 서로 간의 교류도 깊은 수준은 아니라서 지금껏 남의 과거를 들어본 적은 별로 없었다. 더 이상 선을 넘었다간 서로에게 좋지 않으려니. 록온은 말 대신, 대화가 끊긴 것은 괜찮다는 뜻에서 손을 들어 알렐루야의 등을 쓰다듬었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이 살을 쓸자 알렐루야가 등을 움츠린다. 난처한 듯 웃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록온은 생각했다. "어릴 땐 작았다면서 이 근육은 다 어떻게 붙였냐. 재주도 좋은 놈." 화제를 돌리자 알렐루야가 금방 대답했다. "예? 뭐 그냥 운동 좀 하고 어릴 때 보다 잘 먹다보니까 생기더라고요." "너 그 말 세츠나 앞에선 절대 하지 마라." "예? 안 돼요? 벌써 했는데?" 록온은 알렐루야와 같이 트레이닝을 하는 세츠나를 떠올려 보았다. 어쩐지 열심이더라니. 그 녀석 말은 안 해도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었나보다. 하기야 이 정도 근육을 어느 남자가 안 부러워하겠냐. 에이 별 거 아닌데 왜 그래요, 그게 별 거 아니면 랏세가 운다, 등등 시덥잖은 대화를 하는 동안 땀은 마르고 록온의 손길이 점점 나른해지다, 딱 멎었다. 베고 있던 허벅지에서 머리를 들고, 몸을 일으키고 옷을 주워입는 록온의 등을 알렐루야가 멀거니 쳐다보자, 록온은 장갑을 다시 낀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러 갈게. 내일 훈련 때 보자." "아, 불편해요? 전 바닥에서 자도 되는데요." 조금 놀란 듯 당황한 듯 반응하는 알렐루야를 향해 록온은 입가에 그린 듯한 미소를 띄웠다. "아니 그런 건 아냐. 잘 자라." 문이 스르륵 열리고 록온도 조용히 사라졌다. 알렐루야는 아직도 체온이 남아있는 허벅지를 손을 뻗어 만져보았다. 말을 돌리게 만든 이유도 자신의 말을 부드럽게 막아놓고 나간 이유도 짐작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자신이 아는 것을 반신이 모를 리가. 내일 다시 만나면 저 사람은 네 튼살은 기억하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반신의 야유가 들렸지만 알렐루야는 반신에게 자신의 등을 쓰다듬던 맨손의 감촉을 이야기했다.
미즈시마가 특별히 언급한, 더블오의 주제와 관련이 깊다던 영화를 보고 왔다. 나 그냥 이 영화를 못 본 셈 치던가 더블오를 못 본 셈 칠란다. 저 작자 아리오스란 이름도 붙였겠다 이제 마음잡고 테러질 하는 것만 남은 것 같은데 이 일을 어쩌면 좋을꼬. (그런데 정말 합체 하는 거냐, 불안하다. 제발 그것만은. 볼레로 충격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됐어. 또 모르지. 이번엔 합체해야 세 배로 힘 내게 설계해 놨는데 누구누구가 배신해서 합체를 못 해서 죽도록 깨지고 몰살모드로 들어가고 정신붕괴 돌입이라던가? 배신한 쪽도 당하는 쪽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던가, 그럼 살짝 봐줄 듯 말 듯?)
둘 중 한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이클 콜린스를 비난할 수도 있고 옹호할 수도 있듯이. 반이나마 가질 수 있는 게 어디냐, 더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지금까지 무얼 위해 동지들이 죽어갔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란 말이냐, 끝까지 전진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데미언도 테디도 고를 수 없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 역시, 이 영화를 보도록 권해 주신 모 님처럼 데미언에게 동조했지만, 동생에게 그만 하라고, 너는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냐고, 이 정도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계라고 말하는 테디의 말은 위선이 아닌 진심이지 않았나. 사실 테디의 선택이 가장 위험하지 않은 길로 보이기도 하니까. 물론 그 선택 덕에 지금도 아일랜드는 갈라져 있다. 하지만 둘 중 뭐가 좋고 나쁘다곤 말하고 싶지 않다. 나 역시 어떻게든 아일랜드 전체가 독립했어야 한다고 믿지만, 그 당시 조약을 거부했으면 아일랜드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심술맞은 생각이 들면 뭐라고 말을 못 하겠다.
한 뜻으로 공동의 적을 향해 싸우고 서로 돕던 사람들이 서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가장 좋은 조국을 만들기 위해 갈라져서 원하지도 않는데 서로 미워하고 결국은 서로 싸우게 되는 과정이 굉장히 평온하고 절제된 모습으로 화면에 비쳐서, 그게 가장 무서웠다. 어떻게 너희가 나에게 이럴 수 있니, 내 식탁에서 먹고 내 집에서 숨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라고 외치던 아주머니의 심정이 그들 모두의 심정이었을 거다. 우리도 저랬지 않나. 당장 1945년부터 얼마나 많이들 싸웠냐고.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더 슬펐다. 영국인이면서도 저런 걸 만든 감독에게 나부터 존경의 인사를 좀 드려야겠다.
두 형제의 행동이 똑같은 결과를 낳고 똑같은 대답을 듣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감독의 악의를 읽었다. 잔잔하게 염장지르는 게 제일 무섭지, 암.
요 몇 년간 본 중 가장 무서웠다.
덧 : 알렐루야는 이 영화를 보면서 세상의 악의를 읽을 것 같다. 세츠나는 왜 세상은 비뚤어졌냐면서 고민할 것 같고 티에리아는 인간은 왜 저럴지 지금부터 차근차근 생각해 볼 것 같다. 그런데 록온은 이 영화 보면서 아무 말도 안 할 것 같다. 제일 무섭다.
쿠로다여 쿠로다여 어찌 내 피를 말리시니이까 어찌 나를 염장질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죽어가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망할 놈의 쿠로다여 내가 낮에도 죽어가고 밤에는 더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은 확인사살이로소이다
동인녀의 한탄 속에 거하시는 쿠로다여 당신 잘난 거 우리 다 압니다 온 더블오덕들이 댁에게 기대하였고 기대한 만큼 우리를 수렁에 던지셨나이다 우리가 댁의 이름을 부르짖어 죽어가고 척살능력을 믿어도 뒤통수를 맞으니이다
나는 검은물의 노예요 이미 민간인이 아니라 포스팅이 일이요 코챈의 건빠게이이외다 나를 보는 자는 다 혀를 차며 입술을 삐죽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저가 건담을 봤으니 저 지경일 걸, 저가 M이니 기뻐할 걸 하나이다
오직 네타가 나를 잠수에서 나오게 하고 내 네타 한 조각에 의지해 웃고 울게 하셨나이다 내가 처음부터 검은물에게 맡긴바 되었고 네타를 볼 때 부터 검은물은 내 애증이 되었사오니 나를 그만 염장지르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많은 2차창작이 나를 에워싸며 이 바닥 무서운 분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손을 놀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뼈는 모두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건담이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시편 22편.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한 구절은 윈디 언니가 도움 주셨습니다. "응답은 확인사살이로소이다" 이 부분입니다. 언제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자랑하시는 언니에게 감사의 손키스를.
아리오스의 유래에 대해 읽었다.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월에 시멘트를 들고 갈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지금 가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 한 마디로 줄이면, 쿠로다는 알렐루야를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사랑하는 만큼 괴롭혀 주는 것이려니. 아니면 알렐루야를 데리고 노는 걸 좋아하거나. 건담 이름에 의미를 부여한 대로 전개가 된다면 말이지, 하고 최대한 좋게 생각하려고 했는데 대놓고 천상의 존재들인 주제에 저런 이름을 붙이면 답은 빤하잖나. 이 나쁜. 대놓고 공기취급이었던 건 다 이유가 있는 게지. 화끈하게 한 건 해 보거라.
천사들 이야기를 읽다가 전에 본, 옛 페르시아의 유물이 떠올랐다. 황소의 뿔과 맹금류의 날개를 단 사자. 세츠나가 뿔 달리고 날 수 있는 건담을 좋아하는 건 전통이라고 농담하면서 웃었는데 아 정말! 저 동네 신화가 공중제비 몇 바퀴 돌면 뭐가 되겠냐! 세츠나의 신은 그렇다 치고, 황소........흠 없이 키워 순결한 불로 태워 바치는 황소 어쩔 거야. (황소나 양이나 뿔 달린 건 같나? 아 몰라!)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엔 굳게 각오하고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겠노라. 1916년 부활절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는데 나 혹시 진성 M으로 나아가고 있나요 그런 건가요.
더블오 버닝하면서 안면(인지 서면인지.....)을 트게 된 분들은 좋은 분들이시다. 그래, 좋다는 수식어야 당연히 붙지. 그런데 좋은 야수들이셨다. 적절한 상황에 적절히 상처를 내는 방법을 아신......아니 아냐, 적절히 상처내는 거 절대 아냐! 즐거운 주말아침부터 시멘트 바닥에 상하좌우로 좍좍 긁힌 내 심장은 누가 위로해 주나.
.......그런데 내가 지금 낚은 사람들도 씨 뿌리면 식인식물로 자랄 가능성이 한 102%는 되는데 내가 내 무덤을 팠나?
여튼 저는 아침부터 죽어갑니다.
덧 : 코챈에도 사람 잡는 글게이 그림게이 몇몇 포진해있음. 내가 아는 분들인지 모르는 분들인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세상은 넓고 용자는 많음. 이글루에도 무서운 팬워크가 종종 올라와서 심장에 스크래치. 아니 원래 원작이 징글징글하면 2차창작도 막 나가기는 함.
근데 문제는 저렇게 잘 해 주시니까 너무 좋다는 거야. 나 이러다가 희대의 M 되는 거 아니냐고오.
좀 파르르륵 하긴 했는데 이제 마음은 평온하다. 뭐 그 화면만 직접 안 들이대면 발작 안 할 정도로는. 사실 나는 2기를 걱정했는데(선라이즈에서 2기라고 만든 것 치고 잘 된 걸 못 봤다.) 잘 해 줄거라는 믿음이 좀 생겼다. 저렇게까지 한 건 저게 필요했다는 뜻이니 어떻게든 피가 튀기는 스토리를 만들어 주겠지. 십자가를 진다는 말이 공염불로는 안 끝나기를 바란다. 내가 S라서 그런 건 아니고 -실지 내가 S더냐 M에 가까운 수륙양용이지.-이 이야기가 사람을 죽이면 나빠요라던가, 그래도 주인공은 불쌍하니까 봐 줘야 해요라던가 이렇게 끌고 갈 이야기는 아니잖나.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는 잔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1기는 결국 어느 테러리스트 조직이 어떤 모순을 안고 어떻게 무너졌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니까, 문제의 2쿨부터 그렇게 난리도 아니었지. 이제 2기는 시간도 많이 흘렀고 그간 애들한테 온 변화도 상당하던데 걔들이 뭐든 답을 찾아야 하지 않나. 애들도 분명히 성장했으니 더더욱. 사실 티에리아의 굳건한 모습이 가장 반가웠다. 그래 1기에서 네가 인간이 될 계기는 충분했으니 이제 인간이 되어야지. 록온이 죽어 아이들은 자랐다. 거름은 저렇게 뿌리는 것. 자 선라이즈 이제 세츠나가 개초딩이 아니고 알렐루야가 소녀가 아니며 티에리아가 푼수가 아니라는 것을 세계만방에 알릴 때다, 잘 해 봐라. (아니 그렇다고 쟤네가 좋은 놈이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고.)
이래놓고 스토리 안드로메다로 가면 정말로 죽이러 현해탄을 건너가 버릴 테다. 가서 누가 날 잡고 동기가 뭐냐고 묻거든 웃으면서 저 작자가 우리 록온을 죽이고도 스토리 말아먹었으니 죽어마땅하다고 하던가 아니면 낄낄 웃으면서 동기? 그건 죽음이 원했기 때문이오! 하면서 좀비춤을 추던가. 어머 쿠로다는 잘 해도 죽고 못 해도 죽겠네. 당신 처신 잘 해야겠다?
그리고 다시 보니까 건담 더블오 1시즌 마감한 후 최대의 수혜자는 빌리였다. 결국 둘이 잘 된 거면 저거, 세상에 드물다는 그 첫사랑이랑 잘 된 케이슨데 나이 서른 몇까지 첫사랑 소녀 기다리는 저 놈도 보통은 아니잖아. 좋겠다 빌리 카타기리. 순정남이 기밀 팔아서 연애하더니만 결국 소득이 있었구나. 좋더냐? 사실 처음에는 보고 엄마야 저거 뭐야 애들도 보는 데 저런 애프터 나와도 되냐? 하면서도 살짝 애매했던 게 저게 둘이 잤다고 보기엔 미묘한 거다. 스메라기는 술 퍼먹고 퍼져 자고 있고 빌리는 공돌이 답게 컴질이나 하고 있는 분위기기도 했고. 그런데 자세히보니까 마누라 재워놓고 잔업하는 남편 모드; 뭐야 동거 몇 년은 한 분위기 저거 뭐야! 스메라기는 조직을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후회하고 삽질했으니까. 더 이상 감당 못 할 것 같아서 나왔으려니. 록온 말마따나 강한 척 하는 것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나와봐야 이미 민간인으로 행복하게 살긴 글러먹었다. CB에 관여해놓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냐. 그래서 앞으로도 빌리가 최대의 수혜자일 거라고는 말 못하겠다. 하하하.
아주 염장을 질러라. 내 심정을 말로는 못 하겠고 짤방으로 대신하겠노라. 이 짤방 사이트 알아놓길 잘 했지 참 적절하네. 그러니까 전에 파푸와 66화 보던 날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됨. 가서 공부나 해야겠다. 900쪽짜리 책 왔는데 그거 다 읽고 나면 해맑은 마음으로 핸드폰화면을 볼 수 있으려니. (핸드폰 화면-지구를 저격하는 모 씨 손.)
덧 : 미리니름 다량함유 나는 당연히 그 사람이 우주로 돌아간 줄 알았지. GN 입자에 몸이 부서지건, 우주의 어딘가로 떠밀려가건 아무튼 우주의 일부가 되어서 지구에는 안 올 줄 알았는데 웬걸? 무덤이 다 있다네. 아아 호상이구나, 이 사람도 지구에 왔지만 성묘할 무덤이라도 있으니 남은이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인가 하면서 좋아했는데
호상 좋아하네 빌어먹을. 피투성이 얼굴, 수축된 동공, 단말마를 지르다 굳은 채로 죽은 얼굴? 죽은 사람 얼굴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게 왜 무서운지 알긴 알지 너네들? 세츠나는 그거 가져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시신 수습하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리고 하로는? 하로는 그걸 봤을까? 그 처참한 테러리스트의 죽음을.
쿠로다가 DVD 특전에서 얼굴 가린 건 다 이유가 있다니까. 그 작자 얼굴 인증 떴다간 길 가다 정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로 가는 수가 있는 걸 본인도 아는 게지.
사실 방금 생각한 건데, 처참한 시신인증은 록온다운 죽음을 증명하는 것 맞다. 1기가 괜히 다 죽고 실패하는 걸로 끝났겠어. 토끼몰이당하듯 죽고 다치는 게 예고되어 있었으니까. 당연한 수순이지. 테러리스트의 절망적인 죽음. 하지만 쿠로다 이 작자야. 네 가족 죽었소, 하고 말로 이야기해 주는 거랑 직접 시신 가져 와 이렇게 이렇게 죽었소 설명하는 거랑 같냐?
덧글 달다 정상인 코스프레 어쩌고, 에서 떠오르는 게 있었다. 생각해보니 취향수비범위에 저것도 들어가잖아.(......) 부인하고 싶어서 말을 안 했는데 겉 다르고 속 다른 놈들 되게 좋아했다.
어려서 대놓고 겉 다르고 속 다른 팔계나 칼 헬턴트 좋아했던 과거를 왜 까맣게 잊었을까; 흑역사라 그런가. 아무튼 오란고교 보면서 쿄우야가 인간실격 읽는 걸 보면서 저 놈이 저 책 들고 있는 이유를 알겠다며 낄낄 웃는 지경에 이르른 것이니. 내가 금색의 코르다 플레이하면서 남들은 블랙모드 유노키는 마왕이니 어쩌니 할 때 저 꼬마(...) 되게 웃기네라면서 시종일관 비웃음으로 일관한 건 다 이유가 있다. 애가 어설퍼서. 미연시 캐릭터들은 내가 좋은 게임을 못 봐서 그런 건지 어설픈 데가 있다니까. (코르다에서 제일 괜찮은 캐릭은 츠치우라와 시미즈다. 저학년들이 고3이나 선생보다 더 어른이다. 만세. 복슬복슬한 양같은 껍데기에 속지 말라니까!)
그래도 겉다르고 속다른 놈 취향은 여전해서 방향이 다른 쪽으로 겉 다르고 속 다른 애들한테 관심을 지속적으로 주고 있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일본문학사에 정상인 코스프레로 1등 먹을 놈이 한 놈 있다. 좀 방향은 다른데 타인이 너무 무서워서 거기 맞춰 가면을 쓰고 살다 보니 천하의 다메닌겐(.....젠장 다른 말이 생각이 안 나!)에 인생막장. 오바 요조라고 유명한 인물이 하나 있다. 오바 요조, 혹은 쓰시마 슈지 등등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인간들의 뿌리는 사실 작가였으니 우리도 익히 아는 그 인간. 다자이 오사무라고 있지 않나. 찌질이대마왕이라고. (음, '마'자도 좀 아깝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난 다자이 오사무를 욕하면서 좋아하는 인간이고.
그리고 여기에 정상인 코스프레에 능한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 이름 록온 스트라토스라. 왜 난 항상 그 밥에 그 나물로 놀지? 죽은 놈에 가장에까지 능하니 이건 진짜 도망갈 데가 없잖아, 아니 그 전에 그걸 왜 이제 깨달았냐 이 인간아! 미친 듯 자가연성질로 깨달은 게 고작 그거냐!
......그런데 잠깐, 분명히 좋은 분들이 좋은 거 많이 써 주신다고 안 써도 되겠다며 좋아한 게 불과 몇 개월 전 일인데 왜 내가 쓰고 있지?
요새 연수중이러 컴으로 딴 짓을 많이 하는데(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모처 건담판 보다가 벨파스트 사진 한 장과(올려주신 분, 감사합니다.) 엔딩의 한 장면을 보고 머릿속엔 망상이 몽글몽글 피어올랐으니, 일단 그 놈이 닐 디란디인 건 확실하고(설마 1기 엔딩에 나온 그 놈이 라일이었다, 이런 짓까진 안 할 거 아냐.) 시간 대가 언제냐는 건데......저게 록온의 과거라면 시위 같은 세상을 바꾸는 법에 관심은 많을 것 같은데 그 기사처럼 시위를 주동하는 인물인지는 모르겠다. 내 눈에 걔가 리더감은 절대 아니거든. 리더를 가장은 하겠지. 저걸 누가 썼느냐가 문젠데 그래, 어느 애니잡지 보니까 기사로 사람 낚더라 뭐. 다른 애들을 볼 때 1화 직전쯤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럼 그 시위를 주동하는 입장은 아닐 거라는 데 한 표. 테러리스트 주제에 무슨. 어쨌거나 아일랜드 사람이니까 동네 또래청년들 형님들 어울려 있는데 혼자 그냥 지나치기 뭐해서 조금은 이 사람들이 부럽고, 조금은 안 됐고, 조금은 짠한 마음으로, 아아주 조금은 냉소적인 마음으로 현장에서 같이 구호를 외친 게 아닌가, 하는 망상을 하다가 (어쨌건 자기는 거기 끼어들 수 있는 인간이 아니잖나.)그 곳이 록某의 안가가 있는 곳이라는 걸 떠올렸다.
난 설정도 고증도 안 하고 쓰고 고치는 인간이다. 흠흠. 아니 사실은 퇴고도 안 해. 생각나면 써. 생각이 안 나서 그렇지. ---------------------------------------08. 08. 16 조금 수정. 난 왜 이리 허술하냐-----------------
시위 현장에서 목청 높여 구호를 외치고 있는데, 근처에서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나보다 조금 바깥에, 그렇다고 아주 대열에서 벗어난 건 아닌데 미묘하게 시위대열과 어긋나게 서 있었다. 옆집에 사는 청년이었다. 옆집에 산다고 해 봐야 사실, 무슨 일을 하는지 집은 자주 비우는 것 같다. 집에 불이 켜져 있는 날이 반, 안 켜진 날이 반. 그것도 요 최근엔 불이 꺼져 있는 날이 잦다. 젊은 남자 혼자 사는 것 같다며, 혼자 살면 잘 못 챙겨먹기 십상이니 이웃은 그런 사람에게 관심을 쏟아주는 것이 도리라는 것이 우리 부모님의 신조라 반경 50m 내에 사는 사람들과는 거의 안면을 트고 사귀고 있는데, 이 사람은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이 동네에 이사온지 4년은 된 것 같은데 한 번도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보니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었더라. 내 이웃에 사는 젊은 남자는 시위대 옆에서, 살짝 비껴선 자세로 구호를 외치며 다른 사람들처럼 손을 젓고 있었다. 살짝 헐렁한 자세인데 묘하게 딱딱해 보였다. 전에 딱 한 번 대화를 할 때도 그랬다. 뭐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하여간 뭘 부숴뜨려먹어서 드라이버를 찾았는데 십자드라이버가 없어서 이웃에 빌리러 간 적이 있었다. 이웃인데도 어쩐지 긴장이 되어서,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벨을 눌렀다. -옆집 사람인데요, 아무도 안 계세요? 잠깐, 아주 잠깐 뜸을 두고 나서 목소리가 났다. -네, 갑니다! 대답은 해 놓고 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 젖은 목이며 팔이며 등이며 입고 씻기라도 했는지 좀 젖은 옷에,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나타난 젊은 남자는 웃으며 사과부터 했다. 멀리서 볼 때는 냉한 인상이었는데 말투도 표정도 참 수더분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고, 이거 미안하게 됐네요. 씻던 중이라 꼴이 이렇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아 아뇨, 제가 죄송합니다. 그냥 십자드라이버를 빌릴 수 있을까 해서 왔는데 씻고 계셨군요. 묘하게 남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싱긋 웃고는 발랄한 말투로 말했다. -드라이버? 잠시만 기다려요. 그러고는 현관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조금 있다 손에 십자드라이버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꼴이 이래서 들어오시라곤 못 하겠네요. 쓰시고 나중에 돌려주세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이 이상 발을 들이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씻고 있는데 나타났으니 들어가면 싫어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마지막 용건만 마치고 돌아가기로 했다. -고맙습니다. 저, 이거 답롄데 드셔보세요. 이웃과 친해지는 지름길은 음식을 나눠먹는 것이다. 나는 빵 몇 종류가 들어있는 봉투를 내밀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더니 봉투를 잡았다. -오, 감사합니다. 따끈한 걸 보니 집에서 만드신 건가보네요? -네, 제가 요리를 좋아해서요. -야아, 귀한 거네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드라이버는 이따 돌려드릴게요. -아, 네. 혹시 저 없으면 문 앞에 두고 가시고요. 그는 봉투 속에서 버터롤을 꺼내 요리조리 돌려보며 정말 기분좋은 얼굴로 웃었다. 인사를 주고 받은 다음,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굉장히 사교성 좋고 서글서글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이 위화감의 정체는 뭘까. 오후에 드라이버를 돌려주러 갔을 때, 집이 비어 있고, 문 앞에 작은 주머니가 걸려 있어서 거기 드라이버를 놓고 간 기억도 났다. 웃으며 이야기했는데 왜 깊이 접근하지 말라고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까. 아무튼 한동안 그 집은 비어있었다.
나는 앞에 선 사람에게 들고 있던 피켓을 넘기고 행렬의 가로 몸을 옮겼다. 시위대는 여전히 주먹을 쥐고 구호를 소리높여 부르짖고 있었다. 위치를 옮겨서 잘 보니 그가 그 곳에 서 있었것은 아주 잠시였던 듯, 이내 피식 하고, 웃더니 이내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던 길이었나보다. 몇 발짝 걸어가다, 대열에 섞여 그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나와 그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한 얼굴에 재빨리 웃음을 띄우고 그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어라, 옆집 분이시네요. 안녕하세요?" "네, 시위에 참가하셨나봐요." 그는 헛기침을 했다. "뭐어 그런 거죠. 그나저나 아직 어려보이는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그렇지도 않아요. " 칭찬을 받고 머쓱해져 고개를 긁적이다보니 어느새 그는 돌아서 방향을 틀었다. 고개만 돌리고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럼 안녕히." "네, 그러니까, 어......." 물어보려고 고개를 돌리자 그는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평범한 안부인사나 왜 그러냐는 일상적인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때 어제 내게 드라이버를 빌려주고, 보답으로 내가 구운 버터롤을 준 그 사람의 이름을 모른다는 걸 알았다. 기억나는 것은 물건을 매개로 잠시 스쳐간 손의 온도 정도. 그 때 물건을 빌리러 갔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때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은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였다. 그는 마치 잘못 합성한 사진처럼 풍경 속에 억지로 몸을 밀어넣고 있었다. 그 증거로 얼마 전부터 빈 그의 집이나, 그가 살던 때의 그의 집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리고 내가 억지로 기억을 뜯어내서 생각하지 않았다면 잊고 넘어갈 뻔 한 것이 하나 더 기억이 나기도 해서였다. 시위 현장에서 그가 보였던 그 냉소적이고 약간은 아련한 표정.